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92
1092화 새로운 전쟁의 서막
“그럼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녀를 죽여 후환을 없애는 건 어떻소?”
이에 허영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녀 하나를 죽이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 아시오?”
“…….”
신공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똑똑한 머리만큼이나 무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녀를 죽이려면 필시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이때 허영이 말을 이어갔다.
“그녀가 출수하지 않다면 우리에게도 나쁠 건 없소. 괜히 가만히 있는 벌집을 쑤시기보다, 우선 엽현 쪽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그나저나 그대는 엽현에 대해 좀 알아보았소?”
허영이 묻자 신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럼 지금까지 밝혀진 자들 외에 엽현의 배후가 더 있는지 알아냈소?”
신공이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조사해 본 바, 그의 가장 큰 배후는 이미 떠나 버린 소복의 여인이었소. 만약 그대들이 소도와 검종을 막아 준다면, 우리가 엽현을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오.”
“다른 배후가 없는 게 확실하단 말이오?”
“확실하오!”
신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자들은 이미 지난번 전투 때 모두 모습을 드러냈소. 검종과 소도, 그리고 불패아라를 제외하면 더 이상의 배후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소. 그리고…”
신공이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무족과 천족의 전력 역시 만만치는 않으니 주의해야 할 것이오.”
“그대들은 날 따라오시오.”
허영이 짧은 한마디와 함께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신공과 무천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허영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성공 한 복판에 도착한 세 사람.
허영은 아무 말 없이 검은 원반 하나를 꺼내 들었다. 잠시 후, 검은 원반이 둥실 떠오르더니, 원반 중앙에서 강렬한 흑광이 튀어나와 성공 깊은 곳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를 가만히 보고 있던 신공이 의아한 듯 물었다.
“상사(上使), 대체 뭘 하는 것이오?”
“도움을 구하는 것이오.”
“도움?”
상사의 말에 신공이 다시 질문을 던지려 할 때, 검은빛이 돌연 사라졌다.
“음? 빛이 사라졌소!”
“정상이오. 누군가 소도와 검종을 막으러 갈 것이오. 다만 나머지는 그대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오.”
상사의 말에 신공이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대들만으로 가능하겠소? 검종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을 텐데?”
“흥, 놈들이 아무리 대단하기로서니, 상계보다 강하기야 하겠소?”
“음… 그건 그렇군.”
신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천을 쳐다보았다. 이때 상사 역시 무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대들 암주(暗主)와 상주(上主) 역시 이번에는 출수 하겠지요?”
상사의 물음에 무천은 침묵했다.
“무천, 천도는 이미 우리에게 붙잡혀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오. 이 시기를 놓치면 그대들 음암계에는 영영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소.”
무천이 입을 열어 막 대답하려는 이때, 그의 공간 앞쪽에 작은 떨림이 일었다.
잠시 후, 무슨 말을 들은 듯한 무천이 고개를 들어 상사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필요하오.”
“얼마나?”
“삼일!”
“좋소, 삼일 후에 다시 봅시다!”
이 말을 끝으로 상사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상사가 떠난 후, 무천이 신공을 향해 돌아섰다.
“신공, 그대는 저자를 얼마나 믿을 수 있소?”
“믿고 말고를 떠나서 저들의 목표는 오직 엽현 뿐이니, 괜찮은 것 아니오?”
“음… 그건 그렇소. 우리와 저들은 서로 충돌할 이유가 없으니….”
“저들은 엽현을, 우리는 천도를 위해 손을 잡는 것뿐이오. 그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소.”
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하러 가겠소. 삼일 후에 봅시다!”
그렇게 무천도 떠나가고 자리에 홀로 남은 신공.
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고전장의 어느 산봉우리.
악마안과 신제가 산 밑을 바라보며 나란히 서 있다.
“그들은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다. 아직 기회가 있어.”
“멍청이!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악마안의 말에 신제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악마안의 표정에 복잡한 심경이 드러났다.
“신제, 우리는 더 이상 이 일에 끼어들 수 없다.”
“어째서?”
“후… 다른 세계의 세력이 끼어들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나? 그들은 분명 엽현을 노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리처럼 만유서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지. 우리의 세력은 그들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과 손을 잡게 되면 우리는 고작 화살받이로 이용되다가 버려지게 될 것이다.”
“흠….”
“게다가 신제가 데리고 온 그 음암생령들, 그들은 일찍이 천도에게 봉인된 존재들이다. 다행히도 천도가 아직은 나타나진 않았지만…”
“우리가 계속 그들과 함께한다면 언젠가 천도에게 얻어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로군!”
악마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관망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
“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지. 지나고 보니 엽현과 적이 된 것은 내 인생 최악의 결정이었구나. 부디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으련만…….”
무족.
