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38
1038화 시중을 들라고?
엽현은 완전히 이지를 상실한 상태는 아니었다.
지나치게 분노하지 않는 한, 이런 식으로 혈맥지력을 조절하며 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런 만큼 혈맥의 힘을 최대로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늘 높이 고고하게 떠 있는 천룡을 바라보며 엽현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져 갔다.
‘저렇게 커다란 녀석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바로 이때, 엽현을 응시하던 천룡이 돌연 엽현을 향해 포효했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지면으로 쏟아지면서 장내가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에 엽현이 황급히 아목을 바라보았다.
“낭자, 좀 도와줄 수 있겠소?”
“내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는 아목.
“난 싸울 줄 모르는데?”
“…….”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이때 아목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너를 좀 더 강하게 해줄 순 있다.”
“나를… 더 강해지게 해준다고?”
고개를 끄덕인 아목이 갑자기 엽현에게로 다가가더니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때 주문을 마친 아목이 엽현의 미간을 짚으며 소리쳤다.
“무신지명(巫神之名), 무신력(巫神力)!”
쾅-!
순간 엽현의 얼굴이 신비한 검은 문양에 뒤덮이면서, 체내에서도 강대한 기운이 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강대한 힘에 엽현은 깜짝 놀랐다.
살면서 이렇게 강한 힘을 가져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천룡이 방출한 기운이 코앞으로 날아들었다.
이를 본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일 권을 뻗어냈다.
콰쾅-!
하늘이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용의 기운이 순간 사라졌다.
엽현은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들여다보았다. 이때 그가 느끼고 있는 힘은 평소의 최소 열 배 이상이었다.
열 배!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술이 다 있나!
바로 이때, 공중의 천룡이 크게 포효하더니, 지상으로 꽂히듯 떨어졌다.
엽현은 일단 놀람은 제쳐두고, 지면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천룡과 그를 향해 정면으로 솟구치는 엽현.
아래에서 보자면 엽현은 천룡과 비교해 개미처럼 작았다. 하지만 엽현이 주먹을 뻗은 순간, 천룡은 큰 벽에 가로막힌 듯 공중에 멈추고 말았다.
이때 천룡이 포효하며 앞발을 휘둘렀다. 이에 엽현 역시 괴성과 함께 통렬한 일 권을 방출했다.
서로의 전력을 다한 일격!
콰쾅-!
서로의 주먹과 발이 격돌한 순간, 천룡이 튕기듯 뒤로 날아갔다. 이 과정에서 몸에 비늘이 후드득 뜯겨 나갔으며, 선혈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와 장관을 이루었다.
장장 천장 가까이를 날아가서야 멈춘 천룡.
그의 육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순간 고요해진 장내.
엽현은 자신의 주먹을 들여다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몸에 흐르는 힘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한편, 엽현을 향해 있는 천룡의 눈빛에는 두려운 기색이 가득했다. 이때 그가 불현듯 아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 천룡에게서 살기를 느낀 아목이 엽현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살려줘!”
음성이 채 떨어지기도 전, 천룡의 꼬리가 아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에 곧바로 아목의 앞을 가로 막고 선 엽현.
그가 천주검을 꺼내 휘두르려는 이때, 아목이 손가락으로 검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무신지명(巫神之名), 신검(神鋒)!”
쾅-!
순간 천주검이 요동치더니, 붉은 검신이 검게 변함과 동시에 검 끝에 신비한 묵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잠시 멍하니 묵광을 바라보던 엽현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서 사선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서걱-!
날아오던 천룡의 꼬리가 잘려 나가면서 사방으로 선혈이 쏟아졌다.
엽현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천주검이 언제부터 이리 강했단 말인가?
엽현은 문득 손안에 있는 검이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바로 이때였다.
“뭐하고 있어! 해치워!”
