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08
1208화 제족의 위기
제족 대전 입구.
안색이 창백한 노인의 눈빛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조금 전, 노인은 족장인 제임연이 정말로 돌아온 줄 알았다. 하지만 상대가 성안에 들어온 후 순식간에 사라지자, 가짜라는 것을 눈치챘다.
누군가 족장의 행세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인을 놀라게 했던 것은 눈앞에 있던 상대가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었다. 즉, 노인 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라는 것!
누가 족장을 연기하는 것이지?
게다가 보통 실력이 아니다!
상대는 지금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풀려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때, 수많은 기운이 제족 상공에 나타났다.
족히 삼십은 넘을 법한 강대한 기운들!
둔일경의 기운!
이를 느낀 노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바로 이때, 두 개의 그림자가 노인 앞에 나타났다.
다름 아닌 신정의 교종과 선각의 주인, 강우였다.
이 두 사람은 하계로 떠나지 않고 도계에 남아있었는데, 그 이유는 소복의 여인과 제임연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임연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이리로 달려온 것이다.
제임연이 살아 있다?
여기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는 소복의 여인이 죽었다는 것. 둘째는 어쩌면 도경이 제임연에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것.
왜냐하면, 도경이 누구에게 있는지 아직 특정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덧붙여, 제임연이 그 여인과 싸워 이겼다면 부상은 피할 수 없었을 터!
제임연을 잡으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교종이 먼저 노인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대의 족장을 불러오시오.”
“…교종 대인, 족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인의 대답에 교종이 살짝 눈썹을 치켜세우며 노인을 응시했다. 비록 평온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빛은 심장을 얼려버릴 정도로 차가웠다.
노인이 다시 쓴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교종 대인, 누군가 우리 제족을 음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교종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지난번에도 그런 식으로 우리를 돌려세우지 않았소? 허면 그대들을 음해하려는 세력은 누구요?”
제가를 음해하려는 세력?
노인이 잠시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 역시 알 수 없습니다.”
점점, 노인을 응시하는 교종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그대가 보기에 나 교종의 지능이 모자란 것 같소?”
“교, 교종대인.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로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이 들진 않습니까?”
“말 하시오. 어디가 미심쩍다는 거요?”
“족장이 정말로 돌아오려 했다면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백주대낮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치 자신이 돌아왔다고 세상에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흠…….”
교종이 침묵에 잠긴 이때, 강우가 나섰다.
“그대 말대로 누군가 모함한 것이라면, 도대체 그 흉수는 누구요?”
“그건 노부도 잘…”
“제명(帝明), 다시 한번 묻겠소. 도계 안에 둔일경인 그대의 눈을 피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있기는 한 거요?”
이 질문에 제명이라 불린 노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명 역시 이 점이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
물론 그런 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계 전체를 통틀어 노인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자는 기껏해야 두 명 정도.
문제는 이 두 사람에게는 제족을 음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짓이란 말인가?
이때 강우가 교종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교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두 사람의 신식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더니, 이내 전체 제족의 영역을 뒤덮었다.
이를 보자 제족의 강자들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이는 완전히 제족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닌가!
몇몇 무인들은 참지 못하고 행동에 나서려 하기도 했으나, 제명에 의해 곧바로 제지당했다.
제명은 작금의 상황을 똑똑히 이해하고 있었다.
족장이 사라진 지금, 제족은 더 이상 도계를 호령하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자칫 잘못하면 멸족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때 교종과 강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제족은 물론 그 주변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제임연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식을 거둔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순간 그들의 눈가에 한 가닥 의혹이 일었다.
“보십시오! 제가 말한 대로지 않습니까?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두 분 같으면 도경을 발견하고서 종문으로 복귀하시겠습니까? 죽을 걸 알면서 사지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명이 외치자 강우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혹시 모르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으니.”
이 말을 듣자 제명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바로 이때, 교종이 한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대전 주변에 서 있던 청년 하나가 그의 손아귀 안으로 딸려 들어왔다.
교종에게 꼼짝없이 목이 잡혀버린 청년.
이 청년은 제족의 소족장인 제언(帝言).
원래는 엽현을 찾으러 오유계로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제임연의 실종으로 도계에 남은 상태였다.
교종이 출수한 것을 보자 장내의 제족 강자들이 깜짝 놀라며 황급히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이는 제명에 의해 제지됐다.
교종은 제족의 무인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눈앞의 제명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제 족장, 이 젊은이가 그대의 아들이라 들었소!”
교종은 고요한 장내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나오지 않을 생각이오?”
이에 제명이 교종을 향해 소리쳤다.
“교종! 그만두십시오! 그대가 도경을 얻게 되면 종문 따위를 신경이나 쓰려 하겠습니까?”
“후후, 그건 모르는 일이지.”
대답과 동시에 교종은 목을 쥔 손에 천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언의 몸이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본 제족의 강자들이 분기탱천하여 출수하려는 순간, 제족의 사방에서 강대한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는 신정과 선각의 무인들의 것이었다.
두 세력은 서로 손을 잡고서 제족을 치기로 이미 약속돼 있던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바로 도경의 탈취!
그리고 지금 상황으로 봐서 도경은 제족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주변을 살핀 제명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당시 엽가가 어떻게 망했던가?
