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271
1271화 아주 가관이야, 가관
소녀는 양손을 뒤로 한 채, 느릿느릿 엽현과 엽지명에게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엽지명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승이 그렇게 대단해?”
“…….”
소녀는 이번에는 엽현을 쳐다보았다.
“무서워할 거 없어. 저승이라 해 봐야 별 볼 일 없는 쓰레기들일 뿐이니까. 만약 감히 나를 찾아… 아니, 너를 찾아온다면 한 주먹에 박살 내 버리면 그만이야!”
가만히 소녀를 응시하던 엽현이 입을 열었다.
“저기… 나 좀 그만 쫓아다니면 안 될까?”
이 말에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엽현을 노려보았다.
“나보러 꺼지라는 거야?”
소녀가 주먹을 불끈 쥔 순간, 세 가지 강대한 기운이 장내에 휘몰아쳤다.
이와 함께 장내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오유계의 공간을 지울 정도의 강력한 기운!
엽현이 안색이 창백해져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어! 정말로! 믿어줘!”
이때 엽지명이 엽현을 흘끗 쳐다보더니 지나가듯 툭 던졌다.
“사내자식이 겁먹기는.”
이에 엽현이 눈을 크게 뜨고 엽지명을 쳐다보았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이때 기운을 거둬들인 소녀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거짓말 아냐. 저승은 사실 별로 겁낼 것도 없어.”
“…….”
“정말이라니까? 만약 네가 그곳에 가면 저승 놈들을 죽이는 건 닭 모가지 비트는 것보다 쉬울걸?”
엽현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아무리 봐도 거짓말처럼 들렸던 것이다.
소녀는 전략이 통하지 않자 다소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못 믿겠으면 저승에 데려가 줄 테니, 네 눈으로 직접 보든가! 아니, 아예 다 때려죽이고 네가 저승의 왕이 되는 거야. 어때?”
엽현의 표정이 크게 출렁였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저승을 공격하라고 등을 떠밀려는 것인가!
“왜? 왕 싫어?”
소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자 엽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뭐가 문제야? 내가 도와준다니까?”
“…….”
소녀는 아무 대꾸도 없는 엽현에게 화를 내듯 소리쳤다.
“무슨 남자가 간이 이렇게 콩알만해? 한 번뿐인 인생 도전해야 할 거 아냐!”
“…….”
소녀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저승은 정말로 별거 아냐! 그 여자하고 같이 가면 금방 정리할 수 있다니까?”
그 여자!
소녀가 말한 그 여자는 물론 막념이었다.
이때 엽현이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저… 저승이 그렇게 약하면 네가 가서 왕 하면 되잖아? 왜 굳이 나를…”
“그건 안 돼!”
“왜?”
“비밀이야! 묻지 마!”
“…….”
엽현이 속으로 욕을 하고 있는 이때, 소녀가 돌연 지도 한 장을 꺼내 펼쳤다.
“이게 바로 저승의 지도야. 잘 들어봐. 자, 일단 여기 귀문관(鬼門關)으로 해서 진입하는 거야. 그런 다음 풍도성(酆都城)까지 죽이면서 쭉 밀고 올라가. 그리고… 어, 그렇지! 여기서 네가 일검에 저승 주인을 목을 날려 버리면 완성! 이러면 바로 네가 저승의 왕이 될 수 있어. 어때, 쉽지?”
이쯤 되자 엽현은 소녀가 자신을 바보로 아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로 저승의 지도로군.”
지도를 들여다보던 엽지명이 고개를 들어 소녀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성공할 자신 있나?”
소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이지! 너도 할래? 특별히 끼워줄게!”
“흠… 그러기엔 우리 숫자가 좀 적지 않아?”
소녀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엽현을 쳐다보았다.
“그럼 네가 사람을 좀 모아봐.”
엽현의 표정이 검게 물들었다.
왜 자신이 계획에 참여할 거라 확신하듯이 말한단 말인가!
이때 엽지명이 소녀에게 말했다.
“네가 볼 때 이 녀석의 실력이 어떤 것 같으냐?”
소녀가 엽현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많이 모자라.”
“그럼 이 아이가 저승의 왕을 이길 확률은?”
“혼자서 라면 희박하지. 하지만…”
소녀가 엽현의 복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검 좀 꺼내 봐봐.”
엽현은 소녀의 말을 알아듣고 청삼남의 검을 꺼내 들었다.
소녀가 손으로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검의 주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먼저 그를 이곳에 데려와야겠지?”
순간 엽현의 입가가 실룩였다.
이제는 청삼남까지 이용할 생각이란 말인가!
“이 검의 주인은 이곳에 없다.”
엽지명의 말에 소녀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럼 어디 있는데?”
이 질문에 엽현이 대답했다.
“아주 먼 곳에!”
“얼마나?”
“아주 아주 먼 곳에!”
“그게 얼마나 먼 건데?”
순간 엽현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보다 끈질긴 자는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엽현이 말을 꺼냈다.
“내 생각에 저승 공격은 불가능한 계획은 아니야. 다만 좀 더 장기적으로, 그러니까 완벽하게 계획해야 할 거 같은데?”
이 말에 소녀가 다소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엽현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저승의 왕! 얼마나 멋있어!”
“맞아! 저승의 왕이 되면 엄청난 일들을 할 수 있어!”
이때 엽현이 불현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긴 해도, 지금 당장은 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어째서?”
소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엽현이 진지한 투로 대답했다.
“왜냐하면, 수많은 적들이 내게 있는 서옥을 뺏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거든.”
“네 물건을 뺏으려 한다고?”
“맞아! 그 나쁜 놈들이 조만간 이곳으로 올 거야! 그래서 함부로 오유계를 빠져나갈 수가 없어!”
