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45
1045화 이번엔 또 누구냐?
“그, 그게 정말이오?”
엽현이 놀란 얼굴로 묻자 아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펼쳤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안에 주황색 광물 하나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떠올랐다. 문득 엽현은 광물 깊은 곳에서 하얀빛이 번뜩이는 것을 목격했다.
“이게… 천도지봉?”
“맞아!”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오?”
아목이 웃으며 설명했다.
“오래전, 천도는 천도지인(天道之刃)이라는 신병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훗날 어떤 이유에서인지 검날과 손잡이 부분이 분해되었지. 그때 우리 무족이 이 검날 부분을 습득하여 천도지봉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 보물을… 그대 마음대로 써도 되는 것이오?”
“물론! 무족 내의 보물은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 말에 엽현의 두 눈이 번뜩였다.
“혹시 대제사장이 하나 더 필요하지 않소?”
“하하하! 바보. 무시가 된 이상 너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대제사장이 되려면 꽤나 많은 일에 정통해야 한다.”
엽현이 다소 실망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천도지봉이 그렇게 날카롭소?”
엽현의 이 질문에 아목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날카롭지.”
이때 아목의 손바닥 위에 또 다른 돌 하나가 나타났다. 피처럼 붉은색을 띠는 작은 돌 안쪽에는 머리카락 정도로 가는 붉은 실이 존재했다.
이를 본 엽현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동했다.
“이건?”
“대지지예, 대지에 존재하는 물건 중 가장 예리한 녀석이지. 지하 깊은 곳의 용암이 응축되어 생성된 것으로, 이만한 크기가 만들어지는데 수만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오….”
“오… 가 아니라, 진짜 귀한 거야!”
“…….”
이때 막 생색을 내던 아목이 돌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 두 물건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또 뭐가 필요한 것이오?”
“이 녀석들이 알아서 네 검에 착 달라붙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이 세 신물을 한데 녹여 낼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필요하다.”
대장장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하나 알고 있소!”
“정말이냐? 보통 대장장이로는 어림도 없다.”
“그건 걱정 마시오. 내가 아는 한 오유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능한 사람이니까.”
그 말에 아목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찾아가 보겠느냐?”
엽현은 대답 대신 곧장 아목을 둘러업었다.
두 사람이 막 고전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악마안이 앞에 나타났다.
“떠나려는 게냐?”
“그렇습니다. 여기 계속 있으면서 사조를 괴롭힐 순 없으니 말입니다.”
“흥! 그렇게 내 생각을 했다면 애당초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더냐?”
“그게, 엄…….”
이때 악마안이 아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름이 어찌 되시오?”
“아목!”
“좋소. 아목 낭자, 그대가 원한다면 이곳에 남으시오. 그대의 안전은 내가 책임지겠소.”
“사, 사조! 그럼 저도…”
엽현이 황급히 끼어들자 악마안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놈은 적어도 네 한 몸 지킬 실력은 있지 않느냐? 언제까지 날로 먹을 생각이냐?”
“…쳇.”
이때 아목이 악마안을 향해 말했다.
“그대의 호의는 고맙게 받겠소. 다만 나는 내 무시와 함께 있을 생각이오.”
“무시?”
악마안이 엽현과 아목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 그럼 두 사람의 무운을 빌겠소.”
이때 엽현이 악마안의 팔을 붙들었다.
“사, 사조… 정말 우리를 좀 지켜주면 안 되겠습니까? 제겐 시간이 필요합니다!”
악마안이 엽현의 눈을 응시하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가 여기 있으면 장담컨대 우리 악마족은 얼마 못 가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해다오.”
“…….”
“후후, 살아서 보자꾸나!”
“쳇, 무정하기는!”
엽현이 툴툴 대 보았지만, 이미 악마안은 사라진 후였다.
엽현과 헤어진 후, 악마안은 곧장 신령족의 대전을 찾았다.
“드디어 허무계가 꿈틀대기 시작하는군.”
