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196
1196화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오
“천도, 저자들은?”
“오래전, 이곳으로 넘어온 외래세력이다.”
“외래… 세력?”
천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많은 외래인들이 이곳 우주를 노리고 쳐들어 온 적이 있었다. 오유계의 영기를 빼앗고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작정이었지. 하지만 대부분은 내 손에 걸려서 죽었고, 몇몇은 보는 바와 같이 봉인된 상태다.”
천도의 말을 들은 엽현은 눈앞의 빙인(冰人)들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이곳에 온 자들일 텐데.
이런 작은 우주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천도 같은 변태를 만나다니.
여러 천도를 만나 보았지만, 막념은 엽현이 본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천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해지고 똑똑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생각하면 절로 존경심이 들 수밖에 없는 여인이었다.
이때 소유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막념 너처럼 강해지고 싶어!”
“소유, 미안하지만 나도 그 정도로 강하진 않아. 소복의 여인 정도는 돼야 강하다고 할 수 있지.”
[엄청나군!]바로 이때, 계옥탑 구층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에 엽현이 의아해하며 마음속으로 물었다.
[구층 주민, 무슨 일이오?] [하… 정말이지 저 여자는 요망하기가 두려울 정도구나. 이 우주 안에서 적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여인이 스스로를 낮춰 말하다니. 저런 자야말로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다!]엽현 역시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도계는 모르겠지만, 오유계나 육유계, 심지어 엽현 자신조차 천도의 강함을 간과 할 때가 많다.
왜?
그건 바로 천도가 전혀 자신의 위엄을 과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실력을 숨기면서 상대를 방심하게 하는 것.
이보다 더 무서운 생존 전략이 과연 존재할까?
이때, 천도가 빙궁 대문 앞으로 다가가더니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거대한 얼음문이 열리면서 시린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천도가 재차 손짓하자 이 기운은 순식간에 봄처럼 녹아 사라졌다.
천도가 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본 엽현과 소유는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았다.
궁전 안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존재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얼어 있는 상태였는데, 표정과 동작을 보자니 매우 급작스럽게 봉인이 된 듯했다.
막념은 궁전 중앙에 있는 가장 큰 대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대전 앞에 도착한 세 사람.
이곳에서 그들을 반기는 것은 눈처럼 하얀 치마를 입고, 등 뒤에 망토를 걸친 여인이었다.
얼음이 빛에 반사된 탓일까, 여인은 말 그대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였다. 엽현 인생을 통틀어도 능히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한 경국지색!
이런 여인을 앞에 두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으리라.
물론 이미 검역과 검념을 깨우칠 정도로 심신을 단련한 엽현은 이 정도에 마음이 흔들리진 않았다.
이때, 소유가 소스라치듯 놀라며 소리쳤다.
“저것 봐! 방금 저 여자 눈이 움직였어!”
이 말에 엽현이 다시 여인을 돌아보았다. 과연 그녀의 눈동자는 꽁꽁 언 다른 부위와는 달리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여인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천도!
엽현이 천도를 쳐다보자 천도가 웃으며 말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긴 했지만, 의식은 남겨 놓았다. 그렇게 이 여자는 정신이 또렷한 채로 이곳을 지켜 왔던 것이다.”
“아…”
“혹시 내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게… 전후사정을 모르니 내가 평가할 건 아닌 것 같소.”
이에 천도가 웃으며 얼어 있는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여인의 눈빛은 어떤 분노나 원한도 담겨 있지 않았기에 오히려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이때 천도가 가볍게 소매를 펄럭이자, 여인의 몸을 억압하고 있던 신비한 기운이 눈처럼 녹아 없어졌다.
갑작스레 자유를 얻은 여인은 천도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녀의 발이 땅에 닿은 순간, 사방의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이 순간, 엽현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의 몸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던 것이다!
빙역(冰域)!
이를 눈치챈 엽현이 황급히 주변에 검역을 둘러쳤다. 그러자 꽁꽁 얼어붙었던 주변의 공간이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때 여인을 향해 미소를 띠는 천도.
“보아하니, 멍청하니 시간만 보낸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이런 상황에서 빙역을 깨우친 것도 모자라 둔일에 이르다니… 훌륭하군!”
“나를 죽이지 않은 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이때, 천도가 돌연 자리에서 사라졌다.
찰나의 순간, 여인 앞에 모습을 드러낸 천도는 어느새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와 함께 천도를 바라보는 여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불신의 기색이 흘렀다.
천도가 자신의 빙역을 이리도 간단히 허물고 들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여인에게 얼굴을 가져다 대는 천도.
“왜, 놀랐느냐? 놀란 토끼처럼 얼어붙은 게 귀엽군.”
“너…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지?”
천도는 과연 얼마나 강할까?
여인의 질문에 엽현은 말없이 천도를 응시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역시 몹시 궁금한 것이었으니까.
이때 천도가 장난스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하나도 강하지 않아. 그 소복의 여인한테도 지는데 뭐… 헤헤….”
순간 엽현은 입 밖으로 욕지거리를 뱉을 뻔했다.
저런 망할…….
천녀를 이기지 못하니까 약하다고?
엽현은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런 비유를 한단 말이냐!
양심은 태어날 때 팔아먹었단 말인가!?
막념을 쳐다보고 있는 여인 역시 어이가 없는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그녀의 표정엔 모멸감과 동시에 허탈감이 깃들어 있었다.
무수한 세월을 인내하며 겨우 둔일경에 이르렀건만, 어떻게 발버둥 쳐도 천도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던 것이다.
