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27
1027화 습격
검총.
엽현은 여전히 검종의 검수들과 끊임없이 교류 중이었다. 처음엔 지식이 없어 듣기만 했던 엽현은 점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빠른 습득은 그의 경지가 이미 범검에 도달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엽현의 검도 지식은 폭풍처럼 성장했다. 다른 종류의 검도를 살펴보며 끊임없이 지경을 넓혀 나갔다.
그리고 이때의 엽현은 설이 주문한 바와 같이 잡념 없이 오직 검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 * *
천마성역, 금역 입구.
다소 화가 난 얼굴로 무희를 노려보고 있는 임평생.
“왜 도망친 건가!”
“그럼? 거기 남아서 그 여자와 싸우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이냐?”
“…….”
“그 여자의 실력은 이미 우리 둘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그럼 이대로 포기하자는 말인가?”
“임평생, 진정하거라. 그 여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자신들은 엽현과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
임평생이 침묵하자 무희가 말을 이어갔다.
“그 여자가 엽현을 어떻게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녀의 말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어쨌든 우리 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말을 어찌 믿느냐?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럼 뭘 어떻게 하려고?”
무희의 물음에 임평생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그 여자가 아무리 강해 봐야 주재경을 벗어나진 못했을 것이다. 만약 주재경 강자가 두 명쯤 더 있다면, 어렵지 않게 여자와 노인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무희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또 그만한 강자를 찾는단 말이냐?”
이때 임평생이 두 눈을 번쩍 뜨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한 번 알아보겠다. 그리고 동시에 엽현이 스스로 나오게끔 할 필요도 있다.”
그 말에 무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혹시 만유서원을 칠 셈인가?”
임평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서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겠다. 만약 그 여자 말대로 엽현과 아무 상관이 없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에 하나 한통속이라면 우리도 일전을 각오해야 할 테니까.”
말을 마친 순간, 임평생의 모습은 이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홀로 남은 무희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 * *
검총.
불청객을 물리친 설은 검총 안으로 들어섰다. 거기서 검수들에게 둘러싸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엽현을 보자, 설의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엽현은 이미 며칠째 잠도 미뤄 놓은 채 검도에 심취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또다시 밤과 낮이 몇 차례 바뀐 어느 날.
엽현이 돌연 토론을 멈추고 명상에 들어갔다.
가부좌를 튼 채, 숨소리도 내지 않는 엽현.
검수들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엽현이 명상에 잠긴 모습을 지켜보았다.
설 역시 엽현에게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엽현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기 삼일이란 시간이 흘렀을 때, 전혀 움직임이 없던 엽현이 돌연 두 눈을 떴다. 순간, 엽현의 눈동자에서 번뜩이는 한 줄기 검광.
이 모습을 보자 설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쾅-!
그의 체내로부터 강대한 검의가 높이 솟구치자, 온 하늘이 크게 진동했다.
잠시 후, 엽현이 크게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불끈 쥐자, 반투명한 검 한 자루가 그의 머리 위에 응집됐다.
“후…….”
“느낌이 어떠냐?”
어느새 엽현 앞에 다가온 설.
그녀의 물음에 엽현이 재차 숨을 크게 마신 후 대답했다.
“너무 좋습니다. 날아갈 것만 갔습니다!”
“후후, 잘 됐구나. 이제 깨달은 것을 완전히 네 것으로 익히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니,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 말하려 할 때 엽현의 앞 공간에 가벼운 파문이 일었다.
잠시 후, 엽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왜 그러느냐?”
“호도자와 천마족이 제 친구들을… 누님, 아무래도 빨라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엽현의 다급한 음성에 설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진 않느냐?”
이 말에 엽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합니다! 엄청!”
엽현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던 설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농담이었다!”
“…….”
“미안하지만 이번엔 도와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네가 떠난다고 하니, 나 역시 가야 할 것 같다.”
“이곳을… 떠난단 말입니까?”
설이 주변을 가볍게 둘러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되었다.”
“누님, 가면 어디로 가십니까?”
“너는 뭐가 그리 궁금한 게 많은 게냐?”
설이 면박을 주자 엽현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가끔은 참아보도록 하거라. 사내놈들이 빨리 죽는 이유가 호기심 때문이라 하지 않느냐?”
“헤헤, 그럼 다음에 또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다. 반드시 다시 만날 것이다.”
“반드시?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 물음에 설이 피식 웃었다.
“이거 봐, 하지 말라니까 또 질문하고 있네.”
“…….”
“하하, 농담이니 그렇게 울상짓지 말거라. 항상 몸조심하고 끊임없이 매진하도록 하거라. 그래야 언젠가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울 수 있을 테니!”
어깨를 나란히 한다라.
엽현은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이별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비록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설에게서 매우 친숙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오래전 함께 전장을 누빈 동료를 다시 만났을 때의 감상이랄까?
이상한 일이로군.
이때, 설이 뒤편에 있던 검수들을 한 번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네게 줄 선물이 있다.”
“서, 선물 말입니까?”
이때 설의 입가에 다소 짓궂은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 * *
무변지하성, 천도전당포.
여느 때와 같이 계산대 위에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있던 소도.
이때 그녀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실내로 들어왔다.
소도 앞에 선 남자는 다름 아닌 천마족 족장 무희였다.
“소도 낭자.”
“무슨 일인가?”
