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65
1165화 그건 나도 모른다
생각을 마친 엽현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여인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말총머리 여인은 이미 허무계의 무덤 앞에 와 있었다. 안란수와 소칠, 그리고 연만리가 폐관 중인 무덤이었다.
잠시 무덤을 응시하던 여인이 손을 들자, 손에서 빠져나온 한 덩이 빛이 순식간에 무덤 안으로 사라졌다.
순간, 무덤이 덜덜 떨리면서 안쪽에서 흘러나오던 기운이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자리를 옮긴 여인은 이번에는 묘지기 노인을 찾았다.
여인을 본 순간, 묘지기 노인은 화들짝 놀라며 공손히 예를 차렸다.
“오셨소이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
“너는 이제 자유다.”
자유!
기쁨도 잠시, 노인이 망설이며 물었다.
“고인께서는 이 늙은이의 궁금증 하나를 풀어줄 수 있겠소?”
“뭐지?”
여인의 물음에 노인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창도(槍道)의 끝에는 무엇이 있소?”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군. 당연히 창도에는 끝이 없다. 다만…”
“다만?”
“네 마음속에는 이미 너 스스로가 그려 놓은 끝이 존재한다. 오히려 이런 생각 때문에 너는 그곳에서 영원히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끝으로 여인은 돌아섰다.
묘지기 노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잠시 후, 노인은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극한!
오래전 그는 자신의 창이 극한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 때문에 극한은커녕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작은 우물에서조차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이다.
여인의 말대로 자신의 생각이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해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수 만년이 지나 깨달음을 얻은 노인은 웃는 얼굴로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한편, 다시 무덤가 앞으로 돌아온 말총머리 여인.
이때 그녀 앞에 있던 무덤이 갈라지면서 한 여인이 걸어 나왔다.
엽령!
이때의 엽령의 두 눈에선 기이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말총머리 여인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수(秀) 언니.”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
“우리가 있는 쪽으로?”
엽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 여인을 찾으러.”
그 여인!
“하지만…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는데?”
엽령이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녀의 상황은 지금 나보다 더 좋지 않을 게다.”
“하지만…”
“후후, 어쩔 수 없다. 넋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
잠시 고민하던 말총머리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바로 이때, 엽령이 갑자기 오른팔 소매를 펄럭였다.
그러자 그녀 오른쪽 공간이 찢어지면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엽현이었다.
엽현!
엽령을 발견한 엽현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령아, 너 언제 나왔… 이런….”
엽령의 눈을 본 엽현은 금세 그녀가 자신의 동생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엽령이 말했다.
“나는 이제 이 우주를 떠날 것이다. 간다는 말 정도는 해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지.”
“간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다. 나는 네 동생을 데리고 어딘가로 떠날 것이다. 문제 있나?”
순간, 엽현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대가 어디로 가든 나와는 상관없소. 하지만 령이는 여기에 남아야 하오!”
“내가 기어이 데려 가겠다면?”
여인이 대답한 순간, 엽현의 손에 진혼검이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강대한 영혼력이 엽령의 전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언제나 무적인 것 같았던 진혼검의 힘은 눈앞의 상대 앞에선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엽현이 깜짝 놀라 무어라 말하려는 이때, 반대로 강대한 무형의 기운이 엽현 주변을 에워쌌다.
이 순간, 엽현은 자신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엽현을 흘끔 쳐다 본 엽령은 그대로 돌아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 동생을 데리고 어딜 간단 말이오!”
이때 엽현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그의 몸 안의 혈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던 혈맥은 순식간에 다시 잠잠해졌다.
이에 매우 당황한 엽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연천?”
엽현이 황급히 연천을 찾은 이때, 큰언니의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네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이길 수 없다!
엽현도 본능적으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동생을 데려가려 하지 않는가!
엽현은 엽령을 노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순간 그의 머리 위에 검역과 사역이 출현했지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이내 소멸되고 말았다.
이때 떠나가던 엽령이 걸음을 멈추고서 엽현을 돌아보았다.
“달갑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큭… 누구든지 내 동생을 건드리면…”
이때 엽령이 다시 소매를 펄럭이자, 엽현을 가두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자, 어디 마음대로 해 보거라.”
엽령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 엽현은 이미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한 줄기 검광이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들었다.
하지만 벼락처럼 날아든 검은 허무하게도 여인의 두 손가락 사이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당황한 엽현이 손목을 비틀어 검을 빼내 보려 했지만, 상대에게 잡힌 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엽령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검신을 때렸다.
쾅-!
커다란 충격과 함께 수백 장 멀리 날아 가버린 엽현.
그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덤벼들려는 이때, 그의 귓가에 예상치 못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빠각-!
엽현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천주검에 크게 금이 가 있는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검을 잡고 있는 팔 전체가 거미줄처럼 갈라져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엽현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제야 상대와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아직 더 해볼 마음이 있느냐?”
“…….”
질문에 아무 대답도 없자 엽령은 다시 등을 보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엽현이 무력감에 주먹을 떨고 있는 이때, 엽령이 소리쳤다.
