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45
1245화 너부터 시작하면 되겠구나
엽현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오른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가 귀엽게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진요악이라고 해!”
진요악?
무심코 소녀를 응시하던 엽현은 순간적으로 뜨악 하는 표정이 되었다.
소녀의 기운은 자신과 같은 둔일이었던 것이다!
“헤헤, 내가 먼저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와줄 줄은 몰랐네?”
“나를 찾아? 혹시 우리가 아는 사이였던가?”
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어떤 언니가 너에 대해 이야기 해 주면서 한 마디 전해 달라고 했어.”
“언니?”
“응, 하얀 소복을 입은 엄청나게 강한 언니!”
천녀!
순간 엽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녀가 무슨 말을 남겼지?”
“음… 그러니까 자기는 운단(雲端) 위에서 기다리겠다고, 힘내라고 그랬지 아마?”
운단!
엽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운단이란 과연 뭘까? 지명을 뜻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구름 위라는 말일까?
엽현은 시선을 장벽 쪽으로 돌렸다.
“누님, 그녀가 저쪽에 있소?”
막념이 고개를 저었다.
“내게 묻지 마라. 나도 그녀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아….”
엽현은 쓴웃음을 흘렸다.
문득 그는 천녀가 그리워졌다.
이때 진요악이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두 사람이서 저쪽으로 건너가려는 거야?”
회상에서 돌아온 엽현이 진요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건 왜 묻지?”
이에 진요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희는 저리로 못 가. 왜냐하면, 장벽이 너무 두꺼워서 보통의 힘으로는 절대 열 수가…”
바로 이때였다.
쾅-!
막념이 손으로 가볍게 허공을 긋자, 우주장벽이 너무나도 쉽게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를 본 진요악은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에, 에?”
막념이 진요악을 보며 말했다.
“간단하잖아. 뭐가 어렵다는 거야.”
“저, 그러니까…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어디가?”
막념이 웃으며 말하자, 진요악이 홀린 듯 천천히 장벽 쪽으로 다가갔다. 이때 가운데가 뻥 뚫려 있던 장벽은 이미 원래대로 돌아온 상태였다.
장벽 앞에 멈춰 선 진요악.
그녀가 갑자기 허리춤에서 도를 뽑아 들더니 있는 힘껏 내리쳤다.
쾅-!
순간, 장벽에서 흘러나온 강대한 힘에 의해 진요악이 무려 천 장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이를 본 엽현의 표정이 가볍게 흔들렸다.
둔일경의 무인을 저렇게 튕겨 내 버리다니!
과연 우주장벽이 약한 게 아니라 막념이 너무나 강한 것이었다.
한편, 멀찌감치 내동댕이쳐진 진요악은 한쪽 팔을 부여잡으며 인상을 쓰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도대체 어째서?”
“왜 나는 되고 너는 안 되는지가 궁금한 것이냐?”
막념의 물음에 진요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막념이 웃으며 답했다.
“그야 당연히 네가 그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요악은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도계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둔일에 이른 사람이라고!”
막념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래? 그런 대단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장벽 하나 부수지 못하는 거지? 이해가 되질 않네?”
“그게… 오늘 밥을 안 먹고 나와서 그래. 힘이 없어서 그랬다고!”
“…….”
막념이 돌연 자지러지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밥을 안 먹어서라고? 쪼그만 게 말도 귀엽게 하는구나! 하하! 아이야, 진짜 둔일이 되고 싶으냐?”
진짜 둔일!
“언니도 내가 진짜 둔일이 아니란 걸 알아볼 수 있어?”
“물론!”
“언니, 그럼 알려줘! 어떻게 하면 진정한 둔일이 될 수 있는 거야? 부탁할게!”
진요악이 애원하듯 말했지만 막념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널 가르칠 수 없다. 하지만…”
막념이 엽현을 가리켰다.
“이 녀석이라면 널 진짜 둔일의 길로 인도할 수 있지.”
진요악은 엽현을 흘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사람은 아직 둔일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에겐 도경이 있지.”
도경!
순간 진요악의 눈이 밝아졌다.
“들어 본 적이 있어! 한 줄만 읽어도 둔일을 넘어설 수 있다는… 너한테 정말로 도경이 있는 거야?”
이번에는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 나 한 번만 빌려줘! 하루, 아니 한 시간만 보고 줄게!”
“…….”
“응? 조금만 보여줘! 닳는 것도 아니잖아?”
애원하듯 조르는 진요악을 보자, 엽현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볼 수 없어. 왜냐하면, 내겐 아직 서옥을 열 능력이 없거든. 이렇게 하자. 나와 함께 다니다가 언젠가 서옥을 열 수 있게 되면 네게도 도경을 보여줄게. 이러면 어때?”
“지, 진짜? 보여 줄 거야?”
“정말로!”
엽현이 진지하게 대답하자 진요악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따라다닐게!”
엽현이 막념을 향해 의중을 묻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이에 막념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저 장벽 너머로 갈 건데 괜찮겠느냐?”
“어… 그런데 저기는 아빠가 위험한 곳이라고 했는데…….”
“하하, 무서운가보구나. 그럼 할 수 없지. 우리끼리 가…”
“아니야! 나도 갈 거야!”