아목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엽현이 고개를 들었다. 이때 천룡은 이미 달아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엽현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용족답게 속도가 매우 빠른 천룡은 순식간에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때, 아목이 이번에는 엽현의 등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무신지명(巫神之名), 신속(神速)!”
쾅-!
순간 엽현은 등에 날개가 달린 듯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아목의 의도를 이해한 그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두어 번 눈을 깜빡였을까.
쿵-!
아목의 눈앞에 천룡의 육중한 몸체가 굉음을 내며 떨어졌다. 그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때 아목이 흥분한 기색으로 천룡의 머리를 걷어차기 시작했다.
“일어나! 일어나서 한 판 붙어! 자신만만하더니 왜 자빠져 있는 거야!”
“아목 소저, 그는 이미 죽었소.”
엽현의 음성에 아목이 발길질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우선 힘줄을 채취하고 용혈을 마시도록 하거라. 그러면 네 몸에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음… 그건 죽은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소?”
아목이 무어라 소리치려 할 때, 엽현은 어느새 천룡의 가죽을 가르고 피를 받아내고 있었다.
“…언행불일치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천룡혈!
이런 신물은 욕을 먹더라도 반드시 챙겨 놔야만 하는 것이다.
받아 낸 피를 계옥탑에 옮겨 둔 엽현은 이번에는 힘줄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엽현이 일하는 동안 아목은 천룡의 몸 여기저기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어머, 얘 저 힘줄 굵은 것 좀 봐. 내다 팔면 성 하나는 살 수 있겠다. 어머머머! 간은 내가 좀 챙길게. 이거 볶으면 술안주로 딱이거든. 나중에 나랑 한 잔… 꺄악! 아직 심장이 뛰고 있네! 저건 따뜻할 때 먹어야 돼. 식기 전에 어서 꺼내 먹으려무나!”
“……소저, 원래 이런 성격이었소? 대제사장의 체통은…….”
결국 아목을 포기한 엽현은 말없이 해체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대략 두 시진 가량이 지나서야, 엽현은 천룡을 완전히 분해할 수 있었다.
큰 작업 후에 출출해진 그는 그 자리에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용고기!
잠시 후.
불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고기 냄새가 두 사람의 코를 자극했다.
아목은 일찌감치 불 앞에 앉아 요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음… 냄새 좋다. 이게 팔부천룡(八部天龍)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놈은 분명 이것보다 훨씬 맛있을 거야.”
“팔부천룡? 그런 용도 있소?”
“그럼! 천룡 일족 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 바로 팔부천룡이란다. 그리고 여기 이놈은 용문(龍紋)이 두 개뿐인 걸 봐서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녀석이구나.”
평범!?
엽현은 들고 있던 국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천룡일족의 수는 얼마나 되는 것이오?”
“음… 그래도 아직 수백 마리는 남아 있지 않을까?”
수백 마리!
이번에는 정말로 국자가 땅에 떨어졌다.
이 모습을 보자 아목의 표정이 왠지 밝아졌다.
“왜, 겁나는 게냐?”
“…혹시 내게 복수하려고 하거나 하진 않겠지 말이오?”
“웬걸, 천룡족은 예로부터 뒤끝이 깊기로 유명했지. 강력한 대신 개체 수가 적은 약점이 있기에 하나하나가 소중하거든. 누군가 천룡 하나에게 상처를 입혔다가, 수십 년간 쫓겨 다녔던 일화는 아주 유명하지.”
잠시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엽현이 화로에 노릇노릇 익어가는 고기를 가리켰다.
“혹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들은 적 있소?”
“용을 잡아다 구워 먹는 인간은 오유계 역사상 네가 처음일 것이다.”
순간 엽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래도 다행이오. 아직 이들은 깨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이 말에 아목이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그들 중 일부분은 이미 깨어난 상태다.”
“허… 그래도 한 마리 잡아먹었다고 단체로 달려들거나 하진 않겠지 말이오? 그것도 나는 정당방위였지 않소?”
“헤헤, 어디 잘 익었나 볼까나.”
