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68
1068화 함께 가겠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물줄기들이 터져 나갔다. 반면 엽현은 태극순 안에서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를 본 신공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역시 태극순이로구나! 그럼 이것도 막을 수 있을까!”
신공이 자리에서 사라진 순간, 물로 된 사슬 하나가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이에 엽현은 제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태극순을 정면으로 배치했다.
콰쾅-!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크게 휘청이는 태극순.
이번에도 공격은 막아 냈지만 그 여파에 엽현이 재차 백 장 밖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엽현의 발이 아직 지면에 닿지도 않은 이때, 그의 사방에서 돌연 무수한 수의 물줄기가 튀어나와 엽현을 에워쌌다.
이때 계옥탑 안의 구층 존재가 소리쳤다.
[이건 수역(水域)이다!]역(域)!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은 자신이 이미 역 안에 갇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엽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신왕좌를 소환했다.
그가 신왕좌 위에 착석한 순간 엽현의 주변에 마치 감옥과 같은 역이 만들어졌다.
쾅-!
두 개의 역이 서로 충돌한 이때, 엽현 주변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막으려는 신왕좌와 안으로 뚫고 들어가려는 수역이 균형을 이루는 이때, 엽현이 주변에 검역을 둘렀다.
콰쾅-!
검역의 힘까지 더해지자 강성했던 물줄기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검역이라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신공.
엽현은 이런 신공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조금 전 신왕좌와 검역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의 몸은 이미 산산이 찢겨 있었을 것이다!
이때 신공이 진중한 표정으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하늘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강줄기로 변했다.
엽현의 표정이 어두워진 이때, 이 강줄기 안에서 돌연 무수히 많은 물화살들이 튀어나와 엽현을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이에 깜짝 놀란 엽현이 황급히 머리 위로 태극순을 꺼내 들었다.
콰콰콰콰쾅…….
불주신산 전체가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크게 흔들렸다.
한편 하늘을 뒤덮은 강물은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끊임없이 물화살들을 생성해 냈다.
비록 태극순은 이 화살들을 모두 막아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엽현의 안색은 창백해져만 갔다.
순간 엽현은 신공의 의도를 파악했다.
상대는 자신의 현기를 고갈시켜버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엽현은 문득 아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때의 아목은 여전히 주문을 외우고 있었고, 그녀의 앞에 놓인 해골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때 아목이 눈을 번쩍 뜨고는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전신부!”
그녀의 외침에 엽현은 곧장 아목을 향해 전신부를 떨어뜨렸다. 전신부를 낚아챈 아목은 이내 손가락에 피를 낸 후, 해골에 선혈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무신지명(巫神之名), 환이혼귀(喚爾魂歸)!”
쾅-!
아목이 주문을 마친 순간, 허공에 머리 없는 허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없는 기괴한 모습의 허영.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아목이 누구를 불러낸 거지?
멀리, 신공의 시선 역시 새로 등장한 허영에게 향해 있었다. 허영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다소 무겁다.
“아목 낭자, 저건 누구의 영혼이오?”
“고형족의 선조, 고형이다!”
고형!?
아목의 대답은 엽현에게는 다소 의외였다.
“아니, 고형족 무인이 우리를 돕는단 말이오?”
“하하,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엽현이 다시 뭔가 질문하려는 이때, 고형이 지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아목 앞에 있던 전신부가 묵광으로 변해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고형이 도끼를 번쩍 들어 신공을 향해 휘둘렀다.
쩌억-!
도끼날에 걸린 공간이 그대로 수박 잘리듯 갈라져나갔다.
이를 본 신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 그러자 그의 앞쪽에 거대한 수막이 펼쳐졌다.
하지만 도끼가 도달한 순간 수막은 허무하게 찢어졌고, 이와 함께 신공 역시 순식간에 뒤로 튕겨 날아갔다.
무려 천 장 밖까지 밀려나서야 멈춰 선 신공.
아래쪽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엽현은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신공도 대단하지만 고형은 그보다도 더한 괴물이지 않은가!
고형의 정면, 신공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는 누구냐!”
고형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머리 위로 도끼를 번쩍 들어 올렸다.
쩌억-!
조금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공간을 찢으며 날아드는 도끼.
이에 신공이 양손으로 삼지창을 부여잡고 정면으로 힘껏 내질렀다.
쾅-!
순간, 삼지창이 닿은 공간이 쩍 갈라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불어난 물은 이내 신공의 앞 공간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끼는 가볍게 물길을 헤치고 신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모습을 본 신공은 미간을 찌푸리며 제 자리에서 발을 굴렀다.
찰나의 순간, 하늘 전체가 물로 뒤덮이더니, 이내 불주신산 전체가 신비한 기운에 휩싸였다.
수역(水域)!
물이 뒤덮은 거대한 공간이 하나의 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역이 나타난 순간 맹렬하게 날아가던 전신부의 위력이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강대한 수역의 힘이 전신부를 압도해 버린 것이다.
아래쪽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아목은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목 낭자, 지금 우리끼리라도 도망치는 게 어떻겠소?”
“그럼 전신부는 어찌한단 말이냐? 만약 회수한다면 그때부터 고형은 신공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고형은 이미 수역에 갇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의 고형은 그저 그런 평범한 영혼인 상태였다.
이때 엽현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하늘 높이 떠오른 엽현은 신공이 아닌 진룡을 향해 천주검을 휘둘렀다.
빠각-!
그를 제압하고 있던 물의 사슬이 끊어지자, 자유를 찾은 진룡이 세상을 향해 포효했다.
“진룡!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서 저쪽을 도와주시오!”
“놈! 인간 주제에 건방지게 명령하지 마라!”
진룡이 엽현을 한 번 째려보고는 한 줄기 묵광으로 변해 신공에게로 날아갔다.
