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25
1225화 정말 포기한 것일까?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장내.
이 상황은 물론 엽현이 의도한 것이었다.
만약 계옥탑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물론 주변인들까지 죽는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항상 누군가 구하러 와 줄 거라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하는 법.
만약 힘으로 안 되면 머리를 써서라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서옥이 교종에게로 향한 순간, 나머지 무인들은 이성을 잃고서 앞다퉈 교종에게로 달려들었다. 도경이라는 신물 앞에 생각의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그들의 머릿속에서 엽현은 이미 지워진지 오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도경뿐이었다.
고사의 승려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만약 서옥이 교종의 손에 들어간다면 다시 빼앗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터, 반드시 그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가로채야만 했다!
한편, 서옥이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것을 본 교종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때, 수십 명의 무인들이 자신을 에워싸며 달려드는 것을 본 순간, 교종은 무의식적으로 서옥을 낚아채고서는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
살아서 신정까지 도망쳐야 한다!
신정이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자신의 기반이 그곳에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대처하기가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교종의 행동은 그 생각만큼이나 빨랐다. 서옥을 잡음과 동시에 아직 완전하지 않은 포위망을 뚫은 교종은 눈 깜빡할 사이에 오유계 밖으로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보자, 고사의 강자들은 뒤돌아볼 것도 없이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강우를 포함한 도계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오유계를 찾았던 둔일경 무인들은 한순간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침입자들이 떠나고 한참 뒤, 오유계 무인들은 그제야 하나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이때, 소음이 엽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로 포기한 것이오?”
“하하, 물론이오.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소?”
이에 소음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물론 서옥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 뒷정리를 좀 부탁하오. 나는 돌아가서 좀 쉬어야겠소.”
“…….”
엽현이 자리를 떠나자, 나머지 무인들 또한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다만 소음은 깊은 생각에 빠진 채,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편,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엽현.
바로 이때, 익숙한 여인 하나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인은 다름 아닌 천말이었다.
“…정말로 포기한 것이냐?”
천말이 진중한 표정으로 묻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가짜로 포기했겠소?”
“도경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진 않을 텐데?”
“내가 아는 건 그 무엇도 목숨과 바꿀 만큼 중요하진 않다는 것이오.”
“…….”
천말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엽현의 말대로 무엇이든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로 괜찮은 게냐?”
“후후, 괜찮지 않으면 또 어쩌겠소? 내게 무슨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차하면 오유계 천도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우린 서로에게 빚진 것이 없소. 굳이 이런 일로 폐를 끼칠 이유가 없다는 뜻이오.”
서옥을 포기하고 난 후, 엽현은 아쉽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는 목숨을 잠시 연명한 것에서 오는 안도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집착!
서옥을 지니고 있을 당시, 엽현은 차라리 목숨을 내줄지언정 서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난리 통에서 엽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왜 서옥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지?
이 물건이 정말로 목숨을 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가?
아니면, 나도 모르게 도경에 의지해 둔일 이상의 경지로 나아갈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엽현은 문득 오래전 막념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왜 서옥을 탐내지 않느냐는 엽현의 질문에 막념은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도경에 적힌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남이 만들어 낸 길이지, 자기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만의 길을 걷고 있는가?
엽현은 손에 죄고 있는 천주검을 내려다보며 문득 자기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천녀의 길도, 청삼남의 길도, 선각자의 길도 아닌, 오롯이 자신이 창조하고 발견한 길을 걸어야 한다고!
심자재(心自在: 마음이 평안한 상태)!
막념은 또 말하길, 검념을 지나치면 심자재의 경지가 나온다고 했다.
마음이 평안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마음속에 속박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때때로 마음속의 무언가 때문에 전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타인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원인은 자기 자신이다.
헌데 엽현은 타인과 자기 자신 둘 모두에 의해 속박당하는 상태에 놓여있던 것이다.
이때 천천히 눈을 감는 엽현.
그의 모습은 마치 막 입적을 앞둔 노승을 보는 것처럼 엄숙했다.
이 모습을 보자 천말은 엽현이 곧 돌파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새 경지에 이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돌파를 시도하다니.
과연 사람이 맞는 걸까?
게다가 가장 중요한 신물을 빼앗긴 직후에?
천말은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에게 있어 검수들은 정말이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생명체였던 것이다.
조용해진 엽현을 놔둔 채 방을 빠져 나가는 천말.
이때 그녀는 문밖에 서 있던 소음과 마주쳤다.
“너희들이 저 녀석을 따르는 건 보나마나 도경 때문이었을 테지?”
천말의 차가운 질문에 소음이 고개를 저었다.
“생존을 위한 것이오.”
“엽현이 사라진다면 생존은 더욱 쉬울 것이다.”
“그럼 오유겁은 누가 막는단 말이오?”
“…….”
천말이 침묵하자 이번에는 소음이 질문했다.
“그대가 이곳에 있는 것이야말로 도경 때문이 아니오?”
“물론이다. 하지만 도경이 사라졌으니 이곳엔 더 이상 볼 일이 없어졌다.”
그대로 소음을 지나쳐 걸음을 옮기는 천말.
이때, 소음의 한 마디에 천말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대는 서옥이 정말로 교종 손에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말없이 소음을 응시하는 천말.
잠시 후, 천말이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에 소음은 조용히 엽현의 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엽현이 순순히 서옥을 넘겨주었을 때, 소음은 이미 뭔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상태였다.
