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30
1230화 설마 나보고?
엽현은 한쪽에 서 있던 안란수와 장문수 등에게도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다음에 만날 땐 모두 둔일이 돼 있겠구나!”
“물론!”
안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때 소칠이 말했다.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너나 잘해. 반보 둔일도 아닌 주제에 무슨…”
“…….”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어대는 엽현.
“하하, 그럼 모두 건강한 상태에서 다시 만나자! 오유계의 미래가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돼!”
“당연하지!”
인사를 마친 엽현은 주지의 곁으로 돌아왔다.
“대사, 나는 준비 됐소.”
“그럼 잘 따라 오시오, 엽 시주.”
곧 엽현과 고사의 주지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고사의 승려들도 떠나가고 잠잠해진 장내.
이때 가만히 있던 소칠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 땡중이 허튼 수작 같은 걸 부리진 않겠지?”
“왜 아니겠소.”
소음의 말에 모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고사까지 끌고 가려는 걸 보면 분명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소.”
순간 여인들의 표정에 근심이 드리웠다.
이에 소음이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걱정하지 마시오. 잔머리로 엽현을 능가하는 자는 살면서 본 적이 없으니까.”
“…….”
왠지 모르게 수긍이 가는 여인들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엽현과 고사의 승려들은 육유계에 진입했다.
고사의 주지는 사찰이 있는 산꼭대기로 곧장 향하는 대신 산문에 내려 천천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곁에는 엽현도 함께했다.
“방장 대사, 외인은 절 안에 들어갈 수 없다던데 사실이오?”
“하하, 그렇긴 하나 예외가 적용될 순 있소.”
예외!
미소를 보인 엽현은 고개를 들어 고사를 바라보았다.
저 미지의 사찰에 대해 엽현은 무한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어떤 비밀이 있기에 이때까지 그리도 꽁꽁 싸매고 있던 걸까?
더 이상 대화 없이 산허리쯤에 올랐을 때 주지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엽 시주, 혹시 불법에 관심이 있소?”
불법!
이때 구층 존재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널 땡중으로 만들려나보구나, 낄낄.]“…….”
엽현이 웃으며 되물었다.
“대사, 일단은 불법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말이오.”
“하하, 그리 어렵진 않소. 한번 해 보면 그게 무엇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오.”
“음… 그렇다면 생각은 해 보겠소.”
말을 하는 동안 무리는 고사의 산문에 도달해 있었다.
대단할 건 없었다.
그저 기둥 두 개를 세워 놓고 위쪽에 ‘고사’라는 현판을 달아 여기부터 절간이라는 표시를 해 놓았을 뿐이다.
그렇게 산문 뒤로 나 있는 작은 돌길을 따르다 보면 그 끝에 작은 사찰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휘황찬란하거나 웅장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한 건물이다.
엽현은 곧 주지와 함께 멀리 보이는 사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경내에 있는 승려들은 주지가 가까이 지나칠 때마다 합장을 하며 예를 차렸다.
사실 고사에 들어섰을 때부터 엽현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경내에 있는 승려들은 죄다 최소 둔일경 이상이었던 것이다!
혹시 절에서 키우는 개도 둔일이 아닐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엽현의 심장은 크게 뛰고 있었다.
고사, 이는 그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이때, 검은 승복을 입고 손에 법봉을 쥔 승려 하나가 주지 앞으로 다가왔다.
이를 본 주지가 먼저 합장을 하며 말을 꺼냈다.
“지무(知武), 오유계로 가서 엽 시주의 친구들이 둔일에 오를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오너라.”
지무라 불린 승려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눈빛이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게 엽현을 훑고 지나갔다.
보통사람이었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오줌을 지렸을 법한 살벌한 기운!
하지만 엽현은 평범한 무인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시 눈빛을 교환한 두 사람.
시선을 뗀 지무는 주지에게 합장을 하고서 그대로 돌아섰다.
이때,
“지무, 내려가게 되면 사람들에게 절대 무례하게 굴어선 안 된다, 알겠느냐?”
주지의 중후한 음성엔 무형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엽현이 자신의 친구들을 무척이나 아낀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만약 지무가 오유계에서 난동이라도 피운다면 엽현의 성격상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분란이 일어나고 혹시라도 엽현이 도계 쪽에 붙는다면 고사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주지의 경고 섞인 말을 들은 지무는 고개를 끄덕여 의사를 표현한 뒤 바람처럼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이던 주지가 엽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엽 시주, 그럼 빈승을 따라 오시오.”
주지는 엽현을 사찰의 어느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바닥에 깔린 방석 두 개가 전부였다.
“엽 시주, 이쪽으로.”
주지가 손짓하자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마찬가지로 엽현 정면에 자리를 잡은 주지는 불경 한 권을 꺼내 들더니 첫 장을 넘겼다.
“엽 시주,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삼장경(三藏經)이라는 것이오. 모두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우선 첫 장부터 읽어 나갑시다. 내가 낭독하면 따라 읽으시오. 자, 염려시아문(念如是我闻), 불법만반(佛法万般), 심선(心善)……”
갑자기 난데없이 불경을 외기 시작하는 주지.
