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42
1242화 왜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건가?
미련 없이 돌아서는 엽현.
비록 도움이 절실하긴 했지만 원치 않는 상대를 인과에 끌어들일 수는 없는 법이다. 아직 그 정도로 타락한 것도 아니고.
바로 이때였다.
“잠시 멈추거라.”
뒤에서 들려 온 음성에 고개를 돌리자 목에 불주(佛珠) 두 줄을 걸치고 있는 승려가 시야에 들어왔다.
승려치고는 꽤 거친 인상에 눈빛이 날카로운 자였다.
모두의 시선이 쏠린 이때, 불주를 걸친 승려가 가사를 입은 승려에게 말했다.
“이 아이에게 액난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그렇소.”
“그런 운명을 지니고도 아직까지 살아있는 걸 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소?”
불주승이 희미하게 웃으며 묻자 가사승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때 불주승이 엽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액난지인이 끼었음에도 살아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뭐겠소? 바로 그 정도 액운도 이겨 낼 만한 길운(吉運)을 타고났다는 것이 아니겠소?”
액운과 길운!
불주승이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액운과 길운은 공존할 수 있는 법이오. 엄밀히 말해 이 아이의 액운이 인위적인 것이라면, 길운은 타고 난 것이라 봐야 하오.”
불주승은 이번에는 엽현을 향해 말했다.
“아이야, 말해 보거라. 네 뒤에 어떤 강력한 배후가 있지 않느냐?”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액난지인을 대신 막아 줄 정도면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가 틀림없겠구나. 내 말이 맞느냐?”
불주승의 물음에 엽현은 빙그레 웃어 보일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때 엽현은 머릿속에 한 여인을 떠올렸다.
청아!
엽현은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실제로 함께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을 위해 액운과 싸워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엽현은 문득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바로 이때, 무망이라 불린 승려가 발언했다.
“쓸데없는 논쟁은 되었소. 그가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오. 하늘이 정해 준 인연을 인위적으로 거부할 순 없는 법이오.”
불주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은 인연은 좋은 결과를 낳는 법! 액운이 끼어 있다 할지라도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가사승은 엽현을 한 번 흘끗 쳐다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반대하는 자가 없자 무망이 엽현에게로 다가갔다.
“둔일에 이르기에 앞서 먼저 도(道)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너는 도에 대해 알고 있느냐?”
“음… 일종의 자연의 법칙이 아니겠습니까?”
“허허, 그 말도 틀리진 않지만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를 쉽게 풀이한다면 모든 사물과 세상의 이치가 흘러가는 궤적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물이 변화하는 과정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자연의 법칙을 한 단어로 응축한 것이지…….”
곧, 여섯 승려들은 서로 돌아가며 엽현에게 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엽현이 얻은 것은 결코 적지 않았다. 최소 둔일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둔일은 경지의 연장일 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가짜 둔일이 아닌, 진정한 둔일의 개념은 또 다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도에 대한 설명이 끝난 후, 승려들은 불법을 포함하여 세상의 여러 가지 이치에 대한 강연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오 일째가 되던 날.
승려들은 가부좌를 틀고 묵상에 잠긴 엽현을 홀로 남겨 둔 채 자리를 떠나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앞으로 깨달음을 얻어 둔일에 이를 수 있는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엽현에게 달린 것이다.
한편 이 시각.
사당 바깥에서는 주지와 지절이 엽현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엽현이 둔일에 이르길 바라면서도, 내심 너무 강해지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던 것이다.
계옥탑을 지니고 있는 그가 둔일에 이른다면 과연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엽현을 응원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둔일에 이르러야만 서옥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 * *
도계.
이때의 도계 또한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도계연맹!
도계의 각 세력들이 서로 손을 잡고 연맹체를 출범시킨 것이었다.
선각을 주축으로 하여 연맹체에 가입한 세력만 무려 백여 개!
이 가운데 둔일경 강자는 무려 오십이 명에 달했다.
오십이 명의 둔일경 강자!
이 정도 숫자가 동시에 출격한다면 그 누구도 두렵지 않을 엄청난 위력을 뿜어낼 수 있었다.
한편, 다소 산만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어느 날, 한 신비인이 선각을 찾았다.
곧, 선각 각주 강우와 독대하게 된 신비인은 낮은 음성으로 무언가 속삭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신비인이 말을 끝마칠 무렵.
강우의 두 주먹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고, 눈에는 살기가 넘쳐흘렀다.
“오유계 천도! 그녀의 짓이 확실하오!?”
이때 신비인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이 물건을 본 순간, 강우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그대들은…….”
대전 안, 강우의 표정이 매우 심각하다.
‘그 세력’까지 움직였을 줄이야!
이 순간, 강우는 도경의 유혹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잠시 후, 신비인이 떠나자 강우는 홀로 생각에 잠겼다.
상대의 말에 따르면 서옥을 탈취해 간 흉수는 교종도, 도촌도 아닌 오유계의 쳔도. 그렇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도대체 그녀의 실력은 얼마나 대단한 걸까?
