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32
1232화 마당 쓰는 노승
교종이 도망가는 것을 보자 강우 등은 얼떨떨한 나머지 잠시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당황한 것은 신정의 무인들도 마찬가지.
혼자 살겠다고 같은 편마저 내팽개치고 도망쳤단 말인가!
한편, 강우는 교종이 범인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서옥을 훔쳤으니 도망치는 것 아닌가!
“개자식! 전원 출수! 서옥은 반드시 회수해야만 하오!”
강우의 말에 무인들이 일제히 추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둔일경 강자들이 썰물처럼 장내를 빠져나가자 신정 무인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표정은 다시 귀신처럼 일그러졌다.
한 세력의 수장으로서 어찌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하는 무인들.
이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은 하나였다.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교종이 서옥을 탈취해 도망쳤다는 소문은 도계 전체에 빠르게 퍼졌다. 그러자 도계의 무인들은 너도나도 교종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 온 산과 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배신을 당한 강우 등은 교종을 찾느라 밤잠도 설칠 지경이었다.
* * *
육유계, 고사.
낡은 방 안.
주지는 여전히 엽현을 위해 삼장경을 낭독하고 있다.
불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엽현은 처음에는 매우 괴로웠지만, 듣다 보니 어느새 그 내용에 빠져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법!
이 역시 하나의 학문이자 수행으로,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알아둬서 해가 될 것은 없었다.
게다가 주지의 말대로 삼장경의 내용은 불안한 그의 경지를 견고히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주지 역시 엽현이 점점 집중하는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연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새벽.
주지는 마침내 읽고 있던 불경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엽 시주, 조찬시간이구려.”
이 말과 함께 주지가 방을 나섰다.
주지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우 앳된 얼굴의 승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열 대여섯이나 됐을까?
젖살이 빠지지 않은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엽현에게 다가온 승려는 다짜고짜 회색의 승복을 건넸다.
“엽 시주, 이 옷으로 환복하시지요.”
“고맙소만… 나는 승려가 아닌데?”
엽현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승려가 합장을 하며 대답했다.
“절에 오셨으니 절의 법도를 따르시는 게 옳겠지요.”
엽현은 다소 아리송했다.
설마 자신에게 불가에 귀의하라고 종용하는 걸까?
어쩔 수 없이 일단 승복으로 환복한 엽현.
이때 엽현이 불안한 눈으로 승려를 흘끔 쳐다보았다.
“설마 머리까지 밀라고 할 작정이오?”
“아미타불… 엽 시주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사의 승려가 되는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니 말입니다.”
“…….”
젊은 승려를 따라나선 엽현은 곧 식당에 들어섰다. 식당이라고 해 봐야 낡은 의자와 허름한 식탁이 전부였고, 식사는 간단한 쌀죽과 보리로 만든 만두뿐이었다.
식당 안에는 이미 예닐곱 명의 승려가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엽현은 눈에 익는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사의 무인 중 가장 처음으로 접촉했던 바로 그 노승이었다.
그의 곁에는 여승 하나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속세에 있었더라면 사내 꽤나 울렸을 정도로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이때 엽현과 눈이 마주친 노승이 합장을 하며 아는 체를 했다.
“엽 시주!”
반갑게 웃으며 노승의 곁으로 다가간 엽현.
“대사, 여기서 또 보는구려!”
“아미타불, 인연이란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아예 노승 앞에 자리를 잡은 엽현은 웃으며 만두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한창인 중에 엽현은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인 지사 장로와 대화를 시도했다.
“지사 대사, 그거 아시오? 고사는 다소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거!”
“음? 엽 시주, 밥 잘 먹다가 또 무슨 해괴한 소리요?”
“해괴한 소리가 아니라… 도계가 서옥의 봉인을 풀면 우린 다 죽게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오.”
“그런 거라면 크게 신경 쓰진 않소. 지금 당장 도경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하루아침에 경지를 돌파하는 건 불가능 한 일이오.”
이에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이미 둔일 극경에 이른 고수들이오. 그런 자들이라면 작은 깨우침 하나로도 다음 경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모르시오?”
“흠……”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진 지사.
이에 엽현이 열을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지사 장로,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도 똑똑히 알아야 하오. 그대들은 나를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기고 있지만, 진짜 위협은 도계가 아니겠소? 다들 어찌 생각하시오?”
지사 등은 말없이 엽현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흠, 흠! 그리고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어디 가서 나처럼 좋은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오. 그러니 제발 쓸데없는 의심은 거둬 주었으면 좋겠소.”
“…엽 시주, 그대는 정말 좋은 사람이 확실하오?”
지사가 똑바로 쳐다보며 묻자 엽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은 내가 어디서 악행을 일삼고 다닌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소?”
엽현의 말에 지사 등은 침묵했다.
비록 그가 많은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악하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까.
엽현은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겠소. 그대들의 적은 내가 아니라 도계임을 분명히 알아 두셔야 하오.”
