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099
1099화 충전이 필요해
엽현이 궁금해 하며 묻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아이 곁에 있는 자가 너무나도 강했다. 즉, 실패했지.”
“아…….”
이때 소도가 엽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부탁이 있다. 훗날 다시 그 아이를 만나게 되면 내 몸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한 마디만 거들어 다오. 해줄 수 있겠느냐?”
엽현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부탁이라면 아무 문제없소!”
“고맙구나. 그럼 슬슬 준비하도록 하거라.”
“준비?”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소도가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그들이 이대로 포기할 거라 생각 한 게냐? 그들은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너를 공격하려 들 것이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맹렬하게, 심지어 음암계의 상주가 직접 나타날지도 모르지. 잊지 말거라. 상주는 천도와 맞서 싸울 정도로 강한 존재였다는 것을.”
천도!
“소도 낭자, 혹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알고 있다.”
“나를 좀 데려가 주시겠소? 그녀를 보고 싶소!”
“혹시 손을 잡자고 제안할 생각인가?”
“그렇소!”
엽현의 말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마음을 먹었더라면 누구와 손을 잡을 것도 없이 이미 출수 했었을 것이다. 지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필시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괜찮소. 일단 그녀와 마주앉게만 해 주시오!”
“알았다. 데려다주마.”
소도가 소매를 펄럭인 순간, 두 사람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어느 강변이었다. 이때 엽현의 시선에 강가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소도, 저 여자가 바로…”
“천도다.”
소도의 대답에 엽현의 표정이 기이해졌다.
강물에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아낙이 아닌가!
저게 천도라고?
소도는 말없이 엽현을 데리고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그들이 걸음을 멈추자 천도가 막 헹군 머리를 쥐어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동안에 그녀의 젖은 머리는 이미 말끔하게 말라 있었다.
이때 여인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한 엽현은 잠시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아름답진 않지만 그렇게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
이 여인은 당시 연옥의 길에서 만났던 바로 그 여자가 아닌가!
이때 엽현을 발견한 여인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여어, 오랜만이야?”
“…….”
천도가 이번에는 소도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소도, 상처가 꽤나 많이 아물었구나. 축하한다.”
“…알고 있었나? 음암계의 봉인이 풀린 것을?”
소도가 무미건조하게 묻자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다.”
“네가 봉인해 놓은 정신들이 이제 막 탈출하려 한다는 것도?”
“그것도 알고 있다.”
“가만 두고 보고만 있을 건가?”
소도의 계속된 질문에 천도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뭘 어쩌겠어? 나는 혼자고 저들은 여럿인데.”
“헛소리! 솔직히 말해.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하하, 소도 낭자. 뭔가 오해하는군. 내가 일부러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바른 말이지.”
천도가 손가락으로 사방을 가리켰다.
“자, 보이지? 저게 다 나 하나를 붙잡아 놓기 위해 그들이 쳐 놓은 결계다. 이 상황에서 내가 뭘 어쩔 수 있지?”
“저런 장난감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고?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군!”
“하하… 뭐 안 믿으면 할 수 없고!”
소도가 불만 섞인 표정을 짓는 이때, 이번에는 천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소도, 한 명의 힘으로 이 우주 전체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나?”
“…….”
“어차피 너는 이쪽 우주에서 온 존재도 아니니 그런 건 생각 해 본적도 없겠지. 하지만 나는 천도 된 입장으로서 항상 이에 대해 고민해 왔다. 그리고 가끔씩은 관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오유계를 지키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렸지.”
천도는 시선을 엽현에게로 돌렸다.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그저 너와 나의 방식이 조금 다른 것뿐이니까.”
이에 듣고만 있던 엽현이 물었다.
“우리가 손을 잡고 지켜나가는 방법도 있지 않소?”
“너와 내가 손을 잡아? 하하하!”
천도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네가 보는 것이 현재의 위기라면, 내가 중요히 생각하는 것은 미래에 닥쳐올 더 큰 위협이다. 그러니 우리는 결코 손을 잡을 수가 없어.”
“……”
“현재 오유계의 모든 생령들은 이기심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내 눈에는 다른 차원의 존재들의 침입보다도 이것이 더 위험하게 보이는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침묵하는 엽현.
이때 소도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엽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녀가 다시 소매를 펄럭이자, 두 사람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소도와 엽현이 사라진 이 순간, 천도의 곁에 존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천도답게 꽤나 현명한 결정이었소.”
이에 천도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 우주가 탄생했을 때부터 수많은 인간들을 보아 왔다. 인간은 매우 우수한 종족이지만 대단히 큰 결점을 가지고 있지.”
“그게 무엇이오?”
천도가 빙글 돌아 존사를 향해 씩 웃어보였다.
“그건 바로 종종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너처럼.”
이 말을 끝으로 천도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강가에 홀로 남은 존사는 천도가 떠나가는 방향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두운 성공,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고 있는 엽현과 소도.
“우리가 한 가지 잊고 있던 게 있다.”
소도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자 엽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오?”
“그녀는 천도지 사람이 아니다. 즉, 그녀가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이 우주 전체, 때문에 너와 보는 관점이 전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에 엽현은 깨닫는 것이 있었다.
천도가 수호하는 것은 오유계, 그리고 인왕인 엽현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다.