“…….”
“다 익었다!”
아목은 속이 타들어 가는 엽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음… 맛있다! 너도 어서 먹어보거라, 살살 녹는다!”
“…….”
“왜, 겁먹은 게냐?”
“누가 겁을 먹었단 말이오!”
씩씩하게 큰소리친 엽현은 익은 고기를 크게 한 점 베어 물었다.
순간 육즙이 입안에 가득 흘러넘치는 것이 황홀할 지경이었다. 용고기가 이렇게나 맛있는 것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순간 엽현은 용의 개체 수가 적은 것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참, 아목 낭자. 방금 그대가 준 힘은 비술이었소?”
“비슷한 거지. 어땠느냐? 대단하지 않더냐?”
“정말로 대단했소. 혹시 내게 알려 줄 순 없겠소?”
이에 아목이 입을 오물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가능한 것이지.”
“그, 그럼 나는 어떻소. 나 정도면 대제사장감 아니오?”
아목이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는 엽현을 쓱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넌 안 된다. 제사장급은 오직 순수한 무족 혈통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무시(巫侍)는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무시? 그게 무엇이오?”
“무시란 제사장의 시종을 뜻하는 것이지.”
아목의 얄궂은 표정을 본 엽현은 순간 표정이 싹 굳었다.
“하하, 그런 표정할 것 없다. 무족 내에서 무시의 지위는 매우 높은 것이다. 정확히 말해 족장과 대제사장 다음이라고 할 수 있지. 너는 무족 내에서 무시가 되기 위한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아느냐?”
“음… 잘은 모르겠지만 무시가 되면 좋은 점이 뭐가 있소?”
“무시는 대제사장을 통해 무신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방금 내가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엽현은 고민에 빠졌다.
이 정체 모를 여인과 함께할 것인가?
솔직히 말해 아목의 전투력은 약한 정도를 넘어서 아예 쓸모가 없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의 비술을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전 그녀가 주문을 외워 준 이후 그의 실력은 주재경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아니, 심지어 그 이상으로 강해지지 않았던가.
“흠… 좀 전에 보여준 것 말고도 다른 비술도 쓸 수 있소?”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다만 당장 네 실력으로 이보다 더 강한 비술을 사용할 수는 없다. 어쨌거나 나를 따라다니면 얻어먹을 것들이 많을 것이다.”
“정말로 내가 그대의 무시가 되길 바라시오?”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남의 시중을 드는 법을 모르오.”
“나 역시 네 시중 따위는 필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왜…”
이때 아목이 엽현의 말을 잘랐다.
“무족의 보고에는 엄청난 보물이 쌓여 있다. 어때, 한 번 구경해 보고 싶지 않으냐?”
보물!
이 말에 엽현의 눈이 반짝였다.
“호, 혹시 쓸 만한 게 있다면 내가 좀 빌려 쓸 수 있겠소? 갖겠다는 게 아니라 빌린다는 소리요!”
“하하, 나의 무시가 되기만 한다면 마음껏 사용해도 상관없다!”
이때 엽현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그대는 왜 날 무시로 삼고 싶은 것이오?”
“음…”
“거짓말할 생각 말고, 솔직히 말하시오!”
이에 아목의 표정이 다소 침울해졌다.
“사실 지금 내 처지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주 위험한 것이오?”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아직 깨어날 때가 아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 혼자만 깨어나고 나라 보호해 줘야 할 다른 무족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구나.”
“흠…….”
엽현이 고민하는 이때, 아목이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조금 전 네 운명을 엿보았을 때, 목숨 줄이 아주 질긴 것을 알 수 있었다. 너와 함께 한다면 나 역시 무족이 깨어날 때까지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하지만 나와 함께 있어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해 봤소?”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엽현이 한숨을 쉬며 무어라 하려는 이때, 돌연 먼 하늘로부터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는 조금 전 그가 죽인 천룡의 기운과 매우 흡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