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92
1192화 어리석었구나
오유계.
커다란 대전 안에 천명도 넘는 인원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오유계, 육유계 각지에서 몰려온 진법사와 영진사들!
오늘 이 자리에 각 시대와 지역, 문파를 대표하는 진법사와 영진사들이 죄다 모인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역사상 전무후무할 강력한 진법을 구축하는 것이다.
오유대진(五維大陣)!
이 자리에는 엽현 역시 참석하고 있었다. 진법의 핵심인 엽현은 다양한 질문들에 답하며 진법사와 영진사들의 이해를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있는 이가 있었으니.
이진천(李陣天)이라는 노인이었다.
그는 육유계를 대표하는 진법사였다.
문소약의 명을 받고 파견된 이진천은 장중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진법에 대한 조예가 가장 뛰어났다.
때문에 진법에 대한 토론도 자연스럽게 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때, 이진천이 질문세례를 받고 있던 엽현에게 다가왔다.
“엽 공자, 잠시 독대할 수 있겠소?”
“물론이오!”
엽현이 웃으며 승낙하자 이진천은 그를 데리고 대전 밖으로 나갔다.
엽현과 단둘이 마주하게 된 이진천은 그 표정이 사뭇 진중했다.
“엽 공자, 진심으로 진안(陣眼)이 될 작정이오?”
“이 선생, 무슨 문제라도 있소?”
이진천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진법의 형태는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요. 오유계 전체의 힘을 모아놓는 것이라, 완성할 수만 있다면 오유계와 육유계를 통틀어 최강의 진법이 될 것이오. 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소. 아무도 이 진법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오.”
이진천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엽 공자, 노여워하지 말고 들으시오. 현재 그대의 실력으로는 이 진법의 힘을 감당할 수 없소.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져 죽을 것이오!”
“흠… 혹시 진안 없이 진행할 수도 있소?”
이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은 하지만 그리되면 위력이 현저하게 줄 수밖에 없소. 진법은 결국 진안이 있어야만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니까!”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진안이 있는 형태로 진행해 주시오. 내 생각엔 견딜 수 있을 것 같소.”
“엽 공자, 진법을 견디기 위해서는 강력한 육신뿐 아니라, 강대한 영혼도 필수적이오. 내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인데… 자칫 잘못하면 영혼이 소멸할 수도 있소.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소?”
이에 잠시 고민하던 엽현이 불현듯 한 자루 검을 꺼내 들었다.
검을 본 순간, 이진천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천지의 기운을 담고 있는 검… 혹시 오유계 천도와 관련이 있는 신물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녀가 정말 그대에게 주었단 말이오?”
엽현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검이 있는 한, 천지의 기운은 모두 내 것이오.”
“그렇다면… 무슨 의미인지 알겠소!”
엽현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본 이진천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천도검!
천도검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 원할 때면 천지지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지지력은 오직 천도만이 다스릴 수 있다는 거대한 자연의 힘!
간단히 말해, 천도검의 천지지력과 엽현의 단단한 육신이라면 진법의 힘을 견뎌내는 것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홀로 남은 엽현은 한동안 말없이 천도검을 응시했다.
그동안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천도검!
이때 뭔가 떠올린 엽현이 한쪽 성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 여자는 도대체 또 어디서 무슨 음흉한 짓을 하고 있을까?”
오유계의 천도, 막념.
엽현은 이 여인에 대해 존경과 동시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존경이라 함은 여러 차례 자신을 도와주었기 때문이고, 두려운 이유는 여전히 그 속을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를 적으로 만났더라면 자신은 이미 죽어서 문드러졌을 것이 분명하리라.
엽현은 문득 천도가 자신의 편이라는 것이 행운처럼 여겨졌다.
이때 소음이 엽현 앞에 나타났다.
“육유계에서 외공의 대가 한 명을 보내 왔소.”
“오? 반가운 소식이구려. 바로 만나 볼 수 있겠소?”
“물론이오.”
소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소음은 엽현을 데리고 어느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대전 안에는 처음 보는 중년 남자 하나가 서 있었는데, 건장한 체구에 팔뚝은 기둥처럼 두꺼운 것이 매우 강력한 힘을 지녔을 것처럼 보였다.
중년인이 먼저 엽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엽 공자!”
“하하, 공자라는 칭호는 내게 어울리지 않으니 그냥 엽현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시오.”
엽현의 말에 중년인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겸손하기까지 하시구려.”
말을 마친 중년인은 엽현 앞으로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가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엽현이 그대로 몇 장 뒤로 밀려났으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이 모습을 보자 중년인은 혀를 내두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히 강력한 육신이로군. 이 정도라면 당장 육유계에 갖다 놓는다 해도 틀림없는 최상위권이오.”
“그렇다면 혹시 이보다 더 단단하게 할 수도 있겠소?”
중년인이 엽현의 몸을 위아래로 자세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몸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소. 즉, 이보다 더 높은 경지로 오르기가 무척 어렵다는 말이오. 굳이 강행하고자 한다면 한 가지 방법은 있소.”
“그,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이오?”
“외물!”
“외물? 무슨 뜻이오?”
엽현이 갈구하듯 묻자 중년인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조금 전 말 했든 그대의 육신은 이미 끝자락에 이른 터라, 더 나아가기가 무척이나 어렵소.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외물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오. 즉, 그대의 몸에 딱 어울리는 방어구를 찾는 것이오.”
방어구?
