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42
1042화 짐 덩어리
엽현과 아목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결계를 부순 천룡들이 이미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때, 엽현을 발견한 천룡 노인이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 벌레만도 못한 인간 놈, 어떻게 죽을지는 생각해 놓았느냐?”
엽현이 황급히 아목을 향해 소리쳤다.
“낭자, 지금 이 상태에서 내가 저자를 이길 수 있겠소?”
아목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 음… 아마, 아마도?”
“…….”
이길 수 있을까?
아목과 마찬가지로 엽현 역시 정답을 알지 못했다.
조금 전 아목의 신법으로 육신이 더욱 강해지긴 했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사문(四紋) 천룡이 아닌가. 지난번 이문천룡을 제거할 때 혈맥지력까지 동원했던 걸 생각하면 결코 승리를 낙관할 순 없다.
어떡하지?
엽현은 노인 뒤편이 도열해 있는 천룡들을 힐끔 바라본 뒤, 다시 정면의 노인을 응시했다.
“그대와 나, 정정당당하게 대결하자!”
“일대일로 싸우자고?”
순간 노인의 입가가 실룩였다.
“이 상황에서 꿈도 야무지구나!”
순간 노인 뒤편에 있던 천룡들이 일제히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장면을 본 엽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상대는 생각만큼 멍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기랄!
엽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목을 둘러업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마리도 상대하기 어려운 판에 무슨 수로 저 많은 천룡들을 감당한단 말인가!
육신이 강해진 이후 엽현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여기에 아목이 신속주문을 걸어주자 엽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장내에서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보자 천룡 노인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 당장 쫓아라!”
이 말과 동시에 노인을 포함한 천룡들이 다시 엽현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발길 닿는 대로 꽁지 빠지게 달리고 있는 엽현.
“아목 낭자, 혹시 근처에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겠소?”
“음… 없을걸?”
“…….”
“근데 왜 도망가는 거야? 질까 봐?”
“이익-! 그럼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대는 생각이 없소!?”
“하하! 나는 또 너한테 다른 수가 있을 줄 알았지.”
“…….”
잠시 말이 없던 엽현이 입을 열었다.
“무족의 대제사장을 모셨던 무시들은 모두 강했겠소?”
“물론이지. 보통은 무족 내에서 가장 강한 자가 무시를 맡곤 했다.”
“그대도 무시가 있었소?”
“아니.”
“어째서?”
“왜냐면 쓸 만한 놈이 없었으니까.”
“흠….”
엽현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럼 역대 무족의 무시 중에서 나는 어느 정도요? 혹시 가장 약한 정도요?”
“확실히, 너보다 약한 자는 없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군. 그럼 왜 날 무시로 뽑은 것이오?”
“글쎄… 그냥 마음에 들어서? 헤헤, 나도 잘 모르겠어.”
“…….”
바로 이때, 뒤쪽에서 쫓아오던 천룡들이 갑자기 무섭게 속도를 올렸다.
이에 마음이 다급해진 엽현은 마찬가지로 속도를 최대로 끌어 올렸다.
‘제길, 이대로는 안 돼!’
무언가 결심을 굳힌 엽현은 황급히 방향을 틀었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허무계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이때 문 앞에는 언제나처럼 묘지기 노인이 서 있었다.
“사람 살려!”
묘지기 노인은 아목을 흘끔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보시오! 나 좀 살려주시오!”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아니지 않느냐?”
묘지기 노인의 말에 엽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때, 엽현은 뒤쪽에서 날아오는 강대한 위압을 느꼈다.
왔구나!
천룡들이 다가온 것을 직감한 엽현이 다시 애절한 눈빛으로 묘지기 노인을 응시했다. 그러자 노인이 말없이 손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고맙소!”
엽현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문밖을 빠져나갔다.
엽현이 막 사라진 이때, 천룡 노인을 위시한 천룡들이 자리에 나타났다.
“왜 놈을 보내 준 것이냐!”
천룡 노인이 나무라듯 소리치자, 묘지기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매를 펄럭였다.
쾅-!
순간 천 장 밖으로 튕겨 나간 노인. 그가 멈춰 섰을 때 그의 한쪽 뺨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이를 보자 나머지 천룡들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천룡 노인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천룡 노인이 소리쳐 물었지만, 묘지기 노인은 한마디 대꾸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안색이 붉게 물든 천룡 노인이 황급히 입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우선 그 어린놈부터 쫓는다! 서둘러라!”
천룡들이 일제히 입구로 몸을 날렸다.
* * *
한편, 허무계를 탈출한 엽현은 아목을 업은 채로 빠르게 성공을 날고 있었다. 잠시 후, 천룡들의 기운이 다시 느껴지자, 그의 안색이 크게 어두워졌다. 상대는 자신들을 그냥 보내 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이때 엽현이 돌연 방향을 틀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그게 누군데?”
“그런 사람이 있소. 매우 강한 사람이!”
대답을 마친 그는 아목이 더 이상 묻지 못하도록 속력을 최대로 끌어 올렸다. 잠시 후,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무변지하성이었다. 뒤이어 천룡들 역시 성안으로 진입했다.
이때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외발 여인이 이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 사고뭉치 녀석이 또 왔구나!”
순간 그녀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 시각, 엽현은 아목과 함께 전당포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전당포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소도 낭자? 어디 있소!?”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자 엽현의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긴급한 순간에 도대체 어딜 갔단 말인가?
이때 몇 개의 강대한 기운이 전당포를 향해 날아들었다. 천룡들이 쫓아 온 것이 분명했다.
