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06
1106화 혈맥의 힘
천도가 손을 들어 아래쪽에서 학살 중인 엽현을 가리켰다.
“저 녀석은 정말로 상대하기 쉽지 않다. 놈의 배후가 누구인지 살펴보란 말이다! 이런데도 아직도 너희 둘만으로 놈을 막으려 한다? 그땐 나도 너희가 돼지만도 못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영은 천도를 응시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못 입을 놀렸다간 정말로 죽을 수도 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에휴… 내가 너희 같은 자들을 붙잡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소설로 치면 한두화만에 죽어버릴 단역에 불과할 텐데.”
이때 노인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대도 엽현이 죽길 원하는 것이오?”
이에 천도가 한심하다는 듯 노인을 바라보았다.
“하하… 질문 꼬라지하고는… 그래, 너는 이쯤에서 퇴장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말을 마친 천도가 소매를 펄럭였다.
순간, 놀랍게도 노인의 모습이 자리에서 아예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대로 소멸했다!
이 장면을 목도한 허영은 순간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단숨에 하나의 존재를 지워버릴 정도의 실력이라니,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야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바로 이때, 음암계 쪽에서 강대한 검의가 쏟아져 나왔다.
이에 천도가 시선을 돌리자, 음암계 전체가 이미 핏빛 검의로 물들어있었다.
갑자기 엽현 주변에 있던 검의가 점점 강해지더니, 그의 전투력이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폭증했다.
이 모습을 보자 천도가 눈을 깜빡이며 허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고 있느냐? 녀석의 혈맥은 머지않아 각성하게 될 것이다.”
“…….”
이때의 엽현은 마치 살인에 미친 살신(殺神)의 모습이었다.
숙주가 살인에 미칠수록 더욱 강한 위력을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풍마혈맥의 본모습인 것이다.
천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허영의 앞에 다가섰다.
“상계로 가게 되면 오늘 내가 이야기 한 것을 빼먹지 말고 전하도록 해라. 다시 쓰레기 같은 자들을 보내기 전에 엽현 저 녀석을 철저히 분석하라고 말이야.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어떻게든 상계와 오유계 사이의 장벽을 부순 후, 모든 전력을 모아 단숨에 녀석을 치는 것이다. 그리하면 어쩌면 너희가 그리 바라마지 않는 만유서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불가능한 게 어디 있겠느냐? 최선을 다 한다면 말이다. 응? 할 수 있지?”
허영의 금제를 풀어 준 천도는 그의 눈앞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자, 따라 해봐. 난 할 수 있다!”
“…….”
“나, 난 할 수 있다.”
“옳지. 그럼 이제 가 봐.”
천도에게서 풀려 난 허영은 잠시 그녀를 응시하고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떠나기 직전, 허영이 보인 표정에는 깊은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이 여인은 진정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 여자는 자기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적을 처리할 줄 아는구나!’
그렇게 허영이 사라지자 천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모두 다 머저리들뿐이군.”
천도는 다시 미친 듯 살육을 자행하고 있는 엽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저 혈맥… 참 재미있단 말이지.”
검은 탑 앞.
시체가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고, 피는 이미 발목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무수히 많은 음암생령들이 목숨을 잃었건만, 그들은 시종일관 달려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퇴로가 없기 때문이었다.
반면 시간이 꽤나 흐른 상태였지만, 엽현은 단단한 육신과 태극순을 앞세워 여전히 건재한 위력을 보이고 있었다.
엽현의 손짓 한 번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음암생령들.
그들이 할 수 있는 전술은 그저 목숨을 바쳐 엽현의 힘을 빼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혈맥지력을 등에 업은 엽현은 점점 강해져만 갔다.
* * *
대황국.
이때의 대황국 상공에는 무수한 수의 시체가 쉴 새 없이 터져 나가고 있었다.
소도!
상주와 음암계의 강자들이 전부 달려들었지만, 소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때의 상주는 그야말로 후회막급이었다.
소도의 실력이 이렇게나 강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바로 이때, 그의 앞 공간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엽현이 음암생령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다는 비보를 듣자 상주의 안색은 더욱 어둡게 변했다.
대부분 강자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 지금, 음암계는 엽현의 좋은 먹잇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퇴각해야 한다!
“퇴각! 모두 돌아간다!”
명령과 함께 자리를 떠나려는 상주, 바로 이때 소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후후, 어딜 급히 가시나? 똥이라도 마려운 게냐?”
“소도 낭자! 더 이상 싸워봐야 서로에게 득 될 것이 없소! 오늘은 이쯤에서…”
“싫다면?”
상주의 얼굴에 크게 그늘이 진 이때, 소도가 미소를 드러냈다.
“너는… 생긴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들어.”
순간 자리에서 사라진 소도.
“여긴 내가 막는다! 너희는 어서 음암계로 돌아가라!”
쾅-!
그가 말을 마친 순간 소도의 주먹이 공간을 부수며 날아들었다.
한편 명령을 들은 음암계 강자들은 황급히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자 지상의 대황국 국주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음암계의 대군을 아무 피해도 없이 막아냈으니 이보다 좋은 결말은 없었다.
* * *
음암계.
살육의 살육을 거듭하고 있는 엽현. 이때 그의 몸에서 방출되는 기운은 전에 비할 바 없이 강대한 것이었다.
혈맥지력의 힘은 폭발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그의 사방으로는 도저히 셀 수 없을 만큼에 시체들이 깔려 있었는데, 그 수가 어림잡아도 수십만은 되어 보였다.
