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52
1152화 어디를 칠 것인가
“그, 그렇게나 대단하단 말이오?”
무정이 다시 무창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반보 둔일이 아니다. 최소 둔일경이지.”
무정은 엽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저 녀석의 혈맥을 느낄 수 있느냐? 저건 보통 혈맥이 아니다. 육유계의 그 어떤 무인에게서도 저런 혈맥을 본 적은 없다. 게다가 그의 손안에 있는 검은 평범한 검이 아닌, 스스로 도를 깨우친 검이다. 검의 실제 주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할 수 있지. 어쨌든 검의 주인이든, 소복의 여인이든, 아니면 그 하얀 장포의 여인이든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대로 포기해야 한단 말이오?”
“…포기하지 않으면 죽을 거다.”
“…….”
무정은 성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래도 육유계는 어쨌거나 계속 생존할 순 있다. 사실 나 역시 육유계의 제도들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장치들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육유계는 오유계나 영역처럼 오유겁을 맞는 것은 아니니까.”
오유겁!
무창행의 눈빛이 가볍게 떨렸다.
“영역에도 오유겁이 닥친단 말이오?”
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것 때문에 영역이 기어코 서옥을 뺏으려 하는 것이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서옥을 빼앗아 오유겁에 대항하는 것, 다른 하나는 육유계로 넘어가는 것이지. 그들은 두 개의 선택 중 전자를 택했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엽현을 치는 것이 더 쉬워 보였거든. 하지만 지금 네가 보다시피 그건 틀린 결정이었다. 특히나 천도가 놈의 편에 선 상황에서는 더욱 어려운 상태지.”
“만약 육유계가 그 여자 검수에 의해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면, 영역은 엽현을 노리는 대신 육유계로 쳐들어 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오?”
무창행이 묻자 무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 편도 선택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설령 일부만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우주 장벽이 버티고 있는 한 쉽사리 진공하진 못할 테니까.”
“흠… 결국 저들은 다시 엽현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말로 들리는군?”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역의 실력과 저력은 육유계의 그것을 뛰어넘는 만큼 다른 마음을 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 어쨌거나 이 전쟁은 더 이상 우리가 끼어들 판이 아니란 것만은 분명하다.”
무창행의 표정이 다소 진중해졌다.
“그 말은 포기하잔 뜻이오?”
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은 없다.”
“하지만… 혹시 놈이 우리에게 진 빚을 갚으려 한다면…”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그와의 은원은 내가 책임지고 끊어 낼 테니까.”
말을 마친 순간, 무정이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두 눈을 번쩍 뜬 엽현.
그의 눈빛은 마치 불타는 바다를 보는 듯 섬뜩했다.
웃으며 먼저 말을 걸어보는 무정.
“엽 공자, 지금 그대는 이미 많은 양의 사기와 음기를 흡수했소. 하지만 그대 몸에 축적된 기운을 전부 소화하려면 몇 년이 가도 어려울 것이오. 그대가 원한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리다.”
이 말과 함께 무정이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허공을 짓눌렀다. 그러자 엽현에게 빨려 들어가던 사기와 음기가 무형의 기운에 가로막혔다.
엽현이 음령계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양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 기운을 모두 소화하는 것은 꿈에도 이룰 수 없는 일이었고, 되레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식사를 하는 것과 같아서, 조금씩 넣고 씹지 않으면 체하거나 기도가 막혀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
무정이 하려 하는 일은 간단했다. 먼저 엽현이 과식하지 않도록 양을 통제한 뒤에, 이미 흡수한 기운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때 엽현이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순간, 그의 몸 안에 잠들어 있던 사인경이 발동했다.
엽현의 육신이 강해진 지금, 사인경은 거의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사기에 특화된 사인경은 의외의 순간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시간은 조금씩 흐르고, 엽현 주변은 붉은 기운과 검은 기운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였다.
붉은 기운은 혈맥지력, 검은 것은 지금 막 흡수한 사기와 음기였다.
무정은 이 기운을 통제하여 엽현이 천천히 흡수할 수 있도록 하려 했다.
하지만 엽현의 흡수 속도는 느려지기는커녕 점점 더 빨라져만 갔다.
순간, 무정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엽현의 육신이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강력했던 것이다.
무슨 이런 몸뚱이가……
바로 이때, 한 자루 검이 엽현의 머리 꼭대기에 나타났다.
진혼검!
진혼검은 사기를 직접 흡수하진 않았지만, 그 기운은 점점 강대해져 갔다. 엽현이 흡수한 기운은 어차피 진혼검에게도 흘러들어오게 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검수와 검의 기운은 폭풍처럼 늘어만 갔다.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이 흘렀다.
음령계의 사기와 음기는 매우 희박해졌고,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갔다.
바로 이때, 무정이 돌연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엽현에게 닿으려는 찰나, 엽현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사방팔방으로 강대한 사기를 뿜어냈다.
불사 지체가 또 다른 형태로 변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정은 한동안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본 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를 제거하여 후환을 없앨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어쩐지 엽현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한편, 기운을 통제하던 무정이 사라지자, 음령계 전체의 사기와 음기가 다시 한번 폭풍처럼 엽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전체 성역의 사기와 음기는 점점 희박해져 갔다.
대략 한 시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엽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때 그의 눈동자는 온통 검은자뿐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엽현, 이때 그가 돌연 손을 들어 지면을 향해 내리눌렀다.
쾅-!
찰나의 순간, 음령계 전체가 방대한 양의 사기와 음기로 뒤덮였다.
사역(死域)!
