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10
1110화 너 정도는 많다
이와 동시에 무려 천 장 밖으로 튕겨 나간 엽현.
이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엽현의 육신은 큰 균열이 일으키며 사방으로 선혈을 흩날렸다.
하지만 엽현은 웃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환하게.
반면 노인의 표정은 마치 벌레라도 씹은 듯 썩어들어 간 상태였다.
“어떻게… 이건 불가능해!”
노인은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에 입가의 피를 쓱 닦으며 대꾸하는 엽현.
“하하, 불가능할 건 또 뭔데?”
이때 엽현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지금 눈앞의 남자를 죽이지 않는다면 음암계의 미래는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경지를 뛰어넘는 깨달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노인은 뭔가 결심한 듯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순간 그의 주변의 공간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한편 노인의 살의를 느낀 순간, 엽현이 돌연 소리를 질렀다.
“도망쳐!”
도망쳐?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는 이때, 엽현은 이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에 태일 등 역시 황급히 엽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흑의 노인은 다소 어리둥절했다. 엽현이 이렇게 도망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장내에서 사라진 엽현 일행.
흑의 노인은 그들을 추격하진 않았다.
그게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상주가 노인의 곁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다소 상기 돼 있었다.
“선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
말없이 고개를 돌려 상주를 바라보는 노인. 이때 노인의 모습이 빠르게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허무로 돌아갔다.
이에 상주의 표정이 심히 어두워졌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걸 감지한 것이다.
게다가 노인이 사라지기 직전에 보였던 표정엔 그 어떤 두려움이 담겨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가 두려움을 느꼈단 말인가?
상주는 엽현 등이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자리를 빠져나갔다.
지금으로서 그들 음암계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상계의 도움뿐이었다.
그것마저 없다면 결코 엽현을 막지 못하리라.
* * *
상계.
여느 칠흑과 같이 어두운 공간.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의 정면 천 장 떨어진 곳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품 안에 검을 끌어안고 있는 노인은 여인을 보자마자 대뜸 말을 걸어왔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 얼마나 오래 기다린 줄 아느냐?”
노인은 검을 빼 들고는 곧장 여인을 겨냥했다.
“오너라. 노부의 일검을 받아낸다면 이곳을 지나게 해주지!”
어두운 성공, 소복의 여인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노인. 검에는 아무런 검의도 검기도 없지만, 그는 마치 세상의 주인인 마냥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와 반대로 여인은 흡사 넓은 바다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다소 가녀린 모습이다.
검을 든 노인이 여인을 재촉하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때 그녀는 이미 노인의 등 뒤에 서 있는 상태였다.
한술 더 떠 노인이 두 눈을 부릅뜨고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노인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는 말 그대로 무시, 혹은 멸시가 아닌가.
길에서 개 한 마리를 마주쳐도 이 정도로 무시할 수 있을까?
분노에 찬 노인이 여인의 뒤를 쫓으려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이와 함께 노인의 목이 쩍 갈라지며 시뻘건 핏물이 튀어 나왔다.
노인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고 말았다.
도대체 언제 검을 뽑았단 말인가?
단 일검조차 받아내지 못했단 말인가?
일련의 의문들이 전광석화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하지만 끝내 원하는 대답은 찾지 못했다.
여인의 일검.
비록 목이 찢어진 것뿐이지만, 그의 육신, 영혼은 물론 그의 몸에 응당 붙어 있어야 할 모든 인과까지 이 한 수에 전부 베어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윤회의 길마저 끊긴 상태였다.
그녀의 검은 살인의 개념을 넘어서서 노인이 이 세상에 있었던 흔적 자체를 지워버린 것이다.
한낱 죽음이 어찌 이것에 비견될 수 있으랴!
그렇게 무(無)로 돌아간 노인.
차마 감지 못한 그의 두 눈은 여전히 해답을 갈구하고 있는 듯 어지럽게 흔들렸다.
어두운 성공, 여인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은 어둠 속에 사라지고, 걸었던 흔적만이 거대한 검흔이 되어 공간에 남았다.
* * *
무족.
무족에 돌아온 엽현은 곧장 폐관에 들어갔다.
밀실 안, 엽현은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얼마 전 노인과 겨뤘던 장면이 펼쳐져 있다.
파허!
엽현은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막 윤회경이 된 그가 더 높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다소 허황된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불가능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과연 자신의 생각이 옳은 것이었는지는 그가 폐관을 마치고 나서는 날 알 수 있으리라!
문밖.
폐관실을 응시하는 아목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특히나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으며 돌아온 엽현의 모습은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매우 충분했다.
바로 이때, 인기척이 들리고 아천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시선은 곧바로 엽현이 있는 폐관실로 향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오?”
“아마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소.”
깨달음?
“아니, 녀석은 새 경지에 이른지 얼마 되지도 않지 않았소!”
“후… 그러게 말이오. 저 녀석이 내 무시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오.”
“…….”
아목이 어깨에 힘을 준 상태로 아천을 바라보았다.
“헌데 무슨 일로 그 아이를 찾아온 것이오?”
“긴히 상의할 일이 있소.”
“어떤…?”
