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너희 같은 학생을 가르쳐서 여한이 없다
엽현은 검의를 이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작은 돌멩이, 대지의 기운 그리고 그리로 흘러가는 작은 여울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느끼는 것은 점점 많아져 갔고 더 선명해졌다. 심지어 직접 보는 것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엽현은 이 기묘한 느낌에 점점 빠져들었다.
엽현은 더욱 멀리 나가보고 싶었다. 순간 그의 검의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검의가 그의 몸에서 십여 장쯤 떨어졌을 때 그는 극심한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십 장 내의 거리는 무엇이든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그가 사방을 명확히 보기 위해서는 검의를 여러 군데로 분산시켜야 했다. 그렇게 되면 정작 자신이 전투에 사용해야 하는 검의가 약해질 것이 분명했다.
검안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이런 불편도 사라지리라!
엽현이 사방에 흩어진 검의를 다시 불러 모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검의가 그의 몸 안으로 다시 응집되었다. 이때 그는 칼로 자신의 몸을 저미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죽을 만큼 아프다!’
엄청난 고통에 엽현은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 정도 아픔도 참지 못한다면 사나이라 할 수 있는가!
‘나 사나이 엽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소리 지르지 않는……’
“아악!”
이때 엽현이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엽현의 몸 안에 응집된 검의가 한 줄기 전류와 같이 그의 두 눈을 향해 흘러갔다.
그중에는 검망도 섞여 있었다.
검의와 검망이 그의 두 눈에 집중되니 가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고통이 엽현에게 닥쳐왔다.
엽현은 검안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도망갈 수도 없었다.
그의 눈가로 응축된 검의와 검망이 점점 응집됐다. 그와 함께 엽현의 얼굴에는 붉은 핏발이 가득 섰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 * *
엽현이 검안을 깨치기 위해 처절히 싸우고 있는 이때, 묵운기 등도 이를 악물고 수련에 임하고 있었다.
창목학원과의 일전은 결국 그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처참하게 죽어갔던 기 원장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무력감과 절망!
기 원장이 달빛 아래 스러지던 그 밤, 그들은 그것을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묵운기, 백택 그리고 기안지, 그 누구도 그날 밤의 무력함과 절망감을 다시 맛보고 싶지 않았다.
창목학원은 기 원장을 잃었다. 엽현마저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나머지 세 사람이 받는 압박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수련! 또 수련밖에 없었다.
강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게으름뱅이였던 묵운기마저 몸 위아래로 무거운 쇠구슬을 가득 매단 채 매일 같이 산을 달렸다. 해가 뜨기 전에 시작된 그의 훈련은 해가 진 후 한참이 지나서야 끝났다.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숙소에 돌아오는 그는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어김없이 산으로 나섰다.
백택은 더 이상 폭포에서 수련하지 않고 단단한 바위에 자신의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체질을 가지고 있는 그의 육체는 강한 충격을 받을수록 더욱 단단해졌다. 동시에 그의 몸 안에 있는 요족(妖族) 혈맥의 힘을 자극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지극히 고통스러웠다.
매일 같이 단단한 바위에 몸을 부딪치니 백택의 몸은 항상 상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상처가 다시 단단한 바위에 부딪쳐 찢어져 나갈 때마다 백택의 입에선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영령전(英靈殿).
이곳은 창란학원을 재건축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대전이었다. 대전 내에는 수많은 이들의 위령패가 세워져 있었다. 물론 기 원장의 것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위치 해 있었다.
기안지가 향을 올리고는 그들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이때, 엽현이 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걸음걸이가 몹시 비틀거렸다.
기안지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영패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겨우 기안지 곁에 도착한 엽현이 영패들을 앞에 두고 털썩 주저앉았다.
“너 여기서 하루종일 무릎 꿇고 있었어.”
기안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너희를 데리고 중토신주 본원으로 갈 거야.”
그러자 기안지가 엽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진심이야?”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심이야.”
그 말에 기안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으로 걸어가던 기안지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위령패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 너희 같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여한이 없다고…….”
기안지가 떠난 후에도 엽현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엽현이 기 원장의 호리병을 열고 그대로 한 모금 들이켰다.
‘후…… 얼얼하군….’
‘그래도… 맛이 괜찮아.’
엽현이 또다시 한 모금 들이키는가 싶더니 이내 얼굴이 온통 붉게 변했다.
그는 지금까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술이란 모든 일을 그르치는 주범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연거푸 술을 들이키던 엽현이 기 원장의 영패 앞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동공이 없는 그는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그저 마음으로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의 죽기 전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매일 같이 그 악몽을 꾸었다!
얼마 후, 엽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을 빠져나가려던 그가 입구에서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영감, 안심하십시오. 창목학원이든 암계든 우리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중토신주에 있는 영감의 사부도 조만간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영감의 사부는 우리의 사조(師祖)이기도 하니 마땅히 예를 올릴 것입니다.”
