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40
1040화 피의 맹세
아목이 무엇에 놀란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순간 엽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아목의 감정도 느낄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두려움!? 도대체 뭘 봤기에!?
“뒤, 뒤에…”
순간 등 뒤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는데, 누군가 뒤에 접근했단 말인가!?
천천히 뒤돌아서는 엽현.
아니나 다를까. 몇 장 떨어지지 않은 정면에 뒷짐을 진 채 자신을 향해 서 있는 노인이 보였다.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달린 노인의 가슴부위에는 네 개의 용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그의 뒤로는 여섯 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각기 최하 두 개의 용문(龍紋)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엽현 곁에 다가온 아목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작게 속삭였다.
“저기 앞에 있는 게 사부천룡(四部天龍)이야. 저건 훨씬 더 맛있어.”
“…….”
‘맛있다고?’
엽현은 순간 눈이 뒤집힐 뻔했다.
눈앞에 나란히 서 있는 천룡들을 보고도 그런 농담이 나온단 말인가?
솔직히 말해 얼마 전에 천룡을 이긴 것도 행운에 가깝지 않았던가!
지금 살까 죽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판에 먹는 상상을 하고 있다니, 진정 제정신이란 말인가!
한편, 천룡들 중 가장 앞서 있는 노인의 시선은 줄곧 아목을 향해 있었다.
대제사장!
순간 노인의 눈에 경계의 기색이 흘렀다.
무족의 신과 같은 존재, 한 마디에 무족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이 여인의 존재에 대해 노인이 모를 리가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지위는 무족의 족장보다 더 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족 족장을 임명하는 권한이 대제사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눈앞의 여인은 무족 자체라는 것!
한동안 아목을 응시하던 노인이 마침내 침묵을 깼다.
“제사장, 안녕하시오.”
“그대도 안녕하시오?”
이때 노인이 표정이 점점 험악하게 변했다.
“제사장, 아무리 우리 천족과 무족이 적으로 지내 왔다지만, 천룡을 죽이고 힘줄과 용혈을 채취해 간 것은 너무 도가 지나쳤던 것 아니오?”
그의 음성은 평안했지만, 깊은 곳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로써 엽현은 상대가 단단히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 아목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죽이고 힘줄을 뽑은 건 이 아이가 한 일이오. 나는 그저 고기 몇 점 먹은 죄밖에 없소.”
이 말에 엽현은 하마터면 자빠질 뻔했다.
혹시 이 여인이 자신을 팔아넘기고 자신은 살 생각을 하는 걸까?
아목의 말을 들은 노인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장내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에 엽현이 다급히 소리쳤다.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나는 검종의 무인이오. 검종, 들어는 봤겠지?”
“그딴 이름 들어 본 적 없다.”
뭐!?
엽현이 당황해하며 아목을 돌아보았다.
“나도 들어 본 적 없다. 새로 생긴 세력이냐?”
“…….”
이때 노인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표정으로 엽현에게 말했다.
“인간, 너는 우리 천룡들과 무슨 원수를 졌기에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했던 게냐?”
“잘 물어보았소. 일이 이렇게 된 계기는 바로 그자 때문이었소. 그가 먼저 공격하는 바람에 정당방위 차원에서 출수하게 된 것이오. 못 믿겠으면 여기 무족 제사장에게 물어보아도 좋소!”
아목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 일은 그대들 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 것이오.”
이에 노인이 오만한 표정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우리 천룡족에게 죽는 것은 너희 인간으로서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걸 왜 모르느냐?”
이 말을 듣자 엽현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아니, 그렇게 따지면 그가 우리 두 사람의 일용할 양식이 된 것도 영광스러운 일 아니오?”
“맞아, 맞아!”
“아목, 그대는 기름 붓지 말고 가만히 좀 있으시오!”
“…….”
이때 노인이 엽현을 향해 흉악한 미소를 보이며 소리쳤다.
“과연 혓바닥이 꽤나 날카롭구나. 어디 네 놈의 실력도 그만큼 날카로운지 한 번 구경 해 볼까?”
노인이 막 출수하려는 찰나였다.
“잠깐!”
순간 모두의 시선이 아목에게로 집중됐다.
“그대는 내가 점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말없이 아목을 응시하는 노인.
“영감, 내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이 아이를 건드린다면 천룡족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오.”
“…어째서?”
“그대는 이 아이가 누군지 아시오?”
아목이 엽현을 지목하며 묻자 노인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갔다.
“그가 설령 무족의 족장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소. 알아들었으면 비키시오!”
“에헤이, 누가 용 아니랄까 봐. 진정하고 말 좀 들어 보시오.”
“도대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다는 게요!”
노인이 금방이라도 출수할 듯 으르렁거리자 아목이 양손을 들어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영감, 아까도 말했듯이 사건의 발단은 그대 천룡족이었소. 만약 이대로 출수 한다면 천룡족은 물론 천족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오. 이는 내 점괘에 나온 것이니 의심하지 마시오. 그리고 자, 보시오!”
아목이 가만있는 엽현의 볼을 꼬집어 끌어당겼다.
“이 얼굴이 어디 보통 사람의 관상 같소? 자, 장난하는 게 아니니까 가까이서 자세히 한 번 보시오!”
“…….”
천룡은 시킨 대로 엽현의 얼굴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는데?”
말을 뱉은 순간, 노인이 돌연 엽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이를 본 엽현이 황급히 아목을 멀리 밀침과 동시에 불사지체를 발현했다.
쾅-!
주먹에 정통으로 가격당한 엽현은 그대로 수백 장 멀리 튕겨 날아갔다.