“알고 싶은 것이 있어 찾아왔소. 그대는 엽현의 진짜 내력을 아시오?”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그대에게 청해 들어봐도 되겠소?”
“후후, 이 정보는 꽤나 비싼데 괜찮겠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해보시오.”
이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필요한 걸 물을 게 아니라 네가 뭘 가지고 있느냐를 말해 보거라.”
그러자 무희가 계산대 위에 납계 하나를 올려놓았다. 납계를 살펴본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고민하던 무희가 또 다른 납계를 꺼냈다. 소도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순간 무희의 낯빛이 다소 어두워졌다.
“이렇게나 비싸단 말이오?”
“이 정도로 앓는 소리 할 거면 찾아오질 말았어야지?”
“흠… 이번에 도와준다면 나중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나 역시 그대를…”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딱 잘라 거절하는 소도.
이 말에 무희의 안색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어찌 천마족 족장의 체면을 이리도 구길 수 있단 말인가?
이때 소도가 웃으며 말을 꺼냈다.
“무희, 더 꺼낼 게 없으면 그만 가보지?”
“휴… 소도 낭자. 내가 알기론 그대는 엽현과 친분이 있다고…”
이때 소도가 무희의 말을 잘라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엽현을 죽이려 하는데 내가 신경 쓰인다는 거 아니냐? 걱정하지 말거라. 비록 나와 엽현의 관계가 나쁘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 원칙을 어기고 그를 위해 출수하진 않을 것이다.”
“하나만 더 묻겠소. 엽현의 배후라는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요?”
이 질문에 소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방금 것보다 훨씬 비싸다. 감당할 수 있겠나?”
“필요한 걸 말해 준다면 최대한 맞춰 보도록 노력하겠소.”
“하하! 갸륵한지고! 노력이 가상해서 한 가지 공짜로 말해 주마. 지금 당장 천마성으로 돌아가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절대 나오지 말거라.”
“나더러 성에 박혀 있으란 말이오? 어찌 그런…”
“봤지?”
소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 내가 기껏 조언이랍시고 해줘도 들어 처먹을 생각이 없지 않느냐? 어차피 네 마음 가는 대로 할 거면서 뭐 하러 날 찾아온 것이냐?”
“…….”
소도는 더 이상 무희를 상대하지 않고 책 한 권을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무희가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 실례가 많았소.”
이 말과 함께 전당포를 빠져나가는 무희.
소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고는 자리에 다시 벌러덩 누웠다.
* * *
만유서원.
여부자가 돌아온 후, 만유서원은 빠르게 원래 모습을 회복해갔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복귀했다는 소식에 사방으로 흩어졌던 만유서원 강자들이 속속 복귀하면서, 만유서원의 기세는 날로 강성해져가고 있었다.
여부자의 장원, 다과상을 가운데 두고 장문수와 여부자가 마주 앉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 예감이 좋지 않아. 아무래도 조만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여부자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문을 열었다.
“엽현 그 망나니 때문인 건가?”
장문수가 묻자 여부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과 함께한 이후로 서원과 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가 되어버렸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필시 우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
“하긴, 오유계 모든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한 자들이 이 시기에 몰려들고 있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장문수가 무덤덤한 얼굴로 차를 홀짝이며 대꾸했다.
“상관없어. 뭐가 오든 막아 내면 되는 거 아냐?”
“하하하, 문수. 너는 이 상황에서도 어찌 그리 낙관적인 게냐?”
장문수가 맞받아치려고 하는 이때, 두 사람이 동시에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무형의 압력이 만유서원 전체를 휘감았다.
“후… 역시 내 예감이 맞았…”
여부자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 창 한 자루를 꺼내든 장문수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대장간 노인이 만들어 준 창에, 혈맥지력까지 등에 업은 장문수.
그녀의 실력은 이미 여부자를 넘어서 있었다.
다시 말해 만유서원의 실질적인 일인자는 바로 장문수라는 이야기다.
이때 하늘 높이 솟구치던 장문수가 돌연 자리에 멈춰 섰다. 공중에서 느끼는 압력의 크기가 지상에서보다 몇 배 이상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장문수의 눈에 한기가 서리는 순간, 그녀의 창이 손을 빠져나갔다.
퍽-!
공간을 부수며 날아가는 한 줄기 창망.
콰쾅-!
이 한 방에 하늘을 짓누르던 압력이 일순 사라졌다. 그러나 이때, 어디선가 나타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장문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상대의 기습을 받은 장문수가 순식간에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녀의 발이 지면에 닿은 순간, 그곳 주변이 커다란 구덩이로 변했다.
구덩이 깊은 곳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장문수.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임평생이었다.
잠시 지면의 장문수를 응시하던 임평생이 살짝 웃으며 먼저 말을 걸었다.
“한가락 하는 여인이었군.”
“…누구냐?”
“호도 도주다.”
“호도자의…?”
“그렇다!”
임평생이 정체를 밝히자 장문수가 씩 웃으며 물었다.
“너희들이 노리는 건 분명 엽현일 텐데, 왜 이리로 왔느냐?”
“후후, 왜냐하면… 놈이 겁먹고 나오질 않고 있기 때문이다.”
“흠… 그렇게 된 것이었군.”
장문수는 임평생이 자신들을 미끼 삼아 엽현을 끌어내려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엽현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