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58
1058화 솔직히 말해주시오
황급히 입을 막는 엽현을 보며 아목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때 소도가 말을 이어갔다.
“이 도끼의 첫 번째 주인은 고형이란 자로 전투력이 매우 막강한 고수였다. 그는 원래 천신족 출신이었는데, 훗날 신왕(神王)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한 달 밤낮을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지. 물론 상대에게 맞아 죽은 게 아니라, 치열한 전투 후에 중상을 입고 죽은 것이었다.”
“어쨌든 싸우다 죽었단 말 아니오? 그럼 약한 것 아닌가?”
엽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싸우다 죽었다는 것이 어째서 약하다는 말로 들린단 말이냐? 사실 그가 좀 더 융통성을 발휘해 싸웠더라면 죽는 지경에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실력은 네가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볼 때 그의 실력은 아라와 막상막하였을 것이다.”
아라와 막상막하의 실력!?
그제야 엽현은 고형의 실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오유겁을 홀로 버텨 낸 아라였다.
그녀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절대 약하다고 할 수 없다.
아목 역시 이에 동의했다.
“고형에게 괜히 전신이라는 칭호가 붙은 게 아니지. 당시 천신족 역대 최강의 신왕과 붙어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이때 엽현이 다소 머리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싸운 것 치고는 고형족과 천신족의 사이가 썩 나빠 보이진 않던데 말이오?”
“그건 바로 무족의 존재 때문이다.”
소도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아목을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무족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두 세력이 힘을 합치지 않고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거든.”
이에 아목이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그렇게 강하지도 않소. 그대와 비교하면 우리 무족은 한낱 개미 새끼에 불과하지 않소?”
“대제사장, 너무 겸손할 것 없다. 너희 무족 초대 무신의 실력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니까.”
이때 엽현이 소도 앞에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 무신이란 자와 그대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 것이오?”
“네 머릿속에는 오직 그런 질문밖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냐?”
“…….”
소도가 다시 아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당시 오유겁만 아니었더라면 무족과 천족 중 하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겠지.”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우리 두 세력은 마침내 완전히 승부를 보기로 합의한 상태였소.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유겁이 닥칠 줄이야.”
“이제 얼마 후면 또 다른 오유겁이 도착한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소도의 질문에 아목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그대는 우리가 그때처럼 화친을 맺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오?”
“글쎄,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
엽현은 몰라도, 소도는 대제사장의 지위가 무족 내에서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특히 무신과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제사장은 부족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신은…
잠시 무신을 떠올린 소도는 이내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내 버렸다.
이때 아목이 웃으며 말했다.
“소도 낭자, 하지만 그대가 원하는 것과는 달리 천족은 어찌하면 나를 죽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을 게 분명하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혹시 그대가 직접 나서서 중재를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둘 사이에 전쟁을 피할 방법이 없소.”
듣고 있던 소도가 고개를 흔들었다.
“둘 사이의 일은 관심 없다.”
“하지만 한 번 시도 해볼 순 있지 않소?”
엽현이 갑자기 끼어들자 소도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네가 그들에게서 얻은 신물을 돌려주고 천룡의 목숨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 있느냐?”
“아, 그건 싫소!”
소도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럼 포기하거라. 천룡을 삶아 먹은 놈이 무슨 염치가 있어 화해하니 마니 하는 것이냐? 게다가 천족과 무족 간의 원하는 생각 이상으로 깊은 것이다.”
엽현이 아목을 쳐다보자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 두 세력 사이의 갈등은 조정하기 쉽지 않아. 내가 깨어난 걸 알아차린 이상 저들은 분명 날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게다. 게다가 무족 강자들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으니.
“그럼… 그들이 깨어날 때까지 여기 머물면 되지 않소?”
엽현이 눈을 깜빡이며 말하자, 소도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아주 여기가 네 집인 줄 아는구나. 구워 먹든 삶아 먹든 네 맘대로 하거라!”
소도의 항복 선언에 엽현이 만세를 부르고 있을 때, 아목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저들은 어떻게든 널 끌어내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네 친구나 가족을 노리는 방식으로…”
가족!
순간 엽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엽현이 소도를 바라보자 소도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싸움에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도와주지 않았소?”
“그 하얀 아이는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그녀가 아니었다면 널 도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
자리에서 일어난 소도가 엽현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자기 똥은 자기가 치워야지?”
“소도 낭자! 그대도 그 똥(?)에 조금은 일조하지 않았소?”
“걱정하지 말거라. 놈들이 복수하겠다고 찾아오면 알아서 치울 테니까. 네 것은 네가, 내 것은 내가. 무슨 말인지 알겠지?”
순간 엽현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것이야말로 실력 좀 있다고 유세 떠는 게 아닌가!
이때 엽현 곁에 있던 아목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이 성을 떠날 수 없어. 왜냐하면, 무변지하성 주변에는 이미 무인들이 깔려있을 게 뻔하거든.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할 방법을 찾아낼 거야.”
“그럼 이제 어쩌면 좋소?”
“가장 좋은 방법은 원군을 부르는 거지.”
“원군? 천녀 누님?”
“만약 그녀가 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아목이 환한 표정으로 말하자 엽현이 손을 내저었다.
“당장은 그녀를 부를 방법이 없소.”
