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09
1109화 어리석은 놈들
청삼남!
“아, 아니… 그 검수 말이오?”
“그렇다.”
“그런데 그가 저 안에 있는 게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단 말이오?”
“내가 아는 것은 저 안에 있는 자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란 것뿐이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무덤을 파헤칠 생각은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게다. 그 하얀 아이와 조그만 소녀가 뭘 묻어놨을지 모르거든.”
하얀 아이!
엽현의 표정이 점점 기괴하게 변했다. 설마 사탕이라도 심어 놓은 건 아니겠지?
일단 생각을 마친 엽현은 다시 태극순을 살펴보았다. 이때의 태극순은 이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태극순의 능력 중 자가치유능력이 발현된 것이다.
인간 최강의 방패라는 말은 결코 대충 지어낸 것은 아니었다.
“아무튼, 그녀에 대해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알겠느냐?”
노인의 말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무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엽령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 호들갑 떨 이유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무덤의 주인은 외부인의 접근을 원치 않아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나저나 청삼남의 가까운 사람이라니… 그게 누굴까?
엽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이때 아목이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찌하려느냐?”
“음… 아라는 어떻게 됐소?”
엽현이 되묻자 아목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폐관 중이다. 그러나 네가 걱정할 건 없다. 소도 낭자가 암암리에 대황국을 지키고 있으니까.”
“아… 그렇다면 안심이오. 그럼 앞으로 우리가 상대할 자들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엽현.
그의 표정이 점점 흉악하게 일그러져갔다.
상계!
상계가 엽령에게 마수를 뻗으려 했던 사실이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묘지기 노인의 실력이 대단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엽령이 흉한 꼴을 봤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잠시 뭔가 생각하던 엽현은 무서운 얼굴로 돌아섰다.
“어딜 가려는 게냐?”
아목의 말에 엽현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음암계로 갈 것이오! 아무래도 그놈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오!”
잠시 후 음암계 경계에 도착한 엽현.
하지만 음암계 주변은 이미 결계로 가로막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은 인왕인을 꺼내 들었다. 다음 순간, 인왕인이 한 줄기 빛이 되어 결계를 향해 날아갔다.
쾅-!
인왕인과 부딪친 결계는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되고 말았다.
인왕인!
과연 천지간의 존재하는 모든 봉인을 풀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결계가 무너지자 엽현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이때, 그의 앞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주…….”
엽현은 가볍게 눈을 굴려 상주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것이 얼마 전 소도와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엽현을 노려보며 침묵하는 상주.
그의 곁에는 무천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서 있다.
바로 이때, 엽현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쉭-!
상주의 얼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검광.
하지만 이때, 두 명의 노인이 갑작스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쾅-!
장내에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엽현이 원래 있던 자리까지 밀려났다.
이때 가만히 있던 상주가 입을 열었다.
“정녕 한 줄기 활로도 열어주지 않겠다는 게냐?”
“활로? 하하하! 죽기 전에 재미난 농담을 하는구나!”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엽현은 재차 신형을 날렸다.
사실 그가 음암계로 온 것은 결코 충동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상주가 중상을 입고 음암계 강자 대부분이 죽은 지금이야말로 음암계를 멸하기에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까 보냐!
한편 엽현이 자신 있게 덤벼드는 것을 본 상주는 본능적으로 뭔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무리 엽현이라 해도 혼자서 상주 자신이 버티고 있는 음암계를 치는 것은 무모하지 않은가.
바로 이때, 사방의 공간이 갈라지면서 십여 명의 강대한 기운이 장내에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태일과 신공 등을 포함한 정신들이었다.
도합 열두 명의 정신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최소 주재경의 강자들이었다.
이들의 등장을 본 상주는 순간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후퇴!”
말을 뱉음과 동시에 상주는 음암계 강자들을 이끌고 서둘러 음암계 깊은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엽현과 태일 일행은 곧바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먼저 검은 탑 앞에 이른 상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미친 듯 전진하는 엽현 등을 바라보았다. 엽현과 열두 정신들이 미친 듯 전진하니 그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어느덧 검은탑에 가까워진 엽현 무리.
이때 상주가 포효하듯 소리쳤다.
“환조(喚祖)!”
음성이 떨어진 순간, 상주 뒤에 있던 검은탑이 돌연 흔들리더니, 한 줄기 묵광이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이 검은 빛 사이에서 한 명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은 머리와 수염은 모두 새하얬고, 전신으로는 깊은 우주처럼 측량할 수 없는 기운을 풍겨내고 있었다.
한편 노인의 등장에 엽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에 멈춰 섰다.
‘왜 이들은 하나같이 위험할 때마다 조사를 부르는 걸까? 게다가 나만 없는 건 불공평하잖아!’
엽현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적들이 조사를 부르는 것에 이골이 나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결코 약하지도 않으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는 사이에 허공에 나타난 흑의 노인은 점점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불투명했던 그의 눈빛도 어느새 또렷하게 바뀐 상태였다.
잠시 후, 노인이 상주 곁으로 내려앉자 상주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선조에 대한 예우였다.
