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59
1159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무정을 본 순간 소성의 표정이 가볍게 흔들렸다.
“상계의… 무정?”
“후후, 음령족 족장께서 날 알아보다니. 내가 헛살진 않았군 그래.”
이에 소성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무언가 변수를 준비해 놓았을 줄은 알았지만, 상계가 엽현 편에 붙을 줄은 몰랐군. 무전주, 그대는 어찌하여 이렇게 아둔하고 우매한 결정을 내린 것이오?”
장내의 다른 무인들과 같이 엽현도 경악에 찬 표정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령족과 함께 자신을 죽이려 하던 그가 어찌하여 자신을 도우려 한단 말인가?
상계와 음령족은 한 패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윽고 무정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모두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진 못했다.
“긴말할 것 없소. 싸우러 왔으면 싸우기나 합시다!”
“휴… 정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상계 역시 엽현과 함께 사라지는 수밖에!”
이 순간, 소성의 곁에 있던 필창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무정의 신형 역시 흐릿하게 변했다.
쾅-!
정확히 두 진영의 중간 지점에서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강대한 폭발이 사방으로 파도치듯 밀려 나왔다. 이에 장내에 있던 무인들은 황급히 뒤로 후퇴해야만 했다.
콰득-!
충격으로 인해 크게 금이 가기 시작한 성역.
이를 본 엽현이 재빨리 손을 펼쳤다 접자, 그의 주변의 공간이 빠르게 원래 모습을 회복했다. 공간도칙의 힘을 사용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소성이 소매를 한 번 펄럭이자, 빠르게 갈라지던 공간이 그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흥! 무전 전주, 꽤나 하는구려!”
“하하, 이곳은 너무 좁으니 넓은 곳에서 제대로 한 판 붙어 봄이 어떻소?”
“이런 점은 마음이 통하는구려!”
합의를 본 필창과 무정은 순식간에 먼 성공을 향해 사라졌다.
두 사람이 떠나자, 소성은 다시 엽현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 더 내보낼 사람이 있느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없다.”
“후후, 이걸 어쩌나. 우리에겐 아직 사람이 많이 남아 있는걸?”
말을 하던 소성이 문득 소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도 낭자, 그대가 나 하나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나머지들까진 어찌할 수 없을게요. 그렇지 않소?”
“…겁먹은 개가 짖는다더니. 네가 딱 그 꼴이로구나.”
소도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소성이 큰 소리로 웃으며 손을 높이 들었다.
그가 막 공격 명령을 내리려는 이때, 갑자기 멀리서 십여 개의 강대한 기운이 이쪽으로 날아들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열한 명의 무인들.
그중 가장 앞에 선 중년 남자는 반보 둔일경이었고, 뒤편에 선 자들은 전부 귀원파계경 절정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뜻밖의 장면이 연출 되자 장내 무인들 모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때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인이 엽현을 향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연합전 무전의 이진봉(李塵封)이라 하오. 문전주(文殿主)의 명을 받들어 엽 공자를 돕기 위해 왔소이다!”
육유계!?
엽현은 다소 정신이 없었다.
상계에 이어 육유계가 왜 자신을 돕는단 말인가?
다른 무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소성과 마주하고 있던 소도 역시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육유계가 왜 이런 때에?
이때 소성이 이진봉을 향해 소리쳤다.
“육유계는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이에 이진봉이 소성을 노려보며 되받아쳤다.
“냄새나는 음령 따위가 수장을 맡고 있다니… 영역도 이제 볼 장 다 본 모양이로구나.”
“…….”
냄새나는 음령!
순간 영역 무인들의 표정이 기괴해졌다.
이진봉의 언행이 몹시도 언짢았던 것이다.
아목 등의 표정 역시 이상한 것은 마찬가지.
비단 육유계 뿐만 아니라, 오늘 일어난 일은 대체로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엔 상계가 나타나더니, 그 다음엔 전혀 관련도 없던 육유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다니…
모르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물론 이 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안색이 변한 것은 다름 아닌 소성이었다.
그는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어떤 변수가 있을 것을 예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이 상계와 육유계일 줄이야!
잠시 후, 이진봉을 노려보고 있던 소성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지?”
이 질문에 장내 모든 무인들이 이진봉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육유계가 왜 엽현을 돕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이다.
이에 이진봉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무슨 질문이 그리 많은가? 싸우러 왔으면 입 냄새 풍기지 말고 어서 덤비기나 하시지?”
“우하하하하!”
이 말에 소성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다! 상계도 그렇고 너희도 죽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니 소원대로 해주마!”
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소성 뒤편에 있던 흑의 노인 하나가 자리에서 사라졌다.
이때, 이진봉이 돌연 정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쾅-!
반경 수만 장 이내의 공간이 갈라져 나가면서 이진봉 역시 수백 장 뒤로 밀려났다.
반면 흑의 노인은 그 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
이 모습에 엽현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상대의 경지가 최소 반보 둔일경이란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이진봉은 잠시 흑의 노인을 응시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짐과 동시에 노인 쪽을 향해 공간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때 노인이 주먹을 가볍게 쥐고 정면으로 뻗어냈다.
보기엔 전혀 힘이 실리지 않은 일권이었지만, 그의 주먹이 닿은 공간은 허무로 변해갔다.
찰나의 순간, 사라졌던 이진봉이 천 장 뒤로 튕겨지듯 날아갔다.
이때 노인이 한 발을 크게 내디디며 엽현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이를 본 엽현은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이미 혈맥의 힘을 끌어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눈앞의 노인정도 되는 강자를 상대로는 혈맥지력 말고는 상대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막 혈맥이 개방되려는 찰나, 이진봉이 재차 그의 앞에 나타났다.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린 이진봉은 양 손바닥을 모으고는 그대로 정면을 향해 내리쳤다.
