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63
1063화 태양열이 필요해
소녀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돌리니,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소도가 자신들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너, 소도 낭자를 알아?”
“알지! 소백이를 노렸던 여자니까.”
“노리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간단히 말해 못된 여자란 뜻이야.”
“…….”
소도는 여전히 소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소녀가 소도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한판 붙어?”
“얼마든지.”
소도가 흔쾌히 결투에 응하자 엽현이 깜짝 놀라며 둘 사이에 끼어들려 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소녀는 이미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소녀가 출수한 순간, 강대한 힘이 불어 닥쳐 엽현을 수천 장 밖으로 튕겨 냈다.
바로 이때 가만히 보고 있던 소도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소녀를 가리켰다.
찰나의 순간, 소녀의 손가락에서 방출된 기운이 마치 송곳처럼 공간을 뚫고 날아들었다.
콰콰콰쾅……
이 기운의 등장으로 인해, 이미 흑동으로 변해버린 성역이 마구 흔들리더니, 성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났다.
이에 엽현과 아포장 등은 미친 듯이 뒤로 튕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본 소녀는 주먹을 거두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순간 그녀의 몸이 포탄처럼 날아갔고, 그 중간에 있는 것들은 말 그대로 ‘허무’로 변해 사라졌다.
그녀의 기운을 담기에 이 오유계는 너무나 연약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 여인이 성역 한가운데서 맞붙은 순간.
콰쾅-!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장내가 일순 고요해졌다.
이때, 소도의 신형이 잔상을 일으키며 날아와 소녀의 가슴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퍽-!
소녀가 주춤하긴 했으나 그 자리에서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소도의 신형이 백 장 밖으로 튕겨 나가더니 희미하게 변해 사라졌다.
허상?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소녀가 본능적으로 뒤로 돌며 주먹을 날렸다.
쾅-!
그녀의 일격에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튕겨 나갔다.
바로 이때, 다른 방위에서 손가락 하나가 소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소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퍽-!
쿵-!
사이좋게 공격을 교환한 두 사람.
다만 소녀는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반면 소도는 천 장 밖으로 튕겨 날아갔다.
가볍게 목 주위를 쓰다듬는 소녀. 그녀의 목에는 붉은 지인(指印)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소녀가 소도를 한 번 노려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내질렀다.
“감천진지(撼天震地)!”
콰쾅-!
그녀의 주먹에서 또다시 멸천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걸 보자, 엽현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반대편에 있던 아포장 등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 경험으로 두 사람의 싸움에 말려들게 되면 무사하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던 것이다.
한편 눈을 가늘게 뜨며 날아오는 기운을 바라보고 있던 소도는 돌연 손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눈을 감았다. 이윽고 소녀의 기운이 수백 장 앞에 도착한 순간, 소도가 눈을 번쩍 뜨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멸(滅)!”
그녀의 손끝에서 검은 광선이 방출된 순간!
쾅-!
우주 전체가 진동함과 동시에 두 여인이 미친 듯 뒤로 튕겨 나갔다.
마치 오유계 전체를 집어삼킬 듯 했던 폭발은 시간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이때 소도와 소녀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뒷짐을 진 채 말없이 소녀를 응시하는 소도.
그런 소도를 바라보며 사탕을 할짝이는 소녀.
무인들은 이 두 괴물을 보며 감히 침도 삼키지 못했다.
이때, 눈치를 보던 엽현이 황급히 소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두, 두 사람 괜찮소?”
“난 괜찮아!”
“괜찮다.”
두 사람이 괜찮은 것을 확인한 엽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동시에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여자들은 뭐 때문에 싸운 것일까?
이때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엽현을 바라보았다.
“있잖아, 나 방금 힘을 다 썼어. 이제 금방 사라질 거야.”
“…….”
소녀는 이번에는 소도를 향해 말했다.
“다음에 제대로 붙어보자. 그땐 지금과는 다를 테니까.”
“얼마든지.”
소녀는 담담하게 대꾸하는 소도를 응시하며 차츰 사라져갔다.
이때 뭔가 떠오른 엽현이 소녀에게 물었다.
“혹시 너… 충전할 줄 알아?”
충전?
“왜? 충전이 필요해?”
소녀의 대답에 엽현은 부랴부랴 계옥탑에서 9호를 꺼냈다.
9호!
엽현은 당시 엄청난 위력을 보여주었던 9호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었다. 9호만 깨어나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강력한 지원군은 없으리라.
이때 9호를 살펴보던 소녀의 눈이 반짝였다.
“우와,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야?”
“뭐, 뭐야? 혹시 아는 사이인 거야?”
엽현이 황망히 묻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 그럼 충전인가 뭐시긴가 하는 것도 할 줄 알아?”
“기다려봐.”
소녀는 9호의 엉덩이 부근을 슬금슬금 더듬더니 손을 떼고 엽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거… 충전단자가 없어. 불량품인 거 같으니까 환불해 달라고 해.”
환불!?
“…….”
환불!
소녀의 말을 들은 후, 엽현의 표정은 다소 기괴해졌다.
사람이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환불한단 말인가?
이때 소녀가 엽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재차 확인하듯 말했다.
“빨리 산 곳에 가서 환불해. 이거 빨리 안 하면 안 바꿔줘.”
“…이건 산 게 아니라 주운 거야.”
“주워? 산 게 아니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봐줘. 혹시 충전단자인지 하는 게 다른 데 숨겨져 있을 수도 있잖아.”
“음…….”
소녀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9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때, 무슨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들어 엽현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거 인공지능은 어때?”
“인공…지능?”
“지능 말이야, 지능!”
“어, 음… 내 생각엔 매우 똑똑한 거 같아.”
“그럼 그렇지. 이거 태양열로 가는 거야.”
