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64
1264화 이건 신뢰의 문제입니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자 엽현이 먼저 나섰다.
“강 각주,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갑시다. 현재 우리의 적은 극락지계 하나뿐인 것이오?”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미신국을 염려하는 것이라면 당장은 그럴 필요가 없소. 그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일은 극히 어려운 일이니까.”
“어째서 말이오?”
엽현이 질문한 이때, 곁에 있던 이청이 대신 대답했다.
“금제 때문이오!”
“금제?”
엽현이 그녀를 바라보자 이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도계의 우주장벽은 육유계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오. 게다가 어찌어찌 이곳으로 넘어온다 해도 대도의 법칙으로 인해 경지에 금제가 가해지게 되오. 물론 실력에 따라 정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온전한 힘을 낼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오. 단, 예외적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금제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소.”
“이 우주에 있는 것만으로도 금제가 가해진다고? 왜 그렇게 되는 것이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니까.”
우주의 법칙!
“이 거대한 우주에는 여러 가지 우주법칙이 존재하오. 정확히는 선천법칙(
先天法則)이라고 하는 이 법칙들은 우주의 탄생과 함께해 온 것으로, 일종의 우주의 수호자라 볼 수 있소. 우리가 제아무리 공간을 부수고 허물어도 금세 원래대로 복구되는 것도 바로 이 선천법칙 때문인 것이오.”
이청은 숨을 돌리고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도계의 공간은 수미신국만큼 견고하지 않소. 만약 그곳에서 한 번에 많은 강자들이 들이닥친다면, 그 힘을 견딜 수 없소. 때문에 도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의 경지를 제한하는 금제를 가하는 것이오. 물론 상대의 힘이 극악할 정도로 강력하다면 우주의 법칙도 소용이 없겠지만.”
이 말에 엽현은 막념을 떠올렸다.
막념은 도계나 수미신국을 마음껏 넘나들면서도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
왜 그랬던 것일까?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생각이다.
혹은 그녀와 같이 다니는 도계 천도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청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극락지계가 서옥을 탈취했다는 사실을 우주 전체에 퍼트리는 것이오. 전 우주에 숨어있는 은거기인이나 세력들이 모두 알 수 있도록 말이오.”
엽현은 문득 이청이 매우 영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빠르게 진행 해야만 하오. 만약 극락지계 쪽에서 역으로 우리에게 누명을 씌우려 든다면 그땐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될 것이오.”
이에 강우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도, 이청 소저가 말한 대로 준비하도록 하거라.”
“예, 각주!”
대답과 함께 막도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청이 다시 엽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엽 공자. 알고 있겠지만, 그대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황이오. 그들이 정말로 서옥을 열 수 없다면 반드시 그대를 찾아올 테니 말이오.”
“그럼 어쩌면 좋겠소?”
“흠… 오유계 천도는 지금 어딨소?”
이청의 물음에 엽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중상을 입어서 당분간 출수할 수 없는 상태요.”
“…….”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가서 조사해 보시오.”
이 말에 이청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수미신국으로 향했던 것은 이미 알고 있었소. 내가 하려던 말은 그녀의 상처가 그리 중하다면 그대의 처지는 더욱더 곤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
이청은 엽현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편 엽현의 얼굴은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이청 낭자, 그대는 분명 오유계의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평범한 세력이라면 몰라도 극락지계 같은 강대 세력을 상대로 우리 오유계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소. 만에 하나 그들 중 일부만이라도 오유계로 쳐들어온다면 그때 우리는…… 에휴… 나 같은 깜냥도 안 되는 놈이 왜 그리 욕심을 부렸던 것인지… 진작 서옥을 포기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때 곁에 있던 강우가 엽현의 어깨를 토닥였다.
“엽 공자,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그런 신물 앞에서는 누구라도 탐심을 갖게 되는 게 당연하오.”
엽현은 재차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해냈다.
“그 말도 맞기는 하지만… 에휴… 지금의 나는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서 예전처럼 수련이나 하고 싶은 마음뿐이오. 이렇게 마음 졸이며 사느니, 차라리 그들에게 서옥을 열어 주는 편이 백번 나은 것 같소.”
이 말을 들은 순간, 강우가 화들짝 놀라 엽현을 쳐다보았다.
“엽 공자,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오! 잘 한번 생각해 보시오! 그들이 도경을 얻게 되면 과연 그대를 가만히 두겠소? 그대의 천부적인 자질을 생각하면, 극락지계가 가장 먼저 노릴 것은 바로 엽 공자 그대란 말이오!”
엽현이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이제는 너무 지치는구려……”
“엽 공자! 정신 차리시오! 이제 그대는 혼자가 아니오!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소! 나 강우,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대를 지켜 낼 것이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주겠다!
엽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신의 전략이 슬슬 먹혀들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이때의 강우는 엽현이 정말로 투항이라도 할까 봐 다급해져 있었다.
이때 이청이 강우를 거들고 나섰다.
“엽 공자, 조금 전에 언급했던 오유계와 도계의 연합은 농담 삼아 한 말이 아니었소.”
이에 엽현이 고개를 들고 이청과 강우를 바라보았다.
“이청 낭자, 강 각주. 내 생각에 우리 셋 중 누구 하나도 홀로 도경을 차지하는 건 어려울 것 같소. 그대들 생각은 어떻소?”
