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96
1096화 실력이 부족합니다
엽현은 눈앞의 여인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분명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얼굴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다소 답답한 심정이었다.
바로 이때, 여인의 눈망울이 뿌옇게 변하더니, 옥구슬 같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우, 울어!?
엽현은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나타나 눈물을 흘린다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까?
장내 다른 무인들 또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렇게나 강한 여인에게도 눈물이 있단 말인가?
이때 여인이 손을 들어 엽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안타깝게도 그녀들은 너를 지켜내지 못했구나.”
엽현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그녀? 누구를 말하는 걸까?
“그 두 사람 역시 고생이 많았을 게다. 물론 가장 수고한 것은 바로 ‘그녀’겠지. 너를 위해 세상 전체와 등을 졌으니……”
“그녀라면… 혹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을 말하는 겁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럼,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 질문에 여인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너는 그녀를 뭐라 부르느냐?”
“아청… 아청이라 했습니다.”
“후후, 그럼 나도 그렇게 부르면 되겠구나.”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혹시 그대는… 천주검의 주인이십니까?”
여인이 대답하기도 전, 곁에 있던 천주검이 대신 대답하려는 듯 반응을 보였다.
이때 여인이 손을 뻗으니 천주검이 그녀의 손 안으로 순식간에 딸려 들어왔다.
쾅-!
순간적으로 강대한 검의가 하늘로 솟구치면서, 미처 피하지 못한 음암생령들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이를 본 순간, 상사 등의 안색이 크게 어두워졌다.
한편 여인은 천주검을 그윽한 눈으로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엽현에게 돌려주었다.
“네가 잘 돌봐주도록 하거라.”
“…그대는 혹시 분신입니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체는 이곳에 오지 못했다. 오는 도중에 작은 일이 생겨서 말이야.”
본체!
엽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역천(逆天)의 실력을 가진 이 여인이 겨우 누군가의 분신일 뿐이라니!
바로 이때, 상사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누구시오?”
백의 여인은 몸을 빙글 돌려 상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가타부타 말 섞는 대신 주먹을 내질렀다.
이를 본 순간, 상사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양팔을 앞으로 교차했다. 그러자 그의 정면으로 검은 기운들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검은 방패 하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이 무색하게 방패는 너무나 쉬게 깨져버렸고, 상사 역시 뒤로 미친 듯 튕겨 날아갔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상사가 천 장 뒤에 멈춰 선 순간, 그의 육신이 붕괴되며 영혼이 튀어 나왔고, 그마저도 빠르게 소멸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무천은 너무나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손을 벌벌 떨 뿐이었다.
주먹질 한 번에 상사가 패배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여인이란 말인가!
순간, 무천이 고개를 들어 허공에 갇혀 있는 신공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제 놈의 배후는 없다고 하지 않았소!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신공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영혼만 겨우 남아있는 상사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일권!
어떻게 단 일권에 이지경이 됐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상사를 응시하고 있던 여인이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막 출수하려는 찰나, 엽현이 황급히 그녀에게 진혼검을 내밀었다.
“이 검을 이용해 놈의 영혼을 흡수하십시오!”
상사는 매우 강한 축에 속하는 무인이니, 만약 그의 영혼을 흡수한다면 진혼검은 더욱 강해질 수 있으리라.
여인은 말없이 진혼검을 받아들였다.
이를 보자 상사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해!
여인의 실력은 분명 자신보다 훨씬 더 위에 있었다.
게다가 그녀가 들고 있는 검은 진혼검!
본능적으로 죽음을 감지한 상사는 이곳을 탈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눈앞의 여인을 너무나 얕잡아 본 것이었다.
상사가 막 발을 뗐을 때, 진혼검이 피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와 그의 몸통을 꿰뚫었다.
쾅-!
진혼검이 그의 몸에 박힌 순간, 상사의 영혼은 순식간에 검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이 장면을 목격한 무천은 이미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후퇴! 후퇴한다!”
무천의 명령에 음암생령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앞 다투어 전송진을 향해 앞 다투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때, 백의 여인이 재차 일권을 방출했다.
쾅-!
모든 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광대한 범위의 공간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무수한 수의 음암생령이 그대로 소멸했다.
이 모습을 보자 무천은 가슴이 철렁였다. 여인의 실력은 비정상적이라 할 정도로 너무나 강력했던 것이다!
과장이 아니라 이 정도라면 정말로 우주 하나쯤은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바로 이때, 여인이 허공의 전송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그대로 강렬한 일권을 꽂아 넣었다.
그녀의 주먹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전송진 안으로 들어간 순간!
쾅-!
굉음과 함께 전송진이 순식간에 폭발했다.
여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또 다시 주먹을 뻗어냈다.
순간 그녀의 주먹에서 흘러나온 권인이 순식간에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 시각, 머나먼 흑암성역.
작은 권인 하나가 난데없이 성역 전체를 뒤흔들며 나타났다. 바로 이때, 성공 깊숙한 곳으로부터 검은 손바닥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권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쾅-!
검은 손을 폭파시킨 권인은 여세를 몰아 성공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잠시 후,
콰쾅-!
굉음과 함께 성역 전체가 폭발에 휩싸였다.
무성 상공.
도망치는 음암생령들을 향해 출수하려던 여인이 갑자기 멈춰서서 엽현을 돌아보았다.
