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검으로 눈을 삼아라!
청주, 강국.
창란학원에 돌아온 엽현 등을 기다린 것은 처참하게 파괴된 폐허였다. 창란전과 주변에 있던 건물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창란산 마저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엽현이 폐허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언가 찾는가 싶더니 이내 잔해더미 사이에서 무언가를 번쩍 들어 올렸다.
호리병!
그것은 기 원장의 호리병이었다.
호리병을 보자 묵운기와 백택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기안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그저 주먹을 움켜쥐었다.
엽현이 잠시 호리병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자신의 허리에 호리병을 매달고는 눈앞의 폐허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가 살면서 어딘가에 무릎을 꿇은 적은 엽령을 구하고자 할 때를 제외하고,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 그가 창란학원에 오게 된 것은 단순히 여동생을 살리기 위함이었지만, 그 후로 엽현은 정말로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
창란학원엔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도, 상대를 향해 거친 언사를 뱉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청성 엽 가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온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묵운기 등 세 사람이 다가와 엽현의 곁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창란전을 향해 나란히 세 번 절을 올렸다.
절을 마친 후 엽현이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내 자못 비장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기 원장, 약속한대로 이들을 잘 보살피겠습니다. 창산 위에 있는 학생들 또한 곧 데리고 돌아올 것입니다. 그날이 오면, 그들과 함께 중토신주의 본원으로 찾아가 원장의 마지막 염원을 이뤄드릴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이때, 기이한 일이 생겼다.
엽현의 안색이 확 달라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심지어 그는 마치 간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켰다!
이를 본 묵운기 등이 깜짝 놀라 엽현을 살펴보니 엽현의 안면은 이미 뒤틀릴 대로 뒤틀려 원래의 모양을 잃어가고 있었다.
“의원을 불러올게!”
기안지가 황급히 달려가려 할 때, 엽현이 갑자기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괘, 괜찮아… 그저 대가를 치르는 것뿐이야……. 너, 너희들 내 주위를… 잠시 지, 지켜줘…….”
그 대가는 엽현이 맞닥뜨려야 할 숙명이었다.
엽현은 이미 천녀를 부르기 위해 계옥탑을 흔들 때 이러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천녀는 함부로 계옥탑의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한 적 있지만, 당시 그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천녀가 한 번씩 출수할 때마다 계옥탑에는 굉장히 큰 부담이 가해진다. 그리고 그 부담은 오롯이 탑의 주인인 엽현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전에 그가 대가를 치르지 않았던 것은 천녀가 자신의 힘으로 억지로 막아 준 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엽현은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 고통은 그로 하여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할 만큼 괴로운 것이었다.
계옥탑의 힘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천녀의 출수까지 이어졌으니…
그 두 개의 대가를 동시에 치러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내심이 강한 엽현이라도 이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고통이었다.
끊임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엽현의 육신은 심지어 가뭄이 든 땅 마냥 쩍쩍 벌어지고 있어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보였다!
실로 보기 힘든 끔찍한 광경이었다.
묵운기 등 삼인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엽현은 몸을 동그랗게 만 채로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차라리 기절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대로 혼절하게 되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에게는 죽을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엽령과 안란수를 찾아야 하고 창란학원도 재건해야 하면, 그 외에도…….
견뎌야 한다! 반드시 견뎌내야 한다!
엽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절하지 않으려 인내했다.
옆에 있던 묵운기가 갑자기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난 정말 약해 빠진 놈이었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그런 약해빠진 병신이었어!”
백택은 아무 말 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아무 표정도 드러내진 않았지만,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기안지 역시 무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창란학원은 이제 그들 네 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만약 엽현마저 죽어버린다면…….
얼마나 지났을까, 한쪽 하늘이 희끗희끗해지며 날이 밝기 시작했다.
그러자 엽현의 상태가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묵운기 등은 여전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엽현의 주위를 지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때는 정오 무렵.
엽현의 손가락이 까딱까딱 움직였다. 이를 본 기안지가 황급히 다가와 그의 양팔을 붙잡으며 말을 걸었다.
“어, 어때? 이제 괜찮아?”
엽현이 천천히 일어나며 눈을 떴다.
“좀 괜찮아…… 그런데, 아직… 해가 안 뜬 건가?”
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든 기안지가 몸을 살며시 떨며 엽현의 두 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두 눈이 텅텅 빈 것이다.
묵운기와 백택이 숨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엽현이 두 눈을 손으로 슥 비벼 보고는 문득 깨달았다.
날이 밝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멀어버린 것이었다.
