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32
1032화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엽현이 장내 무인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지금 이 순간부터 천함이 천도성의 성주다. 이의 있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오도록!”
무덤가처럼 고요한 장내.
물론 감히 나서는 이도 없다.
엽현이 다시 천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후로 그대 말에 복종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바로 알리시오. 즉시 처단하도록 하겠소.”
짧은 한마디를 남긴 채 엽현은 고노와 함께 유유히 사라졌다.
제 자리에서 침묵하는 천함.
그녀는 자신이 엽현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음을 자각했다.
천도성이 계속해서 존재하려면 반드시 자신이 성주가 되어 그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엽현의 도움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천함의 실력은 다른 천도성 강자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그녀는 엽현의 꼭두각시가 되어 수족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것!
“언니, 우울해할 필요 없어. 이보다 나은 선택은 없었으니까.”
“천안아…….”
“이게 다 언니 덕분이야. 애당초 언니가 그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이런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을 거야.”
“…….”
“사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꼭 나쁜 결과라고 볼 수도 없어. 최강자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배후가 막강한 엽현에게 의탁하는 것은 우리 천도성 사람들의 생존에도 유리한 것일 테니까.”
침묵하던 천함이 입을 열었다.
“사실 조금 전에 그가 너를 힐끔 쳐다보는 걸 봤어. 아마 원래는 너를 선택하려 했을 거야.”
천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날 선택할 수 없었어.”
“어째서?”
“왜냐하면 나는 눈치가 빠르거든. 성주 자리를 맡기기엔 부담스러웠을 거야.”
“아…….”
천함은 엽현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편이 통제하기에 더 쉽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어. 그가 우리를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그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우리 천가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무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주종관계는 영원히 바뀌지 않겠지만.”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렇게 된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야.”
이때 천함이 문득 고개를 들어 성 밖을 바라보았다.
“천마족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한편, 이 시각 엽현과 고노는 천마성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의 천마성은 이미 모든 강자가 빽빽하게 집결 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는 거대한 크기의 검은 진법이 지면을 향해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천마성역의 모든 병력이 엽현과 고노 두 사람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현재 천마성을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임마.
엽현과 마주한 임마가 먼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엽현, 복수를 하러 온 게로구나.”
“그렇다. 천도성은 이미 항복했다. 너희는 어떤 선택을 할 텐가?”
엽현의 질문에 임마가 비장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하군. 우리 천마족은 죽더라도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
“그렇군… 결정을 존중한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엽현이 곁에 있는 고노를 바라보았다.
“고노, 그럼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엽현의 말을 들은 고노가 그 즉시 검을 뽑아 들고서 천마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순간 성 전체에 흩뿌려지는 검광!
쾅-!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미 수십 개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바로 이때, 공중에 떠 있던 거대한 진법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한줄기 두꺼운 광선이 고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에 고노는 오히려 등을 보였다. 그러자 등 뒤에 있던 검갑에서 한 자루 검이 튀어나와 광선을 향해 날아갔다.
쾅-!
커다란 폭발과 함께 광선 또한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때, 고노가 공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쉭-!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검광이 진법에 도달한 순간, 진법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 장면을 보자 아래쪽에 있던 천마족 강자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엽현 정면에 있던 임마가 돌연 엽현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이와 동시에 어디선가 나타난 천마족 강자 두 명이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천마족으로서는 우선 엽현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였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엽현은 세 사람이 코앞에 닥쳐서야 비로소 검을 뽑아 들었다.
쾅-!
순간, 임마가 멀리 튕겨져 날아갔고, 이와 동시에 엽현에 발밑에 두 개의 머리가 떨어졌다.
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고노는 안심하며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쉭-!
그의 손짓 한 번에 또 한 무더기의 머리가 후드득 잘려 나간다.
하지만 천마족 강자들의 기백도 만만치 않았다. 비록 고래와 새우의 싸움일지언정 절대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결사항전(決死抗戰)!
이미 천마족의 무인들은 죽기를 각오했던 것이다.
한편, 엽현의 일격을 받고 주춤한 임마의 표정은 매우 일그러져 있었다.
“엽현, 네 이놈-!”
바로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임마가 황급히 양팔을 교차해 앞을 가로막았다.
쾅-!
검광이 번뜩이며, 임마의 신형이 다시 수백 장 뒤로 밀려났다. 정신을 차린 임마는 자신의 양팔이 산산조각 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패배를 직감한 임마가 고개를 들어 무어라 소리치려는 이때, 날카로운 검 끝이 임마의 목을 관통했다.
푸확-!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온 순간, 임마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임마를 처리한 엽현은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이때 엽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쉴 새 없이 잘려 나가는 머리들과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무인들의 선혈이었다.
살육!
이미 천도성 안에는 고노를 막을 만한 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고노는커녕 엽현조차 어찌할 수 없었다.
비록 엽현의 전투력은 고노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강했다. 게다가 그의 무시무시한 방어력은 보통 무인들이 뚫을만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천마성 안은 이내 죽은 시체와 피로 채워져 갔다. 처음엔 죽기 살기로 덤비던 무인들 역시 뒤로 갈수록 꽁무니를 빼는 모양새를 보였다.
