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19
1119화 거절해도 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경지란 깨달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로도 수련을 통해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
“지금 나의 수련에 부족함이 있었다는 걸 말하는 것이오?”
“물론이다!”
천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는 아직 수련 방면에 있어 대단히 부족하다. 다만 네 나이를 고려할 때 향후 수십 년간 끊임없이 절차탁마한다면 네 검도는 분명 아라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네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상계의 무인들이 조만간 쳐들어올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것은 없다. 네 성장을 빠르게 촉진 시킬 방법이 있으니.”
“성장을 빠르게 하는 방법? 그게 무엇이오!”
엽현이 황급히 묻자 천도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바로… 읽는 것이다.”
“읽…어? 무엇을?”
“하하, 딱 보니 너는 독서와는 매우 거리가 먼 것 같구나!”
“…….”
천도는 독서라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진 엽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상관없다. 지금은 책이나 읽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중을 위해 독서의 중요성을 알려주겠다. 독서란 문자를 활용해 지식을 얻는 것으로 세상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사고의 발전과 개척을 이끈다. 일자무식인 자도 책을 읽음으로써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지. 즉, 독서의 효용은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있다.”
말을 하던 천도는 문득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였다.
“조금 전 내가 지공을 펼쳤을 때를 예로 들어보자꾸나. 너는 분명 강력한 힘을 느꼈을 것이지만, 그 힘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성된 것인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백정이 소를 잡는 것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난해하지만, 일단 소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매우 간단하게 소를 분해할 수 있는 것이지.”
“결국, 본질과 원리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구려.”
순간 엽현은 천도가 어찌하여 자신의 육신을 그렇게 쉽게 파괴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천도는 사람의 육신 구조를 매우 정확하게 꿰뚫고 있던 것이다.
매우 무서운 여인이로구나!
천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네가 한 가지 힘에 정통하고 싶다면 먼저 본질과 원리에 대해 깨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스스로 시간을 들여 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이때 무엇을 느낀 엽현이 고개를 들어 천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그대는 내게 깨달음을 주려는 것이오?”
“하하, 용케 알아차렸구나. 그렇다! 너는 이미 본연의 경지를 넘어서서 파허가 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이걸로 상계인들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소도가 나서서 지도해 주면 좋겠지만, 그녀의 무도는 네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니 내가 나설 수밖에.”
“…그대는 왜 나를 도우려는 것이오?”
엽현이 천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하하, 간단하다. 검종은 움직일 수 없고, 소복의 여인은 이곳에 없다. 소도가 강하긴 하지만 아직 본 실력이 돌아오지 않았고, 남은 것은 아라 하나인데 그녀 혼자만으로 널 지키기에는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너는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내가 강해져서 상계와 양패구상할 수 있도록 말이오?”
엽현이 날카롭게 질문을 던지자 천도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보는 방식을 달리해 보자꾸나. 내가 너를 돕고자 하는 것을 단순히 하나의 선의라고 생각한다면 너도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겠느냐?”
“내가 보기엔 그건 자기기만일 뿐인 것 같은데?”
이 말에 가만히 엽현을 바라보고 있던 천도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래서 똘똘한 놈들은 싫다니까. 네 말이 맞다. 나는 네가 더 강해져서 상계 놈들과 피 터지게 싸우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앉은 자리에서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을 테니까. 하하…….”
“…….”
이때 천도가 웃음을 뚝 그쳤다.
“물론 네가 거부한다면 나도 더 이상 강요하진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좋다. 물론 그리된다고 할지라도 네가 원하는 상계의 정보는 알려주도록 하겠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말이다. 그리고 검도 방면에 있어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오도록 하거라.
비록 네 탑 꼭대기에 꽂혀 있는 검의 주인들만큼은 아니지만, 나의 검도 역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상태이니 네가 주재경을 돌파하고자 한다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네 육신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에 있어서도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육신에 관한 나의 지식은 선각자를 제외하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어쨌거나 무엇이라도 물어볼 것이 있다면 내가 도움을 주겠다. 물론 필요 없다면 무시해도 좋다. 나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까.”
천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엽현은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은 무엇인가?
천도는 지금 대놓고 엽현을 이용하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거절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놓긴 했지만, 누가 이런 달콤한 유혹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엽현은 그제야 음암계와 정신들이 왜 그녀의 손에 봉인되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실력은 둘째 치고, 그녀에겐 이게 음모인 걸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비상한 머리가 있던 것이다.
“아, 방금 언급한 육신에 대해 조금 더 첨언 해 보겠다. 오래전 선각자와 이 부분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지. 그는 인간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잘만 이용한다면 육신의 극단적인 강화도 충분히 꾀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의 이론을 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지.”
여기까지 말한 천도가 엽현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와 달리 나는 실행에 옮기는 데 성공했다. 만약 네가 그 방법대로 이행하기만 한다면 네 육신의 견고함은 지금의 최소 열 배 이상으로 상승할 것이다. 열배!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개발한 방법은 오유계 최고의 수련방식이기 때문이지. 여기에 내게 있는 수련 자원과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심득 까지 곁들인다면… 아, 물론 강요하는 건 아니다. 그저 참고만 하라는 거지. 나는 개인적으로 나의 의지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오유계를 대표하는 천도로서 이런 부도덕한 짓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것이지. 그러니 부담스럽게 듣지 말고 거절하려면 거절해도 상관은 없다. 아 정말로!”