반면 엽현은 아직까지 지친 기색은커녕 오히려 더욱 맹렬해져 갔다. 철저하게 풍마(瘋魔)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그가 들고 있는 천주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때의 천주검은 마치 피가 굳어 만들어 진 것처럼 온통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혈검(血劍)!
겉모습뿐만 아니라 검의 속성마저 엽현을 따라 변화한 것이다!
한편, 여전히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천도는 매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엽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그녀 역시 엽현의 혈맥을 다소 경시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모습으로만 보자면 이미 아라와 일전을 벌인다 해도 크게 밀릴 것 같지는 않을 정도였다.
더 중요한 것은 엽현의 혈맥지력이 계속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끝을 모르는 것 마냥.
바로 이때, 그림자 몇 개가 천도 주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한 이는 다름 아닌 9호와 아목, 그리고 임선이었다.
천도의 표정을 흘끔 쳐다본 아목은 곧장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내 피투성이가 된 엽현을 발견한 순간, 아목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곁에 있던 임선 역시 깜짝 놀라며 바로 뛰쳐나가려 할 때, 천도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 자는 지금 정상이 아니오. 만약 출수하게 되면 그대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공격 할 것이 분명하오.”
이 말에 세 여인이 천도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대는 누구시오?”
임선이 묻자 천도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과객일 뿐이오. 좋은 마음으로 알려 준 것이니 괜한 의심은 하지 않아도 좋소.”
과객?
임선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과객 같지는 않은데 말이오?”
“하하, 내 말은 사실이오. 그대들에겐 전혀 악의가 없으니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소.”
“흠… 이름이 무엇이오?”
아목이 묻자 천도가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그대들도 알고 있는 소도의 친구요.”
소도!
“그럼 혹시 저 아이의 상태를 정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소?”
아목의 말에 천도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소, 아니면 없소? 이것만 말 해 주시오.”
“하하, 가능하긴 가능하나 지금 상황은 저 아이에게 있어 결코 나쁜 것이 아니오. 보시오, 지금도 그의 실력은 조금씩 강해지고 있소. 즉, 무의식적으로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말이오.”
“잠재…력?”
임선이 눈썹을 치켜세우자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면 그가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오.”
이 말에 잠시 엽현을 응시하던 아목이 다시 천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렇게 혼자 내버려 두기엔 적의 수가 너무 많지 않소!”
천도가 고개를 저었다.
“꼭 숫자로만 따질 것이 아니오. 저 아이의 강대한 육신과 그가 들고 있는 방패를 보시오. 저 중에 누가 뚫어낼 수 있겠소? 즉, 단순히 숫자가 많은 것만으로는 결코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소. 상주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말이오.”
아목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미 한 명의 혈인으로 변한 엽현을 보자 그녀의 표정이 점점 어둡게 변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만약 그의 육신이 그 정도로 나약했더라면 이미 혈맥의 힘에 의해 산산조각 났을 테니까 말이오. 지금의 그는 결코 약하지 않소.”
이때 임선이 물었다.
“그럼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둬야 하는 것이오?”
“그건…”
천도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이때, 갑자기 한쪽 하늘이 열리더니, 무수한 수의 무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도에게서 도망친 음암계 강자들이었다!
이 모습을 보자 임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낭자, 부탁드리겠소!”
아목이 가만히 서 있던 9호에게 부탁하자 9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말과 동시에 자리에서 사라진 9호.
하지만 이 두 여인이 아무리 강하다기로서니, 수많은 음암계 강자들을 막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많은 수의 음암계 무인들이 두 여인을 지나 엽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편 전혀 지치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살육을 펼치고 있는 엽현.
그의 검 역시 피를 머금을수록 점점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과연, 검은 주인을 닮는 법인가? 주인과 더불어 검까지 껍질을 깨려하고 있어. 재밌군.”
천도가 중얼거리자 곁에 있던 아목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정말 소도 낭자와 친구인 것이오?”
“물론이오! 나와 그녀는 오래 전부터 매우 가까운 사이였소!”
아목이 말을 이어가려는 이때, 갑자기 천지간에 검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엽현의 천주검에서 붉은 검기가 방출됐다. 족히 천 장은 될 만큼 기다란 검기가 뿜어져 나가자 무수한 수의 무인들이 몸과 머리가 잘려 즉사했다.
“오, 마침내 검이 새 경지에 이르렀구나!”
흥분된 기색의 천도와는 달리 아목은 엽현을 보며 걱정스런 기색을 거둘 수 없었다.
현재의 엽현은 물론 아라나 상주와 비교해도 결코 약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엽현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음암생령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 일검에 겁을 먹은 것이었다.
산처럼 쌓인 시체와 강이 되어 흐르는 피.
그리고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엽현은 더 이상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결국 아목이 그를 향해 다가가려는 순간, 천도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말 하지 않았소. 이지를 상실한 상태라 접근하면 위험하다고.”
천도는 아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에 아목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엽현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 엽현의 눈이 붉게 빛나더니, 그의 몸으로부터 매우 강대한 기운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다. 피처럼 붉은 기운이 샘솟듯 흘러나오자, 장내는 순식간에 혈해(血海)로 변하고 말았다.
이를 본 음암계 강자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엽현에게서 멀어지고자 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괴성을 지르며 상대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한 줄기 붉은 검광이 공간을 스치듯 지나가자 수십 명의 음암생령들이 그대로 소멸해 사라졌다. 검광은 이후로도 쭉쭉 뻗어나가 무려 만 장밖에 도달했는데, 검광이 지나간 자리는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