엽령은 여전히 분묘를 지키며 엽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아직까지 아무런 기별도 전해지지 않았다.
바로 이때, 지면이 갑자기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에 엽령의 안색이 환해졌다.
“내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구나!”
이때 엽령의 곁에 나타난 아목과 아천.
“오빠가 나오려는 것이오?”
엽령의 질문에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그럴 것 같다.”
엽령은 아천과 아목의 표정이 어두운 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다시 쳐들어오겠지 말이오?”
“글쎄…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검종을 막을 방법을 찾아냈다는 뜻이 되겠지.”
말을 마친 아목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전투가 벌어질 것 같구나.”
천도전당포.
이 날,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이 전당포를 찾았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왼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오른발은 다소 절고 있었다. 여기에 때때로 마른기침을 해대는 것이 영락없는 촌부의 모습이었다.
이때 노인을 발견한 천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그대는….”
“후후,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그대의 모습은 여전하구려. 이 늙은이는 이미 반쯤 관짝에 발을 디뎠거늘, 홀홀홀.”
“그대조차 그들과 손을 잡았단 말인가?”
소도의 말에 노인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조금 더 사는 데 욕심이 생기는구려. 소도 낭자, 이 늙은이와 함께 며칠 이곳에서 지내는 게 어떻소?”
소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에선 희노(喜怒)를 찾아볼 수 없다.
다만 그녀는 출수하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도는 노인을 어찌할 수 없고, 노인 역시 소도를 쓰러뜨릴 수 없다. 힘을 빼느니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피차 좋은 일이리라.
얼마간의 침묵이 흐르고 소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신(將臣), 당시 그대가 이 우주에 공로한 바는 결코 적지 않다. 그걸 알기에 천도 역시 그대를 도우려…”
“그걸로는 부족하오!”
장신이라 불린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소도의 말을 끊어냈다.
“그대의 말대로 나는 천도를 도와 정신들을 봉인하는 데 일조했소.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본원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말았소. 솔직한 말로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깝소.”
장신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오. 다만 천도와 나 사이에는 빚진 것도, 받아 낼 빚도 없소.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소도가 낮게 탄식했다.
“하지만 오늘 나를 막으면 그대에게도 적지 않은 인과가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해 본 적 있나?”
“물론이오. 때문에 나도 그저 그대를 막는 것까지만 허락한 것이오. 그대만 출수하지 않는다면 나 역시 자리만 지키고 있겠소. 물론 일이 끝난 후에는 진심으로 사과를 하리다.”
소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득 고개를 돌려 문 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진한 근심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허를 찔렸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설마하니 장신마저 꼬드겼을 줄이야.
엽현, 이제 어찌하려느냐?
무변지하성.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외발 여인.
이때, 그녀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흑도사!
잠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두 여인.
찰나의 순간 흑도사가 먼저 도를 치켜들었다.
대황국.
대전 입구에 나와 있는 아라, 그녀의 정면에는 기다란 흑검을 들고 있는 여인이 마주 서 있다.
여인의 곁에는 뇌전이 번뜩이는 망치를 들고 있는 조두인.
잠시 두 사람을 응시하던 아라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왔으니 너희는 나와 함께 이곳에 남자!”
말을 마친 순간, 아라의 검집에서 영생검이 빠져나왔다.
무족.
이 시각, 아목은 무족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조사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그보다 먼저 와 있는 여인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전대 대제사장, 임선.
영전 앞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있는 임선은 마치 죽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임선 대제사장.”
아목이 가까이 다가오자 임선이 천천히 눈을 떴다.
“수많은 강자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저도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임선이 아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후회하느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째서지? 엽현 편에 선 이후로 무족은 눈곱만큼의 이익도 거두지 못하지 않았느냐? 심지어 이제는 그를 지키기 위해 무족 전체의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는 저의 무시고, 무족의 일원입니다. 그것만으로 지켜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임선은 아목을 응시하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아목이 웃으며 말을 꺼냈다.
“임선 대제사장, 걱정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그를 선택한 것은 무족 전체를 위한 선택이었고, 이는 그도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부족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로 인해 무족이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느냐?”
“그가 언제 우리를 저버린 적이 있습니까?”
“음?”
아목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임선이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가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우리 역시 그를 포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무족의 사람이니 동고동락해야 하는 것이지요. 설령 그것이 엽현이 아니라 다른 평범한 무족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부디 네 결정이 옳았길 바란다.”
“이, 임선 대제사장! 우리는 대제사장이 필요합니다!”
“하하, 내가 언제 간다고 했느냐? 나도 여기 남아서 도울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 하하!”
임선의 말에 아목이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였다.
이때 아목이 조상패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조상님들이여, 혹시 보고 계신다면 잠시 뒤 있을 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기도를 올리는 아목.
임선은 그런 아목을 응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