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98
1098화 정말 너를 위한 것이구나
“신사, 이건 천족의 각 부족에게서 빌린 신물이오. 나대신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시오.”
“이걸 돌려주겠다고?”
“그렇소.”
얼마 전까지 엽현은 천족과 적이었기에 그들의 신물을 사용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배를 탄 아군이 되었으니 돌려주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적에게는 잔인하고 모질지만 친구에게는 응당 사람의 도리를 지켜는 것이 엽현의 철칙이었다.
아천 역시 거절하지 않고 납계를 받아 들었다.
이때 엽현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오백 가닥의 자기가 아천 앞에 떠올랐다.
영롱한 자기를 본 순간, 아천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정순한 자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상태가 좋지 않을 텐데, 그걸로 몸을 회복하도록 하시오.”
아천은 역시 거절하지 않고 자기를 받아들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지?”
아천의 질문에 엽현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계획은 없소. 그저 전쟁만이 남아 있을 뿐!”
“자신 있나?”
“하하, 자신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오. 문제는 내게 남은 선택지가 그것 하나뿐이라는 것이지.”
“…….”
잠시 침묵하고 있던 아천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를 떠나갔다.
엽현이 말한 대로 무족과 천족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들이 엽현의 편에 서게 된 이상 결국 전쟁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바로 이때 이번에는 엽령이 다가왔다.
“오빠, 나 갈 곳이 있어.”
“음?”
엽현이 엽령을 돌아보자 엽령이 손가락으로 오른편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누군가 날 부르는 것 같아.”
“그래? 그럼 같이 가 보자꾸나!”
엽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곧장 발길을 옮겼다.
잠시 후.
두 남매가 걸음을 멈춘 곳은 어느 묘지였다.
이곳에서 엽현은 우연찮게 묘지기 노인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하시오, 노인장!”
“너는… 여긴 뭐 하러 왔느냐?”
위아래로 엽현을 훑어보는 노인.
엽현은 노인이 자신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때 엽령이 어느 무덤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이에 묘지기 노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막아서려는 순간, 묘지 앞에 꽂혀 있던 괴상한 무기가 몸을 떨더니, 순식간에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엽령의 미간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쾅-!
순간 엽령의 몸이 심하게 떨리더니, 희미한 빛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보자 엽현과 묘지기 노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변했다.
잠시 후, 노인이 고개를 돌려 묘지를 바라보았다.
“저 아이를 선택한 것이오? 아니면……”
“노인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설명 좀 해 주시오!”
“보아하니 이곳에 잠들어 있는 고인이 저 아이를 선택한 듯 싶구나.”
“선택? 묘지 안에 누가 있는 것이오!?”
노인이 막 대답하려는 찰나, 엽령이 봉분 앞으로 다가서더니, 이름 없는 묘비를 다소 아련한 눈으로 응시했다.
“려, 령아! 괜찮은 거야?”
“오빠… 나 이곳에서 며칠 지내야 할 것 같아.”
“이곳? 이 무덤에서?”
“…응.”
이때 묘지기 노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막지 말거라. 이 아이에게 주어진 기연이니라.”
이 말에 엽현이 묘지를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이틀 후에 널 보러 올게!”
엽현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잠시 후, 홀로 남게 된 엽령. 봉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흐릿해져갔다.
* * *
묘지를 떠난 엽현은 곧장 대황국을 찾았다.
성 앞에 도착한 엽현은 두 구의 시체와 마주했다.
바로 흑검사와 조두인의 시체였다.
엽현이 고개를 돌리니 성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아라가 보였다.
“네가 죽인 거야?”
“응, 원래 네게 가려 했는데 그땐 이미 상황이 종료된 상태더군.”
“고마워.”
“우리 사이에 무슨.”
아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엽현이 씩 웃어보였다.
“아라, 너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엽현은 이 점이 몹시도 궁금했다.
아라는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걸까?
그가 느끼기에 그녀는 검종의 육운선보다도 더 강한 것 같았다.
혼자서 흑검사와 조두인을 죽인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
하지만 아라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하하,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호기심이었으니까.”
이때 가만히 하늘을 응시하던 아라가 입을 열었다.
“만약 일대일로 붙는다면 주재경 내에서 내 적수는 없을 거야.”
주재경 중에서는 적수가 없다!
엽현이 감탄하려는 이때 아라가 다시 엽현을 향해 말했다.
“곧 다음 경지로 넘어간다.”
다음 경지!?
이미 한 번 깜짝 놀란 엽현은 이번에는 말 그대로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하..하.. 아무래도 그렇지. 주재경 다음에는 뭐가 있는데?”
“파허경.”
이때 아라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에 돌파하려는 걸 억지로 눌러놓고 있었어.”
“혹시… 나를 돕느라?”
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바로 폐관에 들어가야 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라가 말끝을 흐리자 엽현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 시작하도록 해. 내 몸은 이제 스스로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럼, 조심해.”
말을 마친 아라는 서둘러 황궁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엽현은 미소와 함께 돌아섰다.
다음으로 엽현은 무변지하성에 도착했다.
곧장 전당포를 찾은 엽현은 소도 외에 노인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상사의 사주를 받고 소도를 막고 있던 장신이었다.
“그대였소? 그대가 소도 낭자를 막고 있던 것이오?”
엽현이 말을 걸자 장신이 그를 향해 돌아섰다.
“미안하게 됐구나. 네게는 큰 죄를 지었다.”
“…….”
엽현이 말없이 주먹에 힘을 주는 이때, 소도가 소리쳤다.
“장신, 이만 가 보시오.”
이에 장신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소도 낭자, 그리고 젊은 친구. 뭐라 할 말이 없구려.”
이때 노인이 손을 펼치자, 납계 하나가 엽현을 향해 날아갔다.
