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04
1104화 한 통 속이었어
무인의 질이나 숫자를 봤을 때, 지난 번 전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황국 상공은 온통 음암생령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채워졌다.
질서 있게 도열한 음암생령들은 상주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인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 상주가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엽현, 어린 나이에 그만한 실력을 쌓다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상주의 말대로 현재의 엽현은 신물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매우 강하다 여겨질 정도였다. 만약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재경에 도달한다면 그땐 지금의 아라와 별 차이가 없는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때 소도가 엽현 대신 대꾸했다.
“상주, 마지막으로 조언한다. 천도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지 않으면 너희 음암계의 말로는 매우 비참해질 것이다.”
“후후, 소도 낭자. 생각해준 건 고맙지만 소용없소. 결국, 같은 말을 하게 되는구려. 그녀에게 억압당한 무수한 세월과 피 흘리며 죽어간 형제들을 위해서라도 복수는 멈출 수 없소!”
“어리석은 자…. 왜 너희가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아느냐?”
소도의 갑작스런 질문에 상주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녀는 분명 지금 당장이라도 너희를 죽일 실력이 있다. 그런데 왜 살려두고 있는지 아느냔 말이다.”
“흥! 그걸 어찌 알겠소? 설마 못 본 사이에 천도가 박애주의자가 된 건 아닐 테고 말이오!”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다. 천도가 너희를 살려 둔 것은 분명 어떤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느냐?”
이에 상주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소. 이번에야말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가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오!”
“아 글쎄, 넌 그럴 실력이 없다니까.”
소도의 말을 듣자 상주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실력이란 게, 내겐 없지만 다른 이는 있을 수도 있지 않소?”
“…….”
순간 소도는 침묵했다.
상계!
상주의 어조를 보아하니 두 세력 사이에 이미 모종의 거래가 오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엽현이 상대하게 될 적은 음암계가 아닌 상계가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한 소도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가만히 있던 엽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야! 뭔가 이상해!”
“음? 왜 그러느냐?”
소도가 묻자 엽현이 상주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자면 저들은 지금 분명 조급해하고 있어야 정상이오. 여기서 우리와 잡담이나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단 말이오…….”
엽현이 말끝을 흐린 순간, 소도와 엽현이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때 엽현의 표정이 갑자기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아니야. 목표는 아라가 아니었어. 저들이 애당초 노린 것은 무족에 있는 령이었어!”
엽령!
이때 상주의 웃음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역시 총명한 아이로구나! 하지만 지금쯤이면 이미 그들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이 말을 듣자 엽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상주… 내 동생 몸에 생채기라도 생기는 날엔 너희 음암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엽현은 순식간에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이때 그의 눈빛은 이미 붉게 변해 있었다.
엽현이 사라지자 소도가 고개를 돌려 상주를 노려보았다.
“이 일로 반드시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다.”
한 마디를 남긴 소도는 곧장 엽현을 따라 자리를 떠나려 했다.
바로 이때였다.
“소도 낭자, 그대는 남으시오.”
상주가 소도를 향해 주먹을 움켜쥔 순간, 강력한 힘이 소도의 주변을 에워쌌다.
결국, 소도는 다시 상주를 향해 돌아서고 말았다.
상주가 웃으며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소도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쾅-!
굉음과 함께 천 장 가까이 뒤로 튕겨 난 상주.
한편, 두 사람 간에 전투가 시작되자 9호가 입맛을 다시며 출수하려 했다.
이때, 그녀의 머릿속에 소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가서 엽현을 도와라.]이 말에 9호가 잠시 아쉬운 듯 머뭇거렸지만 결국 엽현이 사라진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임선과 아목까지 자리를 떠나자, 장내에는 상주와 소도만이 서로 마주 보며 남게 되었다.
“소도 낭자, 우리의 목표는 그의 동생과 친구들, 그리고 불패아라까지요. 그대 혼자만으로는 우릴 막을 수 없을 테니 포기하시오.”
상주를 향해 천천히 다가서는 소도.
그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막지 못한다고? 누가 그러더냐?”
이때 그녀의 양손에 피처럼 붉은 낫 두 자루가 나타났다. 상주의 눈빛이 가늘어 진 순간, 소도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쉬이익-!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찢겨져 나갔다.
이에 상주가 정면을 향해 주먹을 쥐자, 그의 앞 공간이 온통 암흑으로 변했다.
역(域)!
하지만 이때 두 개의 붉은 빛줄기가 역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보자 상주가 황급히 정면으로 일권을 날렸다.
쾅-!
팟-!
굉음과 무언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고, 상주의 신형은 순식간에 천 장 밖으로 밀려났다. 겨우 멈춰 선 그의 가슴 부근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갈라져 있었다.
순간 소도를 바라보는 상주의 눈빛이 무겁게 변했다.
이때, 피 붓은 낫을 회수한 소도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귀찮으니 모두 한 번에 덤비거라!”
그녀가 말을 마친 순간, 상주를 포함한 음암계 강자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허무계.
엽령은 이름 없는 묘비 앞에 쪼그려 앉은 채 긴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앞에는 봉긋한 봉분과 무덤 주인의 것으로 보이는 한 자루 척(刺)이 놓여있을 뿐이다.
두 눈을 감고 있는 엽령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마치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인기척과 함께 왜소한 모습의 노인 하나가 엽령에게로 다가왔다.
