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49
1249화 왜 그냥 가려고?
무엇 때문에 불법을 수행하는가?
엽현의 입에서 나온 이 한마디에 주지는 곧 말문이 막혔다.
수행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그야 당연히 불법을 익히기 위함이 아니던가!
부처를 배우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더 나아가 성불하기 위함이다.
당시 불가에 귀의했을 때 그의 마음은 확실히 이러한 목적을 쫓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순수하던 목적이 조금씩 변질돼 왔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말했다.
“삼만경(三藏經)의 구결 중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선 속이지 않고, 시비에 얽히지 않으며, 집착을 버려야 한다. 대사는 이대로 행해오고 있었습니까?”
“…….”
주지가 아무 말도 없자 엽현은 말을 이어갔다.
“집착이란 언제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일이고, 내려놓는 것은 묶인 줄을 푸는 것입니다. 제 눈에 비친 고사는 모두 철창 안에 자신을 가둬 둔 것처럼 보입니다.”
“…….”
엽현은 주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사,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고사는 서옥과 도경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도경은 한 무인을 진정한 둔일경,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인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남이 제시한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각자의 길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법이거늘, 어찌 남이 만들어 놓은 길에 그리 집착하는 것입니까?”
이 말을 들은 주지는 엽현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양손을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엽 시주, 빈승이 어리석었소.”
집착!
주지는 그제야 엽현이 어떻게 영명견성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깨달음은 결코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아니었다.
사실 서옥을 포기한 순간부터 엽현은 새로운 경지에 들어설 자격을 얻은 것이었다. 그는 다른 이처럼 서옥을 탐내지도 않았고, 죽자사자 매달리지도 않았다.
욕심을 버리니 집착 역시 자연스레 사라졌던 것이다.
이때 주지가 엽현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엽 시주, 그대를 고사로 모셔 함께 수행하고 싶소. 빈승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소?”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당장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면 고사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우리는 고사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마지막으로 가볍게 합장을 한 주지는 지사와 지무를 데리고 자리를 떠나갔다.
세 사람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을 때, 구층 존재가 말을 걸어왔다.
[저들이 과연 도경을 포기할까?]“글쎄, 그건 가 봐야 알겠지 말이오.”
“흠… 어쨌거나 저들에게서 불법을 익히는 것은 네 무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긴 하다. 다만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것이니 주의하도록 하거라.”
엽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불법에 대해 말하자면 그가 아는 것은 주지 등에 비해 새 발의 피일 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영명견성에 이를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엽현은 불가의 소위 증도(證道)니 성과(成果)니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세상의 일들은 손안의 모래로 묘사되곤 한다. 잃지 않으려 주먹을 쥘수록 더욱 쉽게 빠져나가고 마는 것이다.
엽현은 생각을 거두고서 전당포 문을 나섰다. 문 앞에 선 그는 하늘을 향해 가볍게 숨을 들이켜고는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순간, 한 줄기 검광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눈 깜빡할 사이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검심자재(劍心自在)!
조금 전의 깨달음은 그의 검도 경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로써 엽현의 실력은 계옥탑이나 혈맥지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교종 급의 둔일 극경 강자들과 정정당당하게 붙어 볼 수준이 되었다.
물론 이는 그의 경지가 둔일경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그가 겨뤄야 할 적들은 둔일 극경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강자들이었던 것이다.
수미신국!
얼마 후, 싸우게 될 세력의 이름이다.
비록 막념의 개입으로 반년이란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으리라.
반년!
이때 불현듯 뭔가 떠오른 엽현이 순식간에 한 줄기 검광으로 변해 자리에서 사라졌다.
***
한편, 오유계는 다시 평화로운 상태에 돌입했다.
왜냐하면, 도계가 잠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폭풍전야에 불과했다.
도계.
강우를 주축으로 설립된 도계맹은 둔일경 강자만 무려 칠십여 명을 보유한 초거대 세력으로 거듭나 있었다.
이 숫자는 도계 전체의 둔일경 강자를 죄다 긁어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물론 도촌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렇게 규모와 기세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지만, 강우는 여전히 움츠리고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입은 손해가 극심했던 까닭이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피해를 입게 된다면 그땐 완전히 끝이라는 걸 알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여, 도경이 막념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강우는 그녀를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수미신국조차 가만히 있는 판에, 자신들은 더더욱 전전긍긍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욱이 당시 막념이 수십 명의 둔일경 강자들을 뚫고서 서옥을 탈취한 일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강우 역시 어리석지 않았기에, 그런 괴물과 정면으로 맞상대하는 일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게다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수미신국이 서옥의 위치를 알려 준 것은 분명 자신들을 화살받이로 쓰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강우로서는 절대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 진 자가 먼저 움직일 것이고, 그때 가서 자신들이 행동해도 전혀 늦지 않을 테니까.
한편 이날.
선각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바로 지난번에도 찾아왔던 도촌의 이청이었다.
기별을 받은 강우는 곧 이청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오셨소?”
강우가 묻자 이청이 살포시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쯤이면 서옥이 우리에게 없다는 걸 눈치채셨겠지요?”