순간 엽현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나더러 중이 되라고 할 심산인가!
“어허, 정신을 어디다 놓고 있소? 이 경전은 그대의 불안정한 경지를 진정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오. 잡생각 하지 말고 따라 읽으시오. 자, 처음부터, 염려시아문(念如是我闻), 불법만반(佛法万般)…….”
“…….”
* * *
도계.
강우는 도계로 돌아온 후, 신정이 아닌 자신의 본거지인 선각으로 향했다.
물론 교종과 다른 무인들은 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선각의 어느 대전 안.
상석에 자리한 강우가 자리에 모인 무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시작했다.
“모두 들으시오. 우리의 급선무는 어떻게든 서옥을 여는 것이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말한 대로 서옥이 열리기만 하면 도경은 모두와 공유하도록 하겠소. 독식할 능력도 없고 말이오.”
이때 한쪽에 있던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는 강 각주를 믿고 있소.”
이에 교종이 강우를 흘끗 쳐다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진 않았다.
“그럼 슬슬 시작합시다. 각자 알고 있는 유능한 진법사나 금제를 풀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을 모두 데려와 주길 바라오. 그 중에는 반드시 서옥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오!”
강우가 교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교종, 도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신정과 선각이니 아무래도 우리 두 사람이 힘을 좀 써야 할 것 같소.”
이에 교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신정 내의 진법사와 봉인 기술자를 죄다 불렀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것이오.”
“역시, 믿음직스럽구려!”
이때 교종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엽현을 제거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인 것 같소.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것이오?”
이 말에 모두가 일제히 교종을 바라보았다. 이때의 교종의 표정엔 살심이 드러나 있었다.
이때 강우가 타이르듯 말했다.
“교종, 우선 한 가지 확실히 해 둬야 할 것이 있소. 현재 그 소복의 여인이나 제임연 중 누가 살아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오. 그대는 그 두 사람보다 엽현이 더 큰 위협이라 말하는 것이오?”
“…….”
“내 생각에 엽현보다는 빠르게 서옥을 열고 도경을 연구하는 게 우선인 것 같소. 그래야만 제임연이나 그 여인에 대항할 수 있을 테니까. 엽현의 생사를 결정하는 건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될 문제 아니겠소?”
이에 둔일경 강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강 각주 말에 동의하오! 지금같이 촉박한 상황에서는 우선순위를 두어 일을 처리해야 하오.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한시라도 빨리 도경을 얻고 둔일을 돌파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옳소!”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외침소리가 터져 나왔다.
교종이 엽현을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 사람들은 엽현과 큰 원한도 없을뿐더러,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도경에 혈안이 돼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교종의 말이 귀에 박힐 리가 없는 것이다.
교종은 표정에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무인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했다간 적으로 몰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다.
당장 위협이 되는 것은 엽현보다는 그 여인이나 제임연인 것이 사실이니까.
얼마 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선각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서옥의 봉인을 풀기 위해 초청된 자들이었다.
이 사람들 중에는 한 손에 구운 생선을 들고 있는 여인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별 특별할 것 없는 이 여인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도계 각지에서 초청된 소위 ‘전문가’들이 대전 안에 모였다.
모두가 자리한 것을 확인하자 강우가 서옥을 꺼내 들었다. 만약의 사태라는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도경 강자만 장장 마흔이 넘게 있는 이곳에서 누가 감히 장난질을 칠 수 있겠는가!
이때 군중들 사이에서 백발의 노인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가까이서 서옥을 살펴보던 노인이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 각주, 신식을 사용해서 안을 좀 살펴봐도 되겠소?”
“물론이오,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해도 좋소!”
강우가 승낙하자 노인이 곧장 서옥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그의 신식은 서옥 안을 통과할 수 없었다.
이에 인상을 쓰며 기운을 더욱 끌어 올리는 노인.
바로 이때, 서옥 주변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었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대전 밖으로 튕겨 날아가 버린 노인!
이를 본 순간, 무인들의 표정이 일순 얼어붙었다.
잠시 후, 다리를 절뚝이며 장내로 돌아온 노인. 서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 각주, 신식은 통하지 않고 힘을 쓰면 진법이 발동하는 것 같소. 만약 더 강한 힘을 가했다간 서옥 전체가 폭발할지도 모르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로 열 수 없기에 그대들을 부른 것이오. 부디 그대들이 해법을 찾아내길 바라겠소. 금제를 풀어만 준다면 보상은 절대 섭섭지 않을 것이오.”
“좀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소. 물론 지금 상황에서 장담은 할 수 없음을 용서하시오.”
노인의 말에 강우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옥을 여기 둘 테니, 원하는 대로 연구해 보도록 하시오.”
강우가 서옥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백발노인 등이 서옥을 향해 모여들었다.
구운 생선을 든 여인은 대열 끝에서 말없이 서옥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