“흠…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무족의 영역까지 몰래 숨어 가는 건데… 분명 방해가 만만치 않을 게다.”
“아목,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소. 무족 무인들을 이리로 부르면 다 해결 되는 것이 아니오?”
이때 곁에 있던 소도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부를 수 있었으면 당장 그렇게 했겠지, 너와 이런 이야기나 나누고 있었겠느냐?”
엽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목은 가볍게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도가 말했다.
“너는 무족 강자들이 왜 비교적 늦게 깨어나는지 아느냐?”
“모르오!”
“왜냐하면, 선기를 잡기 위해 아목을 먼저 깨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목을 일찍 깨어나게 하는 대신 다른 무인들의 기상이 늦춰진 것이지.”
“흠… 그럼 천족 무인들은 왜 무족의 무덤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오? 나라면 그들이 깨어나기 전에 다 제거해 버렸을 텐데 말이오.”
“그것에 대한 이유도 다 있다. 당시 천족과 무족은 누가 먼저 깨어나도 다른 한 쪽을 칠 수 없도록 피의 맹세를 했다.”
순간 엽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고작 맹세 하나 때문에?”
“흥, 너같이 얍삽한 놈은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기겠지만, 그들이 맺은 맹세는 다르다. 만약 천족이 잠들어 있는 무족 강자를 치게 되면, 그 순간 신사는 몸이 산산조각나게 되어있다.”
엽현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에이… 고작 맹세 하나 어겼다고 사람이 죽는단 말이오?”
“맹세를 지나가는 똥개처럼 여기는 네 놈이 뭘 알겠느냐?”
“…….”
맹세!
맹세를 어기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엽현은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마시대의 맹세가 이렇게 위력적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소도 낭자, 신사와 대제사장의 맹세가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오?”
“당사자가 곁에 있는데 왜 내게 묻는 것이냐?”
소도가 시큰둥하게 대답하자 엽현이 고개를 돌려 아목을 바라보았다.
이에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두 사람이 한 맹세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때문에 둘 중 누가 먼저 깨어나든 함부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없는 것이지. 나나 신사는 물론이거니와 두 부족의 강자들 역시 감히 이를 어길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맹세를 어겨도 신사 한 사람만 희생하면 무족을 전멸시킬 수 있는 것 아니오?”
“후후, 그건 네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들은 절대 신사에게 위해가 가는 행동은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신사는 천족의 정신적 지주인 데다, 족장을 임명하는 강력한 권한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흠… 어째서 신사가 그런 권한을 갖는 것이오?”
“그건 바로 천족의 모든 미래는 신사가 계획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사는… 대단히 강하다.”
신사가 강하다고?
엽현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아목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대는 왜 이 모양이오?”
“헤헤, 난 싸우는 게 싫다니까?”
“…….”
이때 가만히 있던 소도가 말했다.
“비록 그녀에겐 큰 전투력은 없지만 다른 무인을 보조해 주는 능력이 있다. 만약 네가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해지게 되면 그녀와 함께 하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신물보다 든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아목이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엽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녀가 자신에게 주문을 외워 줄 때마다 그 효과는 언제나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다른 신물들처럼 부작용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소도가 말을 이어갔다.
“신물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금 너는 신족 각 부족의 보물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물건들은 각각의 부족을 상징하는 물건인 만큼 이대로 호락호락하게 넘겨주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무족의 강자들은 아직도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아목과 그녀의 무시인 너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소도의 말에 엽현과 아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두 사람의 처지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아무래도 화력을 분산시켜야겠어.”
갑작스러운 아목의 발언에 엽현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에 아목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둘로는 절대 저들을 감당할 수 없어. 그러니 천족에게 새로운 적을 만들어 주는 거지.”
“새로운 적이라 하면… 혹시 소도 낭자는 아니겠지 말이오?”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아목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아는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겠느냐?”
“그럼 우리에게 누가 있소? 천녀 누님은 연락도 닿지 않는단 말이오!”
이때 아목이 시선을 문밖으로 돌리며 말했다.
“신마시대의 존재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천도시대의 강자들뿐이야.”
천도시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소도의 질문에 아목은 소도 대신 엽현을 보며 말했다.
“불주신산(不周神山)으로 간다.”
불주신산!?
순간 엽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불주신산이 뭐 하는 곳이오?”
“그곳은 천도시대의 유적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다.”
대신 대답한 소도가 뜨거운 눈빛으로 아목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는 대제사장이라는 신분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겠지?”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그게 유일한 방법이오. 그렇지 않소?”
“…….”
소도가 침묵하자 아목이 엽현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리로 향하면 천족 무인들이 곧바로 따라붙을 거다. 하지만 불주신산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그들도 쉽게 출수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일종의 금역이니까.”
“금역? 오유계에 금역이 아직 남아 있었소?”
이때 소도가 말했다.
“그곳은 다른 금역과는 성격이 다른 곳이다. 그 지역은 천도가 직접 봉한 곳이니까. 즉, 너희가 불주신산에 들어가는 것은 천도의 금기를 깨는 것이란 소리다. 알아듣겠느냐?”
이때 엽현이 소도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화내지 않을 테니 말해 보거라.”
“그것이… 소도, 그대는 정녕 천도가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