도경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자 하룻밤 사이에 습격을 당해 멸망해버리지 않았던가!
제족 역시 자칫 잘못하다간 오늘 당장 엽가의 뒤를 잇게 될 수도 있는 상황!
“교종! 그런 어린 소년 하나를 핍박하는 것은 그대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명의 다급한 음성을 듣자 교종이 웃으며 대꾸했다.
“제명,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그대들의 족장을 만나기 위함이오. 그런데 족장이 되어서 손님 대접에 이렇게도 소홀하니,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제명이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교종 대인께서는 이미 이 일에 누군가 개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제족을 치기 위한 구실을 삼기 위해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말에 교종이 말없이 제명을 바라보았다.
제명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교종 역시 뭔가 미심쩍다는 느낌을 이미 받고 있는 상태.
하지만 기왕 여기까지 걸음 한 김에 제명을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제족이 가장 약한 시기이고, 곁에는 선각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함께하고 있으니, 교종으로서는 거칠 것이 없었다.
게다가 같은 도계 오대 세력 중 하나인 제족이 사라진다면 신정과 선각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질 테니,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가 없던 것이다.
교종과 강우가 서로의 눈빛을 교환한 이 순간, 제명이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비록 족장의 자리가 공석이긴 하지만 우리 제족을 제거하려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명이 소매를 펄럭였다.
“출진!”
음성이 떨어진 순간,
쾅-!
성 안쪽에서 강대한 기운이 폭발하더니, 성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빛의 기둥이 생성됐다.
이와 동시에 제명의 뒤에 일곱 명의 둔일경 강자가 대형을 갖춰 자리했다.
이 중 넷은 무려 둔일경 상경의 강자들!
이 진용은 마도가와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수준이 높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조사를 청합니다!”
제명의 음성이 떨어진 순간, 성 안쪽에서 이번에는 검은 빛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강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이 기둥은 곧 그 크기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이내 중년 남자의 형상을 갖췄다.
제족의 조사, 제임천(帝臨天)!
제임천이 등장하자 교종과 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족이 정말 공멸하기로 작정이라도 했단 말인가!
한편, 멍하니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던 제임천의 시선이 문득 교종에게로 고정됐다.
“네가 우리 제족을 멸하려 하느냐?”
온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드는 중후한 음성!
이 순간, 장내의 어느 누구도 크게 숨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제족을 있게 한, 당대 최강의 무인이었던 제임천의 위엄인 것이다!
사실 오대 세력의 조사들은 각각의 전성기 동안 모두 무적이라 불리곤 했다. 지금 눈앞의 제임천을 막기 위해선 신정이나 선각의 조사가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말없이 제임천을 응시하는 교종.
이때 제임천이 무뚝뚝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설령 오늘 제족이 멸망한다 해도, 너희들 중 하나는 내가 데리고 갈 것이다. 어디, 누가 도전해 보겠느냐?”
순간 교종의 눈빛이 가늘게 변했다.
상대는 분명 자신의 말을 지킬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장내의 다른 둔일경 강자들 역시 함부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제족이 호법대진과 조사의 영혼마저 소환한 지금 함부로 움직였다간 비명에 횡사하고 말리라.
만약 전투가 벌어지고 제족의 멸망이 거의 확정적일 때 조사가 등장했더라면 한 번 시도 해봄직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 분명한 이 상황에서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위기가 미묘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금방이라도 제족을 향해 달려들 것 같았던 교종 측 무인들은 순식간에 냉정을 되찾았다.
그들 중 몇몇은 이미 엉덩이를 뒤로 빼고 언제든 도망칠 자세를 취했다.
이 상황을 간파한 교종과 강우는 안색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이때, 제임천이 소리쳤다.
“굳이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노부는 신정을 택할 것이다!”
신정!
이 말은 곧, 신정과 동귀어진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때 교종이 제임천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정하시지요. 족장이 자리를 비웠다니 저희는 다음에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교종은 강우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족 상공을 메우고 있던 둔일경 강자들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교종 등이 완전히 물러간 것을 보자 제족의 무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교종이 일전을 불사했다면, 그들 역시 피해를 입었겠지만, 제족은 멸문을 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때 제임천이 장내를 둘러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제명이 제임천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조사, 뭔가 발견하신 것입니까?”
“흠… 성 안에 고수가 머물다간 흔적이 남아 있다.”
고수!?
재빨리 성 안을 훑은 제명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빛났다.
“우리 제족을 음해하려 했던 자의 흔적이 틀림없습니다!”
“복수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우리 제족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제임천의 말에 제명이 눈을 부릅떴다.
“그렇게나 강하단 말입니까?”
제임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 허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상대는 아직 이곳 어딘가에 남아있다. 하지만 내 실력으로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구나. 반면 상대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순간, 제명의 눈동자에 불신의 기색이 서렸다.
한편, 성 한쪽 구석에 앉아 구운 생선을 뜯고 있던 여인 하나가 돌연 고개를 들어 공중의 제임천을 바라보았다.
“후후, 그래도 꼴에 조사라고 다른 놈들보다는 조금 낫군.”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있던 생선 파는 상인의 곁을 지나쳤다.
이때 아무도 좌판 위에 있는 생선 한 마리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