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47
1047화 정말 맛있구나
일대일!
천룡노인이 일대일로 싸울 것을 제안한 이유는 간단했다. 엽현이 원하는 방식을 들어주어서 더 이상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엽현이 마음먹고 도망치면 잡을 재주가 없었다.
한 번 놓칠 때마다 며칠씩 대기하는 것도 매우 고역이었다.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이곳에서 빠르게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엽현 역시 노인의 제안이 다소 의외였다.
안 그래도 한 번에 덤비면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에 상대 쪽에서 먼저 일대일 대결을 제안해 주니 엽현으로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던 것이다.
“정말 너와 나 둘만 싸우는 건가?”
“의심이 많은 녀석이군. 다른 자들은 절대 나서지 못할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거라.”
“흠… 그럼 제안을 받아들이지!”
엽현의 말에 천룡노인이 뒤편에 있던 천룡들을 향해 물러나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천룡들이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다.
마침내 단독으로 마주한 엽현과 천룡노인.
아무 표정도 없는 노인과 달리 엽현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노인이 주먹을 쥔 순간,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에 엽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일권을 내질렀다.
빠르게 노인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는 엽현의 주먹.
노인 역시 엽현의 복부에 묵직한 일권을 꽂아 넣었다.
두 사람 모두 방어는 고려하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쾅-!
퍽-!
사이좋게 공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동시에 수백 장 뒤로 밀려났다.
엽현이 막 자리에 멈춰 선 순간, 노인이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 이를 본 엽현 역시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콰콰쾅…….
곧 엽현과 천룡 노인 두 사람의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두 무인 모두 순수한 육신의 힘만을 사용할 뿐, 다른 기공을 섞지 않았다.
엽현은 점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육신이 천룡 노인의 그것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같은 이유로 천룡 노인의 표정은 점점 굳어만 갔다.
인간과 용족 사이에 박투가 벌어지는데 막상막하의 양상을 벌어진다?
이는 노인의 입장에선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게 전투가 반 시진 가량 이어졌을 때, 노인은 더 이상 싸움을 끌고 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마침내 뭔가 결심한 노인.
하늘 높이 번쩍 날아오른 그가 엽현의 머리를 가격하며 소리쳤다.
“출수!”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뒤편에 있던 천룡들이 기다렸다는 듯 날개를 펴고 달려들었다.
약속을 어기고 단숨에 처리해 버리겠다는 속셈이었다.
엽현은 이를 눈치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노인의 주먹에서 나온 권세(拳勢)가 순식간에 그의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 엽현의 손 위에 한 자루 검이 떠올랐다.
천주검!
노인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사이, 천주검이 노인의 머리 위에서 번뜩였다.
서걱-!
찰나의 순간,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초점을 잃은 천룡 노인의 눈동자.
“말도 안 돼……”
말이 끝난 순간, 노인의 미간에 핏방울이 맺히더니, 이내 육신이 양 등분되었다.
일검분시(一劍分屍)!
노인의 시체가 갈라진 이때, 또 다른 검 한 자루가 날렵하게 날아들었다.
진혼검!
쾅-!
천룡 노인의 영혼이 진혼검 안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한편, 사방에서 엽현을 덮쳐오던 천룡들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노인이 엽현에게 단칼에 죽을 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쉭-!
먼저 가장 앞서 있던 천룡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 이를 본 다른 천룡들이 정신을 차리고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엽현의 신형이 다시 사라졌다.
잠시 후, 장내에는 천룡들의 시체가 높이 쌓였다. 중요한 점은 이들의 시체가 모두 반듯하게 잘려 나갔다는 점이었다.
한편, 살육을 마친 엽현은 잠깐 천주검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검의 위력은 한 마디로 상상 이상이었다.
천룡의 강인한 육체를 사과 깎듯 깎아버린 천주검의 위력을 무어라 형용할 수 있을까?
이때 아목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야, 싹 다 죽였네! 대단한걸?”
“분명 다른 천룡들이 복수하러 올 게 분명하오. 그렇지 않소?”
“물론이지. 게다가 더 강한 놈으로!”
“후… 악순환이야, 악순환.”
아목이 엽현을 향해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갑자기 한 쪽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에 엽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천주검을 갈무리했다.
“설마 지금 당장 오려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다. 저건 천룡족의 추혼비술(追魂秘術)이라는 것으로 동료가 죽게 되면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그럼 바로 떠납시다.”
이에 아목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지켜보자.”
바로 이 순간, 계속되던 진동이 멈추고, 그 자리에 거대한 천룡의 허영(虛影) 하나가 나타났다.
이 허영과 마주한 엽현은 거대한 위압감을 정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하다!
엽현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때, 천룡의 시선이 엽현에게로 향했다.
“네가 죽였느냐?”
“그렇다.”
엽현이 순순히 시인하자 천룡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감히 천룡족을 건드리다니, 겁을 상실한 모양이로구나!”
“하하, 그럼 순순히 죽어주기라도 했어야 한단 말인가? 너희야말로 꿈도 야무지군!”
“건방진 인간… 천룡족을 적으로 삼은 대가는 매우 클 것이다…….”
이에 엽현이 코웃음을 치고는 사방에 산재한 시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 이거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간만에 솜씨 한 번 발휘 해 봐야겠군!”
말을 마침과 함께 커다란 가마솥을 꺼내는 엽현.
그러자 아목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정말로 하려고? 저렇게 보고 있는데?”
“물론이오!”
