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56
1056화 스스로 선택한 것이오
“호천, 그대가 보기에 그녀가 그 정도 능력이 없을 것 같소?”
“후후, 그가 강한 것은 사실이나 천족의 전력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실제로 제대로 붙어 본 적은 없지 않소?”
“흠… 아무리 그래도 그녀와 같은 강자의 체면을 봐 주지 않을 수 없소.”
“맞는 말이오. 만약 그녀가 완전히 무족 편에 돌아선다면 우리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형세를 맞게 될 테니까. 그나저나…”
호천이 한쪽 상공을 응시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쯤이면 도착했겠군. 과연 고형족도 소도의 체면을 봐 주려 할지 궁금하군.”
같은 시각 명부의 경계.
어디론가 향하던 소도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그녀의 입가에 짙은 조소가 흘렀다.
“너희를 무시했다고? 그럼 오유계의 벌레들 주제에 존중받길 원했느냐?”
말을 마친 소도가 다시 고개를 돌려 사라졌다.
얼마 후, 하얀 아이는 엽현과 아목을 데리고 고형족에 당도했다.
고형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깊은 밀림이었다.
천신족이나 명부에 비하면 매우 원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이때 하얀 아이가 뭔가 발견한 듯 흥분한 모습으로 앞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가 막 어느 동굴에 진입하려는 순간, 동굴 안쪽에서 강대한 기운이 엄습했다.
바로 이때, 하얀 아이 곁에 나타난 소도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아이를 덮쳐오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시 고요해진 장내.
이 순간, 소도가 고개를 돌리자 밀림 안쪽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반신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거대한 도끼를 들고 서 있는 남자.
소도와 잠시 눈빛을 교환한 남자는 두말없이 도끼를 들고 소도를 향해 날아올랐다.
이때 소도의 소매가 팔랑거렸다.
쾅-!
거대한 도끼가 박살남과 함께 남자가 십여 장 뒤에 있는 절벽에 강하게 부딪혔다.
순간 소도를 보는 남자의 눈빛이 다소 흔들렸으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몸을 날렸다.
바로 이때였다.
“멈춰!”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
이에 남자가 황급히 한쪽으로 물러나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잠시 후, 남자가 나타난 밀림 쪽에서 또 다른 남자 하나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서 장발을 휘날리며 패도 넘치는 기운을 풍기는 남자.
이 남자가 바로 고형족의 현 족장인 고전천(古戰天)이었다.
이내 남자는 소도의 정면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소도 낭자, 여전하시구려.”
소도는 고전천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하얀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이가 손가락으로 소도와 고전천을 번갈아 가리킨 다음 손톱을 세워 할퀴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이에 소도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원하면 들어가서 가지고 나오시오. 내가 여기 있는 한 아무도 방해할 수 없을 테니.”
이에 아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엽현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엽현을 향해 양손을 교차하며 뭔가 의사 표현을 했다.
전혀 알아듣지 못한 엽현이 소도를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내자, 소도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자신은 떠날 때가 됐다고 하는구나. 네가 오늘 얻은 신물들을 강화시켜 놓았으니 일단 잘 쓰라는군.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 신물들이 떠나려 하거든 막지 말고 보내주고, 만약 그들이 너와 함께 계속 머무르고자 한다면 다음에 그녀가 돌아왔을 때 또다시 강화해 준다고 하는구나.”
설명을 들은 엽현이 아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바로 이때, 계옥탑 안에 있던 신물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아이를 향해 몸을 흔들며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아이가 씩 웃으며 작은 손을 휘두르자, 많은 양의 자기가 신물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와 동시에 아이의 육신은 희미하게 변해갔다.
이때 아이가 또 다시 엽현을 보며 춤을 추듯 손을 움직였다.
엽현이 소도를 쳐다보자, 소도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조금 전, 자기를 더 주는 대가로 신물들이 너를 돕도록 했다는구나. 그리고 네가 신물들을 해치지 않는 한 저들 역시 너를 공격하지 않는 조항을 달아 놨다는군. 만약 약속을 어길 시, 맞아 죽어도 억울해하지 않기로.”
“누, 누구한테 맞는단 말이오?”
이때 하얀 아이가 헤헤 웃으며 손을 마구 휘저었다.
엽현이 소도를 쳐다보았지만, 이번에 소도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바로 이때, 동굴 안쪽에서 거대한 도끼 한 자루가 튀어 나왔다.
대부분 검은색을 띠고 있는 도끼는 날 부분만 선홍빛이었다. 도낏자루는 용암으로 만든 것처럼 시뻘건 것이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흉흉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순간 엽현은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도끼에 담긴 기운은 천주검 이상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물건이 튀어나온 거냐!
이때 아목이 엽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전신부(戰神斧)! 고형족 조사인 고형(古刑)의 애병으로 지금은 고형족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다만 듣기로는 당시 고형이 어떤 강자와 싸울 때 심각한 손상이 가해진 것으로 안다.”
전신부!
엽현의 시선이 허공에 떠 있는 전신부로 향했다. 이때 엽현의 눈빛을 느낀 전신부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에 하얀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고전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때의 고전천은 안색이 매우 어두운 상태였다.
전신부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신부! 어서 들어가거라! 너는 절대 외인과 함께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고전천이 소리친 순간, 전신부가 갑자기 고전천을 향해 맹렬히 날아들었다.
이 모습을 보자 장내 무인들은 모두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놀란 것은 아무래도 당사자인 고전천이었다.
전신부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같은 편을 공격하려 한단 말인가!?
