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26
1026화 도와줄까?
“흠…….”
본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검을 수련 하면서 점점 더 강해지긴 했지만, 그럴수록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만 갔다.
이때 설이 갑자기 물었다.
“너는 선각자를 알고 있느냐?”
“선각자! 물론 알고 있습니다. 혹시 누님도 만나 보셨습니까?”
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그녀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다 왔다!”
순간 고개를 돌린 엽현의 앞에 광활한 황무지가 펼쳐졌다. 지면 곳곳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검들이 꽂혀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강대하고 다양한 종류의 검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님, 여기는……”
“검총(劍冢)이다.”
검총?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예를 갖추어라.”
“제가 왜…”
“어서!”
설의 호통 소리에 엽현이 엉거주춤 검총을 향해 절을 올렸다.
곧, 검총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
“네 검도의 기초는 그 소복 여인의 것이다. 그녀가 방향을 제시해 주긴 했지만, 검도에 대한 너의 이해는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 할 수 있지. 이런 식으로는 백 년이 흘러가도 너만의 검도를 쌓을 수 없을 것이다.”
설이 검총에 꽂혀 있는 수많은 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 눈앞에 있는 이 검들의 주인은 모두 오유계 정상급 검수들이었던 자들이다. 모두 나의 아버지와 함께 평생토록 검도를 추구해 온 사람들이었지. 더러는 살아 있는 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자루의 검만 남기고서 사라졌다.”
“…….”
“알아들었으면, 다시 한번 정중히 예를 갖추어라.”
엽현은 이번에는 주저함 없이 정성을 다해 절을 올렸다.
오유계 정상급 검수들의 무덤.
이 말이 주는 무게는 상당했다.
이때 설이 검총을 향해 예를 갖추며 소리쳤다.
“숙부님들, 휴식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녀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검총에서 희미한 영체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엽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잠시 후, 장내에는 모두 서른여섯 개의 영체가 몰려들었다.
이들은 육신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모두 강대한 검의를 뿜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을 찢어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운 기운을 뽐냈다.
강자!
만약 이들 검수들이 모두 살아 있다면 말 그대로 세상을 호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엽현은 비로소 설의 말을 믿게 되었다.
검총에 묻힌 자들은 정말로 오유계 최강의 검수들이었다.
한편, 장내에 모인 검수들의 시선은 모두 엽현에게 쏠려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그들은 이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 기이한 광경에 엽현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저 미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들이 나를 알고 있는 걸까?’
“자, 그럼 제대로 배우도록 하거라!”
설은 이 말 한마디를 남겨놓고선 퇴장했다.
그녀가 사라진 후, 검수 하나가 엽현 앞에 나타났다.
“헤헤, 어르신. 안녕하십…”
엽현이 막 인사를 하려는 이때, 한 줄기 검광이 부지불식간에 그의 미간을 뚫고 나갔다.
그 자리에 딱딱히 굳어버린 엽현.
‘내가… 죽은 건가?’
이때, 그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방금 내 검이 어땠느냐?”
엽현이 고개를 돌려 방금 출수한 검수를 바라보았다. 이마를 만져 보았지만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하하, 나의 검도는 허허실실이다. 허와 실 사이에 무쌍한 변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지.”
“대단하십니다!”
“후후, 세상 만물의 이치가 이러하다. 네가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네 마음뿐이다.”
“도대체 그 검도는…”
엽현이 말끝을 흐리자 검수가 웃으며 물었다.
“한 번 배워 볼 생각이 있느냐?”
“그렇습니다!”
“하하, 내 검도는 매우 간단하다. 그저 네 마음의 깨달음이 중요할 뿐이지.”
엽현이 검수를 향해 공손히 예를 차렸다.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인사는 생략하고, 검부터 들거라.”
엽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이어지는 시간부터는 그야말로 끝없는 수련이었다.
엽현은 하루죙종일 거의 잠도 자지 않은 채, 배움에 열중했다.
검도!
항상 검도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엽현에게 이는 사막에서 만난 우물이나 다름없었다.
천녀는 그에게 방향을 알려주었지, 그 과정을 가르쳐 주진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엽현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깨달음에 의지하여 길을 헤쳐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막막한 것이었다. 설령 틀린 길을 가고 있다 하더라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검수들에게 둘러싸여 각양각종의 검도를 경험하는 지금은 엽현에게 있어 검도의 새로운 문을 연 것이나 다름없었다.
엽현은 이들의 검도를 보며 안목을 넓히고 자신의 검도와 결합하는 기회로 삼았다.
비록 실력에 극적인 상승은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검도에 대한 엽현의 지식은 날로 늘어만 갔다.
* * *
이 시각, 천마성역, 차원문 밖.
며칠 밤낮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임평생이 돌연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다!”
“안에 들어가려는 게냐?”
무희의 물음에 임평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면 그 노인을 제거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시간을 끌다간 서옥이 다른 자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르지 않나?”
“흠…….”
“무희, 결정해라. 도박을 해 볼 테냐?”
잠시 고심하던 무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다, 들어 가보자!”
결국 금역 안으로 들어선 임평생과 무희.
두 사람은 곧 검종의 비석이 세워진 곳에 도착했다.
“이 안에 이런 세력이 존재했었군.”
“너 역시 몰랐던 건가?”
임평생이 의아해하자 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다. 조사께서 이곳을 금역으로 설정하신 후, 마가족 무인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지.”
“너희 조사는 왜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인가?”
