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97
1097화 네 주변에는 도대체
잠시 후, 강가를 떠난 남자는 음암계에 도착했다.
이때의 음암계는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난 상태였다.
조금 전 그 여인의 주먹질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박살 나 버린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음암계를 보자 남자의 안색이 점점 무거워져갔다.
만약 그녀가 분신이 아닌 본체였더라면 음암계는 지금쯤 흔적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자신 역시 팔에 부상 입은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한참을 침묵하며 서 있던 남자는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자리를 떠나갔다.
잠시 후, 남자는 어느 검은 탑 앞에 도착했다. 이 거대한 탑 역시 여인의 공격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는지, 군데군데 커다란 균열이 간 상태였다.
바로 이때, 탑 안쪽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그래서, 계속 엽현을 노릴 생각이오?”
“물론, 우리에겐 그 서옥이 반드시 필요하오.”
“…그렇다면 우리는 그만 두겠소.”
탑에서 흘러나온 음성에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어찌, 이제 와서 겁먹은 것이오?”
바로 이때, 탑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 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음암계의 주인, 상주였다.
오래 전 천도와 오유계의 패권을 두고 다퉜던 강자!
문을 나선 상주는 남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번 일로 우리 음암계가 입은 손실이 매우 크오. 알고 있소?”
“어쩔 수 없었소. 그 여인이 나타날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오.”
“그대… 정말 놈을 잡을 자신이 있는 거요? 처음엔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 보니 별 것 아닌 건 그대들이 아니오!”
“상주!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 하는구려!”
“아니! 틀렸소! 애당초 그대들을 과신했던 우리의 잘못이오!”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느낀 남자가 다소 숨을 고르며 말했다.
“진정하고 하나하나 잘 따져 봅시다. 검종을 막은 것은 누구였소? 소도를 틀어막은 것은? 천도는 누구 때문에 지금껏 개입하지 못하는 것이오?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소?”
이에 상주가 웃으며 대꾸했다.
“따져보나마나 결국 엽현은 살아있지 않소? 그것도 두 눈 시퍼렇게 뜨고서!”
“그 여인… 그 여인의 출현은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변수였소.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오!”
상주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만 하시오. 우리는 여기서 빠지겠소.”
“음암계를 대신 해 천도를 붙잡아 둔 게 누군데 이러는 게요!”
남자가 참지 못하고 소리치자, 상주가 그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대답했다.
“음암계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소. 내 대답은 여기까지요.”
“상주!”
남자가 돌아서려는 상주를 불러세웠다.
“그대들의 목적은 무엇이오? 천도를 제거하고 오유계를 제패하는 것 아니었소?”
“훗, 설마 그대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오?”
“지금으로써는 불가능할지도. 왜냐하면 오유겁이 오면 그대들은 모두 죽을 테니 말이오.”
상주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이때까지 음암계는 수차례 오유겁을 견뎌왔소. 이번이라고 다를 것은 없소.”
“아니! 더 이상 요행은 통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이번 오유겁은 다를 테니까!”
“음? 어째서?”
상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일까?
“왜냐하면 이 우주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려 소생의 가망이 없기 때문이오. 그대도 얼핏 느끼고 있지 않소? 오유겁은 매번 닥칠 때마다 더욱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모든 생령들의 이기심이 극에 달한 지금, 오유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력할 수밖에 없소!”
“…….”
상제가 침묵하자, 남자가 여세를 몰아 말을 이어갔다.
“오유겁은 그렇다 치고, 우리가 이 우주를 떠나게 되면 당장 천도가 음암계를 가만히 두겠소?”
“왜 그녀를 제거하지 않는 거요!”
“우리가 왜 그래야 하오?”
남자가 반문하자 상주는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이에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상주, 그러지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 엽현을 포획할 계획을 논하는 게 어떻겠소?”
“…….”
“물론 그대들의 피해가 막심한 건 상계에서도 이해하는 부분이오. 때문에 이렇게 보상을 해 주는 것 아니오!”
말을 마친 남자가 품 안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그가 뚜껑을 열자, 엄지 손톱만한 백색 단환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후, 이 단약을 복용하면 그대가 입은 부상은 단번에 회복 될 뿐만 아니라, 운이 좋으면 다음 경지까지 바라볼 수도 있을 게요.”
다음 경지!
단약을 본 순간 상주의 눈빛이 번뜩였다.
현재 그의 경지는 주재경.
주재경 다음은 파허경(破虛境)이 존재한다.
파허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본질은 허(虛)와 실(實)의 결합이다. 하지만 때때로 사람들은 ‘실’에만 집중한 나머지 진정한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파허란 허와 실의 경계를 허물고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단계를 의미한다.
파허 다음으로는 귀원파계경(歸元破界境)이 있다.
귀원파계란 무공을 처음 시작할 때로 돌아간 뒤, 경계를 허물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경계란 오유우주의 한계를 의미한다.
귀원파계에 달한 이는 고금을 통틀어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유계 전체에서는 천도만이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천도는 수수께끼나 다름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귀원파계를 지나면 드디어 전설 속에나 등장하는 둔일경이 등장한다.
둔일(遁一)!
운명의 길에서 벗어나 다시는 어떤 인과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
이 경지는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처럼 여겨졌다.
세상에 어떤 존재가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불가능하리라!
상주가 생각에 잠겨 있는 이때 남자가 웃으며 다시 말을 꺼냈다.