패배의 쓰라림도 잠시, 여인의 표정은 온통 좌절감으로 물들었다.
이를 본 천도는 여인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슬며시 놓아주었다.
여인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또다시 덤비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길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천도가 여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여인의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돌연 강대한 기운이 그녀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혈맥지력!
이 장면을 본 순간 엽현의 눈이 반짝였다.
저 여인 역시 혈맥지력을 보유한 존재란 말인가!
바로 이때, 허공에 뭉친 여인의 혈맥지력이 천도를 향해 폭발적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하지만 천도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금방이라도 그녀를 집어 삼킬듯했던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편, 녹초가 되어 숨을 헐떡이는 여인이 천도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죽이려면 그냥 죽여라!”
“후후, 그럴 순 없지. 그냥 죽이면 네 범인혈맥이 아깝지 않겠느냐?”
범인혈맥(凡人血脈)!
이 말에 놀란 엽현이 여인을 쳐다보았다.
언젠가 천도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혈맥 중, 자신의 혈맥과 비견 될 만한 것은 범인혈맥이 유일하다고!
그런데 범인혈맥의 주인이 바로 눈앞에 저 아름다운 여인이란 말인가?
엽현의 표정을 본 천도가 웃으며 말했다.
“저 계집의 조상은 평범하지 않은 존재였다….”
말끝을 흐린 천도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봐, 지금부터 네게 인과 하나를 덧붙여 줄 생각인데… 히히, 괜찮지?”
“뭐라고!?”
엽현이 황망히 손을 내저었다.
“당연히 안 괜찮지!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요!”
엽현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천도가 또 무슨 음흉한 짓을 꾸미려 한다는 것을!
안 돼! 뭔지 몰라도 절대 안 돼!
“히히, 설마 다음 경지로 올라서고 싶지 않은 거냐?”
이 말에 엽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또 나쁜 짓을 꾸미려 하는 것 아니오?”
“나쁜 짓이라니? 너에게 이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다고!”
천도가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엽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엽현의 체내에서 계옥탑이 빠져나와 천도의 손안으로 천천히 떨어졌다.
“천도! 도대체 뭘 하려는 거요! 말 해 주시오!”
천도는 안달하는 엽현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걱정 마라. 네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 그게 무슨…”
말을 마친 천도는 여인의 미간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여인의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다시 봉인의 상태로 돌아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
여인이 발악하며 소리쳤지만, 천도는 아무 대꾸도 없이 엽현을 향해 돌아섰다.
“천도 낭자! 원하는 게 있으면 말로 하시오!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오?”
“아 글쎄 좋은 일이라니까?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급기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기 시작하는 천도!
이때 그녀의 손이 엽현에게로 향하자, 앞서와 마찬가지로 엽현의 몸이 뻣뻣하게 경직됐다.
순간 엽현은 머리가 멍해졌다.
저 여자가 또 무슨 흉악한 짓을 하려는 거지!?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천도가 이번에는 척 봐도 이상하게 생긴 파란 약 두 알을 꺼내 손으로 가볍게 튕겼다.
약이 여인과 엽현의 입안으로 들어간 순간, 두 사람의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이건… 설마 춘약(春藥)!?”
“하하! 용케 알아 맞췄구나! 그럼 두 분 좋은 시간 보내십쇼!”
말을 마친 천도는 소유를 데리고 잽싸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엽현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이때 그의 몸이 갑자기 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그의 정면, 여인은 이미 눈빛이 완전히 몽롱해진 상태가 되었다.
사실 이들 두 사람은 고작 춘약 정도에 당할 정도로 약하진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천도에 의해 무공 수위가 봉인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현재 엽현과 여인은 일반인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인 것이다.
점점 감기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엽현을 응시하는 여인.
그녀의 눈동자 속엔 욕정과 함께 독기가 가득하다.
이를 본 엽현이 황급히 눈을 깜빡였다.
“오해 마시오! 이 상황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오! 나도 피해자란 말이오!”
하지만 점점 흉악하게 일그러져가는 여인의 표정.
바로 이때, 여인의 봉인이 풀렸다. 이와 동시에 성난 암사자처럼 달려든 여인이 엽현의 의복을 미친 듯이 풀어헤쳤다.
이내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엽현과 여인.
정신이 몽롱해져 가는 와중에 엽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여인이 한 번 욕정을 품으면 얼마나 난폭해질 수 있는지를.
그리고 두 사람이 결합한 순간, 두 사람의 체내의 혈액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더니, 붉은 빛이 주위를 뒤덮었다.
본격적으로 왕래(往來)가 진행되자, 두 사람의 혈액 역시 엎치락뒤치락하며 서로를 탐닉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엽현의 혈맥이 여인의 혈맥을 제압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잠시 후.
여인은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하늘을 향한 그녀의 동공은 공허하기만 하다.
치욕!
외간남자, 그것도 처음 보는 남자에게 몸을 내어주었다는 사실에 여인은 난생처음 수치심을 느꼈다.
여인은 문득 고개를 돌려 엽현을 바라보았다. 순간 엽현을 향한 그녀의 눈빛이 살기로 물들었다.
이를 본 엽현이 당황해하며 소리쳤다.
“다 큰 남녀 사이에 일어난 일 아니오? 왜 이런 일이 있으면 항상 여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오? 나 역시 내 의도가 아니었소. 엄밀히 말해 나 또한 억울한 피해자란 말이오!”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가슴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