“하하하! 그럼 슬슬 이동하자.”
말을 마친 막념이 조금 전처럼 허공을 긋자 우주장벽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이내 세 사람은 장벽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벽을 통과하는 중 엽현의 머릿속에 구층 존재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하필 너희 두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재수가 드럽게도 없는 아이로구나. 쯧쯧…….]“…….”
한편, 우주장벽 안쪽에 진입하자, 거대한 회오리가 세 사람을 맞이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막념은 춘풍을 가로지르듯 매우 평온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엽현과 진요악의 상황은 달랐다.
벌써부터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한 엽현은 서둘러 금강불체를 발현했다. 그러자 그의 창백했던 안색이 점차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엽현은 곁에 있던 진요악을 바라보았다. 진요악 역시 무형의 호신강기를 만들어 회오리의 압력으로부터 몸을 지켜내고 있었다.
이를 본 엽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보통내기가 아니군.
어린 나이에 이미 둔일경에 오른 진요악을 보며 엽현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심지어 자신보다 한 단계 높은 둔일 중경의 단계였다.
과연 어떤 수련을 했기에 남보다 빨리 둔일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일까?
한편, 마찬가지로 진요악을 쳐다보고 있던 막념에게 엽현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누님이 보기에 이 아이는 어떤 것 같소?] [쓸 만하구나.]쓸 만하다!?
엽현은 뭔가 더 말 하고 싶었지만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서로의 관점은 분명 다를 수 있는 것이니까.
[물론 대단한 자질이기는 하다. 허나, 경험이 일천하여 훗날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아직은 미완이라 봐야겠지.]막념의 이 말을 듣자, 엽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
하긴, 온실의 화초처럼 자랐을 것이 뻔한 이 소녀는 앞으로 암투가 난무하는 험난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심경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언니,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막념이 진요악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곧장 수미신국으로 간다. 수미신국에 대해 알고 있느냐?”
진요악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
이때 말을 하던 진요악의 눈동자에 한 줄기 근심의 기색이 스쳤다.
“있잖아… 우리 다시 돌아갈 수 있긴 한 거지?”
“하하, 물론이지!”
진요악이 안심하며 무슨 말을 더하려는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폭풍 같은 강대한 기운이 세 사람을 향해 불어 닥쳤다.
엽현이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정면을 쳐다보자, 폭풍 속에서 중년인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중년인은 세 사람을 보자마자 소리부터 버럭 질렀다.
“웬 놈들이냐! 겁도 없이 수미신국에 침입하다니, 간덩이가 배 밖으로…”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 막념의 소매가 펄럭였다.
쾅-!
순간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중년인의 목이 몸과 분리되어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이를 보자 엽현과 진요악은 그대로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막념이 두 사람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깜빡이며 말했다.
“어차피 싸우러 온 건데 굳이 시간 낭비할 거 없잖아?”
“…….”
이때 진요악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언니, 죽일 땐 죽이더라도 말은 끝까지 들어 주는 게 좋지 않아?”
“음? 왜 그래야 하지?”
“그러니까… 한 마디도 못 하게 하고 죽여 버리면 귀신이 돼서 따라다닐 것만 같아…….”
“…….”
엽현은 잠시 진요악을 바라보았다.
역시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말투나 생각하는 것이 다소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념 역시 진요악이 귀여운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쩜 이렇게 천진난만할까?”
바로 이때, 진요악이 막념에게 바짝 붙더니 성역 한쪽을 응시했다.
“저쪽에 무서운 게 있는 거 같아.”
엽현이 시선을 돌리자 과연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막념은 웃으며 진요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누가 오고 있구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간이 크게 요동치더니, 돌연 중년 남자 하나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수미신국의 재상, 방당사였다.
“존상….”
방당사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막념이 여유 있게 웃으며 반겼다.
“또 보는군. 지난번에는 잘 들어갔던가?”
“존상! 정녕 혼자서 수미신국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순간 막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왜 못 할 거 같으냐?”
“…….”
방당사는 말없이 막념을 쳐다보았다.
사실 수미신국은 막념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홀로 한 국가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긴 까닭이다.
하지만 굳이 막념과 다퉈야 할 이유 또한 없었다. 필경 상대는 초절정 고수, 만약 유혈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면 수미신국 또한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으리라.
바로 이때, 막념이 품 안에서 만유서옥을 꺼내 방당사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너희 왕에게 가서 전해라. 여기에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도경이 들어 있다고!”
순간 방당사는 황당한 듯 막념을 쳐다보았다. 상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읽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저게 뭐 하자는 짓이지?
잘난 척? 자신감?
아니면 그냥 미친 걸까?
방당사의 표정은 점점 의혹에 휩싸였다.
막념 정도 되는 강자에게 자만심이라는 쓸데없는 감정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녀가 홀로 적진에 찾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분명하다.
자신감!
막념에겐 틀림없이 수미신국 전체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던 것이다!
“뭘 그리 멍하니 쳐다보느냐? 도경을 원하는 거 아니었나? 자, 내가 손수 여기까지 대령했으니 알아서 가져가도록 하거라!”
“큭… 존상, 잠시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방당사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바로 이때였다.
“괜찮다. 오늘 어차피 살계를 열기로 마음먹었으니, 너부터 시작하면 딱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