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20
1120화 만약 그에게 기연이 없었다면?
천도는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너는 총명한 아이니 내가 하는 말을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걱정하지 마시오. 반드시 실행해 보일 테니까!”
엽현의 말에 천도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넌 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도에 포기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그럴 의지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지. 너는 강해지는 것에 그렇게 갈증을 느끼지도 않을뿐더러, 목표의식조차 희미하다. 목표가 없는데 무엇을 실행한단 말이냐?”
“천도, 왜 내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오? 나 엽현이 그렇게 나약해 보이는 것이오?”
천도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어쩌면 예전의 너는 절박한 마음으로 검도에 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열정이 식어있는 상태다. 네가 들어서 기분 좋을 말은 아니지만… 만약 그 여자 검수나 선각자 그리고 청삼남이 없었더라면 너는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엽현은 침묵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버텨온 것은 박수쳐 줄만 하다. 너 역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을 테지. 다만 이 세상의 진정한 고수들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많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네 동료인 아라만 놓고 봐도 알 수 있다. 너는 그녀가 지금 위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는지 아느냐? 그녀에 비하면 네가 해 온 것은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
“게다가 너의 마음가짐도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소복의 여인이 널 두고 떠난 것은 결코 널 믿어서가 아니라, 네게 위기감을 불어 넣고자 한 것이었다. 하나 물으마. 상계와의 일전에서 만약 검종과 소도, 그리고 아라가 없었더라면 어찌 되었겠느냐? 너 혼자 해결할 수 있었겠느냐?”
엽현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사실 현재 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행히 지금은 너를 대신해 싸워 주는 이가 있지만, 그들이라고 일평생 널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반면 네 적은 점점 더 강해질 뿐 아니라, 그 수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잠깐!”
의아함을 느낀 엽현이 천도의 말을 끊었다.
“왜 적이 더 강해지고 많아진단 말이오? 그걸 어찌 확신하시오?”
“그건… 그것이 바로 네 운명이기 때문이다.”
“…….”
천도는 막 구워진 생선 한 마리를 엽현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네가 현실을 명확히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이야 주변에 사람이 있지만,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너 혼자일 때가 분명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남의 도움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후 오유겁이 닥치면, 네가 나서서 부문종이나 만유서원 등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 너는 무엇으로 그들을 지킬 수 있겠느냐? 아니, 그들은 고사하고 네 한 목숨 건질 능력이라도 있겠느냐? 아니면 그때 가서도 지금처럼 누군가 도와주기만을 기도하겠느냐?”
“…….”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엽현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엽현의 어두운 표정을 본 천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쯤 했으면 충분히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이제 일어나거라. 수련을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천도가 먼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엽현 역시 잠시 후 그녀의 뒤를 쫓았다.
천도는 엽현을 데리고 집 뒤쪽을 향해 걸었다. 대략 반 시진쯤 걷다 보니 그들 앞에 밝은 공간이 펼쳐졌다.
엽현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안에는 무수히 많은 뇌전들이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지를 반으로 갈라버리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를 본 엽현의 안색이 순간 어둡게 변했다.
“설마 이 안으로 뛰어내리라는… 뭐 그런 건 설마 아니지요?”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직감적으로 자신의 육신이 버티지 못할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하, 겁먹을 것 없다. 이 뇌전들은 천겁뢰(天劫雷)라고 하는 것으로서 오래전 내가 강자들의 수를 제한할 때 썼던 것이다. 하지만 오유겁의 출현과 함께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바람에 이곳에 처박히게 되었지. 그 후로 무수한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천겁뢰들은 스스로 탈피를 거듭한 끝에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상태다.”
“아, 그렇군.”
천도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 그렇군이 아니라 어서 뛰어내리거라.”
“…내가 버틸 수 있긴 한 거요?”
“그야 직접 몸소 체험해 보면 쉽게 알지 않겠느냐?”
순간 엽현의 안색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들어가라는 거요?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군!”
“하하,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러나 이것이 네 육신의 단련을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즉, 여길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수련은 없다는 뜻이지. 왜냐하면, 다음에 있을 것들은 이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거든!”
“…….”
“무섭다면 할 수 없지. 평생 지금처럼 얻어맞고 사는 수밖에.”
“에라잇-!”
엽현은 천도를 한 번 째려보고는 주저 없이 발밑의 뇌전의 바다로 향해 뛰어 내렸다.
쾅-!
엽현이 발을 디딘 순간, 그의 옷이 순식간에 불에 그을려 사라졌다. 이에 엽현은 황망히 불사지체를 운용하려 했지만, 몸 안에 있던 사기가 막 밖으로 나오자마자 뇌전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이때, 수천수만 가닥의 뇌전이 그의 몸을 관통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성공 전역에 울려 퍼지는 처절한 비명.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엽현의 두 눈은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으며, 전신의 핏줄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특히 그의 얼굴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든 엽현은 곧바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이때 들려오는 천도의 음성.
“들어갔던 때처럼 나오는 것도 어렵진 않다. 하지만 한 번 포기하게 되면 두 번, 세 번… 점점 포기하는 것이 더욱 더 쉬워 질 것이다. 그래도 그만 두겠느냐?”