하지만 전신부는 전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이를 본 고전천은 어쩔 수 없이 손에 든 도끼를 맹렬히 휘둘렀다.
쾅-!
고전천의 도끼에 막혀 허공에 멈춘 전신부.
하지만 이때 전신부가 돌연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쾅-!
순간, 이 굉음과 함께 고전천이 도끼를 쥔 채로 수십 장 밖으로 튕겨 나갔다. 비록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고전천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온통 당혹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때 전신부는 더 이상 고전천을 공격하지 않고, 빠르게 사라져가는 하얀 아이 앞에 멈춰 섰다.
이에 아이가 눈을 깜빡이며 엽현을 가리키자, 전신부가 마치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몸을 위아래로 들썩였다.
전신부가 응답한 것을 본 아이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이자, 방금 전처럼 한 뭉텅이의 자기가 전신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를 마지막으로 아이는 더 이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엽현의 발밑에 검은 상자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이때 상자를 발견한 소도의 눈빛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렇게 하얀 아이는 사라졌다.
엽현은 그녀가 남기고 간 상자를 바라보며 잠시 허탈감에 빠졌다.
비록 몇 번 마주치진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아이에게 좋은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바로 이때, 어느새 다가온 고전천이 엽현 앞에 멈춰 섰다.
“전신부는 가져갈 수 없다!”
이에 엽현이 고전천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이건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 전신부 스스로 원한 것이오.”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만약 전신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늘 너희는 모두 이 자리에서 송장을 치르게 될 것이다!”
“아, 그래?”
이때 소도가 웃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고형족이… 그렇게나 대단한가?”
고전천이 눈살을 찌푸린 이 순간, 소도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깜짝 놀란 고전천이 황급히 들고 있던 도끼를 휘둘렀다.
쾅-!
순간 고전천이 도끼를 든 채로 백 장 멀리 튕겨 나갔다. 그가 막 자리에 멈춰 섰을 때, 어느새 그의 눈앞으로 한 자루 비도가 날아들었다.
이에 고전천이 헛숨을 들이키며 엉성하게 도끼를 내밀었다.
쾅-!
두 신물이 충돌한 순간, 거대한 도끼가 산산이 조각나 허공에 흩어졌다.
도끼를 박살 낸 비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곧장 고전천의 미간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이를 보자 고전천이 재빨리 지면을 박차며 뒤로 신형을 물렸다.
순식간에 수백 장 거리를 벌린 고전천. 소도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진중함 외에도 기탄의 기색이 짙게 깔려있었다.
이때 아쉽게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비수가 소도의 곁으로 돌아왔다. 한없이 평범해 보이는 비수건만 그 속에는 경천동지할 만한 신력(神力)이 깃들어 있었다.
“고전천, 한 번만 더 덤비면 그땐 정말로 죽이겠다. 내 앞에서 괜한 오기 부리지 마라. 설령 고형족 조사라 해도 그럴 자격은 없으니까. 알았나?”
“…….”
고전천이 침묵하자 소도가 엽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챙길 만큼 챙겼으면 이만 가지?”
소도의 말에 엽현이 황급히 아목과 함께 소도 곁에 섰다.
이 허무계에는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실력자들이 도처에 널려있었다.
하얀 아이가 떠난 지금, 소도마저 사라진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소도가 비수를 갈무리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엽현과 아목이 그 뒤를 바짝 쫒았다.
고전천은 세 사람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소도의 말대로 괜히 오기 부렸다간 고형족 전체가 박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눈물을 머금고 세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편, 고형족을 떠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세 사람.
이때 엽현이 소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소도 낭자, 좀 빨리 가면 안 되겠소?”
이에 소도가 주변을 돌아보며 차갑게 대답했다.
“일부러 천천히 가는 것이다. 만약 불만이 있는 자가 나타난다면 이 기회에 싹을 잘라버릴 수 있지 않겠느냐?”
비록 크진 않았지만, 공력을 담은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허무계 전역에 울려 퍼졌다.
엽현은 이런 소도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평소와는 달리 다소 화가 난 듯한 모습이었다. 이럴 때 그녀를 건드린다면 그 결과는 매우 끔찍할 것이 분명하다.
한편으로 엽현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 좁은 산길을 지나는 도중에 포위 공격이라도 받게 된다면 소도를 제외한 자신과 아목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숲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소도와 아목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곳은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는 한 무덤이었다.
엽현의 시선 역시 무덤으로 향했을 때, 소도가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 오래도 자는구나.”
말을 마친 소도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때 엽현이 궁금증 가득한 얼굴로 아목을 바라보았다.
“방금 저게 무슨 뜻이오?”
“헤헤, 나도 잘 모르겠는걸?”
“…거짓말 하지 마시오. 알고 있다고 얼굴에 쓰여 있소!”
“글쎄, 저기 아는 친구라도 잠들어 있나 보지.”
대강 둘러댄 아목이 혀를 쏙 내밀며 엽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다시 소도를 따라 걷게 된 두 사람.
“아목, 그대는 어째서 다른 자들보다 일찍 깨어난 것이오?”
“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 들어 봤느냐?”
“그 벌레가 혹시 나였소?”
“하하….”
아목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결국 허무계 출구에 당도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언제나와 같이 묘지기 노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은 소도와 아목을 거쳐 마지막으로 엽현에게 향했다. 이때 엽현은 노인의 표정에서 다소 복잡한 기색을 느꼈다.
이때 엽현이 먼저 운을 뗐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