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55
1055화 그대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하얀 아이를 따라나선 엽현과 아목은 곧 어느 커다란 전각 앞에 멈춰 섰다.
전각 위에는 이렇게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
생사전(生死殿).
엽현이 아목을 바라보자 아목이 자동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명부의 주인이 기거하는 곳이야. 모든 인간과 생령의 생사를 관장하는 곳이지. 그러나 인과경에 이른 자들은 이들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때, 그의 눈에 전각 안으로 들어서는 하얀 아이가 들어왔다.
이에 엽현과 아목도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소도는 다소 근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결국 전각 안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생사전.
대전 안으로 들어온 하얀 아이는 무엇을 찾는 것처럼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때 그녀의 시선이 대전 상석에 놓인 거울로 향했다.
거울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정중앙에 보이는 한 쌍의 눈을 제외하면 말이다.
거울 앞으로 다가온 아이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손을 대려는 순간, 거울 중앙에 있는 눈이 돌연 번뜩였다.
이에 아이가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뗐다.
이내 그녀는 자신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닫고 거울 속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때, 거울이 흐릿해지더니 어떤 화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화면이 밝아지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청삼을 입은 남자였다.
그런데 남자가 나타난 직후, 거울 속의 화면이 갑자기 중지됐다.
이에 하얀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거울 앞에 손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았다.
바로 이때, 아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눈에서 돌연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엽현이 깜짝 놀라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하얀 아이가 가볍게 씩 웃어 보이자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거울 자체 역시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눈이 두려운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하얀 아이는 거울을 들고서 엽현에게로 다가오더니 계옥탑 안으로 거울을 냅다 집어 던졌다.
“…….”
“방금 그 거울은 얼연경(孽緣鏡)이라는 것이다. 얼연경을 비추면 그 사람의 전생과 현생을 엿볼 수 있지.”
얼연경?
엽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목의 말대로라면 자신의 전생도 볼 수 있는 걸까?
이때 코를 쓱 비비며 장내를 두리번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모두의 발밑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혹시 보물이 지하에 있는 건가!?
아목과 엽현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또 무슨 보물이 남아 있소?”
“글쎄다, 직접 가서 보자꾸나!”
쾅-!
커다란 충격과 함께 생사전 지하로부터 한 줄기 검은빛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를 본 하얀 아이가 재빨리 대전 밖으로 나섰고, 엽현 등 일행들도 역시 그녀의 뒤를 쫓았다.
생사전 밖으로 나온 엽현의 눈에 대전 상공에 떠 있는 검은 책 한 권이 들어왔다.
“아목, 저게 무엇이오?”
“음… 저건 명부의 신물인 복문천서(卜問天書)가 틀림없다.”
복문천서?
엽현이 뭔가 물으려 할 때, 하얀 아이가 검은 책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책 한가운데가 저절로 펴지더니,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에 하얀 아이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이자, 강력한 자기가 날아가 복문천서를 다시 닫아 버렸다.
뒤이어 아이가 춤을 추듯 양손을 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화답하듯 복문천서가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가 오간 지 대략 일각 여.
복문천서가 갑자기 하얀 아이 앞으로 다가왔다. 이에 아이가 씩 웃으며 소매를 펄럭이자 한 줌의 자기가 책 표면을 뒤덮었다.
잠시 몸을 떨던 복문천서는 이내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엽현의 계옥탑 안으로 들어갔다.
또 왔다!
이 순간 엽현은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도대체 몇 개의 신물을 얻은 것인가!
게다가 이때 전천수는 이미 성년이 되어 있었다.
엽현은 문득 하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흥분된 기색으로 한쪽을 응시하는 중이었다.
이때 아목이 엽현에게 말했다.
“저쪽은 고형족이 있는 방향이다!”
고형족!?
이때 하얀 아이가 다시 신형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이 순간 소도가 돌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의아한 얼굴로 소도를 바라보는 하얀 아이.
이에 소도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더는 하지 않는 게 좋소. 문제가 생길 것이오.”
그러자 하얀 아이가 항의하듯 양손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이를 본 소도가 고개를 저으며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정녕 막지 않을 셈이냐?”
“막아? 어째서 말이오?”
“어째서라니, 너는 생각이 없는 게냐? 지금 네 몸 안에는 신마 시대 거대세력들의 신물이 들어있다. 천신족에 명부, 그리고 이제는 고형족까지… 설마 이들 세력과 모두 적이 될 생각은 아니겠지?”
엽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반문했다.
“내가 보물을 돌려주면? 그들이 나를 살려 줄 것 같소?”
“…….”
“어찌 됐건 나는 무족의 편에 서 있소. 이게 뭘 뜻하는지는 그대도 잘 알고 있겠지 말이오?”
무족의 편에 서 있다!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됐다.
무족과 함께인 이상 엽현은 결국은 천족과 싸울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소도가 고개를 돌려 아목을 바라보았다.
“그대… 정말 대단하군.”
“…….”
이때 엽현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 보물들은 내가 훔친 것도 아니지 않소. 하하하!”
그러자 한쪽에 있던 하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전부 자기가 한 일이라 말하려는 듯했다.