천도의 발밑.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엽현은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천겁뢰는 그의 육신을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마치 작은 칼날이 피부를 도려내는 것과 같은 고통을 선사했다.
한마디로 말해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엽현이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엽현을 보자 천도가 가볍게 미소를 흘렸다.
“그래, 그렇게 견디다 보면 조금씩 나아질 게다.”
“어, 얼마… 얼마나 있어야 하오?”
“음… 한 달이면 되지 않을까?”
한 달!
“컥…!”
천도의 말에 결국 엽현은 붉은 선혈을 토해냈다.
한 달!?
엽현은 정말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천도의 말마따나 자신이 강해지지 않으면 남을 돕기는커녕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할 텐데, 이제 그런 건 죽기보다 싫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엽현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저 육신이 잠시 고통스러운 것일 뿐!
죽지만 않는다면야 까짓 못 버틸 건 무어란 말인가!
엽현은 천도를 향해 눈을 부릅뜬 채 소리쳤다.
“겨우 이 정도뿐이오! 이것보다 더 강한 것은 없소!?”
“물론 있지.”
무덤덤하게 대답한 천도.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천겁뢰 깊은 곳으로부터 칠흑과 같이 검은 뇌전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검은 뇌전에 담긴 기운을 느낀 엽현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저… 그 방금 했던 말은 정말 그러자고 한 게 아니라… 아, 그래. 일종의 기합이었소. 하하, 나한테만 들리게 소리친다는 게 그만… 헤헤, 그럼 얘들 좀 치워 주시겠소? 좀 따갑게 생겼구려……”
천도는 아무 대꾸도 없이 자리에 쭈그려 앉아 엽현을 응시했다.
그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드리운 순간,
“끄아아아아악-!”
조금 전 보다 몇 배는 더 강렬해진 고통에 엽현이 몸을 비틀었다.
머릿속으로는 이를 악물고 버텨야 한다고 계속 소리치고 있었지만,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이는 마치 생살을 잡아 뜯는 그런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의 불사지체는 이미 오래전에 완전히 흩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엽현의 몸은 파괴되진 않았다. 물론 이때의 엽현은 그런 걸 신경 쓸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온전하진 않았다.
잠시 후, 자리를 잡고 앉은 천도는 어디선가 생선 두어 마리를 꺼내 불에 굽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뇌전 속에 갇힌 엽현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때의 엽현은 뇌전으로 몸이 완전히 뒤덮인 상태로, 형체만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이때, 소도가 천도 곁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흥, 보아하니 양반은 못 되는군. 그새를 못 참고 걱정이 돼서 달려온 건가?”
소도는 뇌전 안의 엽현을 응시하며 대꾸했다.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한다. 만약 네가 이 우주를 포기했다면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하는…….”
“하하, 너야말로 이제 그 원한을 내려놓는 게 어떤가?”
원한!
이 말을 들은 순간 소도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차가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미 피로 물든 원한을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너와 나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국 같은 문제다. 살다 보면 누구나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지. 무엇이든 포기해 버리면 사는 의미가 없지 않나?”
“…….”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소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 너 정도라면 더 넓은 무대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천도의 영이라면 어딜 가도 환영을 받을……”
이때 천도가 소도의 말을 뚝 끊었다.
“여기가 바로 내 집이다!”
소도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천도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이 바로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인가.”
“…….”
천도는 엽현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매우 가능성이 많은 녀석이다. 다만 운명이 녀석의 몸에 저리 많은 인과를 주렁주렁 매달아 놨으니 보기가 참 안쓰럽군.”
“하지만 저 인과들 덕분에 얻은 것도 분명 있지 않나?”
“흠… 글쎄. 소도, 너는 생각 해 본 적이 있나? 만약 저 아이에게 아무런 인과도 배후도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이 어찌 달라졌을지?”
천도가 되묻자 소도가 고개를 저었다.
“인생에 만약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따져 본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
“소도, 네가 틀렸다.”
이 말에 소도가 천도를 바라보자, 천도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 인과들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쯤 더 멀리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에 소도가 천도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혹시 녀석의 천질과 심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나도 십분 공감한다. 녀석의 자질이야 최상급이라 해도 무방한 정도지. 하지만 그의 배후가 아니었더라면 그가 지금까지 얻은 기연도 없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 소복의 여인을 예로 들면 확실하지. 세상에 시작부터 그녀 정도 되는 검수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잠시 말을 멈춘 소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출생 신분이란 매우 중요하다. 내가 일평생 땀 흘려 얻은 것을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쥐고 있는 셈이니까.”
이에 천도가 웃으며 대꾸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하나 간과한 것이 있군.”
“무엇을?”
소도가 천도를 쳐다보자, 천도는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아이가 청성이란 곳에서 어떠했는지 알고 있나?”
“알고 있다.”
“그 검수는 일찍이 그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녀석에게 검도를 전수해 주는 대신 매우 오랜 시간 지켜만 보았지. 왜인지 아는가?”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서?”
소도가 되묻자 천도가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