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21
1121화 천화
“그런 말이 아니다. 그 여인은 엽현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기회를 주었던 것이다. 만약 저 아이가 평범함을 추구하거나 심성이 곧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녀석에게 약간의 부귀를 쥐여 주고서 홀연히 떠났을 것이다. 왜? 무도란 평범한 자가 쉽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끝없는 길 위에 자신을 올려놓는 것과 같다. 그 여인이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결국 그가 이 길을 걷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렇다면 엽현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일까?”
“…….”
소도가 대답이 없자 천도는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고금을 막론하고 절정의 강자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는 천부적인 자질이 아닌 노력, 불굴의 의지, 그리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굳은 심지다. 여인이 결정을 내린 것은 엽현에게서 이러한 점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일검에 그에게 얽힌 모든 인과를 끊어내어 평범한 삶을 살게 해 주었겠지. 그게 선각자와 관련된 것이든 아니면 그의 모친과 관련된……”
바로 이때, 말끝을 흐린 천도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순간, 그녀의 입가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를 보자 소도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소도가 놀라며 묻자 천도가 입가의 피를 슥 닦으며 웃어 보였다.
“별거 아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군.”
“별거 아니라니… 설마 그 검수 여인이 출수한 것인가?”
천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짓이 아니라, 또 다른 인과에게서 날아온 경고였다.”
“그런… 엽현의 모친이라면 독고훤… 그녀에게는 이럴 만한 능력이 없을 텐데?”
“그럼 지금 손을 쓴 것은 과연 누굴까?”
천도가 반문을 하자 소도는 당황했다.
“소도, 저 녀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운명을 타고 났다. 다른 건 알지 못하지만 엽현의 모친이 왜 사라졌는지는 알고 있지. 그녀가 사라진 이유는 그리하지 않으면 죽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선각자 역시 마찬가지.
그는 정말로 오유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라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선각자 역시 무척이나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 정도의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소복의 여인을 자극해 버렸거든. 그 여인… 겉으로 보기엔 초연한 듯 하다가도 검을 한 번 뽑으면 사정을 봐 주지 않지.”
천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 이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바둑판이고, 우리들은 그 위에 올려진 돌이라는 것을?”
“…….”
“후후, 혹자는 말하기를 ‘하늘은 자비가 없고 만물을 보기를 길가의 개처럼 여긴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들이 매우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우주, 즉, 천지는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대한다. 특별히 누구를 미워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아닌, 그저 조화로운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이지. 달리 말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이 우주는 그대로라는 것. 사실 우리들의 운명에 관여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지못한다.”
천도는 소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로, 인간들은 꾸준히 강해져 왔다. 그 결과 우주를 멸망시키고 자연의 법칙을 바꿀 정도의 힘을 갖게 되었지. 그 중 몇몇 강자들은 이미 생각만으로 생사를 결정할 수 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천지를 바둑판 삼아 중생의 운명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모든 것이 하늘과는 관련 없는, 인간 스스로가 저지른 일들이란 것이다.”
소도는 침묵하며 뇌전과 씨름하고 있는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에 천도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말하니 기분이 다소 묘해지는군. 우주는 선의로서 생명들을 돌봤건만 거기서 자라난 열매는 이렇게 악하다니. 참 슬프지 않나?”
말없이 듣고 있던 소도는 결국 등을 보이며 자리를 떠나갔다.
이때였다.
“소도.”
천도의 목소리에 소도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천도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이렇게 말할 기회가 더는 없을 것 같아서, 한 마디만 더 하고자 하는데 들어 보겠나?”
“그러지.”
“선념(善念).”
“선념? 지금 내게 선한 생각을 품으라고 하는 것인가?”
소도가 웃으며 묻자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한 마음을 품은 이는 악한 인과에 오염되지 않지.”
잠시 자리에서 침묵하던 소도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도록 하지.”
이 말을 끝으로 소도는 자리를 떠나갔고, 천도는 말없이 익은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로부터 대략 열흘 후.
뇌전의 바다 안에 있는 엽현은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매우 차분해진 상태였다.
이에 잠시 엽현의 상태를 살핀 천도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빽빽이 들어서 있던 뇌전들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한켠으로 물러났다.
바로 이때, 엽현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 속에서 두 줄기 강렬한 뇌전이 튀어 나왔다. 이 뇌전들은 곧장 천도 앞으로 날아갔지만, 그녀에게 닿기도 전에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천도, 내가… 성공한 것이오?”
다소 흥분된 모습으로 자신의 몸을 살피는 엽현.
이에 천도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제 겨우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이다. 일단 어떤 변화가 있는지 확인 해 보거라.”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간, 한 줄기 강렬한 뇌전이 그의 몸 밖으로 튀어나와 허공을 길게 찢어버렸다. 이때 엽현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강렬한 전류를 느낄 수 있었다.
엽현이 천도를 바라보자 천도가 그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
“네 몸은 이제 뇌전의 속성을 띠게 되었다. 즉, 천둥과 번개에 면역이 되었단 소리다.”
“어떤 종류의 뇌전에도 말이오?”
