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69
1069화 강자는 강자를 알아본다
“정말이오? 잘 선택했소!”
엽현이 다시 돌아서자 진룡이 엽현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약속 하거라. 절대 신공을 위해 우물의 봉인을 해제하지 않기로!”
“그렇다면 나도 하나 조건이 있소. 만약 내게 위기 상황이 닥쳐온다면 꽁무니 빼지 않고 날 도와주기로. 어떻소?”
“…….”
“싫소?”
“흠… 좋다. 단, 천도를 제외한 적이 널 공격하려 한다면 내가 도와주마. 단, 너 역시 신공이 날 죽이려 하거나 우물을 열려고 할 때 출수할 의무가 있다.”
“좋소! 거래 성립!”
이에 진룡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연 손가락 굵기 정도의 소룡(小龍)으로 변신했다. 뒤이어 그는 엽현에게 날아와 그의 팔에 몸을 칭칭 감았다.
“작아지니 훨씬 더 귀엽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출발이나 하거라!”
“하하, 출발!”
이렇게 진룡을 포함한 엽현 일행은 곧바로 불주신산을 벗어났다.
그들이 막 어두운 성공으로 사라진 순간, 허공에 신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공은 엽현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살기를 쏟아 냈지만, 결국 추격하기를 포기했다.
조금 전 세 사람에게 둘러싸였을 때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대로 싸운다면 설령 승리할지라도 중상을 면치 못하리라.
앞서 도망쳐야 했던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갓 봉인에서 풀려난 그의 실력은 전성기의 절반가량.
분하지만 일단은 숨을 고르는 것이 나중을 위해 더 유리한 일이었다.
잠시 후.
시선을 뗀 신공은 어디론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이윽고 그가 도착한 곳은 불주신산 근처에 있는 한 우물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우물은 나무 뚜껑으로 덮여 있었고, 그 위로 붉은 글씨로 “봉(封)”이라 적혀 있었다.
우물 앞에서 잠시 침묵하던 신공이 이 봉인을 향해 돌연 일장을 방출했다.
쾅-!
손이 닿은 순간, 봉인으로부터 강대한 힘이 흘러나와 신공을 순식간에 튕겨 내버렸다.
무려 수천 장을 날아가고서야 자리에 멈춰 선 신공. 그의 몸은 곧 소멸할 듯 매우 희미해져 있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우물 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엔 알 수 없는 공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잠시 후, 신공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역시 인왕을 찾아가는 수밖에…….”
인왕!
인왕의 권능 중 하나는 바로 천지간의 어떤 봉인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천도의 봉인을 풀기 위해선 반드시 엽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동안 자리를 지키던 신공은 순식간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한편, 이 시각 성공의 어느 어두운 공간.
검은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엽현과 아목이 있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엽현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목은 무심코 여인이 있는 쪽을 향해 힐끔 시선을 던졌다.
다시 허무계로 돌아온 엽현과 아목.
두 사람이 막 허무계 영역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 앞에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제사장!”
아목을 향해 정중히 예를 갖추는 노인.
아목이 자신을 바라보는 엽현에게 웃으며 말했다.
“소개하마. 여기는 우리 무족의 장로, 무석(巫石)이다.”
엽현이 무석이라 불린 노인을 향해 가볍게 묵례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아목을 쳐다보았다.
“대제사장, 이 사람은?”
“이 아이는 이번에 내 무시가 된 사람이오.”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석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소?”
무석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점점 그의 표정이 무겁게 변해갔다.
“대제사장…”
“문제가 있는지 물었소.”
아목의 차가워진 목소리에 무석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면 됐소. 우선 무족으로 돌아가겠소.”
이 말에 무석이 황급히 길을 열자 아목은 엽현을 데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창 걷던 중, 엽현이 뒤따라오는 무석을 흘끔 쳐다보고는 작게 속삭였다.
“아목, 저 장로라는 자는 나를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소.”
“음?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좋으면 됐지.”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은 아목의 무시가 된 것일 뿐, 무족의 다른 무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쓸 바 아니었다.
이때 아목이 무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깨어난 자는 그대뿐이오?”
“아닙니다. 일부 무인들은 이미 무성(巫城)에서 대제사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 알았소.”
잠시 후.
세 사람은 무성에 도착했다.
그들이 막 입성했을 때, 무족 강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목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들은 감격에 젖은 얼굴로 일제히 고개를 조아렸다.
“대제사장을 뵙습니다!”
“대제사장을 뵙습니다!”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고개를 드시오. 너무 예 차릴 건 없소.”
아목은 곧장 무석을 향해 말했다.
“명을 내리겠소. 무족 강자들은 깨어나는 즉시 무성으로 모여야 하고, 내 명령이 없이는 함부로 성 밖을 나설 수 없소.”
“존명!”
예를 차리며 대답한 무석이 엽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아목은 엽현과 함께 성 중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성 안에서 아목을 발견한 사람들은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는 진정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행동이었다.
이 모습을 본 엽현은 무족 내에서 아목의 지위가 자신의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어느 외딴곳에 위치한 봉인된 전각이었다. 아목이 양손으로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우자, 전각의 대문이 삐꺽거리며 양옆으로 활짝 젖혀졌다.