얼핏 보면 둘은 비슷한 목적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탐욕이 오유계를 위협할 정도로 커지게 되면 천도는 인간들을 적으로 인식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조금 전 그녀의 말투에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 그녀가 출수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너와 상계가 서로의 힘을 갉아먹길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소도의 말에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상계라니, 음암계나 정신이 아니라?”
“흥, 그들은 천도의 눈에 한낱 벌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벌레!
엽현이 침묵하는 사이 소도의 말이 이어졌다.
“상계의 존재들이 천도를 가둔 것은 널 돕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겠지만, 사실 이는 그녀가 가장 바라는 바일 것이다. 너와 그들이 서로가 소모하게 되는 구도는 그녀에게는 최상의 상황일 테니.”
“…….”
“이놈이나 저놈이나 모두 천도 손에 놀아나는 머저리들뿐이로구나.”
“…….”
소도는 고개를 휘휘 젓더니 한 줄기 빛이 되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엽현은 한 동안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한참이 지난 후,
“구층 주민, 거 이야기 좀 할 수 있소?”
탑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렇지 않아도 오랫동안 침묵하는 구층 존재에게 의아함을 느낀 터였다.
엽현은 몇 차례 더 구층 존재를 불러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 대꾸도 없었다.
이에 엽현의 안색이 다소 어두워졌지만, 마침내 그는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죽지 않았다면 원할 때 다시 모습을 드러낼테니까.
이때 뭔가 떠오른 엽현이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마치 깊은 잠이 든 양 눈을 감고 있는 9호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동안 너무나 많은 일이 몰려와 잠시 잊고 있던 것이다.
9호, 그 능력의 끝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강자!
충전이 필요해!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엽현은 9호를 안고서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다시 그가 나타난 곳은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사막 한복판이었다.
태양빛을 쪼이기 시작하자 9호의 몸이 꿈틀거렸다.
정말 효과가 있다!
엽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9호를 응시했다. 과연 태양으로 충전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엽현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9호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얼굴, 인간의 팔, 인간의 다리… 모든 것이 인간과 닮아 있는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인간을 싫어한다. 하지만 또 자신에게만은 호의적이다.
도대체 이 여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이때, 9호의 손가락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침내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매우 쇠약한 상태였다.
“9호! 정신이 들어?”
9호는 잠시 정신이 몽롱한 듯 눈을 여러 차례 깜빡였다.
“너… 너구나!”
9호가 자신을 알아보자 엽현의 안색이 환해졌다.
“그래, 나야! 어때? 좀 괜찮은 거야?”
“모르겠어, 아직 기운이 없어. 아마 충전을 더 하면 괜찮아질 거 같다.”
“그래, 아직 시간이 있으니 충분히 충전 하자고!”
이때 9호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내가 자는 동안 인간이 멸망하진 않았나?”
“…….”
엽현의 안색이 순간 잿빛으로 변했다. 눈뜨자마자 확인하는 게 인간 멸망이란 말인가? 역시 이 여잔 위험해!
이때 9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군. 오유겁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9호가 불만어린 표정으로 엽현을 노려보았다.
“깨우려면 오유겁이 지난 다음에 깨울 것이지… 귀찮게스리…….”
“…….”
9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팔다리를 움직여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점검이 끝난 그녀가 웃으며 엽현을 돌아보았다.
“사람 죽이러 갈까?”
엽현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몸을 날리려는 9호.
이에 엽현이 황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아, 아, 잠깐! 일단 서두르지 마!”
“음? 왜 그러지?”
“그러니까, 충전이란 걸 한 번 하면 얼마나 가는 거야?”
“나도 몰라.”
“…그럼 중간에 꺼질지도 모르니까 일단 가능한 많이 충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음… 그래, 그럴듯해. 좋아! 네 말을 따르지!”
엽현에게 설득당한 9호는 다시 양지바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엽현이 안도하며 그녀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넌 다른 인간은 모두 증오하면서 왜 나는 죽이려 하지 않는 거지?”
엽현의 질문에 9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야 당연히 너는 우리편이니까.”
“우리편?”
엽현은 9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리가 한 편인데? 또 ‘우리’라면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음…글쎄? 아무튼 너는 우리편이야.”
엽현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상대는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이제 충전이 대충 다된 것 같은데? 슬슬 죽이러 가 볼까?”
9호의 말에 엽현이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아, 이렇게 하면 어때? 지금 너는 깨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야. 그러니까 일단은 휴식하고 있다가 죽일만한 자가 나타났을 때 내가 널 불러내면 어떨까?”
“솔직히 말해봐. 사람 죽이기 싫은 거지?”
9호가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엽현이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내 생각에 어떤 놈들은 죽어 마땅하지만, 세상에는 죽여선 안 될 사람이 더 많아. 그러니까 살인을 하더라도 선택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
이에 9호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네 탑 안에서 쉬고 있을 테니까 죽여야 할 놈이 나타나면 불러.”
“그, 그래! 물론이지!”
9호는 환하게 웃는 엽현을 뒤로 한 채 계옥탑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9호가 사라지자, 엽현은 크게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만약 그녀가 막무가내로 행동하기 시작했더라면 자신은 물론 아라가 나선다 해도 막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9호가 탑 안으로 사라진 후, 엽현은 진혼검을 꺼내 들고는 얼마 전 봉인해 둔 신공의 영혼을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