엽현의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여기 있으면 안전한 거야?”
아목이 엽현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물었다.
“아마도… 아마도 그럴 것이오.”
소도의 부재에 엽현은 다소 경황이 없는 상태였다.
사실 천도전당포는 무변지하성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분명하다. 소도의 공간에서 감히 말썽을 일으킬 만한 대범한 자들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무변지하성 출신이 아닌 천룡들이 이를 알 리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때, 천룡들이 전당포 입구에 도착했다. 그들이 막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천룡 노인이 문득 고개를 들어 현판을 바라보았다.
“천도전당포… 천도?”
뭔가 껄끄러운 기분을 느낀 노인은 문 앞에 멈춰 서고 말았다.
이때 전당포 안에서 엽현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너희는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이곳이 바로 천도전당포다. 천도! 들어는 봤겠지?”
천도!
잠시 고민하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곳에 천도가 있을 리가 없다!”
말과 동시에 노인이 주먹을 내질렀다.
이를 본 엽현이 황급히 아목을 한쪽으로 밀쳐내는 동시에 마찬가지로 일 권을 뻗어냈다.
쾅-!
엽현의 신형이 그대로 계산대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마찬가지로 노인 역시 십여 장 뒤로 뒷걸음질 쳤다.
이에 장내에 있던 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둘 사이의 충돌이 작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당포 건물에는 실금 하나 생기지 않은 것이다!
순간 아목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쳤다.
마찬가지로 천룡 노인의 표정 역시 무겁게 내려앉았다. 조금 전 자신의 주먹에 담긴 힘 정도라면 이 작은 건물 정도는 먼지가 되었어야 정상이건만, 여전히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뭔가 있다!
순간 노인의 눈빛에 짙은 경계심이 드리웠다.
이때 전당포 안의 엽현이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
“영감탱이! 일대일로 해 볼 생각 없는가? 내가 무서운 게 아니라면 남자답게 정정당당히 겨뤄보자!”
“흥! 내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느냐? 치사하면 너도 사람을 불러오너라!”
노인의 말에 엽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보통은 이 정도 애원하면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이때, 노인이 전당포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천룡들 역시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막 출수 하려는 순간, 웬 여인 하나가 엽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외발 여인이었다.
이때 달려들던 천룡들을 본 여인이 가볍게 주먹을 뻗었다.
쾅-!
순간 가장 앞에 있던 노인이 뒤쪽의 천룡들을 달고서 줄줄이 문밖으로 튕겨 나갔다.
이를 본 엽현은 잠시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 여인이 이렇게나 강했단 말인가?
전당포 밖.
겨우 자리에 멈춰 선 노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너는 또 누구냐!”
여인은 노인을 무시한 채 엽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떠나거라. 당장.”
“싫소!”
“…….”
여인이 언짢은 듯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러자 엽현이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말로, 말로 합시다! 난 그저 소도 낭자를 보러 온 것뿐이오!”
“그녀는 더 이상 널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음?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사이가 얼마나 돈독한데!”
여인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는 네가 허무계로 향했을 때부터 이런 재앙을 물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귀찮은 일에 휩쓸리기 싫었던 그녀는 미리 줄행랑을 친 것이지.”
이 말에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휴, 소도 낭자가 나 엽현을 고작 짐덩이 정도로 여기는 줄은 몰랐구려!”
“설마 아니라는 게냐? 네가 가는 곳마다 사고가 일어나는 건 생각지도 않는가 보군.”
“…….”
이때, 문밖에 있던 천룡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보시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천룡족의 일에 그대는 빠져 주면 고맙겠소!”
이때 외발 여인이 차가운 표정으로 노인을 돌아보았다.
“너는 또 무슨 쓰레기냐?”
쓰레기!
엽현은 여인의 성격이 실력만큼이나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한편, 모욕을 당한 노인은 표정이 매우 어둡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감히 목소리를 높이진 못했다.
“노부는 쓰레기가 아니라 천룡족의 용장(龍將)이오! 우리는 그대 뒤에 있는 두 사람만 죽이고 돌아갈 것이니, 괜히 끼어들었다가 봉변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무변지하성은 나의 영역이다. 아무도 내 허락 없인 이곳에서 손을 쓰지 못한다.”
여인이 차갑게 대꾸하자 노인의 눈빛이 점점 가늘어졌다.
“정녕 참견하겠다는 것이오?”
“참견? 지금부터 셋 셀 동안 꺼지지 않으면 네 놈을 죽여다가 구워 먹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인내심이 폭발한 노인이 여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강대한 기운이 그의 주먹을 통해 활화산처럼 뿜어져 나왔다.
이를 본 여인의 표정은 평온했지만 눈빛 깊은 곳에선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때, 여인이 빠르게 주먹을 내지르자, 두 사람 사이에 기이한 모양의 회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쾅-!
또다시 문밖으로 튕겨 나가고 만 천룡 노인. 무려 천 장 뒤로 날아가 멈춘 노인은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갈려 나가 피를 철철 내뿜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자 천룡족 무인들의 안색이 일순 새하얘졌다.
엽현 역시 놀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여인의 실력은 그의 상상이상이었던 것이다!
한편, 노인은 피를 뿜고 있는 오른팔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천룡의 육신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이런 육신을 찢어발길 정도라면 상대는 도대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는 노인.
그의 눈동자 속엔 이미 두려움의 기색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한편 외발 여인은 노인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시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떠나거라.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