엽현은 곧장 천룡 한 마리의 꼬리를 잘라 가마솥에 통째로 넣고 삶기 시작했다.
이를 본 허영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지만, 엽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시 후, 물이 끓자 구수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때 천룡의 허영이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의 눈빛은 끝까지 엽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허영이 완전히 사라지자, 아목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한 거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콱 성질나서 죽어버렸으면 했소.”
“음… 죽기는커녕 화만 돋운 것 같은데?”
엽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것도 상관없소. 이리하나 저리하나 저들은 결국 날 죽이려 들 테니까. 그렇지 않소?”
이에 아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삶아진 용고기 한 조각을 입 안에 넣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야?”
잠시 고민하던 엽현이 대답했다.
“천주검 하나만으로 천룡족 전체와 대항하기는 여전히 어렵소. 어떻게든 무도와 육신의 경지를 빨리 끌어 올려야만 하오.”
“흠…….”
아목이 또 다른 고기 한 점을 오물오물 씹으며 대답했다.
“네가 다음 경지로 가기 위해선 어떻게든 윤회정과 분묘에 접근해야 한다. 하지만 그 주변은 이미 천룡들이 우글우글할 테니 불가능하지. 그렇다고 한다면 일단 육신의 강화를 먼저 시도하는 수밖에!”
“그럼 역시 천봉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는 건가?”
엽현이 뼈 사이에 붙은 살점을 뜯으며 중얼거렸다.
“잘 알고 있구나. 다만 서둘러야 한다. 이미 천룡들의 추격이 시작됐을 테니까. 지금으로써는 일반 천룡들은 네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칠부천룡급이 나서게 된다면 그때는 꽤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칠부천룡?”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검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수준이 한참 높은 상대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너에게는 칠부천룡이 그런 존재겠지.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두르자. 시간이 얼마 없다!”
“갑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두 사람.
이때 아목의 시선이 솥단지로 향했다.
“좀 남았는데… 다 먹고 갈까?”
“좋은 생각이오.”
두 사람은 다시 화로 곁에 쪼그려 앉아 미친 듯이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솥단지가 모두 비워지고, 두 사람은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꺼억, 확실히 천룡 고기는 속살이 야들야들해서 맛있단 말이지. 음… 맛있다 하니까 또 생각나는 게 있군.”
“뭐가 또 생각나시오?”
“상고기린(上古麒麟), 이게 또 별미거든.”
“기린? 그것도 먹어봤소?”
“헤헤….”
말없이 입맛을 다시는 아목.
“그 상고기린이란 존재의 실력은 어떻소? 천룡만큼 강하오?”
엽현의 질문을 받은 순간, 아목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강하지, 아무렴. 당시 기린족보다 더 강한 신수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음… 그럼 아무리 맛있어도 포기해야겠군. 그럼 배도 찼겠다, 천도성역으로 갑시다!”
“가자!”
엽현은 아목을 업고서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 * *
허무계.
엽현과 아목이 천도 성역으로 향한 이 시각, 고요하던 무덤가가 돌연 요동치더니, 강대한 용위(龍威)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잠시 후, 이 기운은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사라졌다.
이때 묘지를 쓸고 있던 묘지기 노인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하루라도 잠잠한 날이 없구나.”
이내 그의 시선은 뒤편에 있는 무덤가로 향했다. 이미 무덤 중 대다수는 파헤쳐져 있는 상태였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던 노인은 이내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아마도 내 임무는 조만간 끝날 것 같군.”
* * *
천도 성역으로 향하는 엽현과 아목.
말없이 비행하던 중 엽현이 입을 열었다.
“아목 낭자, 천봉의 성격은 어떻소? 좀 말이 통하는 상대인가?”
“나도 딱히 말을 해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그 긴 세월을 갇혀 지낸 만큼 정상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만나게 되면 주의하도록 하거라.”
“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가둬놓다니, 천도도 정상은 아닌 모양이오.”
“속사정을 누가 알겠느냐? 우리는 천도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목적만 이루면 된다.”
엽현이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를 올린 엽현은 얼마 후 어느 성역에 진입했다. 이 성역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었던 것은 마치 태양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는 성구(星球)였다.
이때 불타는 성구를 바라보는 아목의 눈빛이 다소 복잡해졌다.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는 법이지.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붉은 성구를 바라보며 엽현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동정하는 게냐?”
아목의 물음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그저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뿐이오.”
“그 부분은 공감한다.”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어서 내려갑시다!”
말과 함께 아목을 업고서 몸을 날리는 엽현.
지상을 향해 날아가는 중 엽현은 강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지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 열기는 몸이 타들어 갈 만큼 강렬해졌다.
아목이 걱정된 엽현이 뒤를 돌아보지만, 그녀는 의외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괜찮소?”
“물론이다! 나 역시 이 정도 열기는 감내할 수 있다.”
말을 마친 아목이 중얼중얼 뭔가를 외우기 시작했다.
주문이 끝난 순간, 엽현의 몸 주변으로 차갑고 투명한 막이 생성됐다.
이 막이 있으므로 해서 엽현은 더 이상 열기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오?”
“아주 간단한 비술일 뿐이다. 이제 시원하지?”
“역시, 여러 가지로 할 줄 아는 게 많구려!”
“헤헤….”
잠시 후, 두 사람은 성구 중앙에 있는 천봉산(天鳳山)에 도달했다. 이때의 천봉산은 한 덩이 거대한 불과 같이 산 전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