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33
1033화 겨루자!
무변지하성.
개울가에서 빨래하고 있던 외발 여인이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린 순간, 그녀의 모습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허무계.
묘를 살피고 있던 묘지기 노인 역시 이 빛을 발견하고는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천도전당포.
어김없이 대자로 뻗어 있던 소도가 고개를 번쩍 들어 문밖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죽으려고 환장한 건가?”
* * *
만유서원.
이때 엽현은 속으로 다소 놀란 상태였다. 만유서옥을 여는 작업이 이렇게까지 요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정도 빛이라면 이미 오유계 전체가 알아보았을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서옥에 모여진 이때, 만유서원 상공에 강대한 기운이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운의 주인들은 성공 속에 몸을 숨긴 채, 직접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를 느낀 엽현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서옥을 노리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건가?
한편, 함께 자리하고 있던 고노의 표정도 다소 진중하게 변했다. 이를 느낀 듯 그의 등 뒤에 있는 검갑 역시 언제라도 출수하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때 서옥이 갑자기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만유서원 주변에 강자들의 기운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 중 가장 약한 자의 기운이 주재경!
엽현의 점점 자신이 실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옥이 뿜은 하얀 빛 가운데 신비하게 생긴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 위쪽에는 작은 홈이 이었는데, 어느새 허공에 떠오른 계옥탑이 이 홈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 문으로 향했다.
이때에도 주변으로 강대한 기운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는데, 그 불어나는 속도가 마치 범람하는 강을 보는 듯했다.
엽현의 안색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해버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강자들이 몰려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고작 서옥 하나에 다들 목숨을 건단 말인가!?
바로 이때, 엽현의 곁에 하얀빛이 번쩍이더니,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소도였다.
“하하, 벌써 네가 무적인 줄 착각했던 것이냐?”
“소도 낭자…….”
“시간 없으니 빨리 말하겠다. 네가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소복의 여인을 부르거나, 둘째, 검종의 전 병력을 데려오는 것이다.”
“그, 그렇게나 엄중하단 말이오?”
“그만큼 네가 경솔했다는 것이지.”
순간 엽현은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소, 소도 낭자. 괜히 겁주는 거 아니오? 내 곁에는 여기 고노도 있고, 나도 이제 제 한 몸 보호할 정도는 된단 말이오!”
이때 소도가 고노를 흘끔 바라보더니, 돌연 일 권을 날렸다.
이에 고노가 황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쾅-!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고노가 순식간에 수만 장 멀리 튕겨 날아갔다. 심지어 그가 막 제 자리에 멈춰 섰을 땐, 신비한 기운이 그의 발목을 감싸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소도의 시선이 다시 엽현에게로 넘어갔다.
“자, 이제 어떻게 널 보호할 셈이지?”
“소도 낭자… 그대가 출수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멍청한 소리!”
돌연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치는 소도.
“지금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자는 저 노인 하나뿐이다. 헌데 지금 여기 모인 자들 중 저 노인을 쓰러뜨릴 수 있는 자는 못 해도 열 명은 넘는다. 자, 내가 가만히 있는다 해서 네가 안전할 수 있겠느냐?”
열 명!
엽현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이때 소도가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저 노인을 견제한다고 치면, 나머지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혼자서 다 때려눕힐 생각인 게냐?”
“…….”
“에휴… 실력이 좀 늘고, 뒤를 봐주는 자가 있다고 해서 천하무적이라도 되는 줄 알았나 보구나.”
말을 마친 소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떠나갔다.
이때, 엽현의 머릿속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열면 안 돼!]아라의 목소리였다.
정신을 번쩍 차린 엽현은 황급히 손을 뻗어 계옥탑과 서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성공 높이 솟구쳤던 하얀 빛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순간 여부자와 장문수는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실 그들도 매우 당황한 상태였다. 주변에 나타난 무인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엄청난 고수들.
개중에는 주재경 강자들도 최소 열 명은 넘었다.
엽현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오유계에 주재경 강자가 이렇게나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엽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저 많은 주재경 강자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천마족을 멸망시킬 때만 하더라도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소도의 말대로 서옥을 개방하려 했던 것은 성급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만유서옥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잠시 망각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빛이 사라짐과 동시에 숨 막힐 듯 몰려들었던 기운들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를 본 엽현은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았을 때, 서옥을 개방하지만 않는다면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즉, 당분간은 서옥을 개방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도의 말대로 천녀나 검종 강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리라.
잠시 후, 만유서옥의 하늘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장원 내의 엽현은 손안의 계옥탑과 만유서옥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에 잠겼다.
이 두 물건은 엽현에겐 그야말로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이때 여부자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아직 시기가 이른 것 같구나.”
“휴… 그 시기는 언제쯤 올 것 같소?”
“그걸 누가 알겠느냐.”
여부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엽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할 필요는 없다. 네가 서옥을 개방하지만 않는다면 저들도 널 건드리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자들은 크게 두렵지 않소. 다만 무변지하성과 허무계, 그리고 소도 낭자가 어찌 나올지 무섭구려.”
조금 전 상황에서 엽현은 직감적으로 소도 역시 만유서옥에 눈독을 들이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으로서는 절대 서옥을 열고자 해선 안 된다. 알겠느냐?”
“하하, 걱정 마시오. 그럼 부문종에 가 볼 것이니 다들 몸조심하고 계시오. 아참…….”
돌아서려던 엽현이 다시 두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 역시 윤회경에 도달해야 할 것이오.”
이때 장문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그래도 해 보는 데까진 해 봐야지?”
엽현이 손을 펼치자, 고서 한 권이 그의 손안에 나타났다. 엽현이 고서를 장문수에게 건넸다.