다 낡은 장포를 걸친 노인은 머리숱이 거의 없었고, 주름투성이의 얼굴은 그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천천히 엽령에게로 걸음을 옮기는 노인.
두 사람의 거리가 채 몇 걸음 남지 않은 이때, 노인이 갑자기 자리에 멈추더니 한쪽을 응시했다. 그곳엔 꼽추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다름 아닌 묘지기 노인이었다.
“무슨 일인가?”
묘지기 노인의 질문에 마른 노인이 손으로 엽령을 가리켰다.
“데려가겠다.”
“그건 안 돼.”
묘지기 노인이 고개를 젓자 왜소한 노인이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굳이 데려 가겠다면?”
바로 이 순간, 묘지기 노인이 다짜고짜 상대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이에 왜소한 노인 역시 눈을 가늘게 뜨며 마찬가지로 일권을 내질렀다.
쾅-!
짧은 타격음과 함께 왜소한 노인이 수백 장 뒤로 밀려났다.
반면 묘지기 노인은 제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이를 본 왜소한 노인의 눈가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이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다. 그러니 주제를 알았다면 조용히 떠나도록 하거라.”
묘지기 노인의 말에 왜소한 노인이 천천히 상대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건 안 돼. 왜냐하면, 오늘 난 반드시 저 아이를 데려가야만 하거든!”
잠시 왜소한 노인을 응시하는 묘지기 노인.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에 왜소한 노인이 황급히 양손을 하나로 모으며 소리쳤다.
“대붕멸(大崩滅)!”
그의 양손이 합쳐진 이때, 묘지 주변으로 엄청난 기운이 몰려들더니, 반경 수만 장 이내의 공간이 순간적으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새 나타난 묘지기 노인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쾅-!
순식간에 만 장 밖으로 튕겨 나간 노인.
그가 자리에 멈춰 섰을 때, 뒤쪽 공간이 와르르 무너졌고, 노인 역시 입으로 한 움큼의 선혈을 토해냈다.
왜소한 노인은 순간 고개를 들어 묘지기 노인을 노려봤다. 그의 눈빛에는 불신의 기색이 역력하다.
“너는 대체 누구냐!”
묘지기 노인은 말없이 엽령의 곁으로 돌아가,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봉분을 응시했다.
“그녀가 깨어나면 나의 임무도 끝난다. 방해하지 말거라.”
바로 이때, 묘지기 노인 바로 위의 공간이 갈라지더니 중년인의 모습을 한 허영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그 아이는 우리가 데려가겠다. 그대야말로 방해하지 말도록!”
이에 묘지기 노인이 허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이 무덤 안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아느냐?”
“흥! 그런 것까지 일일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자리나 비켜라!”
이에 묘지기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휴… 정말이지 너 같은 놈들은 이제 진절머리가 나는구나.”
말을 마친 노인이 손을 펼쳤다.
검은빛이 번뜩이며 그의 손안에 칠흑같이 검은 창 한 자루가 나타났다.
그가 창을 움켜쥐는 순간, 허영과 왜소한 노인의 안색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위험하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던 것이다.
“귀찮으니 둘이서 한꺼번에 덤벼라.”
한 번에 덤비라고?
순간 장내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허영의 물음에 묘지기 노인은 창을 휘두름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쾅-!
날아오는 창을 피하지도, 막지도 못한 허영은 그대로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본 왜소한 노인은 묘지기 노인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눈앞의 노인은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묘지기 노인도 굳이 추격하는 대신 엽령의 곁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바로 이때, 엽령이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순간, 묘지 안에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와 엽령의 몸을 감싸더니, 엽령을 데리고 순식간에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이 장면을 본 묘지기 노인은 다소 얼떨떨했다.
어디로 간 거지?
바로 이 순간, 성공 끝에 한 줄기 검광이 번뜩이더니, 이내 노인 앞에 엽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엽현의 전신은 마치 피칠갑을 한 듯 붉은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주변을 살핀 엽현은 사방에 전투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황급히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동생은!?”
“사라졌다.”
쾅-!
노인이 대답한 순간, 강대한 살기가 엽현의 몸 밖으로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붉게 물드니, 마치 하나의 혈인(血人)을 보는 듯 했다.
이를 본 노인이 다소 주춤하며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엽현이 자리를 박차며 날아올라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성공 속으로 사라졌다.
“쯧쯧… 요즘 것들은 저렇게 성질이 급해서야… 그쪽이 아닌데…….”
노인이 고개를 젓고 있는 이때, 그의 앞에 이번에는 아목과 임선이 나타났다.
“어르신, 엽현이 이쪽에 왔습니까?”
아목이 묻자 노인이 손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놈은 혈인으로 변해서 저리로 날아갔다.”
혈인!
순간 아목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다.
“혈인… 으로 변했단 말입니까?”
묘지기 노인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혈맥의 기운이 이상하리만치 팽창한 걸로 봐서……”
갑자기 말을 멈춘 노인, 순간 그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음? 어르신,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목이 의아해하며 묻자 묘지기 노인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놈의 혈맥… 그 기운… 분명 ‘그’에게서도 느낀 적이 있어… 그렇다면 그와 엽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한다는 건데… 어쩐지… 그 하얀 도둑놈이 녀석을 도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놈들은 한통속이었어!”
아목과 임선은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르신, 그럼 엽령은 어디 있습니까?”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노인이 고개를 흔들고는 손으로 무덤을 가리켰다.
“저리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