이때, 아무것도 없던 대전 앞에 한 중년인이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신제.
신제는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악마안을 응시했다.
“사실 도와주었어도 괜찮았던 것 아닌가?”
이에 고개를 젓는 악마안.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지. 어느 정도 인정을 베풀 순 있지만, 녀석에게 전부를 걸 수는 없는 법이다.”
“왜 그리 생각하지?”
“왜냐하면… 자칫 천도의 계산에 우리가 포함될 수도 있으니까.”
악마안의 입에서 천도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신제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갔다.
고대의 존재치고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녀와 엮일 수 있다는 말은 신제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때 악마안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더욱이… 고작 천룡족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놈에게는 더더욱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 없겠지.”
“음, 그 말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악마안이 고개를 들어 어두운 하늘을 응시했다.
“그나저나 천룡족 놈들도 참 어리석군. 불구덩이인 줄도 모르고 스스로 뛰어드는 꼴이라니… 하하하!”
악마안의 웃음소리가 고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 * *
아목과 함께 고전장을 나선 엽현.
이때, 몇 가닥의 강렬한 기운이 등 뒤로 날아들었다.
천룡족!
엽현이 고개를 돌려 보니, 가장 앞쪽에 천룡 노인이 보였다. 이때 노인은 악마안에게 당한 부상을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제길, 징글징글한 회복력이로군!”
엽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황급히 신형을 날렸다.
그가 당장 목표로 하는 곳은 다름 아닌 영생지에 있는 대장간이었다. 시간이 없는 만큼 천주검을 강화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던 것이다.
한편, 천룡 노인을 위시한 천룡족은 엽현을 바짝 쫓았다.
“또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러 가는 것이 분명하다! 그 전에 놈을 잡아야만 한다! 모두 서둘러라!”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인이 천룡으로 현신했다. 제 몸으로 돌아간 후, 천룡들의 속도는 전보다 더욱 빨라졌다.
다만 엽현 역시 아목에게 신속 주문을 부여받았기에 두 무리 사이의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이로부터 반 시진 후, 엽현은 영생지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차원문은 닫혀 있는 상태!
하지만 엽현에겐 공간도칙이 있었다. 공간도약을 통해 엽현은 영생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그의 앞에 이수경이 나타났다.
“하하, 이수경! 잘 지냈나?”
“엽현, 여기는 또 무슨 일…”
바로 이때, 이수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엽현의 뒤쪽을 응시했다. 잠시 후, 영생지 입구를 향해 돌진하는 천룡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안색이 차가워진 이수경이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엽현은 이미 아목을 업은 채로 멀찌감치 달아나는 중이었다.
“하하하!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대화는 나중에 하자고!”
그야말로 쏜살같이 눈앞에서 사라진 엽현.
바로 이때, 영생지 문이 박살 나면서 천룡들이 우당탕 이수경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인사도 생략한 채, 다짜고짜 이수경 앞에 선 천룡 노인.
“그대는 놈과 무슨 관계요?”
이수경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아무 사이도 아니오.”
“그럼 당장 놈을 내놓길 바라오!”
“내놓으라고?”
순간 이수경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손이 없소, 발이 없소? 그대가 직접 잡으면 될 일 아니오?”
“그렇다면 실례 좀 하겠소.”
천룡 노인이 이수경을 지나쳐 가려는 이때, 이수경이 노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서는 함부로 출수할 수 없소.”
이수경의 태도에 천룡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와 함께 강대한 무형의 기운이 그의 체내로부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수경이 차갑게 웃으며 노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순간 기이한 기운이 노인의 머리 위쪽으로 빠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기운을 느낀 순간 노인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죽음의 향기를 맡았던 것이다.
애당초 이수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이수경이다. 천룡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결국은 이수의 범주에 들어가는 존재다.
이수경 앞에선 한 마리 이무기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미 완전히 실력을 회복하여 영생지 내의 모든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었으니, 천룡 몇 마리 정도로는 전혀 그녀에게 위협이 될 수 없던 것이다.