하얀 아이는 계속해서 손을 이용해 소도에게 뭔가를 설명했다.
잠시 후, 소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엔 그대만 있을 뿐, ‘그’와 머리에 뿔이 난 아이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소?”
이에 하얀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손으로 엽현을 가리켰다.
이를 본 소도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 녀석의 실력은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
잠시 침묵에 잠겼던 하얀 아이가 다시 소도를 향해 손짓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하는 것이오?”
엽현이 참지 못하고 묻자 소도가 그를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만약 누가 자신을 괴롭히려 하면 일러바치겠다는군.”
“…….”
일러바친다고? 누구에게?
엽현은 곧 하얀 아이가 부를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들은 분명 청삼남과 머리에 뿔이 달린 소녀일 것이다.
이때 뭔가 고민하던 소도가 말했다.
“가 보시오!”
이 말에 엽현과 하얀 아이가 소도를 바라보았다.
만류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가라고?
“걱정하지 말고 가시오. 책임은 내가 지겠소.”
소도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기회라는 것을.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세력들과는 적이 되겠지만, 하얀 아이, 특히 그 배후에 있는 자와 연을 맺을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란 걸 그녀는 확신했다.
그야말로 수지맞는 장사였다.
소도의 말을 듣자 하얀 아이가 씩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엽현이 소도를 바라보자, 소도가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따라갈 테니 너희 먼저 가거라.”
“하지만…”
엽현은 뭔가 할 말이 있었지만, 아목이 옷을 잡아끄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엽현은 아목의 손에 이끌려 명부를 빠져나갔다.
이들이 사라지고 고요해진 장내.
홀로 남은 소도가 문득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승려 하나가 그녀를 향해 서 있었다. 소매가 넓은 승복을 입은 남자는 왼손으로 천천히 묵주를 돌리고 있었다.
아포장!
이 남자는 바로 명부 제일 고수, 아포장이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중, 아포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도 낭자, 별고 없으셨소?”
“아포장, 못 본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소도가 웃으며 말하자 아포장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부질없소. 결국에는 넘어서지 못했으니 말이오.”
“알고 있다. 허나 그 경지를 넘은 자는 예로부터 손에 꼽지 않느냐?”
“…지금 시대에 그 경지에 이른 자가 존재한단 말이오?”
“물론이다. 게다가 그 수가 적지도 않지.”
소도의 말을 듣자 아포장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일었다.
“적지 않다니… 얼마나 말이오?”
“흠… 내가 아는 것만도 다섯은 된다.”
“…….”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느냐?”
아포장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모르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소?”
“틀렸다. 너는 물론 명부 전체를 위해서도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게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오.”
아포장의 말에 소도가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금 명부의 보물을 가져간 자가 누군지 아느냐?”
“혹시… 영조(靈祖)가 아니오?”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바로 오유계 마지막 영조다.”
“흠…….”
이에 아포장이 한 곳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이때 소도가 웃으며 말했다.
“괜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 없어질 테니까.”
“혹시 소도 낭자가 말한 그 다섯 명이 영조와 관련이 있는 것이오?”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곁에 있던 소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랬군, 그랬어…. 아쉽게도 무족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로군.”
“대제사장이 눈치가 빨랐지. 그나저나 명부의 가장 중요한 물건을 빼앗겼는데 어쩔 셈인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그대는 우리 명부가 포기하길 바라는 것이오?”
아포장의 말에 소도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아포장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들이 행한 일은 명부의 얼굴에 먹칠한 것이나 다름없소. 내가 출수하지 않은 것은 그대의 체면 때문이란 걸 알아주었으면 하오.”
“억울해할 것 없다. 나 역시 사탕 한 알에 운명의 침을 강탈당했으니까.”
소도가 웃으며 말하자, 아포장은 더 할 말이 없어졌다.
“아포장,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니 알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잃는 것이 지키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이때 아포장이 돌연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에게 가서 우리의 신물을 돌려달라고 말해 줄 순 없겠소?”
이에 소도가 반문했다.
“그가 물건을 돌려주면 너희 명부는 그를 놓아줄 수 있겠는가?”
“일단 그가 무족과 연을 끊으면 생각해 보겠소.”
아포장의 대답을 듣자 소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봤느냐? 설령 신물을 돌려받는다고 하더라도 너희는 그의 신분을 구실 삼아 공격하려 할 것이다. 애당초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단 말이지.”
“…….”
“보아하니 더 할 말은 없는 것 같군. 그럼 오늘은 내 체면을 봐서라도 출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말을 끝으로 소도가 돌아섰다.
“만약! 만약에 우리가 출수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아포장의 외침에 소도가 걸음을 멈추고 아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 소도의 이름을 걸고 너희 천족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궁금하면 한 번 해 보던가.”
소도는 더 이상 아포장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아포장은 침묵에 잠겼다.
소도가 언급한 것은 명부가 아닌 천족 전체였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포장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소도!
이 신비로운 여인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것인가!
그에게 답을 해 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이때, 중년인 하나가 아포장의 앞에 나타났다.
중년인의 정체는 천신족의 현 족장인 호천(昊天)이었다.
“소도, 광오하기 그지없구려.”
호천의 말에 아포장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