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31
1131화 막을 수 있겠소?
월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을 뗐다.
“천도 낭자, 그대가 오유계를 보호하고자 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오. 그리고 우리는 오유계에 어떠한 악의도 없소. 만약 그대가 우리가 서옥을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우리 역시 상계를 해결해 주겠소. 어떻소?”
“거절한다.”
천도가 단호히 대답하자 월백이 눈을 깜빡였다.
“어째서 말이오?”
“하… 너희 생각과는 달리 상계 역시 내게 아무런 악의가 없거든.”
“틀렸소. 설령 상계가 그렇다 하더라도, 음령족의 생각은 다를 것이오. 음령족이 육유계로 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유계를 지나쳐야만 하오. 그때가 되면 오유계가 무사할 것 같소?”
“하하,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이쪽엔 검종이 있다고.”
“…….”
어두운 표정의 월백을 향해 천도가 계속 말했다.
“너희를 도와 서옥을 탈취한다는 것은 곧 엽현을 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엽현은 검종과 깊은 관계에 있으니 자연히 검종과도 적이 되겠지. 내가 미쳤다고 이런 짓을 하겠느냐? 음령족은 검종이 막을 테고, 상계는 오유계보다는 육유계를 수복하는데 관심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너희 편에 서야 할 이유가 있을까?”
“…….”
월백이 말이 없자 천도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내 짐작이 맞다면 너희는 엽현과 상계, 그리고 음령족이 서로 피 터지게 싸우길 바랄 것이다. 육유계의 입장에서는 엽현이든 음령족이든 모두 위협적인 존재일 테니까. 보고만 있어도 좋을 상황에서 너희가 굳이 움직인 이유는… 아마도 서옥이 두렵기 때문이겠지.”
이에 월백이 웃으며 천도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서옥을 두려워한단 말이오?”
“후후,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서옥이야말로 너희 육유계에 있어 절체절명의 위협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상계가 이렇게 미친 듯 서옥에 집착하진 않았겠지. 일단 서옥이 그들 손에 넘어가면 육유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내 생각이 틀렸나?”
“…….”
“그리고 너희가 이렇게 다급히 나선 것은 엽현에게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월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보자 천도가 미소를 지었다.
“왜 그가 질 거라 생각한 거지?”
“검종은 결국 음령족을 막을 수 없을 것이오.”
“혹시, 음령족이 다른 세력을 끌어들이기라도 한 것인가?”
월백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조만간 검종을 칠 것이오. 만약 검종이 무너지게 되면 오유계는 희망이 없소. 천도 낭자,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겠소. 우리에게 오유계 전체를 보호할 만한 힘은 없지만, 그대 하나 지켜 줄 정도의 능력은 충분하오. 그대가 원하기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육유계에 그대의 자리를 마련해 놓겠소.”
“그러기 위해선 내가 너희들 손에 서옥을 쥐어 줘야 하는 것이겠지?”
“…….”
“하하, 너희가 뭘 꺼리는지 알고 있다. 너희는 엽현과 정면 대결을 피하고 싶은 것이겠지. 육유계가 아닌 오유계에서 싸우는 것도 큰 부담일 테고 말이야. 그러니 날 찾아와서 내게 육유계로의 초대권을 제시하는 대신 엽현에게서 서옥을 빼앗아 오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그대 생각이 옳소.”
월백이 순순히 시인하자 천도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늦었다.”
순간 월백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늦었다니, 그게 무슨 뜻이오?”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엽현… 그는 이미 서옥을 개방할 수 있게 되었다.”
천도의 입에서 이 말이 흘러나오자 월백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너희 육유계는 하나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엽현과 상계가 손을 잡는 것이지.”
월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천도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오유겁이 도착했을 때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육유계로 가는 것이다. 상계와 음령족의 목적은 육유계를 차지하는 것이다. 엽현 역시 살기 위해서 육유계로 가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들 셋이 서로 손을 잡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닌가?”
월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이미 매우 좋지 않았다.
천도가 지적한 것은 바로 육유계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육유계에서는 월백을 보내 천도와 연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천도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너희가 살아날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엽현 편에 서서 그가 상계와 음령족을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지. 너희가 바라는 것은 엽현이 죽기까지 싸우는 것이겠지만, 만에 하나 그가 힘의 차이를 인정하고 순순히 투항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상계와 음령족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서옥을 얻게 된다면?
“설마 엽현이 그들에게 협력하려 하겠소?”
월백이 되묻자 천도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그들의 목표는 모두 육유계, 그가 서옥만 내 주면 상계와 음령족이 알아서 너희를 처단할 것인데, 엽현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니 마찬가지인 셈이지.”
월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도의 논리가 매우 그럴싸했던 것이다.