한편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흑의 노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로 엽현 쪽이었다. 엽현을 발견한 순간 노인의 표정이 다소 기이하게 변했다.
이에 엽현이 천주검을 쥐고서 막 출수하려는 순간, 노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 나왔다.
“아이야, 이리 가까이 와 보거라.”
가까이 오라고?
엽현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노인에게로 다가갔다. 물론 상대가 무슨 암수를 쓸지 모르니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엽현을 찬찬히 훑어보던 노인.
점점 그의 눈가에 기이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너…….”
“왜 그러시오?”
“너는… 다소 특이한 운명을 타고 났구나. 게다가 이 수많은 인과들은 또 뭐란 말인가.”
“나는 또 뭐라고. 그래서 싸울 거요 말 거요?”
엽현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흑의 노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너는 왜 우리 음암계를 사지로 몰아넣은 게냐?”
“사지? 하하하! 먼저 날 죽이려 덤빈 것은 그대들이지 않았소?”
이 말에 노인이 고개를 돌려 상주를 바라보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노인의 말을 듣자 장내에 도열해 있던 음암계 강자들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되다니? 어째 자신들을 질책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때 상주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선조, 저 놈은 이미 우리 음암계의 불구지천의 원수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놈을 죽여 억울하게 사라진 영혼들의 넋을 위로…”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
순간 장내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지켜보던 엽현 일행도 다소 혼란스러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노인을 바라보는 상주의 표정도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때 노인이 상주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음암계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자 작정했구나!”
“서, 선조. 왜 그러십니까? 저 녀석을 적으로 삼은 것이 잘못됐다는 말씀이십니까?”
흑의 노인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만큼 살아 놓고도 아직 세상 볼 줄을 모르다니. 헛살았구나, 헛살았어!”
“선조…?”
“너의 잘못된 판단 덕에 음암계는 저 아이의 인과에 얽히게 되었다.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느냐?”
“…….”
“야심이 있는 것은 좋다. 허나, 그만한 실력이 없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노인은 침묵에 빠진 상주 대신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아이야, 우리 음암계는 너와의 악연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길 원한다. 네 생각은 어떠냐?”
“새 출발?”
엽현이 가당찮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와서 무슨… 너무 늦었소.”
먼저 시비를 걸어놓고 불리해 지니 그만 두겠다?
이게 어느 나라 셈법이란 말인가.
오늘 누가 와서 말린다 해도 엽현의 마음을 되돌릴 순 없으리라!
이에 흑의 노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았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노인이 갑자기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찰나의 순간, 주변의 풍경이 돌연 비현실적으로 변했다.
이에 엽현의 눈빛이 가늘어졌을 때, 태일이 그의 곁으로 한 발 다가왔다.
“저 자, 심상치 않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풍기는 분위기로 보아 상대방의 경지는 주재경 이상, 최소 파허경일 것이 확실했다.
이러는 사이, 허상과 현실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변형을 일으킨 공간이 돌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을 뿐,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의 검기마저 등장과 동시에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눈살을 잔뜩 찌푸리는 엽현.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볼 때 이게 바로 파허(破虛)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은 완벽한 허상, 오직 상대만이 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싸운다면 우리 쪽이 지극히 불리하다.”
잠시 침묵하는 엽현.
이때 그가 한 발을 내딛자 그의 주변으로 검역이 형성 됐다.
검역이 나타난 이때 엽현의 눈이 순간 커다래졌다.
검역이 펼쳐지자 허상과 실상의 경계가 매우 뚜렷하게 구분됐던 것이다.
순간 엽현은 이 경지가 왜 파허라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허(虛)?
실(實)?
흑의 노인이 만들어 놓은 허실은 엽현에게 있어 한 명의 발가벗은 여인이라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낱낱이 보고 있긴 하지만, 차마 만질 수는 없는 그런 모순이 공존하는 상황이었다.
이는 마치 여자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내가 나체의 여인을 보고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조급함!
엽현은 눈앞의 허실의 공간에 직접 발을 담구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현재 그의 경지는 이미 윤회경 끝자락을 지나 파허경에 가까워진 상태. 즉, 마음만 먹으면 파허경에 도달하는 것도 꿈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가 듣는다면 황당해할 수 있겠지만, 엽현은 분명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로 이때, 그림자 하나가 엽현 앞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름 아닌 흑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곧장 엽현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이 주먹은 매우 느린 속도로 날아와서, 궤적을 똑똑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허상 같은 주먹이 엽현의 가슴에 닿은 순간,
쾅-!
엽현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수천 장 밖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한편, 검역 밖에 있는 태일 등은 이 장면을 보고도 출수할 수 없었다. 마치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도저히 접근할 수가 없던 것이다.
한편 엽현이 멈춰 선 이 순간, 흑의 노인이 어느새 그의 앞에 나타나 재차 주먹을 날렸다.
이때 엽현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뻗었다.
이에 노인의 표정에 다소 변화가 일었지만, 그는 끝까지 주먹을 회수하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쾅-!
두 사람의 주먹이 격돌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두 사람 주변의 공간이 미친 듯 흔들리더니, 급기야 공간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한 편의 어둠 속에 파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