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미안한데 안 들을래!
묵운기가 시험을 감독하는 사이 엽현 일행 나머지 세 사람은 창란전으로 들어왔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엽현이 정면의 기안지를 향해 말했다.
“안지, 내가 취선루에 주방을 맡을 사람을 보내 달라 요청했어. 그 사람이 오면 네가 담당해 줬으면 해.”
기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때 백택이 물었다.
“엽 강도, 학생들을 위해 허드렛일 할 사람을 불러야 할까?”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청소나 빨래, 기타 등등 잡일은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해. 저들은 이곳에 수련하러 온 거지 즐기러 온 건 아니잖아?”
“네 말이 맞아.”
엽현이 다시 백택에게 말했다.
“참, 얼마 후면 학생들을 가르칠 학사들이 오게 될 거야. 그들은 무공이 강하진 않지만, 학식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더 뛰어나니 반드시 예를 갖추고 대우를 해 줘야 해. 그에 대한 일은 네게 맡길게. 그리고 묵운기에게도 말해서 만약 학사들을 무시하거나 하는 학생들은 즉시 퇴학 조치해야 할 거라고 알려줘. 퇴학당한 학생들은 재입학도 불허 할 거야.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 또한 그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백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무도를 배우기에 앞서 먼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해. 우리도 마찬가지야.”
백택이 잠시 머뭇거리다 운을 뗐다.
“엽 강도, 그런데 지난 번에 말했던 창란학원을 청창계에서 가장 큰 학원으로 만든다는 말 진심인거야?”
“물론!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백택이 엽현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거면 크게 하자!”
기안지가 의기투합하는 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 *
밤이 되었다.
시험은 이미 마무리되었다. 세 개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 자들은 총 42명이었다.
묵운기가 합격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42명의 학생들이 일제히 엽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원장을 뵙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창란학원에 입학하게 된 걸 환영한다. 지금부터 이곳은 너희의 집이다. 원규(院規)는 조만간 제정될 예정이니 우선은 각자 알아서 주의하도록 해라. 사부는 나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다. 앞으로 점차 충원될 예정이니 당분간은 네 명의 사부들과 수련에 임해주길 바란다.”
그의 말에 학생들은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엽현이 백택을 바라보며 물었다.
“학사들은 아직이야?”
바로 이때, 어둠 속에서 세 개의 그림자가 나타나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노인 두 명과, 바퀴 의자를 탄 검은 치마의 여인이었다.
국사(國師) 육구가였다.
그녀가 나타나자 엽현이 어리둥절해하며 그녀를 향해 나아갔다.
“육 국사, 이곳엔 어쩐 일로?”
“내가 와서 방해라도 된 것이오?”
“하하, 물론 육 국사는 언제라도 환영이오! 허나… 혹시 창란학원의 사부가 되고자 온 것이라면 현재 우리가 보수를 넉넉하게 줄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소.”
“상관없소.”
육 국사가 두 노인을 소개했다.
“이쪽은 묵원(墨元), 이쪽은 봉남(封嵐) 선배시오. 두 분 모두 학술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한 분들이오.”
엽현이 황급히 묵운기 등 세 사람을 데리고 두 사람의 앞으로 와 예의를 차렸다. 그 모습을 보자 두 노인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네 사람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 선배와 육 국사께서는 학술과를 맡아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무엇을 가르칠지는 여러분께 일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묵원이라는 노인이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물었다.
“노부가 질문이 하나 있소.”
“무엇입니까?”
“내가 알기론 창목학원과 창란학원은 이미 수백 년 전에 학술과를 폐지했는데, 원장께서는 어째서 학술과를 신설하게 된 것이오?”
엽현이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사람을 실력으로만 평가할 순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물론 실력도 중요하지만, 사람 됨됨이를 놓치고 갈 순 없습니다.”
이에 묵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보기 드문 마음가짐이구려…….”
엽현이 세 사람을 향해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창란학원이 재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아무쪼록 세 분께선 이 점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묵운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문제 될 것 없소. 단지 서적에 관해서…….”
“걱정 마십시오! 제가 이미 취선루에 각종 서적을 모아 달라고 부탁해 놓은 상태입니다. 만약 필요하신 책이 있다면 취선루를 통해 부탁하시면 될 것입니다!”
묵원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럼 더할 나위 없소!”
엽현이 세 사람을 학생들 앞으로 데려가서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세 분은 앞으로 너희들에게 학문을 전수해주실 학술 사부님들이시다. 만약 두 번 이상 학술시험을 낙제하게 되면 창란학원에서 추방되어 다시는 입학할 수 없다!”
‘학술과라고?’
학생들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불만 있는 자는 앞으로 나오도록!”
“…….”
‘역시 엽 강도……, 사람 협박하는 재주는 타고났다니까!’
묵운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순서를 진행하려 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나섰다.
“문제 있소!”
장내에 울려 퍼진 소리에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니, 네 명의 무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중 가장 앞에 선 자는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있었다. 비단 옷의 허리춤에는 매끈한 백옥(白玉)이 달려 있었다.
