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68
1168화 반항하면 죽습니다
어느 성역, 빠르게 걸음을 떼고 있는 천도.
그녀는 최근 들어 일이 많아졌다.
오유겁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천녀가 이곳에 있을 땐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웬만한 일은 그녀가 알아서 쓱싹 처리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떠난 후로 오유계는 어쩐지 예전보다 더욱 어수선해져 있었다.
때문에 천도 역시 덩달아 바빠진 것이었다.
“제기랄, 말년에 왜 이런 시련이….”
이때 헐레벌떡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자리에 멈춰 서더니,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볍게 매만졌다. 그러자 공간이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엄청난 양의 실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과선(因果線)!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이 선들은 모두 엽현의 것들이었다.
눈앞의 인과선을 바라보며 천도가 점점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인과선의 수가 예전보다 더 많아짐은 물론 더욱 선명해져 있던 것이다!
바로 이때, 그녀의 곁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자는 어찌하여 이 선들을 제거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하면 그 녀석이 죽을 테니까.”
“어째서?”
정체불명의 존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후후, 이는 인간들의 몸에 자라라는 종양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들을 억지로 잘라내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오히려 이른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흠….”
“이 세상에 이 인과선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엽현 자신뿐이다. 오직 그만이 이것들을 없애거나 바꿀 수 있지.”
“그 녀석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인가?”
“개뿔, 절대 불가능하지.”
“…….”
“하지만…”
천도가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잘라내는 것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렸다.”
“음? 그게 무슨 뜻인가?”
“훗, 종양을 제거하기보다는 그것과 같이 살 생각을 했다는 거다. 그가 지금 하려는 것은 인과나 운명에 거스르지 않고 그것들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즉, 그가 하려는 것이 곧 인과가 원하는 것이라는 소리지. 이런 상황이라면 인과 역시 그를 해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지하는 쪽으로 선회하지 않겠나?”
엽현을 떠올린 천도가 문득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재밌는 녀석이란 말이야.”
“흠… 만에 하나 둘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 질문에 천도가 혀를 쯧쯧 차며 대답했다.
“그런 게 뭐가 궁금해?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지.”
“그렇지 않다. 불씨가 남아있는 한 불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하하, 네 말도 맞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한 번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야.”
“너 같이 총명한 자도 방법이 없단 말인가?”
이 말에 천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도 그렇고, 다들 내가 무슨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내가 보기엔 그렇다.”
“정말?”
“그래.”
상대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자, 천도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말은 고마운데 그놈에게 붙어있는 인과는 도저히 내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허나…”
“허나?”
“조금의 변화는 줄 수 있지.”
“변화?”
“하하하! 예를 들어 머리에 자라나는 종양을 엉덩이로 바꿔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
말을 마친 천도는 뭐가 재밌는지 낄낄거리며 자리를 이동했다.
잠시 후, 그녀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천도 전당포였다.
마침 전당포 안에는 소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천도가 들어온 것을 보자 소도는 인사도 생략한 채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왔다 갔는가?”
“왔다 갔지.”
“그래서? 돌려보냈나?”
천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 두 주먹으로 돌려보내 버렸지! 어때, 감동했어?”
“쓸데없는 짓을… 스스로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됐군.”
소도가 말한 ‘그들’이란 다름 아닌 마도가를 의미했다.
마도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소도가 유일하리라.
이때 천도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있잖아, 내가 너희 마도가에 장난을 조금 쳤는데 화내지 않을 거지?”
이에 소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멍청한!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하하하, 지금 보니 나를 걱정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걱정 말거라. 나 역시 너희 마도가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당분간은 나를 찾아오진 않을 거다.”
소도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어째서?”
“히히,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을 찾아갈 거거든!”
“…아직 이해를 못 하겠군. 도대체 누구를 찾아간다는 거지?”
천도가 하하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못들은 걸로 해. 오늘은 그것보다 다른 일로 방문한 거니까.”
“무슨 일?”
“먼저 약속해. 화내지 않기로.”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말해!”
이에 천도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혹시 혈맥돌파를 하고 싶은 생각 있나?”
“혈맥돌파? 그게 무슨 말이지?”
“하하,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혈맥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단 말이지.”
순간, 소도의 눈빛이 번뜩였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건가?”
“물론이지!”
“…최소 십만 년 이내에 우리 마도가에서 혈맥돌파에 성공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설령 비교적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는 나조차 상상도 못 할 일이지. 그런데 네가 마도혈맥을 돌파하게 해준다고?”
마도혈맥!
소도가 있던 세계에서 마도혈맥은 당당히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막강한 혈맥이었다. 패도하기로 유명한 마도혈맥의 존재는 당시 마도가가 전 우주를 호령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기도 했다.
마도가의 적자들은 모두 이 마도혈맥을 물려받게 되고, 혈맥이 개방되었을 때 보통의 무인의 최소 수십 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대를 이어오면서 혈맥은 점점 강해져만 갔고, 후대에 이르러서 선조들이 이미 강화시켜 놓은 혈맥을 돌파하는 이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천도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가능하다고 하니, 소도로서는 쉽게 믿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천도라면 뭔가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도가 진중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거짓말이나 농담하는 게 아니다.”