순간 엽현은 전각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충만한 영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우리 무족의 천재지보들을 모아 놓은 곳이다. 우선 그 아이를 불러 내 보거라.”
고개를 끄덕인 엽현은 곧바로 전천수를 소환해냈다. 이때 소령 역시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소령을 본 아목이 웃으며 말했다.
“데리고 들어가서 마음껏 영기를 섭취하게 하거라.”
“마음껏? 쟤는 좀 많이 먹는데 괜찮아?”
“후후, 그건 걱정 말거라.”
소령은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아목 낭자, 정말 아무렇게나 풀어 놔도 되는 것이오?”
엽현이 묻자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사용할 곳이 없다면 의미가 없는 법. 천재지보를 이용해 강력한 요수 한 마리를 얻을 수 있다면 무족에겐 남는 장사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하하, 부디 그대가 흡족할 정도로 자라길 바라겠소!”
엽현은 곧바로 소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소령아, 데리고 가서 마음껏 먹도록 해줘.”
“응!”
엽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령은 전천수 꼬리를 붙들고 부리나케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엽현이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전천수란 원래부터 강한 존재요?”
“그렇지는 않다. 극한에 이른 전천수의 경우 기껏해야 칠부천룡 정도니까. 다만 저 녀석은 경우가 매우 다르다.”
“다르다라… 소령과 하얀 아이가 돌봐준 후 보통의 전천수에서 탈피했다는 소리요?”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전천수의 혈맥은 이미 그의 선조를 뛰어넘은 상태다. 게다가 하얀 아이의 기운까지 흡수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뭐, 결과야 가까운 미래에 곧 알게 되겠지만.”
“만약 무족의 보물들을 다 먹어치우고도 여전히 약하다면?”
“뭐, 그럼 그런가보다 해야지. 별 수 있나?”
아목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목, 그대는 다른 무족 강자들의 비난이 두렵지 않소?”
이에 아목이 엽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되물었다.
“너는 무족 무인들이 왜 나를 존경하는지 아느냐?”
“음… 그대가 하는 일이 모두 무족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후후, 역시 너는 똑똑하구나.”
“그럼 나를 선택한 것도 무족을 위한 일이었소?”
엽현의 계속 된 질문에 아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처음부터 쭉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내 배후에 있는 존재를 보고서 그랬던 것이오?”
아목이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너를 선택했던 것은 오로지 너 하나만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어째서?”
“왜냐하면 넌 좋은 놈이니까.”
“고작 그런 이유로?”
엽현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아목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이다. 네가 아무리 잘났어도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네 손에 무족의 미래를 맡기진 않았을 것이다. 특히 너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이기적이지 않고 권력욕도 없으며 영생을 추구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또한 한 번 같은 편이 되면 반드시 의리를 지키지.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너와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
“너 역시 지금까지 네가 이뤄 낸 모든 것이 전적으로 네 뒤에 있는 여인의 덕이라 생각할 필요 없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니까. 특히 너의 신분은……”
“신분?”
“흠, 흠. 아무튼 그런 게 있다.”
아목이 대충 말을 얼버무리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는 여전히 내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소. 누가 좀 속 시원하게 말 해 주면 좋으련만.”
“서둘지 말거라.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될 테니까. 그런 것보다 지금 네가 당면해 있는 일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이때 엽현이 아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솔직히 말 해 보시오. 내 혈맥이 어쩌고 신분이 어쩌고 하지만, 사실 천녀 누님이 없었다면 날 선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아목이 고개를 들어 엽현을 바라보았다.
“전천수가 나오면 나와 갈 곳이 있다.”
“아목,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소.”
“…넌 다소 내게 실망감을 안겨주는구나.”
“실망? 무엇 때문에 말이오?”
엽현을 응시하던 아목이 마침내 시선을 거두고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대답해 줄 것이 없다. 잠시 후 내가 말한 곳에 간 다음, 이곳에 남을지 아니면 떠날지 결정하도록 하거라.”
아목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다른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엽현도 이를 눈치 채고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어색한 침묵 속에 전천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이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전각 안 쪽에서 돌연 강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기운은 순식간에 무성 전체로 퍼져 나갔고, 무족 강자들의 시선은 곧장 전천수가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바로 이때, 전각 안에서 나온 소령이 엽현을 보자 잔뜩 흥분한 얼굴로 깡충깡충 뛰어왔다.
“돼지가 마침내 배가 불렀어!”
“그리고는?”
“그리고 엄청 커졌어!”
엽현이 뭔가 더 물어보려는 이때, 갑자기 전각이 와르르 무너지더니 거대한 요수 한 마리가 엽현 앞으로 나아왔다.
다름 아닌 전천수였다!
이틀 만에 다시 본 전천수는 몸집이 작은 산처럼 거대하게 변해 있었다. 다리는 마치 하늘을 떠받칠 듯 두꺼웠고, 온몸에선 전에 볼 수 없던 강자의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바로 이때, 엽현의 팔에 감겨 있던 진룡이 눈을 번쩍 뜨고 전천수를 바라보았다. 전천수 역시 진룡을 향해 강력한 살기를 흘려보냈다.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가고 있었다.
“저 녀석을 좀 작게 만들어 주겠니? 목이 아프구나.”
아목의 말에 소령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천수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작아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