“…….”
거절해도 돼!
이 말을 들은 엽현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마음은 이보다 더 바짝 타들어 갔다.
천도의 제안은 명백히 자신을 이용하려는 것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나쁜 점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적어도 잠시 동안은!
거절?
엽현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그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럼 받아들여야 하나?
이성적으로는 이미 결론이 나왔지만 역시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불안감조차 어느새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천도, 내 생각에 그대가 한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소.”
“어떤 부분이?”
천도가 웃으며 묻자 엽현이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조금 전 말하지 않았소? 각도를 조금 달리해서 보라고… 그래서 고개를 조금 삐딱하게 해서 봤더니 아니 글쎄 다른 면이 보이는 것 아니겠소? 그대는 날 이용하려 했던 게 아니오. 그저 나의 천부적인 자질을 알아보고 투자를 하려는 것이지. 나 같은 천재에게 약간 투자해서 상계를 물리친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아니겠소?”
“아… 그게… 그런 셈이지.”
엽현은 살짝 당황한 천도를 무시한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달리 말하자면 그대는 나의 거대한 잠재력을 알아보고 약삭빠르게 투자를 결심한 것이지. 뭐, 이 점에 대해서는 딱히 그대를 나무라고 싶진 않소. 이런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고 말이오. 하하하!”
“어째 그런 말을 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는구나.”
천도는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엽현을 보자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구나. 너의 이 뻔뻔함은 도대체 타고난 것이냐 아니면 직접 단련한 것이냐? 어느 쪽이든 내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인간들 중 가장 낯짝이 두꺼운 것은 분명하구나!”
“…….”
“자, 이 부분은 접어두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검도와 육신 중 어느 부분을 먼저 단련하고 싶으냐?”
“음… 그대 생각은 어떻소?”
“검도 경지를 끌어 올리는 것은 다소 난해하니, 비교적 쉬운 육신부터 시작하자. 당분간은 때리기보다 맞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니까.”
“…….”
이때 천도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책장에 꽂혀 있던 책 한 권이 그녀의 손안으로 날아들었다.
“이 고서 안에는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력했던 몇 개의 외공 심득이 들어있다. 먼저 안의 내용을 숙지한 다음 배운 것을 체득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이때 궁금한 점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질문을 던지도록 하거라.”
엽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책을 펼쳤다. 잠시 내용을 읽어가던 엽현의 표정이 점점 진중하게 변했다.
“어떠냐, 네게 쓸모가 있는 것 같으냐?”
“엄청!”
엽현은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 나갔다.
비록 엽현은 외공에 관한 무공을 여러 개 익히기는 했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완전히 통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엽현은 천도가 준 책을 통해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체수(體修)!
이는 분명 단순히 육신을 강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단단해진 몸을 통제하려면 그만큼 정신력 또한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강한 정신력, 이것이 강력한 육신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외공에도 최소 수백 개가 넘는 유파(流派)가 존재한다. 이들의 수련방식은 각기 달라서, 어떤 유파는 근육을 위주로, 또 다른 유파는 뼈나 장기에 중점을 두는 등 수련 부위 또한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진중하게 책을 읽어가던 엽현은 대략 한 시진이 되어서야 책에서 눈을 뗐다.
이때 천도는 어디로 갔는지 방 안에 보이지 않았다.
이에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나서자 마당에서 생선을 굽고 있는 천도를 볼 수 있었다.
천도 앞에 멈춰 선 엽현.
노릇노릇 잘 익어가는 물고기를 본 엽현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살생을 하지 않는 줄 알았소.”
천도가 고개를 들어 웃는 얼굴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너무 자비심이 넘쳐도 이 우주를 지킬 수 없다. 그리고 네가 눈으로 보는 것이 언제나 진실인 것은 아니다. 정확한 내막을 모르면서 남을 평가하는 것은 다소 무례한 것이 아니더냐?”
“내가 방금… 뭐라 했소?”
엽현이 다소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금은 별말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천도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엽현은 천도 앞에 쪼그려 앉아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소.”
“말 해 보거라.”
“외공에도 극한의 경지라는 게 존재하는 것이오?”
천도가 고개를 저었다.
“최소한 이 오유계 안에서는 육신의 한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검도나 무도에서 극한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지. 설령 이쪽 세상에서 최강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세상에서는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느냐?”
이 말을 들은 엽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무도.
검도.
육신.
결국, 그 어느 것 하나 극한은 없다. 그저 끝없는 길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뿐.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들이 죽을 때까지 이 길을 달린다 생각하니 엽현은 다소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때 천도의 음성이 들렸다.
“길을 걸을 때 너무 멀리 보는 것은 때로는 방해만 될 뿐이다. 지금 당장 앞에 놓인 길을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넘어지지 않고 꾸준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이는 마치 건물을 쌓는 것과 같아서 기초단계에 서두르게 되면 그 후로 아무리 잘 지어봐야 언젠가는 쓰러지고 만다. 모름지기 멀리 가고 싶다면 가까운 길부터 두드려 가며 걷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