“이 책은 우리 누님께서 준 건데, 두 사람이 익혀보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책을 받아 펼쳐 본 장문수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이건…….
“빨리 윤회경을 돌파하도록 해!”
장문수와 여부자가 부족한 것은 경지일 뿐이었다. 이미 그 전투력은 윤회경 강자에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윤회경에 올라선 두 사람이 신물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충분히 주재경 강자와도 맞설 수 있으리라.
두 여인은 곧 폐관에 들어갔다.
엽현은 장문수와 여부자가 안심하고 수련할 수 있도록 고노를 서원에 남겨 놓고, 자신은 부문종으로 향했다.
그가 막 부문종 입구에 들어서려는 찰나, 어디선가 한 줄기 검광이 날아들었다.
엽현의 눈이 가늘어지는 동시에 그의 검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쾅-!
가볍게 공격을 물리친 엽현.
하지만 이때, 또 다른 검광이 기이한 각도로 날아와 그의 미간을 노렸다.
이에 엽현이 가볍게 몸을 눕히는 동시에 손목을 틀어 검광을 받아냈다.
쿵-!
마치 검으로 벽을 내려친 것 같은 둔탁한 느낌이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상대의 검이 이번에는 목으로 향했다. 엽현은 이 공격을 막는 대신, 검이 날아온 쪽으로 자신도 검을 찔러 넣었다.
이대로라면 양쪽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쉭-!
이때 상대측에서 돌연 검을 회수하면서 엽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몸이 딱딱하다고 해서 아주 마음대로 하는구나!”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목소리에 엽현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양손에 각각 검과 검집을 들고서 엽현 앞에 나타난 여인.
다름 아닌 소칠이었다.
소칠!
소칠이 등장하자마자 툴툴거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소칠의 검이 엽현보다 빨랐지만, 이는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검은 단단한 엽현의 육신을 파훼할 수 없는 반면, 늦게 날아온 엽현의 검은 충분히 소칠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일대일 상황에서 엽현의 육신은 사기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소칠! 못 보던 사이에 더 강해졌구나!”
“너 역시.”
“그런데… 란수하고 만리는?”
엽현이 주변을 휙휙 돌아보며 물었다.
“떠났어.”
떠나?
순간 엽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떠나다니? 이 시국에 어디를!?”
“어디긴 어디겠어. 강자를 만나 수련하기 위해 떠난 것이지.”
“아… 왜 하필…”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엽현을 보자 소칠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어린 애들도 아니고, 인과경씩이나 되는 무인들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
그 말에 엽현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전투력이야 엽현도 익히 알고 있었다. 주재경 정도의 강자를 만나는 일만 아니라면 목숨이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이때 엽현이 문득 소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던 거야?”
“그래. 오랜만에 한판 붙어볼까?”
소칠의 제안에 엽현이 씩 웃어 보였다.
“후후,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럼, 조심해.”
이 말과 동시에 엽현의 정면으로 검이 날아들었다.
재빨리 검을 들어 방어하는 엽현.
쾅-!
엽현이 몇 발 뒤로 뒷걸음질 치는 이때, 그의 옆면에서 몇 개의 검광이 번뜩이며 날아들었다.
콰콰콰쾅…….
다시 수십 장 뒤로 밀려난 엽현. 그가 자리에 멈췄을 때, 하얀 눈과 같은 검광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에 엽현 역시 머리 위로 검을 내질렀다.
정면돌파!
날아오던 검광이 순식간에 사그라들면서 뒤쪽에 숨어 있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쾅-!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갈라져 나가는 공간. 이때, 엽현 위쪽에 있던 소칠의 신형이 또다시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순간,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검을 들어 몸통을 방어했다.
쾅-!
손 전체에 엄청난 충격이 전해짐과 동시에 엽현이 재차 십여 장 후퇴했다.
소칠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
순간, 뭔가를 느낀 엽현이 황급히 뒤로 돌며 검을 휘둘렀다.
콰쾅-!
엽현의 앞쪽에서 검광이 폭발하면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림자의 정체는 물론 소칠이었다.
소칠이 자리에 멈춰 선 이때, 엽현이 돌연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순간 자신의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보자, 소칠이 황급히 검을 들어서 막으려 했다.
이때, 소칠의 안색이 크게 변하면서 갑자기 자리를 박차며 뒤로 수십 장 후퇴했다.
엽현과 거리를 벌린 소칠은 손을 들어 자신의 팔을 확인했다. 그녀의 팔뚝엔 어느새 자그만 실선이 그어져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엽현을 향해 고개를 드는 소칠.
“처음 것은 가짜였나?”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환검(幻劍)!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어려운 검초지.”
“나와 헤어지고 나서 배운 건가?”
“맞아, 가르쳐 줄까?”
“훗! 필요 없고, 이번엔 내 검이나 받아 보시지!”
말을 마친 소칠이 양손으로 잡은 검을 미간에 가져다 댔다. 찰나의 순간, 소칠이 자리에서 사라지면서 장내에 검광이 번뜩였다.
이를 본 엽현은 후퇴하는 대신 정면으로 달려들면서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발검정생사(拔劍定生死)!
일검이 떨어진 순간, 소칠의 검이 허공에 멈춰 섰다.
이때 소칠이 기합을 내지르며 손목을 크게 비틀었다.
쾅-!
주르륵 밀려나는 엽현.
이때 엽현이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검을 휘둘렀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소칠의 검신을 때리면서, 소칠 역시 뒤로 수십 장 가량 밀려났다.
거의 동시에 자리에 멈춰 선 두 사람.
잠시 엽현을 응시하던 소칠이 먼저 검을 집어넣었다.
“오랜만에 즐거웠어. 다음엔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그야 얼마든지!”
“이제 가 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