“흠… 일전의 일은 미안하게 됐소이다.”
“괜찮소. 그보다 서옥을 탈취해 간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아시오?”
“그건 바로… 오유계 천도였소.”
오유계 천도!
이 말을 들은 이청의 표정이 순간 크게 일그러졌다.
비록 한 번도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오유계 천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영역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녀가 그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한낱 천도에게 어찌 그런 능력이?
이청은 자신들이 천도의 존재를 너무 얕잡아 보았음을 깨달았다.
“그나저나 그녀에게 서옥이 있는 걸 알면서도 강 각주는 어찌 움직이지 않은 것이오?”
이청의 질문에 강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원한다면 도촌에게 먼저 기회를 양보하도록 하겠소. 우리는 전혀 급하지 않으니까.”
“흐음… 보아하니 오유계 천도의 실력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구려.”
“하하, 이런 이야기나 하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곧장 꺼내 보시오.”
이에 이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강 각주, 우리 도촌은 그대와 손을 잡길 원하오.”
“…….”
“오유계는 이미 하나로 똘똘 뭉쳐 있고, 육유계는 암묵적으로 엽현을 지원하고 있소. 이제 수미신국까지 서옥을 넘보는 이때, 우리끼리라도 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소?”
강우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에 이청이 진지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강 각주, 도경은 누구 한 사람이 꿀꺽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오.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소?”
“…좋소. 다만 일시적인 동맹일 뿐이오.”
결국, 강우가 승낙하자 이청의 안색이 환해졌다.
“우리 생각도 마찬가지요. 우리 쪽에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곧장 그대들에게 알려주겠소. 그대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정보라도 우리와 공유 해 주시오.”
“물론이오.”
강우의 대답에 이청이 고개를 끄덕인 후, 곧장 자리를 빠져나갔다.
강우는 떠나가는 이청의 뒷모습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편 이 시각.
엽현은 어검을 타고서 도계로 들어왔다.
그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선각자의 자취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엽족(葉族)!
사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엽가를 방문하고 싶었다. 이곳을 파다 보면 선각자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엽족이 위치한 곳은 어느 깊은 산맥 안쪽이었다. 큰언니의 인도를 받으며 이동한 엽현은 얼마 후 다 쓰러져가는 고성과 마주할 수 있었다.
작은 크기의 성은 매우 황량했고, 무너진 파편이 숲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있는 듯했다.
엽현은 성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쪽도 바깥과 마찬가지로 잡초가 사람 허리까지 우거져 있는 것이 꼭 귀신이라도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큰언니, 엽족은 전멸한 것이오?”
엽현이 질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언니가 대꾸했다.
“당시 수십 명의 둔일경 강자가 들이닥쳤으니 살아남은 자가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사실 선생은 이 사건과 관련해 흑막의 존재를 의심하곤 했다.”
“흑막? 더 자세히 말 해 보시오.”
“당시 선생이 도경을 획득했을 때, 외부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뒤 엽족을 공격했던 자들 중에는 도계의 무인은 물론 다른 세계의 강자들까지 섞여 있었지.”
“그런…….”
“만약 상대가 한두 명이었다면 모를까 수십 명의 둔일경 강자들 앞에서 엽족은… 처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지.”
“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오.”
엽현은 주변의 무너진 건물 잔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마친 엽현은 곧 성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성안 쪽으로 나아갈수록 격렬한 전투의 흔적은 더욱 늘어났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엽족은 도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세력이었다. 도계 최강자였던 엽란정이 탄생한 곳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찬란한 영광을 이어오던 엽족은 엽란정의 실종 이후 급격하게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엽란정의 재림이라 불린 엽청지가 나타났지만, 그의 등장은 영광의 재현은커녕 가문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최고의 자리에 있다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엽족의 일대기는 무척이나 비참한 것이었다.
바로 이때, 엽현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의 앞에는 다 쓰러져가는 낡은 전각이 주춧돌에 의지해 겨우 서 있었다.
사방은 이미 잡초에 덮여 있었고, 안쪽에서는 코를 찌를 듯한 퀴퀴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엽현이 이 초라한 전각 앞에서 멈춘 까닭은 바로 계옥탑이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엽현이 계옥탑을 꺼내자, 계옥탑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듯 가볍게 몸을 떨어댔다.
“큰언니, 무슨 일인 것 같소?”
“아무래도 안에 무언가 있는 모양이구나.”
“흠….”
전각을 응시하던 엽현이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그었다. 그러자 전각 앞을 뒤덮고 있던 잡초가 순식간에 제거됐다.
엽현이 전각 안으로 향하려는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음성이 울려 퍼졌다.
[정말로 들어가려느냐?]구층 존재의 목소리에 엽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또 그러시오?”
[그냥 내 감이다. 뭔가 불안하다고나 할까?]“특별히 느낀 것이라도 있소?”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구나.]이 말에 엽현은 신식을 펼쳐 전각 안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은 결국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구층 존재가 한 말에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던 것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랬다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뭔가 수상하면 아예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리라.
바로 이때, 전각 안에서 기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려는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