바로 이때, 그의 머릿속에 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의 육신은 부작용을 견디기에 충분히 강하지만, 네가 단련하지 못한 눈은 그렇지 못하다.내가 손을 못 쓰는 이유는 탑을 억누르고 있는 내가 손을 떼는 순간 탑이 봉인을 풀고 나를 공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먼저 죽는 것은 네가 될 것이다.]
엽현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저는 이대로도 괜찮습니다.”
그러자 천녀가 말했다.
[눈이 없다 해도 네게는 검이 남아있다. 검안(劍眼)을 수련하여 검을 네 눈으로 삼아라!]검안(劍眼)?
엽현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네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바로 검이다. 그러니 검을 눈으로 삼는 것도 지극히 가능한 일이지. 마음은 검이 되고 검은 눈이 된다. 이 경지에 이르면 눈이 없어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일단 그렇게 된다면 네가 보는 것은 사물의 껍데기가 아닌 그 본질이 된다. 그리고 수련을 통해 이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마음만으로도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네가 여기까지 해낼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엽현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괜찮겠느냐?]‘조금이라고?’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말한 ‘조금’의 고통은 언제나 ‘엄청난’ 고통이었다.
“천녀님, 언제 제가 고통을 두려워하는 거 보셨습니까?”
[잠시 후 네게 하나의 공법을 전해 줄 테니 그것을 토대로 수련하도록 하거라. 두 눈이 없이는 당분간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이나, 공법을 완성하고 나면 다른 존재의 눈을 가져다가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 눈은 검안의 힘을 견딜 만한 것이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용이라든지 혹은 봉황이라든지…….]‘용? 봉황?’
엽현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그들 존재는 전설 속에나 나오는 신수 아닌가? 그런 존재들의 눈을 뽑아다가 쓰라고?
가까이 가기도 전에 타 죽기 십상일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 슬슬 두 번째 도칙을 찾아야 한다. 네가 도칙을 찾아오면 그때는 나 역시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네 실력도 한 층 더 강화되겠지. 부디 잊지 말고 기억해라. 너의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닌 바로 네 몸 안에 있다는 것을!]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들어가서 좀 쉴 테니 별일 없거든 찾지 말거라. 그리고 가능한 탑의 힘을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 너는 탑의 힘을 통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탑에 충격이 가해질수록 좋아할 것은 탑에 의해 봉인되어 있는 저 멍청한 존재들뿐이다.]엽현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천녀님, 괜찮은 것 맞습니까?”
[이놈아! 내 걱정할 시간 있으면 네놈 걱정부터 하거라!]그때 엽현의 머릿속으로 갑자기 수많은 정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검정혼(一劍定魂). 검안결(劍眼决).
엽현은 고개를 저으며 웃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은 행운아였던 것이다.
천녀의 도움 아래 그는 다른 무인들보다 적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남들은 평생 만져 보지도 못할 무기며 공법을 자신은 어렵지 않게 획득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천녀가 한 번 출수할 때마다 자신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번엔 눈을 잃었다. 다음번엔 또 어떤 걸 잃을 것인가?
게다가 그는 계옥탑 안에 위험한 존재들이 바글바글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녀가 또다시 출수하게 된다면 탑이 도칙을 회복하기도 전에 붕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은 꼼짝없이 죽는 것이다.
지금 이와 같은 상태에서 천녀가 출수하는 것은 마치 재앙을 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천녀에게 기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가 천녀에게 기대는 마음을 품는 그 순간, 천녀는 자신을 버릴 것이 분명했다. 엽현이 느낀 천녀는 그런 존재였다.
만약 당시 자신이 목숨을 걸고 탑을 흔들지 않았더라면, 천녀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리라.
그와 천녀는 어떤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니 그녀에게 매번 도움을 바라는 것도 도리에 어긋났다.
역시 모든 것은 스스로 해내야만 한다.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
이때, 그의 몸 안에서 영수검이 마치 할 말이 있다는 듯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졌다.
곧 엽현의 손바닥 위로 영수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그는 이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느낄 순 있었다.
엽현이 검을 손에 쥐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부터 너는 나의 눈이 되는 것이다.”
이때 묵운기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엽 강도…….”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난 괜찮아.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의 대답에 묵운기 등 세 사람이 침묵했다.
이때 엽현이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창란학원엔 우리 넷만 남았어. 나는 앞으로 우리 창란학원을 재건해서 청주에서 가장 큰 학원으로 만들고 싶어! 아니, 청창계에서 가장 좋은 학원을 만드는 거야!”
엽현이 폐허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기 원장, 하늘에서 지켜보십시오. 나 엽현은 한다면 한다는 놈입니다! 창란학원 본원이 우리를 무시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도록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