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95
1195화 내 인과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엽현은 땡글땡글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소유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막념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천도, 그런데 도계의 천도는 왜 여기 데려온 것이오?”
“왜, 내 친군데 여기 오면 안 돼?”
막념이 웃으며 말하자 엽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
도계의 천도라니! 이 여자가 또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거지?
도대체 불안하게 왜 이러는 거냐고!
이때 막념이 엽현의 생각을 읽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 마. 이래 봬도 꽤나 쓸 만한 아이니까. 왜, 싫어? 다시 돌려보낼까?”
“아, 아니… 싫다는 건 아닌데… 이건 누가 봐도 너무 이상하지 않소!”
도계의 강자들이 몰려오는 시점에 도계의 천도가 오유계로 귀순을 했다.
이건 누가 봐도 정상인 그림은 아니지 않은가!
이때 천도가 말했다.
“거 참, 이상하다. 진법을 만드느라 영기가 필요한 거 아니었던가? 아니면 뭐 다시 데리고 가고.”
“자, 잠깐!”
엽현이 황급히 소유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오유계에 온 이상 우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요.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대를 괴롭힐 수 없을 테니, 부디 편안히 있으시오.”
이 말을 들은 막념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나 낯가죽 두껍기는 엽현을 따를 자가 없었다.
이때 소유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도계의 인간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했어. 그러다가 나중에 가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지.”
도계!
흠칫 놀란 엽현이 다시 웃으며 대꾸했다.
“그런 것이라면 걱정 마시오. 이곳에서 오유계 천도의 친구인 그대를 함부로 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리고 훗날 나 엽현이 반드시 도계를 정복할 것이니 그들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것 없소!”
가만히 엽현의 얼굴을 응시하던 소유가 고개를 돌려 천도를 쳐다보았다.
“막념, 나는 앞으로 이곳에 머무는 거야?”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동안 여기에서 머물도록 해. 나중에 엽현이 영기가 필요하다 하면 그때 조금 도움을 주면 될 거야.”
“아, 그 정도는 문제없지!”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유.
이때 천도가 엽현을 향해 말했다.
“네가 만들고자 하는 진법은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
“순조롭소. 이미 대충의 윤곽은 완성된 상태요.”
“그래, 흥미롭구나! 오유계가 탄생한 이후로 인간들을 이 정도까지 단합시킨 사람은 네가 유일할 것이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네 적은 사방에 넘쳐나는 상황이니까.”
이때 엽현이 문득 물었다.
“혹시 나와 선각자, 그리고 엽청지라는 인물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소?”
“…….”
“그러지 말고 알려 주시오. 이제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소.”
잠시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하던 천도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별 복잡한 것도 아니다. 선각자의 정체는 바로 엽청지, 그리고 그의 조상은 도경의 파손본을 우연히 획득한 후, 도계 최초의 둔일경 강자가 된 엽란정이다. 둔일경에 오른 후 그녀는 도경 진본을 찾아 나섰지만, 그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무수한 세월이 흐른 후, 엽가에는 새로운 천재가 등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엽청지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약관에 이르기도 전에 둔일경에 이르렀고, 이 일로 인해 엽가에 도경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갔지. 결국 도계의 연합세력에 엽가는 멸문당했고 엽청지는 육유계의 고사로 도망쳤다. 물론 이때의 그는 선각자라는 인물로 신분을 바꾼 후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에서 얻은 윤회비술로 네가 되려 했지.”
순간 엽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엽청지가 내가 되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렇게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엽청지는 선각자의 전생이었다. 그리고 선각자는 다시 너의 운명을 빌어 환생하려 했지.”
“운명?”
막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선각자는 큰 운명을 타고난 자를 골라 윤회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너, 엽현이었지. 하지만 윤회가 진행되던 중에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고 만다.”
“혹시… 천녀?”
“바로 맞췄다! 하지만 그녀가 손을 썼을 때는 이미 윤회가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였지. 비록 선각자는 죽었지만, 이것 때문에 그의 인과가 네게 남게 된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소복의 여인은 네게서 선각자의 인과를 제거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포기하고 말지.”
막념이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어갔다.
“만약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지금 너는 선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네 곁을 지키고 있던 여인을 등한시했고, 이로 인해 영혼이 소멸하는 최후를 맞게 되지. 결과적으로, 너는 선각자의 장점들과 함께 그의 인과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인과는 만유서옥을 떠나보내지 않는 이상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막념의 말이 끝나고 한참 후, 엽현이 고개를 치켜들며 물었다.
“이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겠소. 그럼 다른 두 가지 인과는 도대체 무엇이오?”
엽현은 당시 말총머리 여인을 통해 자신에게 달린 인과가 총 세 개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나는 선각자의 것이라면 나머지 두 개는 과연 누구의 것일까?
이때 막념이 엽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죄다 나한테 물으려 하느냐? 어째 시간이 지나도 적당히란 걸 모르는 게냐?”
“…….”
잠시 적막해진 전당포 안.
천도의 말을 듣고 엽현은 자신과 선각자 사이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엽청지!
비록 선각자는 아니지만, 자신은 그의 장점들을 모두 물려받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선각자의 인과를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 된 것이다.
이때 천도가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육신을 강화하고 싶으냐?”
“음? 좋은 생각이라도 있소?”
“하하, 이 천도를 뭘로 보고! 사실 무도든 검도든 그 어느 것도 정해진 한계는 없다. 육신의 수련 역시 마찬가지지. 물론 네 육신은 오유계에서는 한계에 이른 상태지만, 앞으로 상대할 적들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육신을 강화할 수 있소?”