문득 뭔가 떠오른 엽현이 주섬주섬 방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바로 인왕순이었다.
“이 물건은 어떻겠소?”
인왕순을 살펴보던 중년인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좋은 물건이긴 하나 그대의 육신을 보완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오. 내 생각에는 오유계와 육유계의 모든 대장장이들을 모아 오유계의 기운을 담을 수 있는 방어구를 만들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오.”
엽현이 소음을 쳐다보자 소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장장이들은 어디서……”
“내가 아는 분이 있소!”
엽현이 자신 있게 소리쳤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지금 당장 가서 부탁하고 올 테니!”
말을 마친 엽현은 곧장 검광으로 변해 사라졌다.
잠시 후.
그는 이수경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수경은 오유맹이 중점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무인으로, 이미 귀원파계경에 이른 상태였다.
엽현은 곧장 이수경의 세계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곧장 걸음을 옮긴 곳은 다름 아닌 일전에 촉룡갑을 만들어 주었던 대장간 노인의 거처였다.
마침 대장간 안에 있던 노인이 엽현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녀석, 못 본 사이에 제법 강해졌구나!”
“하하, 그동안 안녕하셨지요?”
“흥, 인사는 집어치우거라. 분명 뭔가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겠지!”
“…….”
“뭐가 필요한지 후딱 말 해 보거라!”
노인의 말에 엽현이 진중한 태도로 대답했다.
“실은 지금까지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강력한 방어구를 제작하려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르신 말고는 도저히 이 일의 적임자를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전례 없는 강력한 방어구?”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시겠습니까?”
“흠… 재료가 충분하다면 한 번 시도해 볼 순 있겠지.”
“어, 어떤 재료가 필요하십니까? 말씀만 하시면 최선을 다해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후후, 어떤 재료라도 가져올 수 있느냐?”
“물론입니다!”
엽현이 흔쾌히 대답하자 대장간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인왕순을 가져오너라.”
인왕순!
엽현은 다소 머뭇거렸지만, 이내 인왕순을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인왕순을 잠시 살펴보더니 엽현을 향해 말했다.
“이 신물은 이미 네가 사용하기에는 큰 효용이 없다. 원한다면 이놈을 녹여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주마.”
“개조…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필요로 하는 재료는 매우 진귀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만큼 성능은 확실할 테지!”
“최선을 다해서 구해 오겠습니다!”
“후후, 죽지 않으려면 당연히 그래야겠지.”
“…….”
대장간 안으로 들어간 노인은 얼마 후 기다란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왔다.
노인이 엽현에게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여기에 쓰여 있는 대로만 구해 오면 된다. 많지는 않으니 천천히 찾아보거라.”
엽현이 종이를 뒤집어 보자 그곳엔 족히 수백 가지는 될 법한 재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중에는 그가 아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처음 보는 재료들이었다.
엽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갈무리했다.
“이 재료들은 사람을 시켜서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어르신, 저와 함께 무성으로 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조수로 부릴 쓸 만한 대장장이 몇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뭐라? 지금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는 것이냐?”
“아니,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작업하시기 수월하게끔…”
“됐다! 재료만 찾아오면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잔챙이들 몇 있다고 뭐 되는 것도 아니고… 쯧쯧….”
“노인네… 고집은….”
“음? 방금 뭐라 그랬느냐?”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쳐다보자 엽현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빠르게 대장간을 떠났다.
노인은 순식간에 사라진 엽현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 어수룩하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제법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구나.”
* * *
무성으로 돌아간 엽현은 곧장 소음을 찾아가 대장간 노인이 준 종이를 건넸다.
소음은 종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왜 그러시오?”
“여기… 이 재료들 가운데 태반은 내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오.”
소음이 고개를 들어 엽현을 쳐다보았다.
“그대가 찾아갔다는 그 대장장이는 신이오, 아니면 거짓말 쟁이오?”
“아마 신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소! 하하!”
소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람을 시켜 한 번 수색 해 보도록 하겠소. 하지만 오유계에서 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육유계의 이진봉을 찾아가도록 하시오. 그들은 이미 내게 협력하겠노라고 약속한 상태니까.”
“육유계?”
소음이 가볍게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들이 우리를 돕는 것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소음, 그대 말이 맞소. 만약 서옥 안에 도경이 있다면 공유하겠다고 약속했소.”
순간 소음의 표정에 큰 변화가 일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요!?”
도경!
소음 역시 만유서옥 안에 도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엽현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하, 그대는 내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소?”
“…….”
“소음 낭자, 혹시 그대도 관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소. 물론 그 안에 도경이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는 소음.
이에 엽현이 웃으며 돌아섰다.
“의심할 것 없소. 내 말은 진심이니까!”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자리를 빠져나갔다.
방 안의 소음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엽현이 농담할 사람은 아니란 건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비록 평소에는 진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또 중요할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특히나 친구라고 생각되는 자들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빼 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소음은 문득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당시 음령족은 무엇 때문에 엽현에게서 서옥을 빼앗으려 했단 말인가?
이렇게 친구가 되면 굳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헛수고였구나.
소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문을 나섰다. 이때 그녀의 입가에는 한 줄기 미소가 스치듯 지나갔다.
* * *
허무계 상공의 어느 구름 속.
승복을 입은 여인 하나가 가만히 하계를 응시하고 있다.
이곳에 비와 바람을 맞으며 대기한 지도 벌써 며칠째.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허무계에 모여 있는 인간들의 머릿수가 예상보다 너무 많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