사실, 이 시점에서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서옥이 이미 엽현을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육유계.
급하게 산길을 내달리는 문소약.
이내 호숫가의 정자에 도착한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육유계 천도 앞에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가 결국 서옥을 포기했소!”
말없이 고개를 들어 문소약을 바라보는 천도.
문소약의 말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결국, 그 여인도 나타나지 않았고, 오유계 천도 역시 출수하지 않았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가쁜 숨을 고른 문소약.
그녀의 표정이 다소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아무래도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오. 어쩌면 죽었다거나….”
순간 육유계 천도의 눈썹이 가볍게 팔랑거렸다.
“너 설마, 도경을 노리는 건…….”
“그 설마가 사실이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문소약을 보자 육유계 천도가 돌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탐욕은 결국 화를 부르는 법이거늘! 소약, 정신 차리고 내 말 들어. 도경은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다. 입을 대는 순간 누구든 죽는 거라고!”
“…….”
“도경이 누구 손에 들어가든 종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게다. 그래, 네 말대로 소복의 여인이 관여하지 않는다 치자. 그런데 선각자가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더냐? 내가 아는 선각자라면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해놓았을 것이다. 내 생각엔 서옥은 결국 엽현의 손에 다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서옥은 결국 엽현에게로 돌아간다?
마지막 말에 문소약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어떻게 가능…”
“가능하지 않을 건 또 뭐란 말이냐?”
“…….”
육유계 천도는 문소약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육유계가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현상유지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일 것이다. 계옥탑에 대한 관심만 보이지 않는 이상 도계도 고사도 우리를 내버려 둘 것이다. 물론 엽현도 마찬가지겠지. 알겠느냐? 서옥 하나만 포기하면 그보다 더 중요한 목숨을 지킬 수 있단 말이다!”
육유계 천도의 강한 어조에 문소약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이를 보자 육유계 천도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먼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곧 태풍이 몰아칠 테니,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
문소약은 언제나 고요하던 육유계 천도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도경이 출현한 이상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피할 수 없으리라.
* * *
도계.
어두운 성공을 정신없이 내달리는 교종. 발길은 신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는 서옥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마지막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엽현이 의도한 것이었으리라.
공격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리려는 영악한 간계!
하지만 결국 거부하지 못했다.
알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몸이 저절로 반응했던 것이다.
둔일 극경(遁一極境)!
이 막다른 길에서 헤맨 세월이 도대체 얼마였던가?
도경은 그 어둠을 헤치고 나아갈 한 줄기 희망이었다.
때문에 음모란 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고,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다!
도경은 반드시 사수한다!
입술을 잘근 씹으며 속도에 박차를 가하는 교종.
잠시 후.
그가 지나간 자리 위로 수십 개의 검은 그림자가 마치 먹이를 쫓는 이리 떼처럼 빠르게 돌진했다.
한편, 멀리서 교종과 한 무리의 무인들이 미친 듯이 내달리는 것을 지켜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오유계 천도, 막념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반쯤 먹다 만 생선구이가 들려있다.
이때 곁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결국 서옥을 포기한 모양이로군.”
“후후,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어차피 쓸모도 없는 물건이었어. 서옥으로 오유겁을 막으려고 했던 생각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지.”
“서옥으로도 어쩔 수 없다니… 오유겁이 그렇게나 대단한 건가?”
이 말에 막념이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럼 애들 장난인 줄 알았냐?”
“하지만 지금까지 오유겁이 닥친 후에도 언제나 생존자는 꽤나 있었던 것 같은데?”
“제발 좀… 그건 다 내 덕분이잖아. 인간들의 능력으로 오유겁에서 살아남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
막념은 답답한 마음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봐. 이 몸이 이렇게나 대단한데 오유겁의 근원을 제거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해. 그런데 그 녀석이 그걸 해 낼 수 있겠냔 말이야. 설령 서옥을 사용할지라도 말이지. 잘 들어, 세상엔 네 가지 재앙이 존재한다. 나열하자면 천겁(天劫), 심겁(心劫), 인겁(人劫),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오유겁이 등장하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재앙을 서옥 하나로 막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 생각일까?”
“음… 그렇다면 서옥이 없는 상태에서는 더 가능성이 없는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막념이 웃으며 대꾸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무기가 뭘까?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이야. 안타깝게도 보통의 인간들은 이 사실도 모른 채, 잠재력을 발굴하기보다는 외물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지. 본말이 전도됐다고나 할까.”
막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했다.
“사실 인간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종족이라 할 수 있지. 많은 것을 받았어. 특히 무도 수행 방면에서 인간은 다른 생령들보다 훨씬 더 우세하다 할 수 있지. 물론 반대급부로 탐욕이란 것이 주어졌지만.”
“무슨 말이지?”
막념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도계의 무인들은 참으로 어리석어. 오직 도경이 있어야만 그 이후의 경지에 접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이건 마치 산을 오르다 길이 막혔을 때, 어딘가에 길이 있을 거라 믿으며 계속해서 주변을 빙빙 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들이란 참 얼마나 어리석은지…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지? 항상 놓여있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건가?”
“…….”
“그런 면에서 엽현은 한 단계 성장했다고 할 수 있지. 더 이상 서옥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발을 붙잡고 있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가고자 하는 길로 나아가면 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