엽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자가 엽현을 비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창란학원의 원장이란 작자는 장님이었군. 방금 문제 있냐고 물었을 때 내가 이미 손을 들었는…….”
남자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왜냐하면 엽현이 원래 있던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남자가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려 할 때, 날카로운 검이 날아와 그의 미간 사이를 꿰뚫었다.
학생들 모두 그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에게서 검을 회수한 엽현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 있나? 미안하게 됐군. 지금은 듣고 싶지 않아.”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장내가 고요해졌다.
학생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멍하니 엽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패도할 수가!
그와는 정반대로 백택과 묵운기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누구보다 엽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그들이었다. 엽현의 성격은 굉장히 극단적이었다. 호의적인 사람들에게는 그 역시 좋게 대하지만, 적대적인 자들에게는 눈도 깜짝 안하고 목을 베곤 했다.
묵원과 봉남은 엽현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을 집어넣은 엽현이 나머지 세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들이 깜짝 놀라 미친 듯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사, 사람을 이렇게나 쉽게 죽이다니…’
‘잘못 건드렸나…?’
중요한 건 사람을 죽이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엽현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너희 셋, 문제라도 있나?”
엽현은 살인귀는 아니었다. 단, 눈앞에 나타난 자들은 결코 우호적인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코 손속에 사정을 봐주어선 안 된다!
엽현의 질문을 받은 세 사람의 눈동자가 마치 악마라도 본 듯이 흔들렸다.
이때 그중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 넷은 초나라 사람이오. 이번에 이렇게 찾아온 것은 그대에게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였소. 당시 비경에서… 우리 삼 황자를 죽인 것이 그대였소?”
‘초국의 황자라고?’
엽현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무언가 생각했다.
‘맞아! 그때, 그 은갑을 입은 남자!’
그때 일이 기억이 나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죽였다. 무슨 문제라도?”
세 사람의 안면 근육이 연신 씰룩거렸다. 겉보기에 어떤 행동이나 언사를 참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이내 신형을 돌려 장내를 빠져나가려 했다.
“잠깐!”
세 사람의 표정이 굳으며 제자리에 멈췄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엽현이 시체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이 보였다.
“치워!”
세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시체를 들쳐 매고는 모두의 시선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상황이 정리되자 엽현이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무공 연마도 게을리하지 말도록! 이상!”
이 말을 마친 엽현이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 바빴다.
“지나치게 난폭하군.”
봉남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봉남이 고개를 돌리자 육 국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상대에게 겁을 준 것입니다.”
“겁을 주었다?”
봉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가 보기엔 공연히 적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만…….”
육구가가 웃으며 대답했다.
“엽현은 분명 취선루로부터 저 네 사람의 신원을 전달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저들의 방문이 결코 좋은 의도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었겠지요. 때문에 엽현 역시 가장 강경한 방식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것을 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배후에는 검선이 있는데 초국이 미쳤다고 그를 건드리려 하겠습니까?”
“그의 배후에 검선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강로(姜老), 구 루주 그리고 암계와 창목학원 정도입니다. 그 외에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자들은 모두 죽었지요.”
그 말에 봉남이 침묵했다.
“두 분, 그대들의 유가(儒家)는 그날 이후로 청창계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두 분께서 유가를 다시 일으키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오래된 관념과 생각들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엽 원장과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 되겠지요.”
순간 봉남과 묵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육구가가 바퀴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었다.
“엽현은 진심으로 창란학원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단지 무공의 증진만이 아니라는 점은 두 분께 분명한 기회일 것입니다.”
묵원이 육구가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습니까? 그대들 병가(兵家)는 무얼 도모하는 것입니까?”
육구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창란전 내.
엽현 일행 네 사람이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엽현은 골똘히 무슨 생각이라도 하듯 말없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침묵을 깬 것은 묵운기였다.
“저 두 학사들은 결코 보통 인물들이 아니야.”
묵운기가 백택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저런 자들을 어디서 찾아온 거야?”
“육 국사가 도와줬어.”
“엽 강도, 너는 어떻게 생각해?”
묵운기의 질문을 받은 엽현이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변할 건 없어. 우리는 그저 심안을 열어 두고 일을 진행하면 돼.”
묵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 말대로 하자.”
“아 그리고, 오늘 이후로 우리 네 사람이 돌아가면서 학생들에게 수련 지도를 하게 될 거야. 그리고 학생들에게 나눠줄 자원의 분배는 안지가 맡아서 해 주면 고맙겠어.”
엽현이 말하자 기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운기와 백택, 현재 너희들은 통유경에 이른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당분간은 기초를 다지는 데 힘을 쏟도록 해. 신합경에 이르기까지 할 일이 많아.”
“알겠어.”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반년 내, 대운제국. 일 년 내, 사조(師祖)가 있는 중토신주까지! 할 수 있겠지?”
묵운기가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사조에게 가서 그저 절만 한 번 올리면 되는 거야?”
엽현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 전에 한 판 신나게 싸워야 할 거야!”
“하하하! 그렇다면 먼저 청주를 치고 그다음에 중토신주를 정벌하는 것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