강우와 이청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정색하며 말했다.
“현실적인 판단이 섰다면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우리 셋이서 손을 잡고 적에게 대항하기로. 물론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연합을 말하는 것이오. 그러다 언젠가 도경을 차지하게 되면 셋이서 공평하게 공유하도록 합시다.”
강우와 이청은 생각이 많은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대들이나 나나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오. 지금 그대들이 하고있는 연합의 형태는 겉보기에는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진정한 위기가 닥쳤을 땐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말 것이오. 내 말이 틀렸소?”
이에 강우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엽현이 말한 대로 둘은 서로 크게 신뢰하는 관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강경하게 말했다.
“그대들이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의 적이 누구인 것 같소? 바로 불법의 원류인 극락지계가 아니오? 우리가 단결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을 상대할 수 있겠소? 게다가 수미신국은 또 어떻소? 그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것 같소? 절대 아니오. 그들 또한 호시탐탐 서옥을 노리고 있을 거란 말이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힘을 모으지 않으면 어찌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소?”
“그래서…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오?”
이청의 말에 엽현이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내 말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진정한 연맹을 이루자는 것이오. 그대들은 이미 나의 뒷조사를 끝냈을 것이오. 그렇다면 내 성격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언제 나 엽현이 누군가를 배신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
강우와 이청은 말없이 엽현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들이 조사하기에도 엽현은 매우 의리를 중시하는 자로 묘사되어 있었다.
실제로도 엽현은 진작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오유계에 남아 오유겁에 대비하고 있지 않은가!
일단 이런 자는 적으로 만난다면 머리가 아프겠지만, 같은 편이 된다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배신할까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정은 그대들이 하는 것이오. 하지만 우리 셋 중 누구 하나도 혼자서는 극락지계나 수미신국과 경쟁할 수 없소. 셋이 단결을 해야만 간신히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생기는 것이오!”
“그럼 그대가 말하는 진정한 연맹은 어떻게 해야 가능한 것이오?”
이청의 말에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하오! 전적으로 서로를 믿는 것이오! 만약 우리 사이에 신뢰가 아닌 불신이 가득하다면, 상대는 손쉽게 우리의 결속을 와해할 수 있소. 다만 신뢰로 똘똘 뭉친다면 누가 와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오.”
엽현은 이청과 강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는 그대들을 믿소. 그대들은 나 엽현을 믿소?”
“…….”
이청이 침묵하는 이때,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강우는 엽 공자를 믿소!”
이제 엽현의 시선은 이청에게로 향했다.
이때 이청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엽 공자, 왜 이리도 신뢰를 강요하는 것이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이오?”
이 말에 엽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강 각주, 이것 보시오! 이청 낭자가 또 나를 의심하고 있지 않소! 연합하기도 전에 의심부터 한다면 앞으로 큰일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소? 이대로는 못하겠소. 나 엽현은 싸우다가 뒤에서 날아온 칼에 목이 잘려 죽기는 싫으니 차라리 투항하는 쪽을 택하겠소. 그럼 수고들 하시오!”
이 말과 함께 엽현은 그대로 돌아섰다.
이를 보자 강우가 화들짝 놀라 이청을 향해 소리쳤다.
“이청 소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소! 대의를 위해서 사사로운 의심은 접어 두는 것도 방법이오! 물론 엽 공자가 다소 능청맞긴 하지만 신의를 중시하는 것도 사실이지 않소!”
“…….”
“되었소! 그대가 이렇게 의심이 많다면 우리 사이의 동맹도 없던 것으로 합시다! 더 이상 의심만 품는 자와는 같이 일할 수 없소!”
말을 마친 강우는 엽현이 떠나간 쪽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엽 공자, 잠깐 멈추시오! 도촌은 몰라도 우리 선각은 그대를 믿는단 말이오! 엽 공자!”
“…….”
강우는 확실히 도촌보다는 엽현에게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비록 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엽현의 몇 가지 행동에서 호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교종이 자폭을 해서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무인들이 중상을 입었을 때, 엽현은 자신들을 죽이는 대신 오히려 상처를 치료하라며 단약까지 내어 준 일이 있었다.
만약 도촌이라면 똑같이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엽현이 평소에 자기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이 간극은 더욱 넓어진다.
의리! 신의!
만약 도계가 망해간다고 가정했을 때 도촌은 엽현처럼 끝까지 남아서 의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의리는커녕 가장 먼저 도망갈 자들이 아닌가!
결정적으로 엽현은 도촌과 달리 서옥을 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즉, 엽현이야말로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것이다!
강우는 빠르게 신형을 날려 저 멀리 앞서가던 엽현을 막아 세웠다.
“하하, 엽 공자. 왜 이리 걸음이 빠르시오? 이청 낭자가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진 마시오.”
엽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강 각주, 그녀는 나뿐만 아니라, 선각까지 경계하고 있소. 알고 있소?”
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역시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소.”
“흠… 내 경험에 따르면 저런 자들이 귀가 얇아 친구를 의심하고 더 나아가 등에 칼까지 꼽는 것이오. 어떻게 생각하시오?”
“…….”
엽현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강우 역시 이를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뭔가 불안함을 느낀 이청도 그들에게 재빨리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