이에 엽현 역시 상대에게로 돌진했다.
그는 이미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설령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신공이 자신을 뒤쫓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결국,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 한다는 것!
엽현에 진룡까지 합세하자 장세는 순식간에 역전국면을 맞았다.
공격을 이끄는 것은 대부분 진룡과 고형의 몫이었다.
엽현은 뒤에 쳐져 있다가 두 사람이 위험할 때마다 태극순을 펼치는 역이었는데, 이 정도만 해도 일인분은 한 셈이었다.
이로써 진룡과 고형은 수비 부담 없이 공격에만 전념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공은 이런 엽현이 몹시도 얄미웠지만, 따로 그에게 손을 쓸 기회는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점점 신공의 공격은 둔화되어 갔고, 결국 수비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대략 반 시진이 흐르자, 별 도리가 없던 신공은 한 가닥 물줄기로 변해 순식간에 도망쳐버렸다.
이를 본 엽현이 추격에 나서려 할 때, 아목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무리하지마!”
“아목 낭자….”
이때 진룡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뭐 하는 짓이냐! 지금이 아니면 놈을 죽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이에 아목이 말없이 고형을 가리켰다.
이때의 고형의 영혼은 빠르게 소멸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자 무어라 따지고 들려던 진룡은 재빨리 입을 닫았다.
고형 없이 엽현과 둘이서 싸우기엔 신공은 너무나 거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놈은 곧 인왕을 찾아올 것이다.”
진룡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째서? 나와 그는 그리 큰 원수도 아니지 않소?”
이 말에 진룡은 비웃음을 보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참, 좀 전에 그가 나더러 우물의 봉인을 풀어달라고 했소. 이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소?”
우물의 봉인!
순간 진룡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진룡, 뭘 숨기고 있는 것이오?”
“…….”
“내 생각이 맞다면 그 안에는 신공과 같은 자들이 갇혀 있을 것 같은데… 내 짐작이 맞소?”
이에 진룡이 엽현의 눈을 응시하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봉인된 신들이다.”
신!
“그럼 그 우물 안에는 도대체 얼마나 봉인돼 있는 것이오?”
“서른… 아홉.”
서른아홉 명의 신!
진룡의 대답을 듣자 엽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신공만 해도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데, 우물 안에 그 정도 강자가 서른아홉이나 더 있다는 것 아닌가!
만약 그들이 모두 우물을 빠져나오게 되면 이 세상은…
엽현이 침묵에 잠겨 있는 이때 아목이 진룡을 향해 물었다.
“그들 모두 천도에게 감금된 것이오?”
“그렇다.”
이때 엽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천도는 왜 그들을 잡아 가둔 것이오?”
“왜냐하면, 그들은 매우 강하고 야심도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지가 정한 법칙을 거스르려 했기에 오유계의 존속에 있어 큰 위협이 되었던 자들이다.”
“그럼 천도는 왜 저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오? 그편이 더 안전한 것 아니오?”
진룡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천도라 하더라도 저렇게 많은 수의 신들을 어찌 다 죽일 수 있겠느냐?”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오.”
아목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천도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을 것이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어떤 계략이 숨어있는 것이겠지.”
이번에는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중에 보복을 당할 수도 있을 텐데 굳이 살려 둘 이유가 있었겠소?”
“네 생각에 천도가 그걸 두려워할 것 같으냐?”
“음… 모르긴 몰라도 그러진 않았을 것 같소.”
엽현은 아목의 말이 더욱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마흔에 가까운 신들을 봉인할 정도라면 죽이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됐다. 우리의 머리로는 천도의 속셈을 짐작하기 어렵다. 일단 이곳을 떠나자꾸나.”
아목이 말하자 엽현은 진룡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대도 따라오시오.”
“뭐?”
진룡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 엽현을 쳐다보았다.
“내가 널 따라가다니, 그게 무슨 헛소리냐?”
엽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시오. 신공이 자신을 공격한 그대를 가만둘 것 같소?”
“공격이라니! 나는 대부분 처맞기만 했지 그를 패퇴시킨 건 결국 너희 두 사람이지 않느냐!”
진룡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섰다.
“아이고, 그래 내가 한 거지. 도망이나 칠 걸 괜히 끼어들어가지고. 만약 그가 날 찾아오면 난 꼼짝없이 그가 시키는 일을 해야겠지? 왜냐하면, 난 약하니까 말이야!”
그가 언급한 것은 다름 아닌 우물의 봉인을 푸는 일이었다.
이를 알아챈 진룡이 황급히 아목과 떠나려는 엽현의 앞을 막아섰다.
“이곳에 남거라!”
“하하, 무슨 농담을 하는 게요?”
“여기 있으면 신공도 널 함부로 건들지 못할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오. 여기서 한가하게 숨바꼭질이나 할 틈이 없단 말이오.”
“…….”
“오, 왜 그런 무서운 표정을 하는 것이오? 혹시 억지로 날 잡아 둘 생각이걸랑 집어치우는 게 좋소. 여차하면 또 사람을 부를 테니까!”
정곡을 찔린 진룡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조금 전의 고형이 떠올랐다. 만약 그 정도 강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자신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우리라.
이때 엽현이 말했다.
“진룡, 오히려 여기에 남으면 그대만 위험할 것이오.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와 함께 있다가 위급할 때 서로 돕는 게 어떻겠소?”
“…….”
“잘 생각해 보시오. 신공이 다시 돌아오면 그대 혼자서 어찌 막을 셈이오? 반대로 그대가 우리와 함께 한다면 그는 절대로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할 것이오. 자, 선택은 그대에게 달렸소!”
침묵하는 진룡.
이를 본 엽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목과 함께 돌아섰다.
이때, 등 뒤에서 진룡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좋다! 너와 함께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