“불만 있으면 다른 자를 불러와도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알려주지. 네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소복의 여인을 제외하고는 날 꺾을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되었든 헛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엽현 역시 소리쳤다.
“대체 왜 내 동생을 데려가는 것이오!”
“그야 내 마음이지! 불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너라!”
이 말을 끝으로 엽령은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엽현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말총머리 여인을 쳐다보았다.
이에 여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소복의 여인이 아니면 누구도 막을 수 없지.”
말총머리 여인조차 엽령을 말릴 수 없었다.
물론 싸우려면 싸울 순 있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엽령에게 빙의한 여인에게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엽현이 이제 점이 되어 버린 엽령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엽령 안에 있는 것이 누군지는 상관없다. 하지만 누군가 엽령의 몸을 지배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게 두지 않는다!”
멀리,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엽령.
이때, 한 줄기 유광이 엽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팟-!
감히 반응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
쾅-!
유광에 직격당한 엽현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날아갔다.
천 장 멀리에 떨어진 엽현은 오장육부가 끊어지는 고통과 함께 선혈 한 움큼을 토해냈다.
인상을 쓰며 일어난 엽현이 재차 달려들려는 이때, 한 줄기 유광이 엽현 앞으로 날아들었다. 다음 순간, 날카로운 척(刺)이 엽현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량을 파고들고서 멈춘 척.
이마 사이에서 흘러나온 선혈은 금세 엽현의 얼굴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이제 네가 얼마나 약한지 알겠느냐?”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어두운 성공 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누군가의 음성이 말총머리 여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너희는 저 아이에게 너무 인자한 것 같군.]이 말에 여인은 그저 침묵했다.
한편, 엽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어두운 성공을 노려보았다.
그의 미간 사이에는 여전히 한 자루 척이 박혀 있는 상태.
이때 말총머리 여인이 엽현 곁으로 다가왔다.
“걱정할 것 없다. 네 동생을 해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을 마친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사라져갔다.
이때 엽현이 거칠게 척을 잡아 뽑고는 어디론가로 걸음을 옮겼다.
“이놈아, 그건 남의 물건이다!”
“흥! 지금은 내 것이오!”
돌아온 대답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 놈, 마음 참 넓다.”
말투와는 달리 엽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엽령이 했던 말에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하건만, 엽현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스스로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어 보는 것.
이는 보통의 무인이라면 쉽지 않은 것이었다.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여인.
바로 이때, 그녀 앞에 또 다른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다름 아닌 천도였다.
“안녕하시오!”
천도가 먼저 웃으며 인사하자, 말총머리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지?”
“한 가지 일을 상의하러 왔소.”
두 사람은 무언가 열심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대화가 끝난 후 여인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도 그 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천도는 결과에 만족했는지, 웃는 얼굴로 자리를 떠나갔다.
* * *
무족으로 돌아온 엽현은 곧장 처소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엽현은 곧장 침대에 걸터앉아 얼마 전 획득한 척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척의 손잡이 부분에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황천(黃泉).
최근 들어 엽현은 스스로가 강해졌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반보 둔일경이었던 소성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으니까. 특히 그의 강대한 육신은 오유계의 그 누구도 깨뜨릴 수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신비한 여인 앞에서 이런 생각은 모두 망상에 불과했음이 판명 되었다. 분명 그의 육신은 이쪽 우주에서만큼은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범위를 이 우주 바깥으로 넓힌다면?
이 일을 계기로 엽현은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적은 오유계나 육유계에 있기도 하지만, 그 외의 우주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에 생각이 미치자,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뱉었다.
“제기랄! 이건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구나!”
잠시 후, 화를 가라앉힌 엽현은 이번에는 서옥을 꺼내 들었다.
만유서옥.
현재 그에게 닥치는 모든 위기는 전적으로 이 만유서옥으로 인한 것이라 해도 무방했다.
도대체 선각자가 상계에서 가지고 내려온 이 물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이때, 도칙들의 큰언니가 엽현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엽현은 대뜸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대라면 알고 있겠지? 이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이에 큰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안에는 선생의 인생과 내력, 그리고 필생의 심혈이 담겨있다.”
“선각자의 내력은 도대체 무엇이오?”
큰언니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
“네가 서옥을 개방할 수 없음은 분명 때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께서는 분명 이런 점까지도 안배해 놓으셨을 테지. 그러니 열지 못한다 해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서옥을 개방하면 선생의 모든 것이 밝혀진다. 이는 너에게도 썩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어째서 말이오?”
“한 번 생각 해 보거라. 선생께도 살아생전에 수많은 적이 있었다. 선각자의 전승자인 네가 서옥을 여는 순간, 그의 수많은 적들과 인과가 전부 네게 전가 될 것이다.”
이때 엽현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제기랄! 누구 마음대로 전가한다는 거요! 내가 뭘 어쨌다고! 안 해! 빌어먹을, 안 한다고! 도대체 내가 왜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져야 하는 거냐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