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93
1093화 한판 싸워보겠소?
천족.
성벽 위에 서서 바깥쪽을 응시하고 있는 아천.
그녀의 뒤로 호천과 아포장 그리고 고전천이 보였다.
호천은 아천을 향해 몇 번이고 입을 열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아천의 말에 호천이 겨우 말을 꺼냈다.
“신사, 제 생각에 우리 천족은 이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 녀석과 관련되고 나서 골치 아픈 일만 생기고 있지 않습니까?”
“호 형의 말이 맞습니다. 신공과 음암계는 이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검종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서 굳이 엽현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습니다!”
고전천의 지원에 힘을 얻은 호천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사, 결정하셔야 합니다!”
이때 아천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만유서옥!”
“서옥?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상계의 세력이 노리는 것은 엽현의 그 만유서옥이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소? 그건 그만큼 서옥의 가치가 크다는 뜻 아니오?”
“그러면 우리가 그 서옥을 빼앗기라도 해야 한단 말입니까?”
고전천이 눈을 크게 뜨며 묻자 아천이 고개를 저었다.
“그 신물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아천은 세 사람을 향해 돌아서며 말을 이어갔다.
“현 상황으로 보건데 그 물건은 선각자가 오유겁을 대비해 남겨놓은 것이오. 여기서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의 힘으로 서옥을 빼앗는 것이고, 둘째는 신공이 서옥을 강탈하도록 돕는 것이오. 첫 번째를 선택하기엔 우리의 실력이 부족하고, 두 번째를 선택한다면… 또 다른 강적을 마주해야 하오.”
“강적이라면…”
“천도!”
아천의 말에 호천 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공과 음암계의 생령들은 앞서 천도에게 봉인 당한 존재들이오. 즉, 우리가 그들의 편에 선다는 것은 천도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요.”
“하지만… 천도는 지금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호천의 말에 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도박을 해야 하오. 자, 그대들은 어디에 걸겠소?”
아천이 묻자 나머지 세 사람이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저는 엽현을 택하겠습니다.”
대화를 듣고만 있던 아포장이 가장 먼저 의견을 피력했다.
이에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으로 향했다.
“모두 알다시피, 상계의 세력이 오유계의 상황에 개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엽현을 포함한 오유계의 세력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면 훗날 우리 차례가 왔을 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곧 있으면 오유겁이 들이닥칠 텐데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누군가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건데, 엽현만큼 탁월한 대안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만유서옥이 있고 또 마침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반면 상계와 손을 잡게 되면 우리는 이용만 당하고 팽당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때 호천이 나섰다.
“하지만 엽현을 돌봐주던 그 여인은 이미 떠나지 않았소? 이제 그의 배후는 검종 하나만 남은 셈인데 그들마저 상계에 막힌다면 우리에겐 승산이 없는 것 아니오?”
“그러니까 도박을 하자는 것이지.”
아천이 씩 웃으며 말하자, 호천이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실패하면 천족은 바로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후후, 어차피 오유겁이 오면 다 죽게 되어 있소.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마지막으로 가능성이 더 높은 곳에 걸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
더 이상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아천이 다시 성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명을 내리겠소. 지금 당장 천족의 모든 무인들을 이끌고 무족으로 가시오. 진법이니 신물이니 하는 것도 하나도 남김없이 들고 가시오. 이번에야말로 세인들에게 우리 천족의 진정한 힘을 보여 줄 때요. 설령 멸망하게 될지라도 마지막 불꽃을 활활 태우는 것이오!”
“존명!”
호천 등 삼인은 대답과 동시에 뿔뿔이 흩어졌다.
잠시 후, 천족의 모든 무인들이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성문을 나서기 시작했다.
* * *
어느 산꼭대기.
검을 차고 있는 여인 하나가 절벽 끝에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마침 바람이 불고 그녀의 긴 머리와 함께 파란 치마가 가볍게 나부낀다.
그녀의 뒤편에는 천 장 가량 떨어진 허공에는 한 자루 검이 걸려 있다. 검의 밑으로 몇 개의 전각들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사방으로는 검명 소리가 시시각각 울려 퍼진다.
이 중 대전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는 청삼을 입은 남자 하나가 조각되어 있다. 한쪽 어깨에 온몸이 새하얀 아이가 올라타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세상을 오시하는 듯한 시선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청삼남과 그런 그에게 얼굴을 파묻고 있는 하얀 아이.
비록 조각상에 불과했지만, 이 두 존재에게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때, 한 줄기 검명 소리가 상공에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검명 소리가 공간을 꿰뚫고 날아들자, 장내가 순간적으로 소란스러워졌다.
이에 절벽 위에 꼿꼿이 서 있던 여인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앞에 한 줄기 검광이 떨어졌다.
검광이 흩어지고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육운선이었다.
“사제(師姐), 바깥의 상황이 심상치 않소! 아마 곧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소!”
육운선의 말에 여인이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놈들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단 말인가?”
“고얼의 말로는 이번에 새로이 나타난 상계의 세력이 엽현을 노리고 있다고 하오. 조만간 총공격이 있을 것인데, 그 전에 우리 검종의 발을 묶어두려 한다는 소식이오.”
엽현!
엽현의 이름이 나오자 여인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사제, 아니면 사람을 보내서 그 아이를 이리로 데려오는 게 어떻겠소? 혼자 떨어져 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지 않소?”
이에 여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사제, 하지만……”
바로 이때, 한 줄기 검광이 그들 앞에 떨어졌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
바로 고얼이었다.