이에 소녀가 화가 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버러지 같은 놈들! 감히 이 몸의 완벽한 계획을 방해하다니, 용서할 수 없어!”
엽현이 눈을 부릅뜨며 맞장구쳤다.
“그러니까 말이야! 지금 이 상황에서 저승을 공격하면 우리는 앞뒤로 먹히는 신세가 될 뿐이야. 그러니까 당장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
소녀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앞뒤에 적이라… 이건 병가(兵家)에선 금기시 되는 상황인데.”
이에 엽현이 화들짝 놀라며 소녀를 쳐다보았다.
“한눈에 형세를 파악하다니! 너, 병법에도 굉장히 능하구나! 어쩐지 등장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대단해!”
이때 소녀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품 안을 뒤적이더니, 한 무더기나 되는 책들을 엽현 앞에 쏟아냈다.
“이 몸은 말이야, 이래 봬도 병법에 일가견이 있다구!”
“아… 그, 그렇구나!”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저승을 무너뜨릴 계책은 만 가지도 넘어.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사람이 부족하다는 건데……”
소녀가 고개를 들어 엽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혹시 쓸 만한 무인들 좀 모아 볼 수 있어?”
엽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는 자신과 막념도 모자라서 오유계 전체를 수렁에 빠뜨릴 셈인가!
소녀는 말을 이어갔다.
“또 병가에는 이런 말이 있지. 출병을 하기 전에 먼저 등 뒤를 든든히 해야 한다고.”
“그, 그래! 등 뒤! 혹시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음….”
소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병서를 한 권 뒤적이기 시작했다.
“적의 규모는 얼마나 되지?”
“아주 많아. 그것도 최소 두 개의 세력 이상이 연합한 상태지.”
순간 소녀의 눈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이간책으로 간다! 그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켜서 손도 대지 않고 자멸하도록 유도하는 거지!”
이 말에 엽현이 무릎을 탁 때렸다.
“그런 방법이! 대단해! 적들은 생각도 못 할 방법이야!”
“크하하하하! 이 정도야 우습지!”
“하하하하!”
이때 엽현이 웃음을 뚝 그쳤다.
“이봐, 그런 의미에서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어.”
이 말에 소녀가 눈을 깜빡이며 관심을 보였다.
“부탁? 무슨 부탁인데?”
“사실… 나는 오유맹이라는 세력의 수장을 맡고 있어. 병졸들의 수가 무려 백만이나 되지. 하지만 이날 이때까지 적당한 군사를 찾지 못했단 말이지.”
군사!
소녀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는 순간, 엽현이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말했다.
“그대를 오유맹의 군사로 모시고 싶소. 부디 오유맹 백만 대군의 머리가 되어 오유계를 지킬 지략을 세워 주시오!”
엽현의 말을 들은 소녀는 한 눈에도 잔뜩 흥분한 기색을 띠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하지만 이내 무슨 생각에서인지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나는 함부로 누군가를 위해 지략을 펼칠 수 없어!”
“그런 법이 어디 있소? 무슨 이유로 말이오?”
소녀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엽현이 다시 예를 차려 말했다.
“그대의 지혜는 하늘에 닿았으니, 내가 그대를 얻기만 한다면 다시 한 번 이 오유계에 태평성대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대대손손 강성한 부국을 일구게 될 것이며……”
엽현이 말을 하는 사이 소녀는 뒷짐을 진 채, 짐짓 고민하는 척 제자리를 거닐었다.
“그대가 대답할 때까지 여기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겠소!”
엽현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소녀는 그제야 못 이긴 척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어. 아니… 되었소! 그대가 이렇게까지 삼고초려를 하는데 인지상정, 뿌리칠 수가 없구려!”
이 말에 얼굴이 환해진 엽현이 소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맙소! 그대를 얻게 된 것은 이 엽현의 복이자, 오유계의 복이오!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떻게 부르면 되겠소?”
“내 이름은 도삼생(道三生)이오. 앞으로 나를 삼생군사라 부르면 될 것이오!”
“삼생군사!”
군사!
도삼생은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나저나 우리의 병력이 정확히 얼마나 되오?”
“그건…”
엽현은 도삼생에게 오유계의 병력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엽현의 말이 끝났을 때 그녀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보아하니, 우리 쪽이 열세인 듯하군.”
“그렇소, 군사!”
“흠… 이 상태라면 저승으로의 진공은 미루고, 먼저 앞에 있는 적을 처리하는 전술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름하야 ‘차근차근’ 전법이오.”
이 말을 들은 엽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당분간은 저승을 공격할 일은 없게 된 것이다.
“자, 그럼 먼저 수미신국부터 쳐들어갑시다.”
“쳐들어가? 굳이 우리가 말이오?”
도삼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적진 깊숙이 침투해서 모반을 일으키는 것이 나의 전략이오.”
“…….”
“이후의 전략은 이렇소. 수미신국에게 항복을 받아 낸 뒤, 극락지계를 쓸어버리고, 저승까지 삼킨 후, 마지막으로 우주 전체를 정복하는 것이오!”
“우, 우주 정복!? 지금 제정신, 아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오?”
도삼생이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갑시다! 지금 당장 수미신국으로 출진하겠소!”
도삼생은 엽현의 팔을 붙잡고는 문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잠깐. 이렇게 둘 만 말이오?”
“무슨 문제라도 있소?”
“아, 아니 이러다 포위라도 되면 어쩌려 하시오?”
이에 도삼생이 제자리에 멈춰 서서 엽현을 쳐다보았다.
“군사는 원래 손을 쓰는 법이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계획을 망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오! 자, 갑시다!”
말을 마친 도삼생은 그대로 엽현을 데리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지상의 엽지명은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두 사람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꼴통이 하나가 아니라 둘씩이나… 가관이로구나, 가관이야….”