“상주, 이번 일이 일단락되고 나면 상계가 나서서 그대들을 오유겁과 천도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오.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 아니오?”
“…….”
“솔직히 말하자면 상계에선 누군가 자신들을 대신해 오유계를 통치해줄 자를 찾고 있소. 그게 그대가 될지 누가 알겠소?”
“…그대 이름은 무엇이오?”
“존사(尊使)라 불러주시오.”
“존사.”
상주가 존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는 오유계 사람이오, 아니면 상계의 사람이오?”
이 질문에 존사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대처럼 오유계 출신이오.”
“그렇다면 솔직히 말하겠소. 내가 보기에 상계의 목적이 다소 불순한 것 같소. 그대 생각은 어떻소?”
“하하하, 불순하면 또 어떻소? 어쨌거나 그들은 최소 나와 그대를 돕고 있지 않소? 상주, 당장 그들이 발을 빼면 음암계가 천도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겠소?”
“…….”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묻겠소. 지금 상태에서 만약 천도와 붙는다면 그대에게 승산이 얼마나 되겠소?”
“…….”
상주는 아무 말 없이 주먹을 힘껏 쥐었다.
이때 존사가 단환이 든 상자를 내밀자, 상주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엽현은 우리가 맡는다 칩시다. 그런데 그의 배후에 있는 그 여인은 누가……”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상계에서 이미 대책을 마련 중이니 말이오. 지금 그대가 해야 할 일은 일단 상처를 회복하는 일이오. 그 후의 일은 내가 따로 통지 해 주겠소.”
고개를 끄덕인 상주는 그제야 상자를 받아 들고는 탑 안으로 사라졌다.
존사 역시 이내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 * *
무성 상공.
음암계 무인들은 모두 일찌감치 도망쳤지만, 신공은 여전히 검광안에 갇힌 채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응시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엽현.
엽현은 신공 앞에 서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만유서옥은 당분간은 꺼낼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실력으로는 서옥을 개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력이 모자르다니!
사람을 가지고 노는 건가!
엽현은 선각자의 신물이고 뭐고 바닥에 냅다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람도 아닌 신물 따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꽤나 자존심에 금이 가버린 것이다.
이때 분위기 파악에 실패한 신공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엽현, 이대로 끝인가 싶겠지만 어림도 없다! 네 놈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때 아목이 엽현 곁에 나타났다.
“좀 시끄러운데, 죽일까?”
신공을 흘끔 쳐다본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살려두면 쓸모가 있을 것이오.”
물론 엽현이라고 신공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공을 통해 음암계나 천도시대의 정신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더 중요했다.
천도를 상대로 반역을 꾀했을 정도로 강력했다던 정신들, 만약 그들을 엽현 자신이 통제할 수만 있다면 전력에 엄청난 도움이 되리라!
이때 엽현의 음흉한 미소를 목격한 신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엽현! 네가 무슨 악랄한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노부는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할지라도 네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수치스럽게 목숨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음으로…”
이때, 열변을 토하던 신공의 미간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서슬 퍼런 검을 들고서 자신의 머리를 조준하고 있는 엽현을 보자 신공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거지? 대답만 해. 바로 토막을 내 줄 테니.”
엽현이 세상에 둘도 없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신공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흠흠….”
살려줘!
신공의 말을 한 마디로 하면 바로 이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 아목 등의 표정이 다소 기이하게 변했다.
신공 정도 되는 자가 죽음을 두려워한다?
반면 엽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벌레들조차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지 않던가? 강약을 떠나 무릇 생명이라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정상이다.
엽현은 일단 신공을 가둬 놓기로 결정했다. 그가 진혼검을 들이밀자 영혼체인 신공은 반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검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소혼, 오늘 흡수한 영혼들은 좀 괜찮았어?”
엽현이 진혼검에 대고 묻자 소혼이 다소 흥분한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주! 너무 달콤합니다! 만약 이런 영혼 하나만 더 흡수할 수 있다면 다음 경지로 가는 것도 노려볼만 할 것입니다!]다음 경지?
소혼의 대답을 듣자 엽현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좋아! 조만간 또 맛있는 놈으로 찾아주지!”
웃으며 대화를 마친 엽현은 주변에 와 있는 소칠 등을 발견하고는 그녀들을 향해 다가갔다.
“와 주었구나!”
소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엽현을 응시하던 안란수의 눈이 반짝였다.
“윤회?”
“맞아.”
“대단해, 이렇게나 빠르다니!”
이때 엽현이 아목을 향해 돌아섰다.
“아목 소저, 혹시 내 친구들도 분묘 안에서 수련해도 되겠소?”
“물론이다!”
아목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 비친 소칠 등은 비록 경지는 다소 낮지만 전투력은 비상식적으로 강했다.
즉, 근래 보기 드문 천재들이라는 소리!
만약 그녀들이 윤회경에 이르게 된다면 전투력은 더욱더 막강 해질 것이고, 그만큼 무족의 부담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 그나저나 왜 다 여자들뿐인 게냐?”
아목은 엽현을 향해 혀를 쏙 내밀고는 안란수 등을 이끌고 자리를 떠났다.
엽현은 다음으로 아천의 앞에 섰다.
아천이 말없이 물끄러미 엽현을 응시하고 있을 때, 엽현이 불쑥 납계 하나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