현재까지 엽현이 펼칠 수 있는 역은 검역, 혈역, 사역, 이 세 종류다.
검역은 상대의 경지, 특히 검수의 능력을 제한하는 특성이, 혈역은 심지(心智)에 영향을 주어 이성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고, 마지막으로 지금 그가 펼쳐 보인 사역은 일정 영역에 한해 생기와 영기를 제거하고 대신 사기와 음기를 채움으로써 일종의 죽음의 땅을 형성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불사지체도 다시 한번 변이를 일으켜, 이제는 사기가 몸을 떠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해 그의 불사지체는 이미 창시자를 넘어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수만 년 동안 응집된 음령계의 사기는 결국 고스란히 엽현에게로 돌아갔다.
이때, 엽현의 눈동자를 가득 메우던 검은 기운은 이내 다시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사역조차 혈맥지력의 강성한 기운을 계속해서 누르고 있을 순 없던 것이다.
이와 함께 칠흑같이 어둡던 하늘은 점차 핏빛 바다로 변해갔다.
이때에도 그의 혈맥지력은 끝을 모르고 강해지고 있었다.
이미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상태였다.
바로 이때, 엽현의 앞에 웬 여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을 발견한 엽현은 곧바로 그녀를 향해 혈검을 내질렀다.
순간, 검끝에서 붉은 검광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튀어 나왔다.
바로 이때, 여인이 손가락 끝으로 날아오는 검광을 톡하고 건드렸다.
쾅-!
그대로 소멸해 버린 붉은 검광.
뒤이어 여인의 손끝이 엽현의 미간을 가리켰다. 순간, 엽현의 전신에 가득했던 혈맥지력이 마치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다시 원래의 눈동자로 돌아온 엽현.
잠시 엽현의 상태를 살펴본 여인은 멍하니 서 있는 엽현을 데리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과 여인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때, 검은 장포를 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빠르게 장내를 둘러 본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 * *
영역.
영역은 육유계에도, 오유계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된 공간에 존재했다.
원래 이곳의 영기는 육유계에 버금갈 정도로 농후했지만, 그것도 옛말, 지금은 오유계와 비슷한 정도로 낙후하고 말았다.
또한, 이 영역 안에는 네 개의 거대 세력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전체 영역을 나누어 지배하고 있다.
이들 세력을 열거하자면, 첫째로 음령족이다.
음령족은 반보 둔일경을 셋이나 보유한 명실상부, 영역의 패자다.
두 번째로는 태고족이다. 태고족은 비록 음령족보다 한 명 적은, 두 명의 반보 둔일경 강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귀원파계경 강자가 가장 많은 세력이다. 다시 말해, 반보 둔일경 강자끼리 겨뤄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태고족은 다른 세력들을 압도한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세력은 성당(聖堂)이다. 성당은 영역 전체에 신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일종의 거대 종교집단이다. 신자들의 숫자와 분포를 고려하면, 영역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다름 아닌 성당이었다.
마지막은 적선도(謫仙島)다. 이들은 세력이라 하기엔 다소 특수한 형태를 띠고 있다. 적선도 안에는 두 개의 종문이 공존하는데, 그 중 하나는 검을, 다른 하나는 도를 사용한다. 특이한 점은 이들 종문은 일인전승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들의 숫자는 많으면 넷, 평시에는 둘밖에 되지 않았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영역 내의 그 어떠한 세력도 적선도를 우습게보진 못했다. 그 이유는 물론 실력이었다.
* * *
음령족의 별채 안.
돌로 된 탁자를 앞에 두고 세 사람이 마주 보고 있다. 이들은 각각 음령족 족장인 소성(關聖), 태고족 족장 태고원(太古元), 그리고 성당의 교주인 필창(畢蒼)이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는 소음과 태고명, 그리고 한 여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검은 교포(教袍) 차림의 여인은 양손을 소매에 넣고 고개를 낮게 숙인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때 음령족 족장 소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현재 우리 영역엔 오직 두 가지 길뿐이외다. 하나는 모든 병력을 집결해 육유계로 진공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엽현을 죽이고 서옥을 탈취한 후, 오유겁에 대항하는 것이오. 두 분 의견은 어떻소?”
먼저 태고원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영역과 육유계 사이에는 우주 장벽이 존재하오. 게다가 매우 멀기까지 해서 그곳을 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오. 한편 엽현은 강력한 배후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소. 마찬가지로 그를 공격한다면 많은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오.”
소성이 이번에는 필창을 쳐다보았다.
“대교주,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필창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듣자 하니 엽현이란 자의 성정이 매우 포악해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고 합니다.”
필창은 비통한 표정으로 한숨까지 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 자의 통치하에 산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비통한 일입니다. 저와 성당은 응당 오유계의 생령들을 구원하는 쪽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에 태고원이 남몰래 고개를 흔들었다.
남의 집에 도둑질하러 가는 주제에 무슨 구원 운운한단 말인가.
이때 소성이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모두 같은 생각인 듯하오. 그럼 이대로 오유계로 가는 거로 합시다.”
이때, 필창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소성을 향해 공손히 예를 차리며 말했다.
“소성 족장, 나 필창 긴히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이에 소성이 당황해하며 필창을 자리에 앉혔다.
“필교주, 우리 사이에 지나치게 예를 차리는 건 옳지 않소. 할 말이 있거든 얼마든지 해 보시오.”
이에 필창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만약 우리가 오유계로 간다면, 부디 그곳의 생령들을 흡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 같은 생명일진대 함부로 짓밟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이 말에 소성의 표정이 다소 차갑게 변했다.
이건 부탁의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