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70
1270화 억세게 재수 좋은 아이
도와주지 않으면 도경을 적에게 넘기겠다고?!
엽현의 반강제적인 협박에 강우와 이청의 표정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엽 공자, 걱정하지 마시오. 손을 맞잡은 이상 끝까지 그대 곁에서 싸울 것이오.”
“…….”
강한 어조로 말하는 강우와 달리 이청은 아무 말이 없었다. 여전히 엽현에 대해 신뢰보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녀는 서옥이 여전히 엽현에게 있다고 보고 있기까지 했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그러했던 것이다.
그렇게 반 시진 가량의 토론이 끝난 후, 엽현은 선각을 나섰다.
선각을 떠나가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만연했다.
* * *
수미신국.
궁전 내의 작은 대전, 수미신국의 국주가 말없이 자리에 앉아있다.
조금 전 유군백이 죽었다는 비보를 접한 터였다.
수미신국 최강 검수의 죽음.
게다가 극락지계 쪽에서도 문천보살을 포함하여 전원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이었다.
국주의 안색은 점점 어둡게 물들어갔고, 잔뜩 힘이 들어간 주먹이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오유계 천도! 이 정도였단 말인가!”
국주의 표정은 다소 복잡했다.
막념의 실력은 대체 어느 정도인가?
그로서는 전혀 종잡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때 무명 적삼을 입은 승려 하나가 대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기이하게도 한 손에 불이 붙은 등잔을 들고 있었다.
노인을 본 순간, 앉아있던 국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연심불조(燃心佛祖)!”
불조!
불조는 극락지계 내에서 보살보다도 더 높은 지위의 승려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다.
연심불조가 가볍게 합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 여인은 아마도 증도의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오.”
증도!?
순간 국주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진정으로 증도란 말입니까?”
연심불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진짜 둔일, 그중에서도 증도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오. 그 어떤 거품도 끼지 않은 진정한 증도 말이오.”
“어찌 그런…”
“그러게나 말이오. 한낱 천도가 증도에 도달할 수 있을 줄이야… 아미타불.”
연심불조의 눈가에 복잡한 기색이 흘렀다.
일개 천도가 진정한 둔일에 이른 것도 모자라 증도에 도달한 것은 그의 생각으로는 절대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주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과연 이게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증도!
국주는 문득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정도 되는 강자는 현재 수미신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역사를 돌이켜 보면 증도에 도달한 자가 있긴 있었으나,
가짜 증도, 즉, 매우 거품이 낀 증도경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진짜 둔일경 강자도 존재하지 않는 판에 증도라니!
앞으로 어떻게 오유계 천도를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국주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연심불조를 바라보았다.
“대사, 아무래도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좋을 듯싶소.”
상대가 증도라는 사실은 국주를 절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물건이 탐난다 하더라도, 상대를 봐 가면서 덤벼야 하는 법.
국주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목숨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이때 국주의 표정을 잃은 연심불조가 달래듯 말을 꺼냈다.
“너무 낙심할 것 없소. 현재 그녀는 액난지인에 뒤덮여 운신이 어려운 상태요.”
“액난지인?”
국주가 눈을 치켜뜨며 관심을 보이자 연심불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기로 엽 시주에게는 최초의 액인(厄因)인 액난지인이 붙어 있소. 이 액난지인이라는 것은 한 번 묻게 되면 죽을 때까지 상대를 따라 다니게 되오. 더욱 지독한 것은 그와 관련된 사람들 또한 이 액인이 옮겨붙을 수 있다는 것이오. 막념이란 여인은 그와 관련된 것을 넘어서서 수차례 상황에 개입하여 엽현 대신 액난지인을 막아 왔소. 현재의 그녀는 이미 액난지인에 둘러싸여 운신조차 어려운 상황이 틀림없소!”
운신조차 어려운 상황!
“대사, 그걸 어찌 확신하시오?”
국주가 황급히 묻자 연심불조가 진중한 얼굴로 대답했다.
“극락지계의 비술을 이용해 그 여인의 과거를 엿본 적이 있소. 그녀는 지금까지 적어도 다섯 차례 이상 인간들을 대신해 오유겁을 막아 왔소. 우주의 법칙에 대항한 것만으로도 이미 큰 대가를 치르고 있었을 것이오.”
이에 국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강한 여인이 대가를 치러봐야 얼마나 타격이 있었겠소?”
“흠… 내가 알기로 그녀는 처음부터 이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소.”
“…….”
“어쨌거나 곧 새로운 오유겁이 도달할 것이오. 만약 그녀가 이번에도 오유계를 지키려고 나선다면, 그때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오!”
국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막념을 계속 자극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큰일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면 증도경 강자의 보복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국주, 설마 포기하려는 것이오?”
“…….”
연심불조가 합장을 하며 말했다.
“국주,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소. 지금도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엽 시주가 서옥을 열고 오유계 천도가 도경을 얻게 된다면 어찌 될 것 같소?”