“큰일 났습니다! 적의 침입입니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적의 공격이라니?”
여인이 묻자 고얼이 황급히 대답했다.
“조금 전 웬 놈들이 갑자기 쳐들어와 산문을 두들기고 있는데 그 수나 기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건 예상치 못했군! 내가 직접 가겠다! 너희는 검종의 모든 제자들을 이끌고 산문으로 향하거라!”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여인은 한 줄기 검광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잠시 후, 지면에서 무수한 검광들이 솟구치자, 이내 검종 상공은 태양에 뒤덮인 것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
허무계.
한 명의 중년인이 무족 상공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신공이었다.
오만한 표정으로 무족을 내려다보는 신공, 그의 입가에는 귀신의 미소가 걸려 있다.
“장담컨대, 오늘은 아무도 너를 도와주러 오지 못할 것이다!”
무성.
아목은 공중에 떠 있는 신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때 신공의 곁에 또 다른 남자가 등장했다.
무천!
무천의 뒤편으로는 도합 열한 명에 달하는 주재경 강자들도 함께였다.
이들 외에도 장내에는 음암거령(陰暗巨靈) 열기, 그리고 수백에 달하는 음암음령(陰暗陰靈)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무천이 소매를 펄럭이자 마른하늘 위에 검은 전송진이 펼쳐졌다.
잠시 후, 무성의 하늘은 쏟아져 나온 음암물들로 인해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
“아라와 소도에게서는 아무 기별이 없는 것이오?”
어느새 다가온 아천의 물음에 아목은 고개를 저었다.
“흠, 보아하니 저들이 미리 수를 쓴 듯 하구려.”
“아마도 이번에는 우리끼리 막아내는 수밖에 없을 듯 싶소.”
이때 아목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 죽니 사니하며 싸우던 우리가 이렇게 생사를 나누는 전우가 될 줄이야….”
“하하, 세상 일이 참 묘하지 않소?”
“하하하!”
두 여인이 호탕하게 웃고 있는 이때, 공중에 떠 있던 무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무족, 천족. 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만약 지금이라도…”
“그만 하시오!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를 위협하는 자들과는 전쟁뿐이오!”
아목이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이에 무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강대한 기운이 뒤쪽에 있던 분묘로부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분묘로 향한 이때, 분묘의 입구에서 한 남자가 기이한 기운을 풍기며 걸어 나왔다.
엽현!
엽현을 본 순간, 엽령이 바람처럼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오빠! 윤회경…”
“응, 성공했어.”
윤회경!
크게 숨을 들이켜며 주먹을 쥐어보는 엽현, 순간 한 줄기 청명한 검명 소리가 그의 몸 안으로부터 흘러나오더니, 이내 온 천지에 울려퍼졌다.
“흠… 저 놈이 바로 엽현?”
“그렇소.”
공중의 무천이 묻자 신공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무천이 웃으며 엽현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엽현, 우리도 괜히 피를 보고 싶지 않다. 네가 가지고 있는 서옥만 내 놓는다면 우리도 널 놓아주겠다고 약속하마. 어떠냐?”
만유서옥!
엽현이 문득 손바닥을 펼쳤다. 그러자 선각자의 서옥이 그의 손 위에 떠올랐다. 잠시 서옥을 응시하던 엽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걸 찾고 있나?”
“바로 그 물건이다. 얌전히 내놓기만 한다면 오늘 여기서 피를 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에 엽현이 엽령을 뒤에 세워 둔 후, 무천을 향해 걸어 나왔다.
“아니면 이건 어떤가? 그대와 내가 대결을 펼쳐서, 그대가 이기면 내가 물건을 넘겨주고, 내가 이기면 그대는 두말 않고 여길 떠나는 걸로?”
“너… 진심으로 하는 말이더냐?”
무천이 의심스레 묻자 엽현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의 일언은 천금보다 무겁다. 나 엽현,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안 돼!”
바로 이때, 신공이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무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요?”
“음? 신공, 그대는 내가 설마 저 핏덩이에게 질 것 같소?”
“물론 그렇진 않소. 하지만 무천, 엽현 저 놈은 구렁이처럼 교활한 놈이오. 뻔히 그대에게 이기지 못할 걸 알면서 승부를 걸어오는 게 좀 이상하지 않소? 무슨 술수를 쓰려는 게 분명하오!”
이에 무천이 엽현을 한 번 쳐다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 말이 맞소. 하지만 놈은 무슨 수를 써도 날 이길 수 없소.”
이 말에 신공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감!
새파랗게 어린 검수의 도전을 받고서 어찌 뒷걸음질 칠 수 있을까?
설령 무천이 아니라 신공 자신이었더라도 결코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승패를 떠나 무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만.
이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강자의 특권인 것이다!
“후후, 그럼 오너라. 네가 얼마나 천재인지 몸소 체험해 보겠다!”
“하하, 바로 느끼게 해 주지!”
두 사람의 웃음이 교차한 순간, 엽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윽고 날아드는 것은 허공을 가로 지르는 한 줄기 검광!
이때 검광의 속도는 분묘의 들어가기 전보다 다섯 배 이상은 더 빨라져 있었다.
윤회경!
단 한 단계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력에는 엄청난 진전이 있던 것이다!
이때 무천이 소매를 펄럭이자, 검은 기운이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며 날아갔다.
쾅-!
검광이 파편이 되어 흩어진 순간, 엽현이 마치 순간이동을 하듯 무천의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이를 본 순간 무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