“나라고 알겠느냐? 어쨌든 조사의 명이니 듣는 수밖에. 물론 이 말을 어기고 이리로 들어온 자들은 있었지만, 한 명도 살아 나오지 못했다. 그러니 나도 이곳에 대한 정보가 없던 것이지.”
이때 임평생의 시선이 비석 위로 향했다.
“검종…….”
순간 표정이 미묘하게 바뀐 임평생.
“엽현 역시 검을 쓰는 자였지. 혹시 이 세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임평생의 안색이 굳어가고 있을 때, 무희가 웃으며 말했다.
“엽현과 검종은 아무런 관련도 없다.”
“어떻게 확신하지?”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않느냐? 그는 애당초 금역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그가 천마성역에 온 것도 처음이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관련이 있을 수 있겠는가!”
“흠… 충분히 일리가 있어. 어쨌거나 중요한 건 엽현으로부터 서옥을 빼앗는 것이다.”
무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에게 적의는 없지만, 무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지금의 그는 서옥이 있어야만 오유겁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서옥 없이 오유겁을 맞이한다면 천마족이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 수가 극히 적을 수밖에 없으리라.
엽현을 제거하는 것.
이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 일단 이동 하도록 하지.”
두 사람이 막 검종으로 신형을 날리려는 이때, 두 사람의 앞에 백발노인이 나타났다.
순간, 임평생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지난번 노인을 맞아 고전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때 무희가 나섰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바로 이때, 노인의 검집에서 한 자루 검이 튀어나왔다.
쉭-!
그야말로 벼락같은 속도로 날아드는 검광!
이 엄청난 속도에 무희와 임평생의 안색이 돌변했다.
이때, 무희가 팔을 들어 검을 막았다.
쾅-!
먼저 무희가 수백 장 뒤로 날아갔고, 뒤이어 임평생 역시 또다시 날아든 검에 의해 튕겨 나갔다.
제 자리에 멈춰 선 두 사람의 안색이 일순 잿빛으로 변했다.
노인의 실력은 충분히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이보시오! 우리는 정말로 그대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소!”
이 말에 백발노인이 임평생을 향해 대꾸했다.
“그 아이를 찾아온 게 아니더냐?”
“그렇소! 우리는 엽현만 처리하면 되는…”
“건방진 놈!”
노인의 불호령 떨어지면서 한 줄기 검광이 임평생의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를 본 임평생이 황급히 창 한 자루를 꺼내 들고는 정면으로 맹렬히 돌진했다.
쾅-!
재차 뒤로 날아가는 임평생.
하지만 노인이 방출한 검광은 창을 파괴한 데 이어 임평생의 목까지 위협했다. 바로 이때, 어디선가 날아든 묵광이 검광의 측면을 때렸다.
쾅-!
큰 폭발과 함께 흩어진 검광.
백발노인의 시선이 이제는 무희에게로 옮겨갔다.
이에 무희가 눈을 피하지 않고 물었다.
“엽현을 알고 있소?”
“내 앞에서 이빨을 보일 생각을 하다니, 아주 대담한 녀석들이로구나!”
말과 동시에 노인이 양손을 하나로 모았다. 찰나의 순간, 그의 머리 위에 한 자루 투명한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검을 본 순간, 임평생과 무희의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이때, 노인이 흉흉한 표정으로 양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참(斬)!”
순간, 빛과 같은 속도로 허공을 가르는 투명한 검.
콰르르르르르-!
검이 지나간 공간이 마치 빙하가 갈라지듯 쪼개져 나갔다.
“무희! 같이 막아야 한다!”
무희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임평생과 무희가 동시에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마치 천둥처럼 온 세상에 퍼짐과 함께, 임평생과 무희의 신형이 순식간에 천 장 밖으로 밀려났다.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은 두 사람의 눈동자가 넋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였다.
한편, 재차 출수할 준비를 마친 노인.
그가 막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그만 하세요.”
여인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백발노인이 검을 거두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무희와 임평생이 고개를 들자, 검종 상공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대는 또 누구시오?”
무희의 말에 설이 웃으며 반문했다.
“그대들은 엽현을 죽이려고 온 건가?”
“…그렇소. 그대는 그를 보호하는 사람이오?”
이 물음에 설이 고개를 내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뭐, 뭐?”
예상 밖의 대답에 임평생과 무희는 당황했다.
이때 설이 말했다.
“나는 엽현에게 한 가지 맡겨둔 일이 있다. 그것이 끝나면 그는 이곳에서 나갈 것인데, 그땐 너희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
임평생과 무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래쪽에선 백발노인이 무언가 의견을 꺼내고 싶은 눈치였지만, 감히 입을 열진 못했다.
“하하, 내가 한 말은 사실이다. 그와 나는 별 관계도 아니다. 볼일을 마치면 곧바로 밖으로 내보낼 테니, 그때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너희 마음대로 하거라.”
이때 무희가 주저하며 물었다.
“혹시 놈을 지금 내어줄 순 없겠소?”
“…둘 다 죽고 싶은 건가?”
순간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 설.
이 모습을 본 순간, 무희와 임평생의 등 뒤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들은 설이 한 말이 단순히 협박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이만 가지!”
무희는 임평생이 채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등을 보이며 달아났다.
무희가 사라지자 임평생 역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떠나야만 했다.
비록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무희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떠난 후, 백발노인이 설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괜찮아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요. 하지만 이 일은 엽현의 일입니다. 그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내버려 둬야 해요.”
“하지만 그러다가 큰일이라도 생기면…”
“그땐 어쩔 수 없죠.”
가볍게 씩 웃어 보인 설은 그대로 자리를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