이때 월백의 앞에 한발 다가선 천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너희로서는 서옥이 상계나 음령족에게만 넘어가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엽현 편에 서서 그를 돕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하면 상계를 견제하는 동시에 그들이 엽현에게 접근하는 것도 차단할 수 있지. 어떻게 생각하나?”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월백이 대답했다.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이 사안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물론이다.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돌아가서 상의 해 보도록 해라.”
이때 월백이 망설이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소.”
“어떤?”
“그대도 들어서 알겠지만, 엽현의 배후라는 여인이 얼마 전 육유계에 들어왔소.”
“그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듣자 하니 그녀와 엽현의 사이가 매우 돈독하다던데… 만약 우리가 그녀를 사로잡은 후, 엽현을 협박한다면 그가 순순히 서옥을 내놓을 수도 있지 않겠소?”
“누가 그런 생각을….”
뭔가 말을 하려던 천도가 순간적으로 입을 닫았다.
이에 월백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조금 전 내가 생각해 낸 것이오. 어떻소? 괜찮은 생각이지 않소? 하하하!”
월백은 허리를 젖혀 한껏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내에 남은 천도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세상에나… 저런 방법을 생각해 낼 줄은…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구나!”
* * *
만유서원.
서원의 어느 장원 안, 엽현과 여부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엽현을 바라보는 여부자의 표정은 다소 미묘했다.
잠깐 못 본 사이, 엽현의 실력이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부자, 내 생각에 지금 당장 모든 무인을 이끌고 무성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대 생각은 어떻소?”
여부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엽현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물론 알고 있었다.
만유서원과 엽현은 매우 밀접한 관계였다. 만약 상계가 조금만 머리를 쓴다면, 먼저 자신들을 인질로 삼으려 들 것이 뻔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여부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준비되는 대로 이동하마.”
“좋소!”
짧은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엽현.
이때 여부자가 돌아서려는 엽현을 불러 세웠다.
“선각자는 다른 차원에서 온 것이었느냐?”
엽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정황으로 볼 때 그런 듯 싶소. 하지만 그곳이 육유계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소.”
“그렇군. 조심해서 가도록 하거라.”
엽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장내를 빠져나갔다.
여부자는 한 줄기 검광이 되어 사라지는 엽현을 보며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만유서원을 떠난 엽현은 곧바로 부문종을 찾았다.
얼마 후, 부문종의 모든 인원이 무족이 위치한 무성을 향해 일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무성.
무성에 도착한 엽현은 아목과 함께 한 분묘를 찾았다. 안란수 등이 폐관을 위해 들어간 곳이었다.
“아목 낭자,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소?”
“글쎄다. 나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구나.”
“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들은 하나 같이 매우 뛰어난 무인들이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자질이야 엽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바였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아직은 모르겠소. 그대의 의견을 듣고 싶소.”
“흠… 내가 보기에 상황이 그리 좋진 않다. 우리 쪽에서 가장 강한 것은 아라와 소도다. 그 둘을 제외하면 상계와는 상당히 실력 차가 있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아라와 소도가 철저히 봉쇄당한다면, 우리는 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목의 말에 엽현의 표정이 다소 어둡게 변했다.
비록 이쪽에 주재경 강자가 다수 포진해 있다곤 하지만 상계의 파허경 강자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만에 하나.
같은 파허경인 아라와 소도의 손발이 묶여버리게 되면 전세는 상당히 어렵게 흘러 갈 것이 분명하다.
아라가 심각한 얼굴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상계가 아직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에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아직 차원의 벽을 완전히 허물지 못했을 가능성. 둘째, 네 배후의 여인과 검종에 대한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다.”
엽현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보시오.”
“현재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 소복의 여인이 이미 상계를 떠났고, 그들이 아라와 소도, 그리고 검종을 견제할 방법을 찾았을 가능성이다. 이런 상황이 찾아오면 국면은 더욱 어렵게 흘러갈 수밖에 없지. 그리고…”
“그리고?”
“천도. 그 여인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내가 살펴본 바로는 우리와 상계가 서로 치고받는 사이 그녀가 이득을 취하려 움직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말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그걸 어떻게 알지?”
“나 역시 그녀를 완전히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직감적으로 적이 되진 않으리란 걸 알 수 있소. 적어도 당분간은 말이오.”
“흠… 그럼 그녀는 제외하는 거로 하지. 그렇다면 당장에 우리가 상대할 적은 상계와 음령족인데… 문제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이때 뭔가 떠오른 엽현이 돌연 소리쳤다.
“고노!”
그의 음성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한 줄기 검광이 엽현 곁에 떨어졌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검종의 고노였다.
엽현의 모습을 본 고노는 살짝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엽현의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걸 한눈에 간파했던 것이다.
“고노, 우리에게 음령족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소?”
엽현의 입에서 음령족이란 말이 나오자 고노의 안색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를 보자 아목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잠시 후, 고노가 마침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음령족은… 매우 강한 존재들이오.”
“그건 알고 있소. 허나, 검종이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이오?”
순간 고노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엽현의 질문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