마음이 조급해진 엽현은 초조한 표정으로 천도를 보챘다.
오유대진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진안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일반 진법도 아니고 오유계 전체의 기운을 모은 대진이다.
만약 자신의 육신이 그 힘을 견딜 만큼 단단하지 못하다면 이 모든 계획은 비극으로 끝나리라!
이런 상황이니만큼, 엽현은 천도의 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말 해줄 테니, 보채지 말거라. 자, 네 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바로 예전에도 말했던 음양합일이다.”
음양합일!
순간 멈칫한 엽현이 돌연 음흉한 미소로 천도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그대와 나는 종족이 다른데… 그게 가능 하겠…”
순간 천도의 소매가 펄럭이는 동시에 엽현의 눈앞에 빛이 번쩍였다.
쾅-!
눈 깜짝할 사이, 엽현이 피를 토하며 천 장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대자로 뻗어버린 엽현.
원래 단단했던 그의 육신은 사방으로 균열이 일어 붉은 선혈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순간 피바다가 된 장내!
엽현은 고통보다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세단 말인가!
이때 천도와 소유가 넘어져 있는 엽현 앞으로 다가왔다.
“내 손맛이 어떤지 궁금했던 거지? 실제로 맞아 보니까 어때?”
“끄응…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도와 한 판 붙어도 자신 있다고 생각한 엽현이었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산이었다. 두 사람의 차이는 여전히 거대했던 것이다.
“하하, 억울해할 것 없다. 네 육신의 허점을 간파하고 있기에 이만한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자, 정신 차렸으면 장소를 옮기자꾸나!”
말을 마친 천도는 엽현의 어깻죽지를 붙잡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천도와 엽현, 그리고 소유는 어느 설산 위에 도착했다. 사방은 온통 얼음뿐이었으며, 차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송곳처럼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주변을 살펴본 엽현이 물었다.
“천도 낭자, 여기가 어디요?”
“후후, 아주 오래전에 봉인된 땅이지.”
“하지만 한기에 관련된 것이라면… 나도 빙백(冰魄)을 흡수한 적이 있소.”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말을 마친 천도가 가볍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순간, 세 사람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빙산이 굉음을 일으키며 둘로 갈라졌다.
“가자!”
그렇게 세 사람은 빙산 사이에 형성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걷던 중, 엽현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천도, 그대는 혹시 도계에 가 본 적이 있소?”
“물론이지.”
“도계에 있는 자들이 그렇게 강하다던데, 사실이오?”
천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오유계나 육유계보다야 강하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하늘의 보살핌을 받은 땅이거든.”
“혹시… 도경을 말하는 것이오?”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경이라는 것이 그렇게나 대단한 신물이오?”
“신물이라기보다는 기서(奇書)라 보는 게 옳다.”
“그대도 본 적이 있소?”
천도는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본 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다.”
“어째서?”
의문투성이인 엽현의 표정을 보자 천도가 웃으며 대답했다.
“세상은 말이다, 자신이 이룩한 것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남이 걸어간 길을 훔쳐본다고 해서 네 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이해하겠느냐?”
“하지만 도계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남의 것을 훔칠 생각만 하고 있잖아!”
묵묵히 걷던 소유가 한 마디를 툭 던지자 천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놈들은 멍청이들이고. 아무튼…”
천도는 다시 엽현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도경을 빌미로 육유계의 협력을 이끌어낸 건 매우 좋은 전략이었다. 특히나 도경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든다.”
“…….”
엽현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천도와 생각이 동일했다. 자신의 손으로 땀 흘려 얻은 것만이 자신의 것이라는 철학이다.
이것은 그가 천녀와 헤어지기로 결심한 까닭이기도 했다.
물론 적들이 직접 그녀를 찾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예상 밖이긴 했지만.
자신은 홀로 모든 걸 감당할 각오가 돼 있는데 왜 다들 존중해 주지 않는 걸까.
이때 천도가 말을 이어갔다.
“도경의 내력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어쩌면 누군가 호의로, 혹은 어떤 바람을 담아 이 세상에 던져 준 것일 수도 있지. 그 목적이 어떤 것이든 인간들은 그것이 만들어 놓은 규칙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대 역시 그 안에 있소?”
엽현의 물음에 천도가 싱긋 웃어 보였다.
“너는 정말로 내 실력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가 보구나.”
“물론이오.”
“하하, 궁금해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말거라. 네게는 전혀 악의가 없으니까.”
이때 천도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엽현을 쳐다보았다.
“사실 너는 모를 수 있겠지만, 오유계나 육유계, 그리고 도계를 통틀어서 네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바로 나다.”
“…….”
엽현은 말없이 천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래 전, 소복의 여인과 헤어졌던 강변을 기억하느냐?”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천도가 있었던 것도.
“당시 그녀는 나를 죽이려 했었다.”
엽현은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그대를?”
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없는 사이에 널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는 내가 유일하다. 때문에 위협이라 생각 한 것이겠지. 하지만 그녀는 끝내 출수하지 못했다.”
“그녀가 왜 마음을 돌린 것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후후, 왜냐면… 나는 똑똑하니까.”
“…….”
이때 천도가 걸음을 멈추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앞에는 어느새 얼음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 한 채가 나타나 있었다.
엽현은 고개를 들어 찬찬히 빙궁을 살폈다.
척 봐도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는 거대한 크기였다.
마치 성을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드는 이때, 그의 시선에 성문 앞에 서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분명 사람의 형체이긴 했지만,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