“그 안에는 이 늙은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강시가 들어 있다. 능히 주재경 강자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지. 그것을 받고 오늘 있었던 은원을 잊어주길 바란다.”
“…….”
엽현이 침묵하자 소도가 대신 납계를 낚아챘다.
“됐으니 이만 가 보시오.”
“…그럼 이만.”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 걸음을 옮기는 장신.
그가 떠나자 소도가 다가와 엽현에게 납계를 건넸다.
“갖고 있거라. 그 안에 강시 두 구가 들어있으니 훗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게다.”
“…….”
엽현은 납계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허, 나 소도의 체면을 이렇게 뭉갤 생각이더냐?”
결국 엽현은 씁쓸하게 웃으며 납계를 받아들었다.
소도는 장신이 사라진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쁜 자는 아니다. 당시 그는 천도를 도와 정신들을 제압했을 뿐만 아니라, 이 우주를 안정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생을 통틀어 나쁜 짓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 다만 이번에 나를 막은 이유는 수명을 조금 더 늘리고 싶었을 뿐, 다른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저들 편에 붙을 수도 있지 않소?”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땐 내 손으로 처리하도록 하겠다. 그러면 되지 않느냐?”
소도가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자 엽현은 더 이상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날 찾은 게냐?”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소. 현재 검종의 상황은 어떻소? 저들이 검종마저 공격하고 있는 것 아니오?”
“하하, 그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째서?”
엽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소도가 웃으며 답했다.
“기껏해야 검종의 발을 묶어두는 정도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검종을 직접 때리기엔 그들도 상당히 부담스럽거든.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서야…”
“그 방법?”
순간 엽현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소도가 고개를 저으며 웃어넘겼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어쨌든 검종을 걱정할 시간 있으면 네 일이나 걱정하거라.”
“…….”
잠시 침묵하던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도 낭자, 음암계와 그 배후에 있는 자들은 도대체 무엇이오? 왜 신공과 손을 잡았으며, 왜 나를 노리는 것이오?”
“음암계는 당시 천도에 의해 봉인된 세력이다. 매우 강력하지.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는 상계가 있다.”
순간 엽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계? 혹시 육유계를 말하는 것이오?”
이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쪽 지역은 다소 특수한 곳이라 뭐라 딱 잘라 설명할 수 없구나. 아무튼 너는 그들이 네 서옥을 노리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
서옥!
“그들이 왜 선각자의 서옥을 노린단 말이오?”
“후후, 왜냐하면 그것이 선각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선각자는 상계 사람이고 그가 가지고 나온 서옥이 상계의 물건이라는… 뭐 이런 이야기요?”
“네 짐작은 절반만 맞았다.”
“무슨 뜻이오?”
엽현은 아직 크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세한 사정은 선각자에게 직접 물어봐야 알겠지만, 서옥은 그가 상계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 맞다. 그리고 오유겁과도 관련이 있지. 하지만 상계의 존재들은 다른 이유 때문에 서옥을 노리는 것 같구나.”
“상계에는 오유겁이 없다는 말이오?”
“없다.”
소도의 대답에 엽현의 표정이 기이해졌다.
“어째서 말이오?”
엽현의 계속 된 질문에 소도가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상계는 오유계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상계는 어떤 존재도 무공을 수련할 수 없는, 이른바 ‘평형’ 상태에 놓여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오유계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다. 그쪽이 ‘인겁’이라면 이쪽은 ‘천겁’을 감당해야 하니까.”
전당포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이 순간 엽현은 상황을 알아 갈수록 무언가 더욱 꼬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만유서옥!
엽현이 손바닥을 펼치자, 만유서옥이 그 위로 둥실 떠올랐다.
“도대체 이 안에는 뭐가 들어 있는 것이오?”
처음에는 그저 선각자의 보물창고 쯤으로 여겼건만, 이제는 뭐가 존재하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서옥을 응시하고 있던 소도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개방할 기회가 있지 않았더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사용자의 실력이 부족해서 열 수 없다는 둥 하면서 거부 당했소.”
“음? 서옥이 그리 말하더냐?”
소도가 엽현을 향해 묻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보아하니 선각자는 진짜로 널 위해 서옥을 남겨둔 모양이로구나.”
“아무리 그래도 열 수 없으면 무용지물이 아니오?”
“하하,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뿐이다. 그리고 선각자가 이런 장치를 마련해 둔 것도 그만한 뜻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때 엽현이 돌연 소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소도 낭자, 이 서옥보다도 나는 그대의 정체가 더 궁금하오.”
전 우주를 통틀어 소도의 정체가 궁금한 것은 비단 엽현 혼자만이 아니리라!
그녀는 도대체 무엇이고 또 어디서 온 것일까?
이에 대답을 내릴 수 있는 자는 적어도 오유계 내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소도가 엽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굳이 궁금해 할 것 없다. 나의 신분은 너희와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테니까.”
“소도 낭자,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소. 나 역시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어본 것뿐이니까 말이오.”
“내가 이리로 온 것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다른 불가항력적인 이유가 있긴 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이 그 하얀 아이뿐이라는 점이다.”
“하얀 아이라면 그 하얀 털로 뒤덮인 아이를 말하는 것이오?”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그 아이의 본체를 만난 적이 있지 않소?”
“그렇다.”
“그럼 어찌하여 그때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오? 그 녀석은 사탕 하나만 쥐어주면 뭐든 해 줄 녀석인데…….”
이에 소도가 낮게 한 숨을 쉬었다.
“네 말대로 그 아이는 꽤나 말이 잘 통하는 아이긴 하다. 다만 내가 막 이곳에 왔을 땐 그 점을 몰랐고, 그래서 부탁하는 대신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래서 결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