엽현이 놀라며 묻자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격을 입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힘을 네 것으로 흡수할 수도 있다. 앞으로 너에게 떨어지는 어떠한 천겁도 네게는 일종의 보양식이 될 것이다.”
이 말에 엽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나 대단하단 말이오?”
“물론이지. 이 정도 보상도 없으면 굳이 천겁뢰에 뛰어들라 했겠느냐? 가자,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딜 말이오? 아직도 해야 할 수련이 남았단 말이오?”
“말하지 않았느냐. 이제 시작이라고. 비록 네 육신은 좀 더 강해지긴 했지만 이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단순히 단단한 것만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특성이 깃들어야지.”
“특성? 어떤 특성 말이오?”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천도가 슬며시 입꼬리를 늘어뜨렸다.
“오행절체(五行絕體)!”
“오행절체?”
천도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네 육신은 고작 뢰(雷) 속성의 힘만 흡수할 수 있을 뿐이다. 앞으로 너는 화, 수, 토… 오행에 존재하는 모든 힘을 흡수할 수 있도록 수련해 나갈 것이다. 그래서 어떤 힘이 날아와도 곧바로 흡수할 수 있는 괴물이 되는 것이지! 하하하하!”
“…….”
엽현은 순간 온 몸의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만약 천도 말대로만 된다면 그의 육신은 그야말로 무적이 되는 것 아닌가!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모자라 그 힘을 그대로 흡수한다니!
여기에 원래 그의 특성이던 검체(劍體)마저 더해진다면.
순간 엽현의 눈이 번뜩였다.
이건 꼭 해내야 한다!
이때 엽현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전에도 이런 식으로 수련한 자가 있었소?”
천도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처음이다.”
“어째서 말이오?”
“그야 방금 내가 생각해 낸 거니까.”
천도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대답하자 엽현은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럼… 내가 첫 시험 대상이라는…”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이라 생각하거라.”
“…….”
“뭘 그리 쳐다보느냐? 아직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지 않느냐? 정 두렵거든 거절해도 상관은 없다. 어쨌거나 위험한 것은 사실이니까. 다만 이 수련을 마쳤을 때의 네 모습을 한 번 상상 해 보길 바란다. 천하의 어떠한 힘도 이 오행 안에서 존재한다. 즉, 네가 오행절체가 된다면 누구도 쉽게 널 죽일 수 없다는 뜻이다. 그밖에도 원한다면 네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검체와 음암사체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줄 수도 있다. 모두 공짜로!온전히 나의 호의로! 물론…”
말끝을 흐린 천도가 진지한 표정으로 엽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네가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이는 강요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이니까.”
순간 엽현의 눈가가 가볍게 흔들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놓고 거절하고 싶으면 거절 하라니.
세치 혀만 놓고 봤을 때 천녀보다도 더 지독하지 않은가!
“어찌, 할테냐?”
천녀가 재차 묻자 엽현이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대가 이렇게 강력하게 희망하니 받아들이겠소.”
“음? 누가 들으면 내가 강요한 것처럼 보이겠구나. 나는 분명 거절해도 된다고…”
이때 엽현이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끊어냈다.
“됐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왜 이리 길게 하시오? 솔직히 그대는 내심 내가 거절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지 않소? 왜? 나 같이 우수한 자질을 가진 재목은 만년에 한 번 볼까 말까니까! 에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내 그대를 위해 한 번 눈 감아 주겠소. 어서 시작 합시다!”
천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잠시 말을 잃었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이때 엽현인 멍하니 있는 천도의 팔을 잡아끌었다.
“자, 감동의 눈물은 나중에 흘리고 어서 가서 수련이나 합시다. 그대의 꿈이 막 이뤄지려는 참인데 시간 낭비할 틈이 어디 있소!”
“…….”
잠시 후.
천도는 엽현을 데리고 어느 화산 꼭대기에 도착했다.
엽현이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아래를 바라보니, 저 아래 부글부글 끓고 있는 시뻘건 용암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일반 용암이라면 내 몸에 아무런 해도 가하지 못할 것이오.”
엽현의 말에 천도가 그를 향해 싱긋 웃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저 안에 있는 화염은 보통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어떻게 말이오?”
천도가 고개를 돌려 아래쪽 화염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건 천화(天火)라 하는 것이다.”
“천화?”
엽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또 어떤 것이오?”
천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 세상이 태어나고 아직 혼돈 속에 존재할 때, 하늘 밖으로부터 신비한 화염이 이리로 날아들었다. 우린 이것을 줄여서 천화라 부른다.”
“하늘이라면… 혹시 상계에서 온 것이오?”
엽현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자 천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곳은 아니다. 다만 하늘로부터 떨어진 것은 틀림없다.”
“그대가 말한 하늘 밖은 도대체 어떤 곳…”
이때 천도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본 엽현이 말끝을 흐렸다.
아직 몇 개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걸 알기 전에 내 주먹맛이 어떤지 먼저 한 번 알아보겠느냐?”
“흡!”
엽현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후, 잘 생각했다. 그럼 잔말 말고 어서 내려가거라.”
아래쪽의 시뻘건 용암을 향해 고개를 돌린 엽현은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