영란전 밖은 이미 밤이 깊었다. 밝은 달이 대지를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엽현이 어디론가를 향해 걸어갔다. 그 걸음걸이가 어쩐지 술에 취한 기 원장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잠시 후, 엽현은 뒷산에 도착했다. 마침 그의 앞으로 수련 중이던 묵운기가 달려왔다. 묵운기가 그를 보자 발걸음을 멈췄다.
“엽 강도, 너 설마 취한 거야?”
엽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취이하기인 누가 취이해! 느아 안 취했어!”
이때, 엽현의 손바닥 위로 영수검이 떠올랐다. 엽현이 묵운기를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무군기(묵운기), 덤브아(덤벼), 나랑 한 판 붙자아.”
“엽 강도, 야! 이게 어디서 술주정을 부려… 헙!”
순간, 묵운기의 안색이 사색이 되어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그가 있던 자리가 검광에 의해 순식간에 깊게 패였다. 엽현이 번개와 같이 묵운기를 추격했다.
묵운기가 허겁지겁 도망치며 소리 질렀다.
“엽 강도! 취하려면 곱게 취할 것이지! 당장 그만 안 둬? 정말 혼나고 싶냐!”
한편 백택은 수련을 끝내고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의 눈앞에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묵운기와 그를 뒤쫓는 엽현이 나타났다. 백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묵운기! 너 또 무슨 잘못 했어?”
그러자 묵운기가 백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잘못은 무슨 잘못! 저 자식이 어디서 술을 퍼마시고 와서는 다짜고짜 날 공격하잔…….”
그때 묵운기가 갑자기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와 동시에 그가 있던 자리에 한 줄기 검광이 스쳐 지나갔다.
엽현의 검은 엉뚱하게도 백택에게로 날아갔다.
백택은 자신의 발밑에 박힌 영수검을 보자 그대로 엉덩이를 깔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육신이 아무리 단단하다 할지라도 엽현의 검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명계 중품의 명검이었다.
이때, 엽현이 비틀거리며 묵운기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온통 시뻘게져 있었다. 한 손에는 호리병을 튼 채, 시도 때도 없이 들이키고 있었다.
이를 본 묵운기가 암담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엽 강도, 이 자식아 제발…….”
이때, 엽현이 자신의 손에 돌아온 영수검을 묵운기를 향해 들더니 화난 음성으로 외쳤다.
“너는 누구냐아아! 감히 우리 대 창란학원에 난입하다니이!”
엽현이 묵운기를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펼쳐지는 그의 최강의 절초!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묵운기의 안색이 새하얘지면서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의 입에선 쉴 새 없이 육두문자가 흘러나왔다.
이때, 땅바닥에 가만히 머리를 묻고서 미동도 하지 않던 백택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제발 그냥 지나가, 제발…….”
일검정생사(一劍定生死)!
엽현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초식!
그 위력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묵운기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묵운기는 엽현이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감히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줄행랑을 쳐야 했다.
백택 역시 감히 말릴 생각도 못 하고 그저 죽은 척하고 있었다.
어차피 완전히 취해 있는 엽현이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 않았다.
우선 칼끝을 피하고 보는 수밖에…….
바로 이때, 영수검이 그의 손에서 스르르 떨어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엽현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줄행랑치던 묵운기가 엽현이 쓰러진 것을 보자 발걸음을 멈추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달빛 아래 나란히 누운 세 남자.
엽현은 자그마한 돌을 베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누운 묵운기와 백택은 가만히 그의 곁을 지켰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세 남자, 문득 엽현이 말을 꺼냈다.
“창란학원을 지키고 기 원장의 복수를 하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야. 너희 둘…….”
“그만!”
묵운기가 그의 말을 끊었다.
“엽 강도, 우리더러 도망가라는 거야?”
엽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 원장의 복수. 이는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청주 창목학원과 암계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분명한 건 결코 현 상황에서 그들이 대적할만한 존재들은 아니란 것이다.
물론 그들이 가만히 있더라도 그 두 세력들은 창란학원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 외에 중토신주 창란학원을 방문하는 일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한다. 내가 힘이 없는데 어찌 상대가 내 말을 들어 주겠는가?
이러니저러니 둘 다 이루기 힘든 목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때, 묵운기가 말했다.
“엽 강도, 우리도 힘든 여정이 될 거란 걸 알아.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힘든 길을 너 혼자 보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야.”
묵운기가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앞일은 알 수 없지만, 함께 가자. 성공하면 쭉 같이 가는 거고, 실패하면 같이 죽는 거지 뭐. 나도 죽는 건 두려워. 하지만 그렇다고 겁쟁이가 되는 건 죽기보다 더 싫어. 그리고 기 원장의 희생은 결코 너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의 복수든 염원이든 우리가 함께 이뤄야 해!”
백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 누구 하나 빠져선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