하지만 불사지체를 운용한 덕분에 큰 부상 없이 다시 자리에 일어설 수 있었다.
이때 엽현은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후다닥 달려오는 아목을 발견했다.
“무신지명(巫神之名), 신속(神速)!”
아목이 손가락으로 엽현을 지목하며 소리친 순간, 엽현의 신형이 순식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물론 이때 아목 역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사라진 후, 노인은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 주먹을 정통으로 받고도 살아 움직이다니, 몸뚱이가 돌로 만들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노인은 곧 엽현의 몸이 어떤 강력한 신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쫓아라! 우주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잡아야 한다!”
명령이 떨어짐과 함께 노인과 천룡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산맥 깊은 곳.
엽현은 이미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정면으로는 이길 수 없으니 도망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아목이 있는 한 상대에게 잡힐 걱정은 없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숲을 박살 내며 미친 듯이 쫓아오는 천룡들이 보였다.
이를 보자 엽현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목 낭자,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방법? 당연히 있지! 제일 좋은 방법은 그 소복의 여인을 부르는 것이다! 그녀가 손짓 한 번만 하면 저것들은 다 맛 좋은 고기로 변할 텐데, 쩝.”
“누가 그걸 모르오? 그녀와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이러고 있는 것 아니오! 참, 아니면 그대가 한 번 불러 보겠소?”
엽현의 말에 아목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건 안 돼! 또 그녀에게 접근했다간 이번엔 정말로 죽을 거야! 난 죽기 싫단 말이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있는 한 그녀는 살수를 쓰지 않을 것이오.”
“그래도 안 돼! 저런 존재의 천기는 함부로 들여다보는 게 아니다! 까딱하다간 내 목숨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 자체가 날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아까 전에는 정말 무서웠어.”
“하… 그대 입으로 무족이 매우 강하다고 큰소리치지 않았소? 그녀와 당장 싸우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이오?”
이에 아목이 한껏 침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어, 정말로 모르겠어. 그때 그녀의 검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건지, 아니면 전력을 다한 건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함부로 시도할 수가 없다는 거다.”
“흠…….”
아목이 엽현의 등에 고개를 한껏 파묻으며 물었다.
“그 여자는 도대체 너와 무슨 관계야?”
“음… 굳이 말하자면 가족이랄까?”
“가족? 잘 됐구나!”
아목의 목소리가 밝아지자 엽현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잘 됐다는 거요?”
“하하, 너는 나와 피의 맹세를 한 사이가 아니더냐? 그럼 그녀와 나도 어찌 보면 가족이 되는 것이지. 하하하! 가족? 가족… 뭔가 묘하면서도 기분이 좋구나.”
“…….”
“이렇게 된 거 일단 무국(巫國)으로 가자!”
“방향은?”
“저쪽이다!”
아목이 한쪽을 가리키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방향을 꺾었다.
그렇게 한 시진 가량이 지났다. 꽤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건만 협곡의 풍경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제야 엽현은 허무계의 크기가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천룡들 역시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두 사람의 뒤를 쫓고 있었다.
“아목 낭자, 그런데 주문을 외울 때마다 무신(巫神)을 외치던데, 정말로 그런 게 존재하는 것이오?”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그분은 엄청난 권능을 가진 존재시지.”
“그 무신이란 자와 친분이 있소?”
“하하, 내가 왜 대제사장이겠느냐? 당연히 우리 사이엔 많은 교감이 있다. 다만 직접 본 적이 없을 뿐. 왜냐하면 무신은 신앙 속에 존재하시거든.”
“신앙 속에 존재한다니, 그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바로 이때, 아목이 정면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다!”
엽현이 고개를 들자 그의 시야 안에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성 하나가 들어왔다. 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버려진 것인 듯 황폐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저것 따질 새 없이 성안으로 들어온 엽현은 일단 아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제 어쩌면 좋소? 곧 그들이 도착할 것이오!”
“하하, 걱정하지 말 거라. 이곳엔 진법이 있으니까.”
대답과 동시에 아목이 양손을 교차하며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 전체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성의 상공에 천룡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막 성안으로 진입하려는 순간, 성 주변으로 거대한 결계가 펼쳐졌다.
콰콰콰쾅…….
결계에 가로막힌 천룡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때 이들을 이끌고 있는 노인이 괴성과 함께 온몸으로 결계를 들이박았다.
콰쾅-!
성 전체가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긴 했으나, 결계는 여전히 멀쩡했다.
이를 본 엽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에 설치된 진법이 생각보다 튼튼했던 것이다.
“안심할 거 없어! 이 진법은 얼마 버티지 못해! 일단 날 따라와!”
이 말과 동시에 아목이 먼저 성안 쪽으로 달려 나갔다.
이에 그녀를 뒤쫓으려던 엽현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러자 엽현의 눈빛을 느낀 노인이 공격을 멈추고 엽현을 응시했다.
“멍청한 늙은이 같으니! 조만간 너도 맛있게 구워 줄 테니 기대하고 있거라!”
엽현의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노인이 전력을 다해 결계 위를 두들겼다.
콰쾅-!
순간 결계 위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이를 본 엽현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황급히 아목의 뒤를 쫓았다.
잠시 후, 엽현은 아목을 따라 성의 중심부에 있는 전각에 도착했다. 전각의 입구에는 이름 모를 요수들의 조각상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곧바로 전각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실내는 붉은 부적들로 도배 돼 있었다.
“아목 낭자, 여긴 뭐하러 온 것이오?”
아목은 대답하지 않고 한쪽 벽에 서서 뭔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벽인 줄로만 알았던 곳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면서 하나의 통로를 만들어냈다.
“따라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