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90
1190화 미안해
소령!
소음의 표정이 점점 기괴해졌다.
소령을 생각하면 꽤나 머리가 아팠던 것이다.
누구를 닮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이 소음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소령이 있으니 영기에 대해선 크게 신경 쓸 일 없을 것이오. 문제는 진법을 설치하는 일인데… 오유계 전체의 힘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단단해야 하니 녹록지 않을 것 같소.”
“그 일은 내가 맡아서 하겠소.”
소음의 대답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대만 믿겠소.”
이때 소음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엽현을 보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그대가 할 일은 크게 두 가지가 있소. 첫째는 무조건 더 강해지는 것이오. 최소 반보 둔일 정도로. 그래야만 둔일경 강자들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오. 두 번째는… 육유계에 연락을 취하는 것이오.”
육유계?
“그들과 손을 잡으라는 소리요?”
소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진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그들 역시 도계와 적이 되는 것보다 관망하는 편이 안전할 테니 말이오. 하지만 그대가 직접 나선다면 상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소.”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택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육유계와 엽현은 이미 관계를 다져 놓은 만큼 어쩌면 반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에 생각이 미친 엽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당장 방문해 보도록 하겠소.”
소음이 고개를 끄덕이자, 엽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 홀로 남은 소음.
그녀의 눈빛은 다소 복잡했다.
엄밀히 말해 엽현은 자신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음령족 족장뿐 아니라 수많은 강자들이 엽현의 손에 쓰러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감히 복수를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 아니, 음령족 전체가 멸망하고 말 테니까.
더불어 지금 당장 음령족이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엽현에게 철저히 협력하는 길뿐이었다.
이때, 소음의 뒤에 노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리 봐도 네가 소성보다 족장의 자질이 있구나.”
노인의 말에 소음이 고개를 저었다.
“노사(老師),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음… 그건 그렇지. 가장 좋은 건 처음부터 저놈을 건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 잠재력이나 특히 배후의 있는 자들을 생각한다면.”
소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원한은 접어두고서 오유겁을 넘길 생각만 해야 합니다. 일단은 살고 봐야 하니까요.”
“맞는 말이다만, 정말로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겠느냐?”
“그래선 안 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음령족은 영영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굳이 소복의 여인이 아니더라도 엽현의 힘만으로 얼마든지 음령족을 멸망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적선도의 두 여인마저 엽현의 편이 된 지금, 음령족에게는 기회가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뒤에는 또 아라와 같은 강자들이 버티고 있지 않은가.
이때 소음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노사,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진법사와 영진사들을 모아 주십시오. 오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 합니다.”
“그러지.”
노인은 대답과 함께 다시 홀연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문밖을 나선 소음.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들이킨 그녀는 문득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거스를 수 없다면 웃으며 마주하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 * *
허무계를 떠난 엽현은 곧장 육유계의 장벽 앞에 이르렀다.
장벽 너머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를 향해 서 있었다. 남자는 무전의 이진봉, 여인은 문전의 문소약이었다.
문소약이 먼저 웃으며 엽현을 반겼다.
“엽 공자, 반갑소.”
“문 전주, 처음 뵙겠소.”
“엽 공자, 고사가 이미 하계로 향했다고 하오. 조심하셔야 할 것이오.”
엽현이 가볍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고사?”
문소약이 고개를 끄덕였다.
“육유계 내에서 가장 신비한 세력이오. 소문에 의하면 선각자… 아니, 엽청지가 그곳에 있었다가 빠져나왔다 하오. 그대는 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고사는 분명 엽 공자를 찾아가려 할 것이오.”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각자가 싸질러 놓은 똥이 또 있었다니!
“참, 그런데 오늘 여기는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문소약의 말에 엽현이 정신을 차리고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문 전주, 우리 동맹을 맺읍시다!”
“동…맹?”
순간 문소약의 표정이 매우 진지하게 변했다.
솔직히 말해 육유계는 엽현과 손을 잡을 이유가 없었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 있는 엽현과 동맹을 해서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엽현과 불편해지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계와 고사를 적으로 삼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 아닌가!
문소약의 표정을 본 엽현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말을 잘못했소. 동맹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약간의 조력을 구하는 걸로 하면 어떻겠소?”
이 말에 문소약의 표정이 다소 밝아졌다.
“좋소!”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만이라면 엽현과의 인연도 이어가면서 전란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있으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우리 육유계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소?”
“현재 오유계는 진법사, 영진사, 연단사(煉丹師) 그리고 주기사(鑄器師)가 필요하오. 또한 가능하다면 육유계에 살고 있는 영물과 영맥도 빌리고 싶소.”
“그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오?”
문소약의 질문에 엽현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훗날 서옥을 열어서 만약 도경이 나온다면 그대와 나누도록 하겠소.”
도경!
순간 문소약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됐다.
“그 말… 진심이오?”
“물론 진심이오.”
도경?
엽현에게 있어 도경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수련하는 것은 검이지 무슨 경전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검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한 자루 검과 자신을 믿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천녀를 통해서 굳이 신물이 아니더라도 무적에 가까울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였다.