“한번 들어나 보지.”
“좋아. 하지만 그 전에 약속해. 절대 화내지 않기로.”
“…약속한다. 화내지 않는다고.”
이에 천도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이미 엽현의 혈맥에 대해 알고 있겠지?”
“물론이지. 그의 혈맥은 우리 마도혈맥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다.”
“그렇군. 그럼 가감 없이 말하지.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바로… 너와 엽현이 결합하는 것이다.”
“결합?”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혈맥 간의 결합이지. 두 개의 강력한 혈맥이 서로 만난다면 반드시 마도혈맥을 타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혈맥이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녀가 한 방에… 아, 잠깐. 화내지 않기로 했잖아? 일단 할 말이 남았으니 주먹은 내려놓고… 헤헤. 아니, 이봐. 한 번 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어허, 이 사람 성질은 참……”
잠시 후.
천도 전당포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무변지하성 전체가 무너질 듯 흔들렸다.
* * *
한편 엽현이 위치한 성역 한복판.
이때의 엽현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상태로, 그의 몸 주변에선 검의와 검기가 끝도 없이 증폭되어갔다. 이와 함께 선명하던 우주 공간이 이미 상당히 희미해진 상황.
이 기세에 압도당한 필창과 아목은 아예 멀찌감치 물러나 엽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필창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본능적으로 엽현의 돌파가 임박했음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아목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이번에 영역에 간다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으로 무엇을 꼽겠소?”
씩씩하게 엽현을 따라나선 아목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다소 걱정스러웠다.
직감적으로 이번 영역 방문이 평탄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흠, 그건 엽 공자가 그곳에서 뭘 하려 할지에 달려 있소.”
“영역에는 아직 많은 고수들이 남아 있겠지 말이오?”
필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단연 적선도의 두 사람이오. 적은 수지만 매우 강하지.”
적선도!
아목이 무언가 더 물어보려는 이때, 저 멀리 엽현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이와 함께 사방에 휘몰아치던 검의와 검기가 마치 썰물처럼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주변의 성공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기운을 갈무리한 엽현.
이때 그의 손안에 천주검이 쥐어졌다.
손을 타고 밀려드는 강렬한 검의.
엽현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범검 제 삼중(三重)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이로써 엽현의 검도는 이쪽에서만큼은 최고 단계에 이르렀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가 되었다.
왜냐하면, 오유계 내에서 범검 제 삼중을 뛰어넘은 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그의 경지 또한 드디어 주재경에 도달했다.
하나의 깨달음으로 검도와 경지의 돌파를 동시에 이룬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엽현은 다소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이때, 필창이 웃으며 다가왔다.
“엽 공자, 새 경지에 이른 것을 축하드리오!”
정신을 차린 엽현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모두 필창 교주가 염려해 준 덕분이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귀원파계경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나, 이 반보 둔일이라는 건 도대체……”
엽현이 말끝을 흐리자 필창이 웃으며 대답했다.
“반보 둔일이란 사실 귀원파계경의 끝에 해당하는 것이오.”
“끝? 그게 무슨 말이오?”
필창이 침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둔일경, 이는 도(道)를 벗어났다는 뜻이오. 하지만 반보 둔일은 여전히 도 안에 위치하면서 운명의 간섭에서 탈피하지 못한 상태요. 즉, 반보 둔일경은 엄밀히 말해 귀원파계경의 절정에 해당하는 것으로 진정한 둔일경과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소.”
필창은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전에 우리는 반보 둔일경 몇 명이 모이면 둔일경과 상대가 될 줄로만 알았지만, 이는 망상에 불과한 것이었소. 상대가 진정한 둔일이라면 반보 둔일이 몇 명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소. 왜냐하면, 이미 상대는 다른 차원에 있기 때문이오.”
필창의 이와 같은 고백은 경험에 기인한 것이었다.
당시 말총머리 여인의 경지는 최소 둔일이었다. 그런 그녀를 상대로 소성과 태고원은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으니까.
더욱 충격적인 것은 상대는 본체도 아닌 고작 하나의 분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당시 소성 등과 함께 둔일경과 맞서려 계획한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던가!
한편 필창의 설명을 들은 엽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반보 둔일과 둔일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니, 이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던 것이다.
둔일?
엽현은 문득 고개를 들어 끝없이 펼쳐진 성공을 바라보았다.
도에 속하지 않고 운명에도 귀속되지 않는 경지.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엽현은 당시 천녀에게 이 것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이 다소 후회스러웠다. 그녀가 곁에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엽현이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럼 가 봅시다!”
엽현의 구령 하에 세 사람은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빠르게 신형을 날린 세 사람은 드디어 영역의 변경에 도달하게 되었다.
엽현이 막 영역 안에 발을 디뎠을 때 필창이 물었다.
“엽 공자, 이제 말 해 주시오. 도대체 이곳에서 뭘 하려는 것이오?”
“내가 뭘 하려느냐고? 아주 간단하오!”
엽현이 멀리 영역의 한복판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살려주고, 반항하는 자는 죄다 죽일 것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