순간 천룡 노인의 눈빛에 두려운 기색이 스쳤다.
“그, 그대는 대체 누구요!?”
노인은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허무계에서 나온 이후로 무인들을 만나는 족족 얻어터지고 있으니,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던 것이다.
이건 내가 약해진 건가, 아니면 이 시대의 무인들이 강한 건가?
노인이 고민에 빠져 있는 이때, 이수경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그를 깨웠다.
“그대들은 놈을 죽이려 하는 것이오?”
“그렇…소.”
“왜?”
“왜냐하면 놈이 우리 천룡 형제 하나를 살해했기 때문이오. 게다가 그런 다음… 그 망할 놈이 그의 시체를 구워 먹어 버렸소!”
이수경은 노인의 눈을 통해 엽현에 대한 그의 분노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천룡을 불에 구워 먹었다는 대목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겨우 분노를 잠재운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이번 일은 그놈과 우리 사이에 일인 만큼 그대는…”
“걱정할 것 없소. 나 역시 무관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노인이 기대의 눈빛을 보내자 이수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당장 내보내도록 하겠소.”
“그거 좋은 생각이오. 헌데, 만일 놈이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면 어찌할 생각이오?”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나는 정말이지 그 녀석의 일에는 엮이고 싶지 않소. 아무튼 놈을 내보낼 테니,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시오.”
이 말을 끝으로 이수경이 사라졌다.
자리의 남은 천룡 노인.
그의 표정이 상당히 어둡다.
고작 어린 검수 하나 잡는다고 이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처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질질 끌다가 정말로 엽현을 죽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노인은 한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머문 채로 생각에 잠겼다.
한편, 엽현은 아목을 데리고 곧장 대장간을 방문했다. 운이 좋았던 것인지, 노인은 마침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르신!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엽현이 큰 목소리로 인사하자, 노인이 망치를 놓고 고개를 돌렸다. 이때 그의 시선이 잠시 아목의 얼굴에 머물렀다.
“네 녀석은… 어째 매번 여자가 바뀌는 것 같구나.”
“헤헤… 그런 게 아니라…”
“됐고, 용건이나 말하거라.”
엽현은 말 대신 곧바로 천주검을 꺼내 노인에게 내밀었다.
이어 엽현의 눈빛을 받은 아목이 천도지봉과 대지지예를 노인에게 건넸다.
아목의 물건들을 받은 순간, 노인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굉장한 물건이로구나!”
“어르신, 이것들을 검과 융합하려 합니다.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음… 이틀이면 충분하다.”
“이틀… 감사합니다!”
노인은 대꾸도 없이 그대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다.
바로 이때, 엽현과 아목 앞에 이수경이 나타났다.
“긴말하지 않겠다. 즉시 이곳을 떠나거라!”
이수경의 날카로운 말에 엽현이 눈을 끔뻑거리며 대답했다.
“방금 뭐라고 했나? 가는 귀가 먹었는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
“놈! 어설픈 연기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하하하….”
엽현이 실실 웃으며 물었다.
“오랜만에 왔는데 며칠만 있다 가면 안 될까?”
“안 된다!”
“딱 삼일만!”
“어림도 없지! 당장 떠나거라!”
“쳇… 매정하기는….”
“엽현, 이곳은 네 놈의 피난처가 아니다.”
“알아, 그건 아는데…”
엽현이 갑자기 납계를 뒤지더니, 주섬주섬 자기 서른 가닥을 꺼내 들었다.
“자, 이 정도면 될까?”
이수경은 엽현이 내민 자기를 보고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너희 인간처럼 탐욕스러운 줄 아느냐?”
이에 엽현이 또 자기 스무 가닥을 더 꺼내 들고는 이수경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그러자 이수경이 못 이긴 척 자기를 받아들고 돌아섰다.
“흠, 옛정을 생각해서 한 번 봐주도록 하지. 단, 삼일 안에는 무조건 떠나야 한다!”
이 말을 끝으로 이수경은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