엽현은 지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사 대사,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당시 그대가 나의 손을 잡았더라면 서옥이 도계에 넘어가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만.”
“…….”
엽현은 침묵하는 지사를 내버려 둔 채 만두 두 개를 집어 들고 일어났다.
이때 앞자리에 앉아 있던 노승이 돌아서는 엽현을 불러 세웠다.
“엽 시주.”
“음? 할 말이 남아 있소?”
다음 할 말을 생각하면서 멋지게 돌아서는 엽현.
이에 노승이 합장을 하며 가볍게 속삭였다.
“그, 저… 만두는 일인 한 개씩만 지급되는 것이라…”
“…….”
만두 하나를 쟁반에 돌려놓은 엽현은 머쓱하게 식당 밖으로 퇴장했다.
엽현이 떠난 후,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승려들은 더 이상 식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도계!
서옥이 도계의 손에 넘어간 후로, 확실히 고사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들이 도경이나 불경을 차지하게 된다면 고사로써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밖을 응시하던 여승이 다급히 소리쳤다.
“저것 보십시오! 저자가 뒷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뒷산!
이 말에 승려들이 일제히 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지사는 이미 뒷산을 향해 신형을 날린 상태.
감히 고사에서 사고라도 칠 생각인 건가?
식당에 남은 승려들은 우려 섞인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편 이 시각.
엽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숲길을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새벽녘의 숲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엽현.
이렇게 한가롭게 걸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조급함.
그의 여러 가지 문제점 중에 가장 커다란 것은 바로 이 조급한 성격이었다. 마음을 수련하는 검수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지만, 타고난 성격인지라 어째 고치기가 쉽지 않다.
문득 고개를 들자 붉은 태양이 봉우리 사이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
아침 해를 마주하니 마음이 한층 안정되는 것이 느껴진다.
불현 듯 손을 펼치자, 한 줄기 검광이 손바닥 위로 떠 올랐다.
심자재(心自在)!
그의 검도 조예는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상태다.
간단히 말해 외물의 도움 없이도 둔일경 강자와 한판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정도.
만약 지금의 불안한 경지를 견고히 할 수만 있다면 웬만한 둔일경 강자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종이나 고사의 주지 같은 강자를 상대로는 여전히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서 걸어 나가던 엽현은 잠시 후, 어느 작은 암자 앞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암자 앞에선 등이 굽은 노승 하나가 빗질을 하고 있었다.
굽은 등처럼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얼굴이었지만, 옆집 할아버지 같은 자애로운 미소는 떠날 줄 몰랐다.
이때 엽현을 발견한 노승이 양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엽현 역시 합장을 하며 예를 갖췄다.
“대사, 좋은 아침입니다.”
“엽 시주, 간밤에 평안하셨소?”
“덕분에 푹 쉴 수 있었습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람들은 고사를 두고 매우 신비롭다고 여기는데, 막상 들어 와 보니 보통 절과 다를 바… 아니, 오히려 더 소박한 것 같습니다.”
이에 노승이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모르면 신비한 법이오.”
“헌데, 왜 외부인의 방문을 막은 것입니까?”
엽현이 묻자 노승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 법이 없소. 다만 세인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을 뿐이오.”
“아….”
“사실 이곳에 있는 승려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온 자들이오. 물론 마음이 악한 자들의 출입까지는 허락하지 않고 있소.”
엽현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럼 나는 악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하하, 엽 시주는 나쁜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왜 고사는 악하지도 않은 나를 죽이려 한 것입니까?”
그러자 노승이 멀리 모이를 쪼아 먹고 있는 닭을 가리켰다.
“엽 시주는 육식을 한 적이 있소?”
“물론입니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승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대가 먹은 닭은 대관절 무슨 죄를 지은 것이오?”
“…….”
“엽 시주,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오. 선이라 생각한 것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악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않소?”
노승은 빗자루를 한쪽에 내려 둔 후 합장을 하며 말했다.
“이 세상의 판은 강자 위주로 짜여 있소. 강자들이 법칙을 만들고 그 법칙에 따라 선과 악을 나누는 것이오. 게다가 지금의 세상은 양면성으로 가득 차 있소. 간단히 말해, 내게 이익이 되는 것은 선, 그렇지 못한 것은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인 것이오. 내가 한탄하는 것은 고사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오.”
고사도 예외가 아니다!
엽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노승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 사람은 고사를 비판하고 있는 걸까?
이때 노승이 엽현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잘한 것은 잘했다 하고, 그러지 못한 것은 못 했다 하는 것이 옳은 것이오. 그렇지 않소?”
“하하, 어째 대사는 이곳의 다른 승려들과는 조금 다른 듯싶습니다.”
이에 노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도 원래는 나와 같은 보통의 중이었소. 다만 생각이 너무 많아 초심을 잃은 것뿐이니, 시주께서 이해해 주길 바라오.”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