태양열!
엽현은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태양열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답답하긴, 태양으로 충전하는 거라고!”
“아…….”
소녀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조금 전 그녀가 별들을 다 때려 부순 까닭에 별빛이라곤 한 줌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지. 나중에 빛이 있는 곳을 찾아서 잘 널어놔. 그럼 알아서 충전될 거야.”
“오… 그래. 네 말대로 해 볼게.”
“그리고 이거.”
소녀가 입에서 빨아먹고 있던 사탕을 꺼내 엽현의 손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오빠한테 걸리면 한 소리 들으니까, 네가 잘 맡아 놓고 있어. 다음에 와서 먹을 거니까.”
“…….”
말을 마친 순간 소녀의 형상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갈 시간이 된 것이었다.
마침내 소녀가 사라지고 엽현은 잠자듯 누워 있는 9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제야 9호가 왜 일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태양을 통해 충전이 가능한데 빛이 없는 계옥탑에 눕혀 놨으니 충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일이 끝나면 안전한 곳에 가서 충전을 시켜야겠어!
이때 머릿속에 무언가 문득 떠오른 엽현.
그가 고개를 들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호천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차!
엽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소녀를 불러낸 것은 분명 저 네 사람을 처리하기 위함. 하지만 그녀는 엉뚱한 곳에 힘을 다 쏟아붓고선 나 몰라라 하며 떠나버린 것이다!
호천과 팔부천룡은 중상을 입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은 건재한 상태였다.
잠시 이들을 응시하고 있던 엽현이 돌연 웃으며 호천에게 말을 걸었다.
“헤헤, 사람을 부르라던 건 그대였으니까 내 잘못은 아니오. 그럼 이만!”
9호를 수거한 엽현은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내에 남은 호천 등은 멀리 사라지는 엽현을 보며 안색이 검게 물들었다. 물론 이는 엽현 때문이 아니라, 그가 불러낸 소녀 때문이었다.
그녀의 실력은 네 사람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누구도 감히 엽현을 쫓자고 나서지 못하는 이유였다.
잠시 후, 침묵을 깬 것은 호천이었다.
“돌아가겠소.”
이 말과 함께 호천이 뒤돌아 사라졌다.
아포장 등 역시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장내를 빠져나갔다.
이제 장내에 남은 것은 소도와 외발 여인.
“방금 그 여자는 요수였나?”
외발 여인의 물음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악수(惡獸).”
“그렇다면 상신(上神) 급의…”
“아니, 그녀는 세상 모든 악수들의 조상이다.”
악수의 조상!
이 말을 듣자 여인의 표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마 천족은 이후로 다시는 엽현을 건들지 못하겠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만약 신사가 결단을 내린다면 나머지들은 목숨을 걸고 따라야 할 테니까.”
“과연 그게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인가?”
“나야 모르지. 그녀가 깨어난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거다.”
소도의 이 대답에 여인은 곧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한편 멀찌감치 도망친 엽현은 호천 등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아목을 꺼내주었다.
드디어 밖으로 나온 아목의 표정은 예상대로 밝지는 않았다.
“혹시 화났소?”
아목이 고개를 저었다.
“날 보호하려 한 행동인데 화를 낼 이유는 없지. 하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반드시 나도 함께 싸우게 해 줘!”
“꼭, 그렇게 하겠소!”
“말로만?”
“하하,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소!”
엽현의 말에 아목이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방금 그 머리에 뿔이 난 소녀는 가버린 건가?”
“그렇소. 이렇게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르겠구려.”
“그 소녀도 그렇지만, 소도 역시 대단했어.”
소도!
아목의 말에 엽현은 소도를 떠올렸다.
소녀의 놀라운 실력 때문에 깜빡 잊고 있었지만, 소도 역시 소녀에게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했던 것이다.
엽현은 소녀와 막상막하의 싸움을 펼친 소도에 대해 경외심마저 들었다.
소도는 대체 누구이기에 그렇게 강하단 말인가?
이는 결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그럼 계획대로 불주신산으로 출발하자!”
아목의 말에 엽현이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천족은 이제 쫓아오지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가야 하오?”
“그럼, 가야지!”
“무슨 이유로?”
“헤헤, 가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다.”
잠시 고민 끝에 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목이 권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엽현이 아목을 둘러업고 날아오르려는 이때, 갑자기 소령이 불쑥 튀어 나왔다.
“소령아?”
순간, 소령은 다짜고짜 엽현의 손을 붙잡더니 계옥탑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물론 엽현 등에 업혀 있던 아목도 얼떨결에 함께하게 되었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계옥탑 삼층.
이곳은 바로 전천수가 머무는 곳이었다.
이때의 전천수는 처음 이곳에 데려왔을 때보다 몇 배 이상 자라있었다.
이와 함께 풍기는 기운 역시 범상치 않게 변해 있었다.
“얘 봐봐, 다 큰 거 같지 않아?”
“음… 그러고 보니 몸집이 꽤 커졌구나.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있니?”
“아니 글쎄, 내가 영양보충 좀 하라고 단약을 좀 챙겨 줬는데…”
소령이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하자 엽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줬는데? 무슨 일 있었어?”
이에 소령이 전천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갑자기 꼬리를 붙잡고 엽현 앞으로 끌고 왔다.
“글쎄 얘가 그다음부터 탑 안에 있는 영과를 죄다 뜯어 먹은 거야! 그러고도 더 달라고 찡찡대는데 얘를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어! 이러다가 우리 거덜 나는 거 아냐?”
“…….”
엽현의 시선이 전천수에게로 향했다. 이때 전천수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한 걸 아는 걸까?
이때 아목이 웃으며 말했다.
“아마 진화하려나 보다!”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