“음? 무슨 일……”
순간 엽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에 여인의 몸이 희미해져가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여인이 엽현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리로 올 때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기운을 많이 쓴데다, 방금 전 출수한 것 때문에 이 분신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 그럼 본체는 어디 있습니까?”
여인이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켰다.
“저쪽… 아주 먼 곳에 있다. 중간에 사정이 생겨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무슨 사정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여인은 이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엽현의 몸 안에 있던 계옥탑과 만유서옥이 그녀의 손 안으로 딸려들어왔다.
“음….”
“왜 그러십니까?”
“후후, 이 물건들은 꽤나 재미있구나. 역시 잘 간직하도록 하거라.”
이때 엽현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지금 바로 소멸하시는 건 아니지요?”
“음? 그게 무슨 소리냐?”
여인이 의아해 하자 엽현이 손으로 서옥을 가리켰다.
“지금 바로 열어보려 합니다.”
서옥개방!
이는 엽현이 오래 전부터 하려고 했던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상황이 여의치 않았지만, 만약 백의 여인이 자리를 지켜준다면 충분히 시도 해 볼만한 일이었다.
마침내 잠시 고민하던 여인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거라.”
엽현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계옥탑과 서옥을 받아들었다.
계옥탑은 곧바로 엽현의 의도에 따라 손톱만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리고는 서옥 위편에 나 있는 작은 홈으로 날아갔다. 계옥탑이 홈에 들어맞은 순간, 서옥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 순간, 모든 이의 시선이 서옥에 집중됐다.
잠시 후, 하늘 높이 걸린 서옥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허공을 향해 한 줄기 백광을 뿜어냈다.
이때, 빛 안에서 음성이 울려퍼졌다.
“사용자의 실력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서옥을 개방할 수 없습니다.”
서옥 내에서 이 음성이 흘러나온 순간 장내 모든 인물들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엽현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사용자? 기준?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네 실력이 부족하다는구나.”
백의 여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엽현이 황급히 서옥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방금 누가 말한 것입니까? 안에 사람이 있는 것입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구나.”
“그럼 혹시 저 대신 열어주실 수 있습니까?”
이에 백의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본체가 여기 있었다면 가능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불가능하구나.”
원하던 대답이 들리지 않자 엽현은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이에 여인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굳이 지금 열 필요 있겠느냐?”
“음… 그 말도 맞습니다. 아쉽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요!”
“하하, 잘 생각했다. 그럼 나는 이제 가보려 한다. 조만간 본체가 널 찾아올 것이니, 그때까지 부디 잘 살아 있거라.”
이때 여인이 불현듯 한쪽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성공 속, 그녀의 시선이 다다른 곳에 화려한 복장을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친 남자가 미소를 보내는 순간, 여인이 돌연 일권을 방출했다.
이에 눈을 가늘게 뜨며 양팔을 치켜드는 남자.
쾅-!
폭음이 성공 중에 울려 퍼지고, 남자가 수백 장 밖으로 밀려났다.
자리에 멈춰 선 남자의 팔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 백골이 드러났고, 입에서는 한 줄기 선혈이 흘러 내렸다.
바로 이때, 여인이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단하군!”
여인의 공격을 막아 낸 남자는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팔을 보며 매우 놀란 눈치였다. 이때 성공 중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엽현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우리가 너를 너무나 과소평가한 모양이로구나…….”
이 말을 마친 순간, 남자가 뒤돌아 사라졌다.
잠시 후.
남자는 어느 강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강의 건너편에는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낚시를 하는 중이었다.
이때 손을 멈춘 여인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상사가 죽은 것 같군.”
“그대의 예상 밖이었소?”
“쓸데없는 질문.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건만.”
이때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 우주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여하지 않을 거요?”
“후후,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주의 생령들은 다 저마다 생각과 운명을 따를 것인데, 굳이 내가 감놔라 배놔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지.”
“…….”
“그래서, 이렇게 가만히만 있는 나를 죽일 생각은 아니겠지?”
죽여?
여인의 말에 남자는 침묵했다.
분명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들도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리라.
필경 눈앞의 저 여인은 오유계의 천도가 아닌가.
그녀를 죽이는 것은 상계의 강자들에게도 어려운 일!
“하하, 그대를 죽인다니. 농담이 지나치시구려!”
남자가 웃으며 말하자, 천도 역시 미소로 대꾸했다.
“알고 있다. 너희들이 날 죽이지 않으리라는 걸.”
“음? 어떻게 그걸 알고 있었소?”
“후후, 간단하지.”
천도가 빈 낚싯대에 다시 미끼를 끼우며 대답했다.
“내가 너희들을 막지 않는데, 너희가 굳이 나를 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신공과 음암계의 봉인을 푸는 것도 보고만 있었는데.”
“…왜 막지 않았던 것이오?”
“음? 왜 막아야 하지?”
여인의 대답에 남자는 다소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야… 그대는 이 우주를 수호하는 천도이지 않소?”
“하하하! 천도고 나발이고 실은 나 역시 이 우주의 일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방금 말했듯 모든 생령은 자신의 운명에 맞게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아직도 이해가 안 가나?”
이때 천도가 막 잡아 올린 물고기 한 마리를 던졌다.
“줄건 없고, 그거라도 한 마리 구워먹고 가거라. 이쪽의 물고기들이 아주 싱싱하단 말이지!”
발밑에 떨어진 물고기를 잠시 응시하던 남자는 천도를 흘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강변, 홀로 남은 천도는 피식 웃으며 다시 낚싯대를 던져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