수십 명의 둔일경 강자를 뚫고서 서옥을 훔쳐 간 그녀의 실력은 실로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문제는 천도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신비인이 자신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 준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을 화살받이로 삼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도계와 천도가 피 터지게 싸우는 틈에 어부지리를 취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강우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침착해야 한다. 여기서 급할 이유는 없어.”
예전의 강우였더라면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눈에 불을 켜고 천도를 찾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절대 서두를 수 없다.
모두가 서옥을 노리고 있는 지금.
누구든 먼저 틈을 보이는 순간 제거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강우는 문득 마음이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서옥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 * *
도계 외곽.
선각을 빠져나온 신비인은 빠르게 한쪽 성공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나타난 여인 하나가 그의 앞길을 막아 세웠다.
입가에 가시가 붙어 있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구운 생선을 뜯고 있는 여인.
다름 아닌 오유계 천도, 막념이었다.
신비인은 막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신형을 돌려 반대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념은 이번에도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해? 계속 도망가 봐야지?”
막념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자, 신비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존상, 그것이…”
“후후, 보아하니 내가 했던 말은 똥구멍으로 처먹은 모양이로구나? 응?”
웃고는 있지만, 날이 선 막념의 말투에 신비인의 안색 역시 잿빛으로 물들었다.
“존상, 들어 보십시오. 우리의 목표는 존상 대인이 아닌 엽현인데 어찌하여 계속 개입하시려 드는 것입니까?”
“후… 이 멍청한 놈들. 내가 왜 억지로라도 너희를 막는지 모르겠느냐? 그건 바로 너희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다!”
“존상, 우리를 위해서라니요? 당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비인이 의아하게 쳐다보자 막념이 재차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쯤에서 내가 개입한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만약 이 일이 그녀의 귀에 들어간다면 너희는 모두 죽은 목숨일 테니까. 빈말이 아니라, 너희 수미신국은 백 번이고 내게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신비인은 말없이 막념을 바라보았다.
분명 그녀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리라.
신비인의 표정을 본 막념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좋은 일 하고도 의심을 받는 꼴이라니.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말을 마친 막념이 갑자기 허리춤에서 한 루 장도를 뽑아 들었다.
“어디 도망쳐 보거라. 삼십 장까지는 휘두르지 않으마.”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이미 등을 보이며 달아나는 신비인.
그의 속도는 그야말로 번개 같아서 눈 깜빡할 사이 도계의 우주장벽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막 장벽을 넘어서려는 찰나, 빛처럼 날아온 칼날이 그의 뒷목을 뚫고 튀어 나왔다.
커헉-!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신비인의 머리가 허공으로 솟구치고, 사방으로 튀어나온 선혈은 장벽을 붉게 물들였다.
천천히 추락하는 신비인의 얼굴에는 경악의 기색이 가득 찬 상태였다.
막념의 실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편, 멀리서 신비인의 시체를 응시하던 막념은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리고는 피 묻은 도를 갈무리했다.
“과연 이 정도 협박으로 포기할까?”
문득 곁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막념이 생선구이를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상관없어. 당분간은 함부로 설치지 못할 테니까.”
“그 다음엔?”
“그런 다음은… 뭐,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 * *
도계 측 우주장벽.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흐물거리면서 중년인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곧바로 목이 잘린 채 죽어있는 신비인의 시체로 향했다.
중년인의 정체는 바로 수미신국의 재상, 방당사.
한참을 말없이 서 있던 방당사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백의인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무극(武至), 어떻게 생각하시오?”
방당사가 무극이라 부른 남자는 수미신국의 최정예, 천책군(天策軍)의 수장인 무극존상(武至尊上)이었다.
잠시 후.
시체를 살펴보던 무극의 입에서 중후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우리가 예상한 수준을 넘는 것 같소.”
이 말을 듣자 방당사가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때 무극이 고개를 돌려 한쪽 방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먼 성공에서 생선구이를 뜯고 있던 막념이 무극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뭘 봐? 한판 뜰까?”
무극은 대화 일체를 생략한 채 곧장 막념을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순간, 주먹을 타고 방출된 강대한 권인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간을 가르며 막념에게로 날아들었다.
권인 안에는 범인이라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흉흉한 살기가 맺혀 있었는데, 이 외에도 무려 세 가지 도칙의 기운이 응집되어 있었다.
살벌도칙(殺伐道則).
권의도칙(拳意道則).
패도도칙(霸道道則).
심지어 세 가지 도칙은 모두 극성에 도달한 상태!
이 일권에 담긴 위력은 이미 세상의 법칙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반대편 성공.
막념은 무심한 눈으로 허공을 주시하며 먹고 있던 생선 꼬치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던 그녀는 권인이 코앞에 닥쳐서야 한 발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쿵-!
순간 그녀 주위의 공간이 크게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소멸될 듯 희미하게 변했다.
이때 막념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굉음을 내며 날아드는 권인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권인을 가볍게 건드린 순간,
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