설령 외물을 이용해 강해진다 해도, 그것은 결국 진정한 강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도경을 자신의 친구들이나 도움 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문소약이 아무 대답도 없자 엽현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전제는 정말로 도경이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오. 만약 들어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보여주겠소. 나 엽현,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오!”
이에 문소약이 웃으며 대꾸했다.
“엽 공자, 도경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는 있소?”
“하하, 그런 건 잘 모르오. 알고 싶지도 않고. 어쨌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소?”
이에 문소약이 미소를 지으며 뒤쪽의 이진봉을 돌아보았다.
“그대는 가서 엽 공자가 원하는 것을 준비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아, 잠깐.”
문소약이 돌아서려는 이진봉을 다시 불러 세웠다.
“무전의 무인 몇 명도 같이 내려 보내주면 고맙겠소.”
“그리하겠습니다, 전주.”
이진봉이 물러가고 문소약은 다시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우리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라는 걸 이해해주면 고맙겠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소. 그리고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오.”
“도움이 된다니 다행이구려. 그럼 몸조심하시오. 또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 알려 주겠소.”
“고맙소!”
엽현이 포권을 취하자 문소약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엽현.
잠시 우주 장벽 너머를 응시하던 그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사, 도계… 어디 재밌게 한판 벌여보자꾸나!”
* * *
도계.
마도가로 돌아온 소도는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정돈을 시작했다.
마도가의 상태가 말이 아닌지라 해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바쁜 나날을 보내던 중, 한 남자가 마도가를 찾았다.
제언(帝言).
제족 최고의 기재이자, 소도의 정혼자!
제언은 세 명의 둔일경 강자도 대동한 상태였다.
이 정도의 위용이라면 현재의 마도가는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잠시 후.
제언은 마도대전의 대문 앞에서 오랜만에 소도와 재회할 수 있었다.
“소도 낭자, 얼굴이 많이 상했소. 그곳에서 고생이 많았던 모양이구려.”
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은 좀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소. 덕분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 사람?”
순간 가늘어진 제언의 눈빛.
소도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엽현, 오유계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무인이오.”
“최고의 기재?”
잠시 멍하니 있던 제언이 돌연 크게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이때 소도가 정색하며 말했다.
“웃지 마시오. 그를 한 번 만나게 되면 그대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하하하! 정말 그리될 것 같소?”
“도계의 어떤 천재라도 그의 앞에서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소.”
한편 소도 뒤편에 서 있던 마종은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아무리 그래도 도계 전체와 비교하다니…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이때 제언이 웃으며 대꾸했다.
“소도 낭자. 그대가 그렇게 말하니 참을 수가 없구려. 안 되겠소! 내 직접 그 남자가 그렇게 대단한지 확인해 봐야겠소! 부디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오! 하하하!”
말을 마친 제언은 세 둔일경 강자를 데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보자 소도는 잠시 침묵했다.
이로써 또다시 천도의 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잘 이용하다니.
혹시 천도는 악마의 현신인 게 아닐까?
이때 소도가 한쪽 허공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미안해.”
이 말은 물론 오유계에 있는 엽현에게 하는 것이었다.
엽현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마도가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엽현을 팔아먹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소도의 생각을 읽은 마종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너무 생각이 많을 필요 없습니다. 엽 공자는 아가씨의 배필이기도 하니 아가씨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설령 솔직히 말했다 하더라도 공자의 성품상 자신이 책임지려 했을 것입니다.”
소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한 마음만 늘어 날뿐.
심지어 자신은 그의 여인도 아니지 않은가!
소도는 밀려드는 무기력함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때였다.
“아가씨, 그것보다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그들이 소복의 여인을 찾아 나섰다 합니다.”
“그들이라면…?”
소도가 눈썹을 치켜세우자 마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족입니다.”
이 말을 듣자 소도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축하할 일이로군… 부디 그녀를 찾을 수 있기를 전심으로 기원해야겠소!”
“…….”
* * *
어느 깊은 성공 속.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는 소복의 여인.
이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의 걸음이 느려졌다.
마침내 제자리에 멈춘 여인은 문득 한쪽 공간을 응시했다. 하염없이 그곳을 바라보던 여인의 입가에서 갑자기 차가운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 순간, 그녀가 있는 공간은 마치 얼음 동굴처럼 차가운 한기가 서렸다.
여인이 분노한 것일까?
바로 이때, 웬 중년 남자 하나가 여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의 정체는 바로 제족의 족장 제임연이었다.
제임연은 양손을 뒤로 한 채 여유로운 표정으로 여인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첫 손님인 것 같구려.”
이때 허공을 응시하던 여인이 고개를 돌려 제임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
제임연은 거침이 없었다.
“한 가지 묻겠소. 그대… 도경을 보았소?”
“…….”
대답 없는 여인.
이에 제임연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도망칠 생각을 하고있는 것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소. 듣자 하니 중상을 입었다던데, 그 몸으로 내게서 도망칠 순 없을 테니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