엽현과 고노 두 사람의 검 앞에 선 무인들은 덤빈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기 스러져 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전력 차이였다.
대략 한 시진 후.
고노와 엽현이 검을 거두었다. 천도성 안은 마치 무덤처럼 시체가 즐비했고,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전멸까진 아니었지만, 천마족의 대부분 강자들은 이미 제거가 된 상태였다.
한편, 엽현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선 진혼검이 물에 풀어 놓은 강아지처럼 성 구석구석을 다니며 영혼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진혼검에게 이곳은 말 그대로 진수성찬인 셈!
“고노, 어떻게 보십니까?”
엽현의 물음에 고노가 고개를 돌려 진혼검을 응시했다.
“매우 훌륭합니다.”
이에 엽현이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혼검은 이미 원래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은 상태였다. 만약 이대로 계속 간다면 언젠가 천주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론만 놓고 본다면, 진혼검의 성장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고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천마족도 다시는 볼 일이 없겠군요.”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끝난 것 같으니, 가시지요.”
엽현과 고노가 막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상공에 검은 회오리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회오리 가운데서 사람의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그림자를 향해 돌아선 엽현과 고노.
순간, 고노의 눈빛이 가늘어지면서 그의 등에 있던 검갑이 바로 튀어 나가기라도 할 듯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마족인가?”
엽현이 무덤덤한 태도로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러자 곧 상대의 음성이 성안에 울려 퍼졌다.
“엽현, 네가 이렇게 잔인할 줄은 몰랐구나.”
“훗, 잔인? 나는 충분히 인자했던 것 같은데?”
“인자라… 하하하! 엽현, 이 원한은 반드시 기억하도록 하마!”
말을 마친 그림자가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고노, 저자를 죽이십시오!”
이에 기다렸다는 듯 고노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간 한 줄기 강대한 검광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며 그림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때, 그림자가 일 권을 방출했다.
쾅-!
천둥 치는 소리가 작렬하면서 검광이 순식간에 소멸했다.
이를 본 순간 엽현의 눈빛이 다소 기이하게 변했다. 고노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재차 출수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림자는 완전히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다!
표정이 어두워진 엽현.
“간단치 않은 자입니다. 다시 만난다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도련님.”
“…확실히.”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곧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은 곧장 천마성을 떠나는 대신 천마족의 보고를 털기 시작했다.
보고 안의 보물 중에는 딱히 엽현이 쓸 만한 것은 없었지만, 지인들에게 나눠주고자 일단 모두 쓸어 담았다.
잠시 후, 작업(?)을 끝내고 보고를 나선 엽현.
이때 천마성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미 멀리 도망쳤기 때문이다.
엽현이 천마족을 멸망시킨 일은 순식간에 오유계 전역에 전해졌다. 물론 더욱 화제가 된 것은 당시 혜성처럼 등장해 여러 명의 주재경 강자들을 제거했던 검수들이었다.
검종!
과연 이 신비한 세력이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것일까? 세간의 관심은 모두 검종의 부활에 집중됐다.
한편 천마성을 떠난 엽현과 고노는 다시 천도성으로 돌아왔다.
엽현은 먼저 천함과 천안을 대전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없는 사이 어려웠던 점은 없었소?”
“…처음에는 반대하는 소리가 있기도 했으나 그대가 천마족을 몰살시켰다는 소식이 돌자 그 소리가 쏙 들어갔소.”
천함의 말투는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엽현은 자신의 아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천함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무슨 일이 있거든 바로 연락하시오. 그리고… 그대에게 반항하는 자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피해를 입을 테니까.”
“…….”
엽현은 시선을 천안에게로 돌렸다. 천안은 엽현을 마주 보면서도 아무런 두려움의 기색도 비치지 않았다.
“언니를 잘 보좌하거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
“필요한 게 있으면 곧장 연락하도록 하고.”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천안의 물음에 엽현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거라.”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대전 문을 나섰다.
엽현이 떠나자 대전 안에는 천함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언니, 싫으면 싫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지!”
천안의 말에 천함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그가 우리에게 두 번째 자비를 베풀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
* * *
엽현과 고노는 다시 만유서원으로 복귀했다. 돌아온 직후 여부자와 장문수를 찾아 계옥탑을 꺼내 놓았다.
이때 여부자가 엽현 손 위에 있는 서옥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서옥을 개방하려고?”
“그렇소. 호도자와 천마족이 사라졌으니, 이제 더 이상 방해할 사람도 없소.”
“만약 있으면?”
“하하, 그럼 좋은 일 아니오? 나의 적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말이오.”
“흠… 지금 상황에선 그렇지.”
여부자가 엽현 곁의 고노를 흘끔 바라보며 대꾸했다.
이내 엽현이 천천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잠시 후, 그의 몸 밖으로 빠져나온 계옥탑이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서옥 안으로 들어갔다.
쾅-!
순간 서옥으로부터 흘러나온 한 줄기 강대한 빛이 순식간에 성공 높이까지 솟구쳤다.
이때 오유계의 무수한 무인들의 눈이 모두 이 빛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