촤아악-!
그의 손이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한 줄기 거대한 힘이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쾅-!
이번에는 강렬한 힘에 가로막힌 노인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때, 노인과 이진봉의 신형이 동시에 장내에서 사라졌다.
콰쾅-!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이내 격렬한 전투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 소성이 흉악하게 웃으며 엽현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그의 음성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손에 대나무 지팡이를 든 노인이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반보 둔일경의 강자였다.
이를 본 순간, 엽현 측 진영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또다시 반보 둔일경이라니, 영역의 저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때 소성이 말을 이어갔다.
“듣자 하니 네 뒤를 봐주는 자들이 꽤나 많다더군. 예의 소복의 여인이라던지, 음령족에게 중상을 입혔던 청삼의 검수라던지… 자, 누구라도 좋으니 마음껏 불러내 보거라!”
순간, 한쪽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진봉이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소성에게 소리쳤다.
“네 놈의 머리는 정녕 장식이더냐!”
소복의 여인.
천녀를 떠올린 이진봉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당시 그녀를 막아섰던 것은 자신보다 훨씬 강했던 연합전 수호자였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던가? 그녀가 휘두른 검에 그냥 소멸해 버리지 않았던가!
심지어 찍 소리도 못하고!
소복의 여인을 불러내라고?
이진봉은 생각할수록 열이 뻗쳤다.
생각해보면 앞서 육유계의 본원이 타격을 입은 것부터 작금의 사태까지, 모두 음령족과 연관이 있지 않은가!
그런 주제에 주제도 모르고 그녀를 데려오라고 하다니, 영역뿐만 아니라, 육유계까지 파멸로 몰아넣으려 작정했단 말인가!
한편, 소음은 소음대로 이진봉이 자꾸 도발을 하자 어이가 없었다.
아까는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이제는 머리가 장식이라는 둥…
영역의 강자들이 전부 보고 있는데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야이, 육유계 썩을 자식아! 갑자기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 너야말로 정신머리를 집에 놓고 온 게 아니냐!”
소성이 참지 못하고 길길이 화를 내자 이진봉이 살기 띤 표정으로 대꾸했다.
“멍청한 놈, 너는 그 여자가 누군지 정말 모르는 것이냐?”
“흥, 인제 보니 그 여자에게 쥐어 터지고서 쥐새끼처럼 잔뜩 겁먹은 모양이로구나!”
소성의 태도에 이진봉은 화가 나기보단 다소 어이가 없었다.
“설마 너희 영역은 그녀가 두렵지 않단 말이냐?”
“하하하! 웃기는 소리 하는군! 우리가 왜 그 여자를 두려워해야 한단 말인가!”
이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이진봉이 고개를 돌려 엽현을 쳐다보았다.
“엽 공자, 그대 뒤를 봐 주고 있는 여인이 혹시 이곳에서 잠잠한 편이었소?”
이에 엽현이 주저하듯 대답했다.
“음… 오유계에서는 거의 출수한 적이 없었소.”
“…….”
엽현의 대답에 이진봉은 어찌하여 영역이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애당초 영역은 소복의 여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한 것이었다.
“아니, 그녀는 도대체 왜 조용히 지냈던 것이오?”
이진봉이 다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자 엽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나중에 오면 한 번 물어나 보시오.”
“…….”
한편,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또 한 명의 인물, 소성이 이진봉을 향해 질문했다.
“너희 육유계는 그렇게나 그 여자를 무서워하는 건가?”
“…하하. 그렇게까진 아니다. 신경 쓰지 말거라. 나도 그냥 허풍 한 번 쳐본 것뿐이니까.”
황급히 말을 얼버무린 이진봉은 곧장 흑의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차피 말해 봐야 믿지도 않을 거, 굳이 시간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앞에 서봐야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알게 되리라.
한편, 이진봉을 노려보던 소성은 다시 엽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살(殺)!”
명령이 떨어지자, 대기하고 있던 대나무 지팡이의 노인이 천천히 엽현을 향해 다가섰다.
그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성역 전체가 부르르 떨리면서, 강대한 기운이 엽현을 휘감기 시작했다.
이에 소도가 눈살을 찌푸리며 출수하려 했지만, 또 다른 기운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소성!
소도가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소성이 보였다.
“소도 낭자, 개입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게 좋을게요!”
“…….”
소도는 자리에 멈춰 선 채,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이 출수하는 순간 소성이 나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이때 죽장(竹杖) 노인은 이미 엽현에게서 백여 장만을 남겨 놓은 상태였다. 점점, 엽현의 주변으로 무형의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왔다.
엽현은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그러들었던 그의 혈맥들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바로 이 순간, 날카로운 검명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지더니, 한 줄기 검광이 엽현 앞으로 떨어졌다.
쾅-!
순간 엽현을 압박해 오던 죽장노인의 기운이 잘려 나감과 동시에, 한 여인이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아라!
폐관을 마친 아라는 이미 경지와 검도가 예전에 비해 한 단계 상승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아라와 마주한 엽현은 매우 기쁘기는 했으나, 다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역시 손이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전설 속에나 존재하던 반보 둔일경 강자와의 싸움이라니, 엽현으로서는 가슴이 매우 두근두근한 일이었다.
게다가 음령계에서 엄청난 양의 사기를 흡수한 후,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이때 아라를 본 소성의 표정이 다소 진중해졌다.
“파허(破虛)?”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라.
소성이 죽장 노인을 쳐다보자, 노인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방심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