이 말을 듣자 국주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국주, 아시겠소?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 셈이오. 전진하지 않으면 죽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 말이오. 게다가 도경은… 우리의 마지막 희망 아니오?”
“…….”
이때 국주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연심불조를 바라보았다.
“대사, 혹시 오유겁을 앞당길 방법이 있겠소?”
연심불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 * *
엽현이 오유계로 돌아왔을 때, 안란수와 연만리는 여전히 폐관 중에 있었다. 백의노인의 전승을 지니고 들어갔으니, 출관할 즈음에는 실력에 커다란 변화가 있으리라.
아주와 사도, 그리고 아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은 둔일경이었지만, 진짜 둔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엽지명의 지도 아래 폐관에 들어갔으니 진정한 둔일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현재 오유계의 주축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다섯이 진짜 둔일이 된다면 오유계의 실력은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를 이룰 수 있으리라!
어느 장원 안.
엽지명과 엽현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것은 다름 아닌 엽현이 꺼내 든 삼생석이었다.
“엽 소저, 이게 정말로 저승에서 온 것이오?”
엽지명이 엽현을 돌아보더니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재수가 없는 놈으로 기록될 것이다.”
“…….”
엽현은 다시 삼생석을 바라보는 엽지명의 눈빛에서 거리낌의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명부(冥府)의 보물이 맞다. 삼생석에 담겨 있는 삼생결은 고금을 통틀어 두 번째로 강력한 심법(心法)이지.”
“첫 번째는 무엇이오?”
“도경심법(道經心法). 도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 구권에 있는 심법이지.”
도경심법.
“헤헤, 그럼 이 삼생결도 분명 대단하겠구려.”
이에 엽지명이 한심하다는 듯 엽현을 쳐다보았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뭐, 뭐? 갑자기 왜 욕을 하고 그러시오?”
엽지명이 삼생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네게 무슨 결과를 가져다줄지 알고는 있느냐?”
“그, 그야… 저승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정도?”
엽지명이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저승에서 삼생석의 위치는 이쪽 세계의 도경과 마찬가지다.”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이라면, 지금이라도 돌려주면…”
“하하하, 그게 가능만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바로 이때, 삼생석이 진동하면서 표면에 두 줄의 붉은 선이 나타났다.
이를 보자 엽현이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 아냐! 안 돌려줄게. 안 돌려 줘!”
이 말에 삼생석은 다시 잠잠해졌다.
이를 본 엽현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골치가 아파왔다.
데리고 있자니 저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보내자니, 삼생석이 당장 달려들 테고.
젠장, 그때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때 엽지명이 말했다.
“이 돌은 자신의 의지로 저승에서 도망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눈을 피해 지내 왔다는 것은 네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다는 반증이다.”
엽지명이 엽현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삼생석과 저승은 적대 관계에 있다. 네가 삼생석과 함께 한다는 것은 곧 저승과 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큭… 하지만 나는 그들과 아무 원한도 갖고 싶지 않소!”
“음? 그럼 애당초 이 녀석을 왜 데리고 나온 것이냐?”
엽지명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묻자 엽현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데려온 게 아니라 제 발로 날 따라 온 것이오!”
이 말에 엽지명의 말이 순간 커다래졌다.
“알았다! 녀석은 널 이용해서 저승과 대항할 생각이로구나!”
엽현이 고개를 저었다.
“이용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소!”
“그건 네 생각이고. 녀석이 이미 네 곁에 붙어서 떨어지려 하질 않는데 어쩌겠느냐?”
“큭…….”
엽현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아무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엽지명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저승도 번거롭지만, 이 돌덩이 역시 마찬가지니까. 오유계에서는 막념외에는 이 녀석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심지어 지금 그녀의 상태를 고려하면 완벽히 제압하는 건 힘들지도 모르지.”
엽지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엽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재주는 별로 없는 게 일을 만드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구나.”
“…….”
엽현은 억울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특별히 뭘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나저나 저승을 알고 있느냐?”
상념에서 깨어난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들어보긴 했지만, 실체는 알지 못하오.”
“내 모든 걸 걸고 말할 수 있는데, 그곳은 감히 네가 건드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진짜 둔일과 증도, 심지어 증도지상(證道之上)의 존재가 있는 곳을 어찌 상대한단 말이냐?”
증도지상!
이 말을 들은 순간, 엽현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사실이라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엽현은 삼생석을 몰래 극락지계나 수미신국에 놓고 오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곁에서 기이한 음성이 들려왔다.
“흥!”
엽현과 엽지명이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삼생석 가운데서 자그마한 소녀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략 열대여섯 정도로 보이는 소녀는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곱게 땋은 머리가 둔부에 닿을 정도로 길게 내려와 있었다.
귀여운 외모의 소녀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엽현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소녀의 등장과 함께 삼생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순간 엽현은 이 소녀가 삼생석의 기령(器靈)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엽지명은 차가운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우려하는 것은 이 소녀로 인해 빚어질 저승과의 갈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