“일단 녀석이 출관한 후에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아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족의 상황은 어떻소?”
“대부분의 무인이 부상에서 회복한 상태요. 그가 준 자기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좋아지진 못했을 것이오.”
이때 아천이 진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상계가 마수를 뻗어 오는데도 천도는 그저 관망만 하고 있소. 우리끼리라도 마땅히 행동을 취해야만 하오.”
“무슨 행동을 어떻게 말이오?”
아목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아천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검종으로 몽땅 이사를 가버리는 게 어떻소? 그들도 언제든 환영한다고 하지 않았소?”
“음, 그거 좋은 생각이오. 근데 그들의 위치가 어딘지는 알고 있소?”
“아… 그러고 보니 그걸 모르는구나! 가만, 그럼 위치도 안 알려줬으면서 방문하라고 한 건가? 이런 망할…….”
“…….”
밀실 안.
가부좌를 튼 채 잠잠히 앉아 있는 엽현.
대략 두 시진이 흐른 후, 엽현이 돌연 눈을 번쩍 뜨더니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역을 만들어 냈다. 찬찬히 주변의 공기를 느끼던 그가 주먹을 불끈 쥐자, 검역 안의 공간이 순식간에 희미하게 변해갔다.
순간 엽현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파허!
결국, 그는 파허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검역의 힘을 빌린 것에 불과했다.
즉, 검역이 없이는 파허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할지라도 파허경이 아닌데 파허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엽현은 활짝 웃으며 방문을 박차고 나섰다.
이때 문밖에는 아목과 아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사, 몸은 좀 괜찮소?”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돌파했느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돌파한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수확을 거두었소.”
“그것 잘 됐구나! 축하한다!”
“하하, 고맙소, 신사. 그나저나 무슨 일로 여길 온 것이오?”
“아, 다른 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의논하러 온 것이다.”
엽현이 웃으며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세 사람 앞에 이수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아목 곁으로 가서 섰다.
“계속 대화 나누시오. 나는 그저 들으러 온 것이니까.”
이에 아천이 입을 열었다.
“상계는 아마 이대로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잠잠한 이유는 연달아 큰 손실을 본 까닭에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겠지. 다만 다음 번 쳐들어올 때는 분명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올 게 분명하다. 그러니 우리도 미리 만반에 준비를 갖춰 놓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소. 그들은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는 반면, 우리는 그들의 위치조차 모른다는 것이오.”
“소도라면 알지도 모른다.”
아천이 대답한 이 순간.
그들 사이의 공간이 울렁이더니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던 소도였다.
소도는 엽현 등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반격을 생각하고 있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있는 곳은 너희 실력으로는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대로 이곳을 들락날락하지 않소!”
엽현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소리치자 소도가 담담히 대답했다.
“너는 그들이 진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럼 아니었소?”
엽현이 묻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분명 오유계로 넘어올 순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하지. 그중 한 가지는 바로 경지가 낮아지는 것이다.”
“음… 다소 이해가 가지 않소. 왜 그들에게 금제가 가해지는 것이오?”
소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법칙이다. 이 우주에는 거스를 수 없는 법칙들이 암암리에 존재한다.”
“우주의 법칙? 누가 그런 걸 만들어…”
“또또또! 좀 적당히 물어보면 안 되겠느냐?”
“…….”
소도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우주의 법칙이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지. 마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법칙은 비단 오유계 뿐만 아니라 상계에도 존재한다. 이걸 누가 만들었냐고 묻는 것은 마치 왜 하늘에 태양이 있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다. 알겠느냐?”
“아, 알겠소.”
이때 뭔가 생각하던 소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너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법칙을 연구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선각자였지.”
“선각자? 그는 왜 그런 걸 궁금해했던 것이오?”
“그의 말에 따르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함이라더구나.”
“진리?”
엽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말해 그는 한 명의 학자니까.”
엽현이 또 다시 질문하려 하자 아목이 눈을 희번덕이며 말을 가로챘다.
“요점만 간단히, 알겠지?”
“헤헤, 알겠소.”
엽현이 멋쩍게 웃으며 소도에게 질문했다.
“소도 낭자, 방금 상계인이 이리로 넘어오면 경지에 제한이 걸린다 하지 않았소?”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강한 자일수록 제한의 강도도 강해진다. 상계 무인들은 바로 이것 때문에 직접 이리로 오기보다 음암계 등을 통해 너를 공격하려 했던 것이다. 그 대가가 너무나도 가혹하기 때문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유서옥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 말은 또 다른 자들을 보내올 거란 말이오?”
소도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의 가정을 하나 하자면, 그들이 경지의 제한 없이도 이리로 넘어오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만약 그리되면 너는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하고 말 것이다.”
“도대체 이쪽과 상계 무인들 간의 실력 차는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이오?”
“음… 아주 크다고는 볼 수 없다. 필경, 그곳이 이곳에 비해 매우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내가 말한 건 무도문명에 대한 것이다.”
“흠… 그거 의외로구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상대의 숫자는 너희보다 훨씬 더 많다. 게다가 그곳의 세력은 하나 같이 매우 비대하지. 다시 말해, 너 정도 강자는 그곳에 가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